가천박물관 2층 의학사료관에서는 한국의학의 역사와 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중국 의학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의학의 정립을 위하여 노력하였던 조선 전기부터 서양의학을 수용하는 근대까지의 의학을 전시하고 있다
가천박물관
1995년 10월 31일 개관했다
한국 의학의 역사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생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서 인류의 발생과 함께 의학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약장기
넓은 의미로는 약을 저장할 때 쓰는 기구 모두를 뜻하며
약장을 비롯하여 약단지 · 약병 · 약주머니 · 약합 · 약상자 · 약통 · 약궤 · 약롱 같은 것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약장 / 조선 후기
약장은 약 저장기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재료는 주변의 유실수를 비롯하여 소나무 · 오동나무 · 느티나무 · 회화나무가 많이 이용되었다
조선 초기의 향약의서 · 자주적 민족의학의 발달, 향약
고려 후기에 들어 우리나라 고유의 한의학을 정립하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의서에 나오는 약재들이 대부분 중국의 약재이고 이를 수입하는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충분한 양을 공급하기가 힘들었다
따라서 중국 약재를 대체할 수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약재를 이용한 치료방을 엮어
향약고방 · 향약혜민경험방 · 향약구급방 · 삼화자향약방 등과 같은 향약의서가 간행되었다
향약제생집성방 권6 / 1398년 · 목판본 · 보물 제1178호
김희선 등이 강원도에서 간행한 의약서로 한국에서 자생하는 약초를 집대성한 책으로 세종 때 간행된 향약집성방의 기초가 되었다
향약집성방 / 조선 17세기 · 목활자본
1433년(세종 15) 세종의 명으로 유효통 · 노중례 등이 간행된 향약에 관한 의약서다
세종은 우리 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 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병과 약에 대한 의토성(宜土性)을 강조하여
의약 제민(濟民)에 대한 자주적 방책을 세우고자 향약방을 종합수집한 향약집성방을 편집하게 한 것이다
천하의 보물 동의보감 · 허준의 생애와 의서 편찬 · 조선시대 의서의 편찬과 간행 · 의학 관련 국가지정문화재 현황
의학 관련 국가지정문화재 현황
보물 19권 중 8권(붉은 글씨)이 가천박물관 소장이다
태산요록 / 1434년 · 목판본 · 보물 제1179호
노중례가 왕명에 의해 편술한 태산(胎産)과 어린아이의 질병 치료를 담은 전문서적이다
태산요록에 실린 여자아이를 남자아이로 바꾸는 비법 '부인대전'에서 말하기를 임신 3월을 시태(始胎)라고 하는데
이때는 혈액이 흐르지 않고 형상이 변하며 남녀 성별이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복약과 방술로써 변화시켜 남아를 낳을 수 있다
방법은 도끼를 임산부의 침상 밑에 두는데 도끼날이 아래를 향하게 해야 한다
이것을 못 믿겠다면 닭이 알을 품을 때에 도끼를 닭의 둥우리 밑에 달아 놓으면 전부 수평아리가 태여나는 것을 실험해 보면 알 것이다
산거사요 / 조선 15세기 · 목판본 · 보물제1207호
중국에서 편찬된 '산거사요'를 조선에서 다시 간행한 의학서적이다
산촌사람들이 알아야 할 병에 대한 치료 · 약초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간이벽온방 / 1578년 · / 금속활자본 · 보물 제1249호
조선 중종 19년 관서지방에 전염병인 역질이 크게 번지자 왕명에 의해 편찬한 의서이다
온역에 필요한 모든 방문들을 뽑아 책으로 역고 한글로 번역하였다
세의득효방 권10~11 / 16세기 · 금속활자본(갑진자) · 보물 제1250호
원나라 위역림이 편찬한 임상의학서로 조선시대에 의과시험서로 사용되었다
