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관람하기 전에 국립중앙박물관 주위와 용산가족공원을 돌아봤다
박물관 나들길 안내판
이촌역에서 박물관으로 통하는 2번출구 앞이다
지하통로를 통해 박물관 정원으로 올라왔다
국립박물관 거울못
박물관 건물 모습이 비춰 보여 거울못이라 한다
국립박물관 청자정(靑姿亭)
거울못 정자다
나들못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청자정과 박물관 건물 사이로 남산이 보인다
청자정(靑姿亭)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상징물로 건립한 청자정은
고려 의종 11년(1157) 대궐 동쪽 별궁에 양이정(養怡亭)을 짓고, 지붕을 청자로 덮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을 근거하여 건립했다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葛項寺 東西 三層石塔 · 경북 김천 길항사 터 · 통일신라 758년 · 국보 99호)
통일신라시대에는 이 탑처럼 2단의 기단부와 3층의 탑신부로 이루어진 탑이 일반적인 형태로 많이 만들어졌다
이 탑이 있던 갈항사는 통일신라 초기 절인 감은사(感恩寺) 처럼 하나의 금당(金堂)에 두 개의 탑이 배치(雙塔一金堂式)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탑의 기단부에 새겨진 글을 통해 신라 경덕왕 17년(758)에 영묘사(靈廟寺) 언적법사(言寂法師)세 남매가 이탑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남계원 칠층석탑(南溪院 七層石塔 · 개성 남개원터 · 고려 11세기 국보 100호)
이 탑은 세부묘사에서는 통일신라 석탑을 따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탑신이 7층이고 지붕이 얇고 넓으며, 위로 올라수록 탑신의 두께가 둔중한 느낌을 주는 고려 탑 특유의 특징도 보인다
특히 이 탑에는 고려 충렬왕 9년(1288)에 넣은것으로 여겨지는 쪽물을 들인 종이에 은물로 글씨를 쓴 경전 일곱 축(紺紙銀泥寫經)이 발견되었다
홍제동 오층석탑(弘濟洞 五層石塔 · 서울 홍제동 · 고려 11세기 국보 166호)
이 탑은 서울 홍제동 사현사(沙峴寺) 터에 있던 탑으로 고려 정종 11년(1045) 사현사 창건 당시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온화하고 부드러운 새김법과 새롭게 유행한 탑신 받침의 덧붙임
그리고 벽 테두리 장식 등에서 고려 전기 석탑의 조형미가 드러난다
고달사 쌍사자 석등(高達寺 雙獅子 石燈 · 여주 고달사지 · 고려 10세기 · 보물 제282호)
두 마리의 사자가 불발기집(火舍石)을 받치고 있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석등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러한 석등이 등장하지만, 이 고달사 쌍사자 석등은 다른 쌍사자 석등과 달리 웅크린 사자가 불발기집을 받치고 있어 이채롭다
이 석등은 고달사가 우리나라 3대 선원의 하나인 고달원(高達院)으로 명성을 떨치던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천수사 오층석탑(泉水寺 五層石塔 · 강원 원주 천수사터 · 고려)
하층기단 덮개돌(甲石) 아래 부재는 없어졌다
각각의 탑신부 몸돌은 한 개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2층 몸돌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히 낮아진다
지붕 처마에는 각 층마다 3단의 받침이 있으며, 네 모서리에는 풍경의 일종인 풍탁(風鐸)을 단 작은 구멍이 네 개씩 남아있다
탑 꼭대기 장식인 상륜부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천수사 삼층석탑(泉水寺 三層石塔 · 강원 원주 천수사터 · 고려)
탑의 몸체를 받치고 있는 기단부는 통일신라 석탑에서 보이는 2층 기단 석탑이다
탑신부 몸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1층과 2층 탑신 아래에는 굄돌이 놓여져 있다
지붕 처마 층단받침은 4단으로 되어있고 지붕 윗면은 경사가 완만하다
탑 꼭대기에 해당되는 상륜부에는 네모난 지붕 모양 장식(露盤)만 남아 있다
영전사 보제존자 사리탑(令傳寺 普濟尊者 舍利塔 · 강원 원주 영전사 터 · 고려 1388 · 보물 제358호)
