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이야기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병원 건물인 대한의원 본관 2층에 있다

대한의원은 1907년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설립된 근대식 국립병원으로

개화기 의료 근대화를 위한 국가적 노력의 결실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의 맥을 잇고 있다

1992년 서울대학교병원이 소장 · 보관하고 있던 유물과 문서들을 보존 · 연구 · 전시할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대한의원(大韓醫院 ·  사적 제248호)

1907년(융희 1) 3월, 당시 국립 의료기관에 해당하었던 광제원(廣濟院)

국립 의학교육기관이었던 의학교(醫學校)와 그 부속병원 · 대한국적십자병원이 통합되어 설립되었다

1910년 일제 강점으로 인해 조선총독부의원이 되었고 1926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개설되자 1928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이 되었다

광복 후에는 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재편되었다

이 건물은 대한의원 본관으로 1908년 10월 완공되었다

2층은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상설전시실 A / 근대 서양의학 도입

 

 

 

 

근대의학의 문을 열다

고종과 조선정부는 1876년 문호개방 이후 국가 차원의 개화 프로젝트를 세우고 그 실천에 나섰다

그들은 의료 근대화도 추진했다

1881년 일본에 조사시찰단을 파견해 서양식 병원을 탐색하고 1884년 한성순보를 통해 양의(洋醫) 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 무렵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미국북장로회 의료선교사 알렌이 정계의 거물 민영익을 구함으로써 서양식 국립병원 설립이 가속화 되었다

 

 

 

 

공립의원 규칙(1885년 · 복제품)

1885년 제정된 제중원의 운영규칙이다

당시 제중원의 운영방식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진료 · 환자관리 · 교육 등 14개의 조항으로 되어 있다

 

 

 

 

제중원 설립

1885년 4월 고종과 조선정부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산하에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을 설립했다

최초의 명칭은 광혜원이었으나 2주일만에 취소되고 제중원으로 소급하여 명명되었다

 

 

 

 

제중원(濟衆院 · 1885년)

제중원은 갑신정변을 주도했다가 실패한 홍영식의 집에서 개원했다

환자들이 늘자 고종과 조선정부는 1886년 10~11월경, 제중원을 구리개(서울 을지로입구 외환은행 인근)로 옮겼다

 

 

 

 

종두침 · 두장판

종두침과 두장판을 휴대하기 편하도록 나무상자에 넣었다

접종할 때는 두장판에 담긴 두장을 종두침 끝에 묻혀 어깨에 상처를 내고 바른다

 

 

 

 

대한제국의 새 국립병원 광제원(廣濟院)

1899년 4월, 대한제국 정부는 병원 관제를 공포하고 6월에 경복궁 건춘문 인근에 새 국립병원을 개원했다

당장은 전통의학이나 종두법을 배운 의사들이 진료를 맡았지만 장차 서양식 병원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공공의료를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새 국립병원은 제중원의 임무와 역활을 계승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듬해 대한제국 정부는 새 국립병원의 이름을 광제원으로 개칭했다

1900년 10월 광제원은 제중원 초창기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1905년 2월부터 광제원은 서양식 병원으로 바뀌어 갔다

1907년 3월 대한의원관제가 공포되면서 광제원의 인력과 시설은 모두 대한의원에 인계되었다

 

 

 

 

광제원의 세부 운영방침인 병원세칙(1899)

 

 

 

 

지석영 의학교 교장 임명장(1899 · 복제품)

지석영을 의학교 교장으로 임명하는 칙명이다

의학교는 1899년 세워진 최초의 국립 의학교육 기관이며, 지석영은 의학교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의학교와 부속병원

의학교는 1899년 3월 24일 학부(지금의 교육부 해당) 소속으로 설립된 최초의 근대식 의학교육기관으로 훈동(지금의 관훈동) 김홍집 집터에 위치하였다

3학년 과정으로 이루어진 의학교는 5회에 걸쳐 총 5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의학교 교관 김익남(왼쪽) · 의학교(서울의대의 모태) 1회 졸업생 김교준

김익남(1870~1937)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의사로서 일본에서 의학교육을 받은 후 의학교 교관 · 대한제국 군의관 등의 활동을 하였다

김교준은 김익남의 제자로 국내에서 배출된 최초의 의사 19명 중 한 명이다

이후 두 사람은 간도 용정에서 함께 병원을 운영하였다

 