가천박물관 소장본은 갑진자 활자본으로 국내 유일본이다
제중신편 / 1799년 · 목판본
1799년(정조 23) 왕명에 의하여 내의원(內醫院) 수의였던 강명길(康命吉)이 편술한 의서다
조선시대 의서의 편찬과 간행
조선 전기 의서의 편찬과 간행은 대부분 내약방이나 내의원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졌다
1399년(정종 1) 강원감영에서 간행된 '향약제생집성방'에서부터 1438년(세종 20)에 간행된 '신주무원록' 등 여러 의서들이
내약방 의원들이 주축으로 편찬 또는 수입되어 각 지방이나 중앙의 주지소에서 간행되었다
허준의 생애와 의서 편찬
조선 중기의 의관으로 본관은 양천, 호는 구암(龜巖)으로 김포 출생이다
할아버지 허곤과 아버지 허윤은 무관이었으나 허준은 무과에 지원하지 않았으며 29세인 1574년(선조 7) 의과에 급제하여 내의원에 봉직하였다
언해두창집요 / 1608년 · 목활자본
저자인 허준이 쓴 발문(跋文)에 의하면 1590년(선조 23) 겨울, 왕자가 두창에 걸려 허준이 시약하여 치유되었고
1601년(선조 34)에도 왕자 · 왕녀가 두창에 걸려 다시 약을 사용하여 치유되었다고 한다
이에 선조는 태산집(胎産集) · 창진집(瘡疹集) · 구급방(救急方)을 참고하여 언해를 하게 하였다
1602년(선조 35)에 편찬을 마치고 1608년(선조 41)에 이희헌(李希憲)과 이척각의 감독 아래 내의원에서 간행하였다
동의보감 / 조선후기 · 목판본
1596년에 허준이 왕명을 받고 편찬을 시작하여 1610년에 완성한 25권 25책의 백과사전적 의서다
1611년에 이정구(李廷龜)가 서문을 쓰고 1613년에 내의원에서 간행하였다
‘동의(東醫)’란 중국 남쪽과 북쪽의 의학전통에 비견되는 동쪽의 의학 전통 즉 조선의 의학 전통을 뜻한다
'보감(寶鑑)'이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뜻으로 귀감(龜鑑)이란 뜻을 지닌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과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이라 이름 지었다
천하의 보물 동의보감
당시 동아시아의 모든 의학지식과 임상의학의 각 분야가 총망라되어 있는 한의학 백과사전이다
25권 25책으로 내경편 6권 · 외형편 4권 · 잡병편 11권 · 탕액편 3권 · 침구편 1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몸 속에서 생기는 질병을 내경편에 싣고 몸 바깥에서 나는 질병을 외형편에 실어 처방을 쉽게 하였으며
각 병증에 대한 것이 증상을 중심으로 열거되어 있다
또한 환자들이 말하는 증상을 식별할 때 해당 병증에 대한 고금의 의방서들을 모두 참조할 수 있는 편리함을 주고 있다
본초학의 발달 · 채약도구
본초학의 발달
질병 치료에 쓰이는 식물계 · 동물계 · 광물계에서 얻은 물질인 본초(本草)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본초는 주로 의료에 사용되는 약물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발달되어 있다
삼국시대의 본초학을 살펴보면 고구려 평양왕 3년(561)에 중국으로부터 본초서를 수입하였으며
중국과 약재를 교류하는 한편 자국산 약재를 질병치료에 이용하였다
식물본초 / 16세기 · 금속활자본 · 보물 제1227호
중국에서 편찬된 식물본초를 조선에서 다시 갑진자 활자본으로 간행한 책으로 먹거리를 이용하여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의학서다
채약도구
주변의 산이나 들에서 약초를 채취할 때 사용하던 기구를 말한다
채약도구에는 약초 뿌리를 캘 때 필요한 약삽이나 약호미 또는 대나무로 만든 꼬챙이 약초를 담던 약초통 및 약망태기 등이 있다
호랑이두개골 · 원숭이 두개골 · 녹용 · 곰발
약전(藥典) 현판 / 조선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 권17 / 1577년 · 금속활자본 · 보물 제1716호
중국 송대에 이룩한 본초학의 권위서로서 우리나라에서 16세기 후반에 을해자로 인출한 책이다
약함 · 약항아리 / 조선 후기
약재의 법제 · 약작두와 약저울
