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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양주 김삿갓풍류길1구간(풍류길)

김삿갓 풍류길은 김삿갓이 태여난 양주 회암동의 역사적 자긍심을 높이고 김삿갓 문학자원을 연계하기 위한 숲길로 3구간 21km로 조성되어 있다

그 중 김삿갓 풍류길1구간(풍류길)은 길이 8.2km로 덕정역 · 태봉산 · 김삿갓교 · 회암사지박물관 · 회암사지 · 회암사m) ·  · 삿갓향기 쉼터 · 김삿갓 쉼터

김삿갓 벽화거리 · 김삿갓교를 연결하는 구간으로 김삿갓의 시와 김삿갓문학대회 입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쉼터마다 김삿갓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김삿갓을 생각하며 기념사진을 만들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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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삿갓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 · 자는 성심(性深) · 호는 난고(蘭皐) · 별칭으로는 김립(金笠) 또는 김삿갓이다

순조 7년(1807) 3월 13일 현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서 부 김안근 · 모 함평이씨 사이에 차남으로 출생하여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두루 돌며 수 많은 시를 남기고

철종 14년(1863) 3월 29일 33년간의 방랑생활 끝에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에서 57세에 별세하였다

안동김씨가 60년간의 핵심 세도를 부리던 이른바 황금시대의 장동김씨 일문이었던 집안이 몰락하게 된 것은

평안도 선천부사였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에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였으나

노복 김성수의 구원으로 형 병하(炳河)와 함께 평안도 곡산으로 피신하여 공부하였다

후일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어 형제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버지 안근(安根)은 홧병으로 죽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자로 멸시 받는 것이 싫어서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기고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병연은 영월도호부 과거(백일장)에 응시하여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시제 아래 장원 급제하였다

가산(嘉山)의 정(鄭)공이 죽음으로 충성된 절개를 지켰음을 찬양하고, 적에게 항복한 김익순의 비겁한 죄를 하늘이 알고 있음을 공박하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로부터 집안 내력에 대한 일들을 전해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과

폐문한 집안의 자손이라는 멸시로 인해 20세 무렵 처자식을 둔 채 방랑의 길을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김병연은 죄인 의식으로 푸른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다 하여 삿갓에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하였다

김병연은 10,000여 편의 시를 쓴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재까지 456편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덕정역 1번출구

김삿갓풍류길1구간 시점이다

 

 

 

 

덕정삼거리

덕정역에서 오른쪽에 있는덕정삼거리에서 포천 방향으로 걷는다

 

 

 

 

김삿갓의 시 구월산음(九月山吟)

도로를 건너 덕정중학교를 지난 곳이다

 

 

 

 

회암사지 4.8km 방향안내판

처음 만난 안내판으로 덕정 주공아파트 1단지 105동 앞에 있다

이곳에서 태봉산으로 든다

 

 

 

 

태봉산 풍류길 들머리

덕정 주공1단지 105동아파트가 길 건너에 있다

 

 

 

 

산을 잠시 오르자 공동묘지가 나온다

 

 

 

 

태봉산 정상 · 덕정 주공1단지 아파트 방향안내판

 

 

 

 

태봉산 정상

계단을 오르면 표고 187.32m라 써있는 지적삼각점 인식표가 있다

 

 

 

 

칠봉산 · 천보산

오른쪽 바위산으로 보이는 곳이 천보산이다

태봉산 정상에서 내려서며 봤다

 

 

 

 

서래마을 방향안내판

 

 

 

 

덕정고등학교 앞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태봉산

날머리에서 돌아봤다

 

 

 

 

김삿갓의 시 등광한루(登廣寒樓)

화합로에 붙어있다

 

 

 

 

태봉산 정상 방향안내판

도로 안내판에 포천 56번지방도로라 써있다

 

 

 

 

덕정역 방향안내판

서재말교차로에서 포천가는 56번지방도로 왼쪽 밑으로 좁은 길로 따라가면 서재마을이 나온다

 

 

 

 