 

 

 

홍대철 선생 각종 자료

홍대철 선생은 의학교에 입학하여 대한의원 교육부로 졸업하신 분이다

전시품은 의학교과 진급증서 · 대한의원 졸업증서 · 졸업 후 자혜의원 조수 임명장 · 공의 임명장 등이다

 

 

 

 

상설전시실 B / 일제강점기의 의학

 

 

 

 

대한의원 설립

1905년 을사늑약을 강요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은 서울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내정에도 간섭하기 시작했다

한국 통감이 주재하고 대한제국 각부 대신이 참여하는 「시정개선협의회」가 내정 간섭의 주요 통로였다

 

 

 

 

대한의원(大韓醫院)

1906년 7월 이 협의회는 광제원 · 의학교와 부속병원 · 적십자병원을 통합하여

서양근대의학에 입각한 최신식 대규모 병원을 만들기로 하고 그 이름을 대한의원으로 정했다

1906년 9월, 마등산 언덕 위(지금 서울대학교병원 터)로 병원 부지가 결정되었고, 바로 공사에 착수하여 1907년 11월에 1차 완공 · 1908년 10월 완공되었다

 

 

 

 

대한의원 개원 칙서(1908)

대한의원 개원식이 열린 1908년 10월 24일에 순종황제가 내린 칙서이다

국새인 「칙명지보」가 선명하게 찍혀있다

 

 

 

 

대한의원 설립의 의미

대한의원은 당대 동아시아에서 손꼽을 정도의 규모와 시설 · 의술을 자랑하는 병원이었다

설립에는 서양근대의학을 식민 지배에 이용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작용하였으나

그 바탕이 된 것은 서양근대의학을 주체적으로 수용해 온 국가적 경험과 역량이었다

대한의원 설립을 계기로 한국의 의학과 의료는 새로운 단계로 이행했으며

이곳에서 교육 받은 한국인 의사들은 한국 사회에 서양근대의학을 정착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에서 현대적 병원의 시발이자 다른 병원들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에서 대한의원의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와 부속병원

3 · 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문화통치'를 표방하여 1922년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였는데 이에 따라 조선에도 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1924년 경성제국대학이 창설되어 먼저 예과가 개설되었다

1926년 본과로 법문학부와 의학부가 개설되었으며 이에 따라 의학은 근대적 대학교육의 중심 학문이 되었다

1928년 의학부 본과생들의 임상수업을 위해 조선총독부의원이 경성제대 의학부 부속병원으로 개편되었다

임상연구동이 신축된 1929년부터는 의학연구도 본격화 되었다

경성제대 의학부에서 조선인은 정원의 1/3을 넘지 못하도록 입학이 제한되었다

또 조선인들은 일본인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더라도 승진의 제약이 있어서 조교수 2명(윤일선, 고영선)과 강사촉탁 12명 외에 조선인 교수요원은 없었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제1회 졸업앨범

1930년에 1회 졸업생이 배출되는데 졸업생 55명 중 조선인은 모두 12명 이었다

 

 

 

 

일제시대 발행된 엽서(1930~40년대)

일제시대 발행된 대한의원 본관(시계탑 건물) 엽서들이다

 

 

 

 

긴 복도 · 1 · 2 · 3등 병실 사진

 

 

 

 

일제강점기 관립학교 의학도의 항일운동

일제강점기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관립 의학교육기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인 학생이 한국인 학생보다 훨씬 많았으며 교수진도 일본인이 대다수였다

때문에 한국인 학생들은 수업과 학교생활에서 차별을 받았고 한국인 학생들의 울분은 크고 작은 항일운동으로 표출되었다

 

 

 

 

일제강점과 조선총독부의원

1910년 일제의 한국 강점으로 인해 대한의원은 조선총독부 의원으로, 의육부는 부속의학강습소로 개칭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의학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의학은 서양의학 중심체계로 급속하게 재편되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의원을 정점으로 각 도마다 도립의원을 세우고 명치유신 이후의 한의학 축출정책을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독일의학을 수입한 일본의학의 영향으로 의학용어도 독일어와 일본어가 사용되었다

독일식 의학용어는 해방 후 영어로 대체되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의학용어에 일본어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의 탄생