보제존자 나옹(懶翁 · 1320~1376)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고려 우왕 14년(1388)에 세운 승탑이다
보통 승탑이 팔각집 모양이거나 종 모양을 띠는 것에 비해
이 승탑은 특이하게 불탑과 같이 네모난 형태의 두 탑으로 이루어져 매우 이채롭다
나옹의 사리를 모신 승탑은 이 탑 외에도 그가 입적한 여주 신륵사와 그가 주지로 있던 양주 회암사 터에도 남아 있다
안흥사 오층석탑(安興寺 五層石塔 · 경기 이천 안흥사 터 · 통일신라 말~고려 초 · 10세기)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과 상륜부가 있는 일반적인 형태이다
탑신 높이는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들며, 처마 밑 층단 받침은 네 단인 5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섯 단을 이루고 있다
탑의 세부 수법이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띠며, 균형잡힌 비례로 보아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보인다
미르못 미르폭포
미르는 용(龍)을 뜻하는 옛말로 박물관이 위치한 용산이라는 지명에서 비롯되었다
'미르폭포', '미르못', '미르다리'가 있는 박물관 정원은 우리의 전통조경을 엿볼 수 있도록 꾸민 공간이다
용산가족공원 입구 연못
이곳 가림막이 있는 벤치에서 이동식을 했다
용산가족공원 조각공원
자연사(NATURAL HISTORY · 청동) / 빌 우드로(Bill Woodrow · 영국)
보신각종(普信閣鍾 · 조선 1468년 · 보물 제2호)
조선 세조 14년(1468) 원각사(圓覺社 · 현 탑골공원)에 걸기 위해 만든 종이다
절이 없어진 후 광해군 11년(1619) 보신각으로 옮겨져 오전 4시에 33번(파루), 오후 10시에 28번(인정) 울려 도성 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리는 데 쓰였다
하나의 몸체에 양쪽으로 용머리가 달린 장식 고리(용뉴 · 龍鈕)가 달려 있으며, 몸통 한가운데는 세 겹의 굵은 띠가 둘러져 있다
이러한 모양의 종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들어와 널리 만들어졌다
나주 서문 석등(羅州 西門 石燈 · 전남 나주 서문 · 고려 1093년 · 보물 제364호)
이 석등 기단부는 긴 팔각기둥과 위 · 아래에 연꽃을 장식한 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가운데 긴 팔각 기둥돌은 간주석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새겨진 글을 통해 고려 선종 10년(1093)에 만들어진 석등임을 알 수 있다
불발기집(火舍石)은 원래 파손되어 없었으나, 1929년 나주에서 경복궁으로 옮기면서 새로 만들었으며, 맨 꼭대기 장식도 새로 만든 것이다
북묘 비(北廟 碑 · 조선 1887년)
남산타워가 오른쪽에 있다
북묘 비(北廟 碑 · 조선 1887년)
이 비석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 관우를 기리기 위해, 조선 고종 20년(1883)에 세운 북묘에 있던 것이다
북묘는 서울 명륜동 흥덕골에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그 터만 남아있다
비석은 4년 후인 고종 24년(1887)에 세웠다
비문은 우리나라에서 관우를 기리게 된 경우, 북묘를 세우게 된 내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은 고종 임금이 직접 짓고, 글씨는 민영환이 썼다
전통염료식물원
조상들이 아름다운 색채를 연출하기 위해 이용하였던 소중하고 귀한 전통 염료식물들을 이곳에 심고 가꿈으로써
전통염료문화를 되살리고 메마른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마련하였다
꽃창포 안내판
겨울이라 꽃과 잎들은 없고 안내판들만 서있다
옛 담장
옛 굴뚝
박물관 둘레길을 걷고 박물관 계단을 오른다
국립중앙박물관
왼쪽 기획전시관 · 오른쪽 상설전시관이다
염거화상 탑(廉居和尙塔 · 강원 원주 흥법사 터 · 통일신라 844년 · 국보 제104호)
이 승탑은 탑지(塔誌)가 함께 전해져, 승탑의 주인공과 만들어진 연대를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탑이다