서재마을

태봉산 · 회암사 방향안내판이 있다

 

 

 

 

공사장 모래더미에 쓰러져 있는 방향안내판

김삿갓 풍류길은 3번국도 고가 밑으로 가야한다

 

 

 

 

회암천

연동교를 건너 회암천을 따라간다

 

 

 

 

회암천을 따라 김삿갓교까지 간다

 

 

 

 

회암천을 따라 걷다보니 쓰러진 방향안내판이 또 있어 보니 다른 곳에 있던 것인지 방향도 맞지 않는다

 

 

 

 

풍류정

회암천 전망대다

 

 

 

 

김삿갓 욕설모서당(辱說某書堂)

풍류정에 있는 시 중 하나다

 

 

 

 

회암천에서 날아오르는 오리떼

 

 

 

 

김삿갓교

이곳에서 왼쪽은 벽화거리고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가면 회암사지박물관이 나온다

결국 한 바퀴 도는 길이다

 

 

 

 

김삿갓의 고향 회암동 빗돌

 

 

 

 

회암사지박물관

김삿갓교에서 포천으로 가는 56번지방도로를 따라 잠시 걸으면 있다

 

 

 

 

회암사지박물관을 관람하기 전에 영상관에서 회암사를 만났다

입장료 2천 원이다

 

 

 

 

회암사지박물관 1층 상설전시실

 

 

 

 

1층 상설전시실 유물전시관

 

 

 

 

2층 상설전시실

 

 

 

 

박물관에서 회암사지로 가는 길이다

 

 

 

 

회암사지(檜巖寺址)

회암사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려 명종 4년(1174)에 금나라에 사신이 다녀갔다는 기록을 볼 때 이미 12세기 이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회암사지 당간지주(경기도 향토유적 제13호)

회암사지 서편 석단 평지 위에 위치한 3개의 당간지주이다

 

 

 

 

회암사지전망대

마침 문화해설사가 설명중이다

 

 

 

 

회암사지

회암사가 현재와 같이 거대한 규모로 중창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고

당시 불교계를 주도하는 고승들이 머물던 최고의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회암사전망대에서 봤다

 

 

 

 

회암사지

고려 말에 인도의 고승인 지공(指空)이 회암사의 산수형세가 천축국(현재 인도)의 나란타 사원과 같기 때문에

이곳에서 불법을 펼치면 크게 흥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지공의 제자인 나옹(懶翁)이 그 수기(受記)에 따라 회암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하였다

또한 조선 초에는 무학(無學)이 회암사의 주지가 되었으며, 태조도 왕위를 이양(移讓)한 이후 이곳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효령대군 · 정희왕후 · 문정왕후를 비롯한 많은 왕실 인물들이 불사를 후원하였고

당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고승들이 주석(住席)함에 따라 국가적 차원의 비호를 받는 최대의 사찰로서의 면모와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김시습의 시 회암사(檜巖寺)

회암사 들머리에 있다

 

 

 

 

천보산 정상 방향안내판

 

 

 

 

승탑

회암사 가는 길 왼쪽에 있다

 

 

 

 

회암사 약수터

한 잔 마시려고 다가서니 음용부적합이라 써있다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비(揚州 檜巖寺址 無學大師碑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의 행적을 담은 비로 그의 생애와 업적 · 중건비를 세우게 된 경위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태조는 조선 개국은 물론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는데 큰 역할을 한 무학대사를 왕사로 책봉하고, 묘엄존자(妙嚴尊者)라는 칭호를 내렸다

비문은 조선 태종 10년(1410)에 왕명에 따라 변계량이 글을 짓고, 공부의 글씨로 세워졌으나

1821년(순조 21)에 비가 인위적으로 파괴됨에 따라 1828(순조 28)에 다시 세워졌다

비의 형태는 낮은 지대석 위에 모서리가 둥굴게 한 높직한 사각 받침을 놓고 흑청석재의 비신을 세웠으며, 팔작지붕이 그 위에 놓여 있다

비의 총 높이는 340cm이며, 비석의 높이는 223cm, 폭 89.5cm, 두께 28.5cm이다

현재의 비 우측에 최초의 비석에 사용되었던 석재를 사각 받침석 위에 연꽃잎 형태의 지붕을 올려 보존하고 있는데 비신은 사라지고 없다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揚州 檜巖寺址 無學大師塔 · 보물 388호)