해방 이튿날 1945년 8월 16일 경성제국대학의 한국인 직원은 '경성대학자치위원회'를 결성하였다

1945년 10월 경성제국대학을 인수하여 총장에 알프레드 그로프트 중위 · 의학부장에 윤일선 박사를 임명하였다

한편 1946년 미군정은 국립종합대학교 설립안을 마련하여 경성대학 의학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통합하여 국립서울대학교를 출범시켰다

 

 

 

 

상설전시실 C / 한국전쟁 이후의 의료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경성대학 의학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통합하여 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출범되자

경성대학 의학부 부속의원과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은 각각 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제1부속병원 · 제2부속병원이 되었다

 

 

 

 

상설전시장 D / 오늘날의 한국의학

1975년을 전후하여 각 분야별로 전문성을 획득한 의학자들이 국내학계에 자리잡고 분과학회별로 활발한 학술활동을 시작했으며

의학교육도 독자적인 발전을 계속하여 양적 · 질적으로 향상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부터는 우리 의학은 점차 국제화되었고...

1995년 이후에는 특히 장기이식이나 항암요법 등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분야가 날로 급증하고 있다

다만 다른 학문분야와 마찬가지로 기초의학 분야의 상대적 약세와 연구 지망생 감소는 우리 의학계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결핵 포스터

 

 

 

 

크리스마스 씰

1904년 발행된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가운데 왼쪽) · 맨 위부터 1932 · 1940 · 1952 · 1962 · 1972 · 1982년 크리스마스 씰

그리고 맨 밑 좌측이 세계 씰 콘테스트에서 1위 입상한 씰과 상장(오른쪽)이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씰인 1932년 씰 도안은 당시 총독부가 거북선 도안을 허가해주지 않아 남대문이다

 

 

 

 

기생충 박멸 포스터

 

 

 

 

의료선교사들의 편지로 본 제중원

제중원에 근무했던 미국북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은 미국 선교본부와 편지로 자신들의 활동을 보고하였고 중대한 사안의 결정 또는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은 현재 미국북장로회 사료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이 편지들을 통해 공식자료를 통해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제중원 운영의 세밀함을 보충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편지 작성자의 내면과 인간관계 등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편지는 가치 높은 사료라 할 수 있다

 

 

 

 

안경의 기원

13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엔 밝혀진 바 없지만 임진왜란 때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 세기 전만해도 지체 높은 사람만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안경을 착용할 수 있었고 윗사람을 대할 때나 제사를 모실 때에는 안경을 벗는 것이 예의였다

 

 

 

 

옛 그림 속의 안경 · 안경의 특징

 

 

 

 

출산, 의학이 되다

특별전시실 ZONE 1 / 순산을 기원하다

특별전시실 ZONE 2 / 병원에서 아이를 낳다

특별전시실 ZONE 3 / 엄마와 태아의 40주간의 동반

 

 

 

 

특별전시실에서 ZONE 3 / 엄마와 태아의 40주간의 동반

 의학박물관 관람시간이 토요일은 12시까지라 급히 보느라 빠트린 게 많다

더구나 특별전시실  ZONE 1 ·  2는 이미 불이 꺼진 뒤라 사진을 만들지 못했다

 

 

 

 

시계탑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

안내하시는 분이 시간이 지났으니 다음에 다시 오라며 평일 11시와 오후 4시에는 시계탑 전시실도 볼 수 있으니 예약하시고 오란다

 

 

 

 

나무 난간

 

 

 

 

간결한 모양의 받침대

 

 

 

 

창문

 

 

 

 

계단

 

 

 

 

대한의원 현관 포치

자동차가 집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대한의원 시계탑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계탑이며, 건물 완공과 함께 설치된 시계장치 역시 국내 유일의 기계식 대형 탑시계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대한의원 탑시계는 영국에 주문 제작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1981년 전자식 시계에 역활을 물려준 이후 시계탑 안에 잠들어 있었다

서울대학교병원 제15대 원장단이 기금을 조성하여 탑시계를 복원하였으며, 2014년 5월부터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면 가옥  (0) 2016.08.13
낙산전시관  (0) 2016.08.13
서울 종로구 혜화동  (0) 2016.08.13
사직단  (0) 2016.08.06
서울 종로구 청운동 · 효자동  (0) 201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