신라 문성왕 6년(844)에 선종 산문 가운데 하나인 가지산문의 제2대 선사인 염거화상(?~844)을 위해 만든 것으로
팔각집(八角堂) 모양에 사천왕 등의 부조상을 새긴 전형적인 승탑의 모습이다
이후 만들어진 승탑들은 이 승탑을 따라 대부분 팔각 구조에 화려한 부조상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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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오른쪽 마당 첫번째 탑이다
봉림사 진경대사 보월능공탑(鳳林寺 眞鏡大師 寶月凌空塔 · 경남 창원 봉림사 터 · 통일신라 923년 · 보물 제362호)
이 승탑은 통일신라 말기의 고승으로 신라 선종 산문 중 하나인 봉림산문을 세운 진경대사 심희(審希 · 854∼923)의 묘탑(墓塔)이다
팔각 집 모양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날씬한 몸체에 장식을 절제하면서도 변화를 시도한 조형적 특징을 보인다
특히 기단부 가운데 꽃띠를 두른 북 모양 중대석은 같은 시기 석등에서도 보이는 형식 가운데 하나이다
보리사 대경대사 현기탑비(菩提寺 大鏡大師 玄機塔碑 · 경기 양평 보리사터 · 고려 939년 · 보물 제361호)
이 탑비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활동하던 성주산문(聖住山門)의 대경대사 여엄(麗嚴 · 862~930)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대사가 입적한 지 9년이 지난 고려 태조 22년(939)에 세워졌다
거북 받침돌(龜趺)의 거북 머리가 용머리로 바뀌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탑비에서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다
머릿돌(螭首)의 구름과 용은 매우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다
흥법사 진공대사 탑과 석관(興法寺 眞空大師塔 石棺 · 강원 원주 흥법사터 · 고려 940년 · 보물 제365호)
이 승탑은 신라 신덕왕과 고려 태조의 왕사를 지낸 진공대사 충담(忠湛 · 869~940)의 묘탑이다
진공대사의 입적과 함께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는 이 승탑의 탑신은 팔각 집 모양을 기본 평면으로 하고 있지만
기단 중대석은 원통형에 구름과 용무늬(雲龍文)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어 매우 이채롭다
이 탑과 함께 발견된 석관을 통해 고승의 시신을 화장뿐만 아니라 매장도 같이 했음을 알 수 있다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居頓寺 圓空國師 勝妙塔 · 고려 1018~1025 · 보물 제190호)
원공국사 지종(智宗 · 930~1018)의 묘탑(墓塔)이다
강원도 원주 거돈사 터에는 이 승탑과 짝을 이루는 원공국사의 탑비가 남아 있다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승탑 형식을 이어받아 단정하고 균형 잡힌 팔각의 형태의 사천왕, 팔부중 등의 부조상을 새겼다
탑신 정면 문 위에 탑 이름을 새긴 점이나 탑신에 꽃띠 장식을 한 것 등은 고려시대 새롭게 시도된 것이다
현화사 석등(玄化寺石燈 · 고려 개성 현화사 · 고려1020년)
고려 현종 10년(1020) 개성 현화사에 세운 석등이다
규모가 큰 이 석등으로 미루어 당시 국가 대찰로 창건된 현화사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석등의 불발기집(火舍石)은 팔각으로 된 것이 많은데, 이 석등은 사각이며 불빛창(火窓)도 따로 없이 사방으로 시원하게 트여 있다
석등 앞에 있는 배례석(拜禮石)은 공양으로 치면 으뜸으로 치는 등공양(燈供養)을 할 때 예를 갖추기 위해 만든 것이다
기획전시관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베이를 특별전시하고 있다
상설전시관을 돌아보고 전철역으로 간다
이촌역 벽 사진
국립박물관 풍경과 소장품 그리고 한글박물관 등 주변을 보여준다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4.7km, 소요시간 4시간 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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