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걷기를 못해 일요일 가까운 곳을 찾았다
원래 인천둘레길11코스는 월미산둘레길이었으나 언제부터인지 도원역에서 동인천역까지로 바뀌었다
암튼 인천둘레길 11코스에다 근처 볼 곳을 연결해 걸었다
도화역
도원역에서 내린다는걸 깜빡해 도화역에서 내렸다
어차피 걸으러 왔으니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시점이다
전철 두 정거장을 미리 내렸지만 처음 걷는 길이라 좋다
철길을 따라 걸었다
철길 옆으론 비교적 오래된 주택들이 있었다
제물포역
선인재단
8개 학교 명판이 붙어 있다
옛 전도관
석정로 삼거리에서 봤다
옛 전도관으로 올라가는 벽화길이다
삼색기
하얀기는 점 · 빨간기는 굿 · 노란기는 조상을 나타낸다
옛 전도관(인천예수중심교회)
1890년에는 선교사이자 의사로서 초대 주한 미국공사를 지낸 알렌의 2층 별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1907년 알렌은 미국으로 귀국했고 그 자리를 이완용의 아들 이명구가 차지했다
1927년에는 이화여전 출신의 이순희 남매가 계명학원을 세웠다
광복 직후에는 서울의 한 대학 분교가 개교하기도 했다
1957년 10월 박태선 장로가 대표로 있던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가 공사집 · 선교사 집으로 불리던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전도관을 세웠다
그후 신발공장과 예루살렘교회가 들어왔었으나 지금은 비어있다
옛 전도관 옆 골목이다
포토그래퍼 김종선의 집
자기랑과 소원나무
도예 수업과 1일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생활자기를 판매도 한다
우각로 문화마을 사무실
우각로 봉로방 · 행복도서관
풀과 어울린 풀 그림
고추를 밟고 지나간 자동차 바퀴자국이 있다
길을 안다고 인천둘레길 안내판을 안보고 걷다 언덕을 내려갔다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간다
동네마당
나무 쉼터
맘을 편히 먹어요
어차피 될 일은 된다구요
힘들땐 잠시 쉬세요
대추나무 · 그림나무
골목을 지난다
새나라의 어린이
오빠 비행기 보아 영희가 말했습니다
동요가 그려져 있는 골목이다
토끼야 토끼야, 새나라의 어린이, 송아지,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등이 있다
인천둘레길 방향안내판
동요골목을 나와 안내판을 따라 밑으로 내려간다
성서침례교회(예전 아펜젤러 사택)
189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 지금의 인천성서침례교회당 자리는
존스목사는 현재의 금곡동 58번지에 집을 지어 아펜젤러 박사와 존스 박사의 사택으로 오랫동안 사용했다
월미산
앞에 오래된 나무전신주가 있다
성서침례교회에서 봤다
월미산 · 자유공원
옛 전도관(인천예수중심교회)
동구 풍림아파트
인천재능대학교
수봉산
벽화마을
창영초등학교 담
금창동주민센터
초가집
갈대, 억새 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볏집으로 지붕을 인 것을 말하며 조상대대로 이어온 전통가옥 중 하나다
금창동에서 재현해 놓은 집이다
창영초등학교(인천지방 유형문화재 제16호)
창영백년비(昌榮百年碑)가 있다
1907년 4월 보통학교령에 의하여 개교된 인천 최초의 보통학교로 류현진의 모교이기도 하다
3 · 1독립만세운동인천지역발상지 기념비
그 당시 인천 유일의 공립보통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항일동맹휴학을 일으키고 일부 주동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독립만세를 외쳤고
학교와 인천경찰서간의 연락을 차단할 목적으로 전화선을 절단하여 주동학생들이 옥고를 치뤘다
강재구소령 흉상
1937년 인천 출생으로 1950년 인천창영초등학교 40회 졸업생이다
1965년 월남전 참전을 앞두고 맹호부대 수류탄던지기 훈련 중
부하의 실수로 많운 부하들의 생명이 위태롭게된 순간 수류탄을 몸으로 끌어안아 순직하였다
영화초등학교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1892년 4월, 미국 선교사 존슨 박사에 의해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학교다
싸리재에 있던 학교가 1910년 3월에 현 위치로 이전했다
오른쪽 건물이 그 때의 건물이다
인천기독교 사회복지관
19세기말 미국 감리교회가 파견한 여자선교사들의 합숙소 건물로 근세 북유럽 르네쌍스양식이다
리모델링 공사중이다
인천기독교 남자선교사 사택 터(지금 인천세무서)
1893년 선교기지를 세우기 위해 이 일대의 땅을 매입해서 남자선교사 사택을 지었다
존슨 목사는 이곳을 에즈버리동산이라 불렀다
창영떡집
6 · 25전쟁 후부터 할머니부터 아버지, 손자까지 이어온 3대 떡집이다
강화 교동에서 생산된 쌀과 찹쌀로 떡을 만든다
금창에너지
3개의 창문 중 가운데만 진짜 창문이다
한점갤러리 · 마을사진관 다행
전시가 없다
유신양복점
신사복과 일명 Y셔츠 맞춤집이다
배다리역사문화마을 안내도
한때 산업도로가 난다 했으나 아벨서점과 박의상실의 건의와 스페이스 빔이 이전해 옴으로
도로 개통은 무산되었으나 집을 철거한 곳은 공터로 남았다
개코막걸리
지성문구사 · 박의상실 · 동성한의원이 옆에 있다
인천양조 · 스페이스 빔
스페이스 빔
1920년대 인천에는 한국인 소유 양조장이 14개, 일본인 소유가 7개가 있었다
1926년에 설립한 인천양조장은 인천 최초의 양조장으로 70여 년간 소성주를 빚었으나
1996년 술맛을 좌우하는 이 일대의 지하수 수질 저하로 청천동으로 이전하고 2003년부터 아벨서점이 전시관으로 활용하다
2007년 스페이스 빔이 자리잡았다
아벨서점
1973년에 문을 연 배다리 헌책방 터줏대감이다
바로 옆에 전시장이자 시낭송 공간인 아벨전시관이 있다
고원사진관
배다리 방향이다
옛 성냥공장 터
남녀 직공 500여 명이 우록표 · 쌍원표 등 연간 7만 상자의 성냥을 만들어 당시 국내 성냥 소비량의 20%를 점유한 국내 최대 성냥공장이었다
지방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이기도 했다
수도국산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예전 몇 번 가본 곳이라 지나쳤다
빨래터 분수
송현시장
1960년대 초에 개설했다
동인천역
이곳이 인천둘레길 11코스 마침점이다
역 출입구 옆에 인천둘레길 코스와 지도가 있다
인천둘레길 코스는 마쳤으나 몇 군데 더 들리기로 했다
인천 중앙시장
송현동 개천가에 형성된 야시장이 1936년 양철지붕을 얹어 일용품시장으로 변모하였는데
이것이 중앙시장의 시작이다
미림극장
1957년 천막극장을 세워 평화극장이란 이름으로 무성영화를 상영하면 시작되었다
그후 미림극장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노인들을 위한 실버극장으로 변신했다
하루 3회 상영에 55세 이상 어르신은 2천 원이다
송미정
1959년 양식점으로 문을 열었다가 1962년 복요리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참외전로 뒷골목
참외전로 뒷골목
참외전로 뒷골목
여인숙
조금 야릇한 골목이다
양쪽 방 사이에 길이 있다
골목
동인천역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0.6km, 소요시간 4시간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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