채취한 약재는 곧바로 약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고 말리거나 찌는 과정을 거쳐 약효의 완성을 강하게 한 후에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곧바로 약으로 쓸 때에는 약강판에 갈아서 생즙을 냈다
약을 찔 때는 일반 시루보다는 크기와 부피가 작은 약시루를 이용하였다
약연기
약을 빻는 기구를 통틀어 약연기라 하는데, 약연 · 약맷돌 · 약절구 · 유발 · 약분쇄기가 있다
철제약절구 / 조선 후기
약틀 · 약성주기
일반 가정에서 탕약을 짤 때에는 약보자기에 감싼 후 젓가락이나 막대기를 이용해 비틀어 짜게 되는데
큰 한약방이나 식솔이 많은 사대부 집에서는 약틀을 따로 만들어 썼다
약탕기
약탕기의 일종으로 특기할 만한 것은 청동제 초두를 들 수 있다
약을 달일 때 쓰던 기구를 약탕기라 하는데 약탕관 · 초두 · 약두구리 · 약솥 · 약당 등이 있다
약탕기의 일종으로 특기할 만한 것은 청동제 초두를 들 수 있다
청동압형파수부초두 / 고려
침구학
침과 뜸을 사용하여 인체의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동양 고유의 의술과 이를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침구학은 동양인들이 수천 년 동안 질병과 싸운 경험의 결과로 이룩된 것이다
백자배밀이 / 조선 · 신응경 / 1474년 · 보물 제1180호
신응경은 침구 관련 전문의학서로 우리나라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초간본이다
사람의 신체 부위별로 나타나는 질병에 대한 침술의 사용법을 기술하고 있다
왕세자 병세호전 축하잔치 병풍 / 1879년 · 복제품
고종 16년 12월 28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열린 왕세자(순종)의 천연두 쾌유를 비는 축하잔치를 그린 병풍이다
왕세자는 이 해 겨울 천연두에 걸렸는데 의약청 관원들의 노력으로 병세가 호전되었고 12월 21일에 공식적으로 쾌유를 발표한 후 의약청이 해산되었다
왕세자가 병중에 있는 동안 궐내의 야간 순찰을 돌며 궁궐을 호위하였던 오위장과 초관을 위해 잔치를 열었으며 그 모습을 병풍으로 제작한 것이다
종두편 / 20세기
의사면허증 / 1937년 · 1926년
도립인천의원 의좌 근무명령서 / 1953. 6. 24
성누가병원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전래된 것은 조선 후기 청나라에서 번역된 서양 의서들이 실학자들에 의해 수입되면서부터이다
이후 근대에 들어 일본과 서양 각국과 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이제마와 사상의학
이제마(1838~1900)의 호는 동무(東武)로서 함경남도 함흥 출생이다
원래 무관 출신으로 1888년(고종 25)부터 1889년까지 군관으로 근무하였다
1893년 7월 진해현감을 사직하고, 서울로 돌아와 사상의서 저술에 착수하여 다음해 4월 '동의수세보원'을 완성하였다
서양의학보다 앞선 체질의학 개발의 효시이며 우리나라의 독창적 한의학 이론이다
이제마 약처방문 / 조선 말기
동의수세보원 / 1901년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은 4권 2책 목활자본으로 이제마의 대표적인 의학서다
책명에서 '동의’는 중국의 의가(醫家)와 구별하기 위한 것이며 '수세’는 온 세상 인류의 수명을 연장시킴을 뜻하는 것이다
'보원'은 만수(萬殊 세상 모든 것은 여러 가지로 다름) 일원(一元)의 도(道)를 보전함을 뜻한다
이제마는 책의 집필을 끝낸 다음 해 고향인 함흥에 돌아가서 의업(醫業)에 종사하였다
1900년에 다시 성명론(性命論)부터 태음인론(太陰人論)까지 증책(增冊)하고 태양인(太陽人) 이하 삼론(三論)은 미처 끝내지 못하고 그 해 사망하였다
경혈도 / 조선 후기
장부명당도(臟腑明堂圖) · 측인명당도(側人明堂圖) / 조선 후기
백보환 선전용품
백보환을 선전하는데 사용했던 어깨띠 · 깃발 · 조끼이다
평화당에서 1930년대에 판매한 강장제인 백보환은 만병통치약으로 과장 광고 되었으며 적극적인 선전으로 많은 수익을 올렸다
의학사료관
이길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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