무학대사탑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 자초(自超 · 1327~1405)의 부도이며

무학대사비(유형문화재 제51호)에 적힌 내용을 통해 대사의 업적을 기리려고 1407년(태종 7)에 건립하였음을 알수 있다

무학대사탑은 조선 전기 부도 중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꼽힌다

지공선사 및 나옹선사 부도와 같은 구형 부도형식의 예에 속하지만, 8각의 석단을 마련하고 그 중심에 부도를 봉안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표면에 새겨진 조각수법도 매우 뛰어나는 등 조선 전기 석조 미술품을 대표하는 매우 뛰어난 수작이다

높이는 약 2.7m로, 장대석(長臺石)을 2단으로 쌓아 높고 널찍하게 전체 8각을 이루는 석단(石壇)을 마련하였다

석단의 각 모서리에는 정상부를 보주 모양으로 장식한 네모난 돌기둥을 세운 뒤, 그 기둥과 기둥 사이에 넓은 장대석을 끼워 넣었다

난간을 둘렀는데, 이것은 석단 중앙에 위치하는 탑을 보호하는 일종의 장식물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기본적으로 팔각원당형의 부도를 중심에 세우고 그 주변에 석단을 마련하는 것은 이전 시기에는 볼 수 없는 새로운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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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석등(揚州 檜巖寺址 無學大師塔 앞 雙獅子 石燈국가 · 보물 제389호)

쌍사자석등은 1407년(태종 7)무학대사탑과 함께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등으로 무학대사탑 앞에 세워져 있다

석등은 어둠을 밝혀 준다는 조명 역할 이외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여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의미를 지닌 불가(佛家)의 중요한 상징물이다

쌍사자석등은 우리나라 고유의 석등 형식인 8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간주석(間柱石)이 2마리의 사자로 대처된 이형(異形)에 속한다

또한 목조 건축의 지붕에서 유래된 옥개석 형태, 화사석(火舍石)의 창을 두 방향으로만 내고 있는 점

그리고 사자를 비롯하여 연꽃무늬 등의 표현방식에서 조선 전기의 양식적인 특징이 확인된다

높이는 2.6m이며, 평면의 전체적인 기본 형태는 네모꼴을 띤다

지대석(址臺石)과 하대석(下臺石)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하대석에는 모두 8판의 연꽃이 겹을 이루면서 넓적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 위에 간주석은 2마리의 사자로 조각되었는데, 이러한 형식은 통일신라 이래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상대석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는데 하대석과 같은 형태의 연꽃무늬로 장식되었으며 1단의 각형 굄이 각출(各出) 되어 있다

화사석은 2매의 돌로 되어 있는데, 2방향으로만 화창(火窓)을 내었다

옥개석은 보주까지 모두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는데

전체적으로 목조 건축물과 같은 형태로 제작하여 옥개 받침을 대신해 목조 가구에서 보이는 부재들이 표현되었다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경기도유형문화재 제49호)

1326년(고려 충숙왕 13)부터 약 2년간 고려에 머물면서 당시 불교사상과 문화에 영향을 끼친 인도 출신 고승 지공의 사리탑과 석등이다

부도는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을 기본 구조로 하여 기단부 · 탑신부 · 상륜부가 모두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다

팔각 지대석 위에 3단의 기단을 두고 그 위로 탑신부와 상륜부를 올렸는데, 파손이 거의 없는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탑신은 전체적으로 둥글고 넓적하며, 지붕돌인 옥개석과 머리장식 받침인 노반은 팔각으로 구성되었고

그 위에 3단의 둥근 테인 보륜을 더하여 장식한 후 끝이 볼긋하게 솟은 구슬모양의 보주를 얹었다

석등은 4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4각의 상 · 중 · 하대석 위에 2매로 된 화사석을 마주 붙여 화창이 앞뒤 2곳만 나 있다

화사석 위로는 사각의 옥개석이, 옥개석 위 꼭대기에는 연꽃봉오리 모양의 구슬 장식으로 되어 있다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懶翁禪師浮屠 및 石燈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50호)

고려 후기의 승려인 나옹의 묘탑(墓塔)과 석등으로 나옹선사는 고려 공민왕 때의 왕사로 인도 고승 지공선사를 따라 국법의 정맥(正脈)을 이어왔으며

1376년 우왕의 명을 받아 밀양 영원사로 가던 도중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한 고승이다

부도는 8각을 기본으로 하는 팔각원당형으로 전형적인 통일신라 팔각원당형 부도양식을 따르고는 있지만

다소 경직되고 평면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 말기 부도양식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높이는 약 3.5m이며, 상 · 하대의 기단부와 탑신부 · 상륜부로 이루어져 있다

석등은 4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4각의 상 · 중 · 하대석 위에 2매로 된 화사석을 마주 붙여 화창이 앞뒤 2곳만 나 있다

화사석 위로는 사각의 옥개석을, 옥개석 위로는 상륜부를 가지런히 올렸다

 

 

 

 

회암사 대웅전

 

 

 

 

회암사 삼성각

왼쪽 돌 계단을 올라간다

 

 

 

 

회암사지 선각왕사 모조비

나옹선사를 추모하기 위해 고려 우왕 3년에 건립하였으나 1997년 3월 30일 성묘객의 부주의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선각왕사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이 전소하였으며 현재 초석과 기단만 남아있다

양주시에서는 국가지정 보물 제387호 선각왕사비를 일반인들이 항상 볼 수 있도록 1999년 8월 원형 모습 그대로 모조비를 건립하였다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檜巖寺址 禪覺王師碑 · 국가보물 제387호)

회암사지 선각왕사 모조비 바로 뒤에 있다

 

 

 

 

천보산 정상

108바위가 바로 밑에 있다

 

 

 

 

나옹선사의 청산이 나를 보고(청산혜요아 · 靑山兮要我)

108바위쉼터에 있다

이곳에서 이동식을 하며 쉬었다

 

 

 

 

북한산 · 도봉산 · 불곡산 · 도락산

108바위에 올라서 봤다

 

 

 

 

북한산 · 도봉산

 

 

 

 

불곡산 · 도락산

 

 

 

 

불곡산 마루금

 

 

 

 

김삿갓의 기생 가련에게(가련기시 · 可憐技詩)

108바위에서 하산길은 시가 있는 길로 방향안내판보다 오히려 이런 시가 있는 나무판이 더 많다

길찾기 수월하다

 

 

 

 

삿갓바위와 선녀탕

 

 

 

 

공동묘지 옆을 지난다

 

 

 

 

매바위동

옛 골짜기명 보존사업으로 세운 비다

 

 

 

 

천보산 날머리

 

 

 

 

삿갓향기쉼터로 가려면 왼쪽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삿갓향기쉼터

 

 

 

 

난고 김삿갓 안내판

 

 

 

 

마을길도 사진만들기 좋게 만들어 놓았다

 

 

 

 

김삿갓쉼터

379번지방도로와 만나는 곳에 있다

 

 

 

 

김삿갓벽화거리

 

 

 

 

시 · 벽화 · 목상

 

 

 

 

방랑시인 김삿갓 노랫말

 

 

 

 

벽화거리 종점이자 시점이다

 

 

 

 

김삿갓교 버스정류장

김삿갓교가 오른쪽으로 보인다

마침점이다

 

 

 

 

김삿갓풍류길 안내도

 

 

 

 

GPS로 확인하니

걸은거리 13.2km, 소요시간 5시간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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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길이보다 길고 박물관 관람 때문에 소요시간이 많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