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읍을 2주 만에 다시 찾았다
은혜를 갚는다는 명칭을 가진 보은(報恩)은 삼국시대에는 삼년산군 또는 삼년군이였다
신라 20대 자비왕 13년(470) 백제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산성을 쌓고 삼년산성이라 이름하였는데
전설에 의하면 삼 년만에 쌓았다고 삼년산성이라 칭하였다고 하며
삼년산군으로 불리워진 것도 삼년산성이 쌓아진 자비왕 13년(470)부터로 기록되어 있다
그 후 고려 왕건 태조 10년(928)에 보령(保齡)으로 고쳐 부르다가 조선 태종 6년(1406)에 보은으로 바뀌었다
보은시외버스공용정류장
시점이다
삼산남로
보은버스터미널에서 보은읍사무소로 가는 길이다
미원읍까지의 거리는 20km정도로 비교적 짧아 보은읍을 돌아보고 가기로 했다
보은전통시장
보은읍사무소
보은동헌(報恩東軒)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5호
조선시대 보은군의 청사로 쓰던 동헌으로 처음 동헌을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철종11년(1806)에 다시 고쳐 지었다
융희 1년(1907) 항일의병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일본 헌병대가 사용하다가 경찰서로 사용하면서 구조가 많이 변경되었다
1983년 복원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정면 7칸 · 측면 3칸의 겹치마 팔작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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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 읍사무소 · 의용소방대를 거쳐 도착했다
현감(군수)송덕비
관내 각 지역에 산재된 역대 현감비 중 연고가 없는 분들의 것을 1988년 동헌 앞에 옮겨 놓았다
왼쪽에 훼손된 비석은 일제가 우리 문화를 발살시키고자
관내의 여러 현감 송덕비를 일제군수관사 주춧돌로 사용하였던 것을 이곳에 모아놓은 것이다
폐교(?)
보은 성당 아래에 있는 건물로 명판이 없어 알순 없지만 작은 학교 건물 같다
보은성당
본당 건물 입구 위에 예수님 · 왼쪽 성모상이 있다
1955년 10월 1일 옥천본당에서 분리되었다
성모마리아 상
성프라치스코회관
언덕 위에 세워진 성당 뒤편 솔밭은 한 여름 명소일것 같다
보청천
중초천
장신사거리 방향이다
하마비 · 존성공적비 등이다
행군수홍후우룡모성흥학비(行郡守洪侯祐龍慕聖與學碑)
보은군수를 지낸 홍우룡의 공덕 철비다
보은 향교(報恩鄕校)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5호
세종 때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지은 것이나
지금의 건물들은 18세기 이후에 세워진 것들이다
대성전 · 명륜당
명륜당
고종 8년(1871)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리게 된 상현서원(象賢書院) 강당을 옮겨다 지은 19세기 말엽의 건물이다
내삼문
대성전으로 드는 문이다
대성전
5성(五聖) · 10철(十哲) · 송조4현(宋朝四賢) ·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보은여자중고등학교
자유회관 · 자유수호탑
미원 24km 안내판
보청천 둑길
왼쪽 나무가 줄지어 있는 둑인데 눈이 쌓여 있어 도로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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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를 나와 보은자영고교와 보은여자중고교를 지나 중동교를 건너 봉계교차로로 가는 길이다
산성2리 빗돌
봉계교차로로 가다 왼쪽에 있는 산자락 마을이다
미원 · 중곡리 안내판
19번도로와 만나는 봉계교차로 못미쳐 종곡리 앞 도로다
산성2리를 지나 학림리 정원가든에서 청국장으로 아침식사를 했는데 더 갖다 놓은 밥 한 그릇을 나눠 먹고 반찬도 더 달래 싹 비웠다
나오면서 "반찬이 다 맛있네요. 잘 먹었습니다" 하니까 "시장하셔서 그렇겠죠" 한다
보청천
봉계터널로 가는 봉계IC교 밑이다
터널을 통과하지 않고 앞에 보이는 산을 산외면 쪽이나 내북면 쪽으로 우회하면 약 1시간 정도 더 소요된다
처음엔 터널 통과가 싫어 성당과 향교 등을 들리지말고 산외면으로 우회할까도 생각했으나
후일 보은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터널을 통과하기로 했다
국민방위군 의용경찰 전적기념탑
6 · 25전쟁을 전후하여 보은군 일대에 출몰한 공비들을 격멸하고
고귀한 목숨을 바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이 땅에 평화의 뿌리를 내리는데 신명을 바치신
보은군 출신 국민방위군 및 의용경찰들의 호국정신과 숭고한 희생을 추모하고 위훈을 후세에 전하고자 건립했다
전 조합장 이공석래공적기념비 (前組合長李公錫來功蹟紀念碑) · 진주강공병희송덕비(晋州姜公秉熙頌德碑)
봉계2리
이곳 네거리에서 속리산 입구 마을인 산외면으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보은읍에서 보낸 시간때문에 터널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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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계터널 입구에 있다
봉계교차로
터널로 가다 돌아 봤다
봉계터널 / 1,668m
쌍굴이 보인다
봉계터널 / 1,668m
제일 걷기 싫은 길이다
봉계터널을 나와 고가교에서 봤다
시루산 · 구봉산
적음리마을 너머로 있다
달천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달천
고기잡이하는 사람이 보인다
운암교를 지나며 봤다
운암삼거리
흙돌담집
감천
청석굴 앞 감천에도 고기잡는 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은 바위를 들고 한 사람은 뜰채를 디밀며 고기를 잡는다
청석굴
구석기시대의 유물인 찍개와 볼록날 · 긁개가 발견된 이곳은 옛날 우리 선조가 생활했던 그대로를 간직한 동굴이다
옥화 9경의 제1경이다
청석굴
입구는 넓지만 잠깐 들어가면 혼자서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
빛도 들어오지 않아 랜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청석굴
좁은 굴을 약 40m정도 들어가면 약 6m 높이의 넓은 방이 나온다
헤드랜턴 불빛으로 사진을 만들었는데 불빛이 퍼지지 않아 넓은 방 한 쪽만 보인다
청석굴
굴 안에서 본 넓은 입구다
운암3길
미동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아이♡프로방스 캠핑장
청석굴 입구 마을인 운암리를 지나면 있다
가족들을 위한 테마파크로 미동산수목원 및 옥화 9경 · 속리산 등과 함께 할 수 있다
부대시설로 놀이방 · 식당 · 카페 · 풀장 · 황토방 펜션 등이 있다
감천
아이♡프로방스캠핑장을 지나 첫째 다리에서 감천을 건너 둑길로 걸었다
감천 둑길
비교적 넓고 한적해서 좋았다
감천
둑길을 걸을 때 가로등이 켜지고 있었다
미원천 둑길
감천에서 성대교를 건넌 곳이다
시간은 6시 조금 지났는데 어둡다
쌀안(미원) 돛배 유래비
전설에 옛날 마을에 재앙이 그치질 않아 돛대를 세우니 그 때부터 편안해졌다고 한다
돛대는 처음에 장터에 있었으나 도로공사로 철거하게 되어 고장의 안녕과 번영을 염원하는 주민의 뜻을 모아 이곳에 옮겨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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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면에서 보면 미원천 입구에 있다
양지모텔
마침점이다
은하정육점식당
샤워 후 식사를 한 곳이다
청풍명월
일제가 말살한 우리의 전통 효모를 제일 마지막까지 간직한 분이 미원 분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24.3km · 소요시간 7시간 6분
총 걸은 거리 387.3km · 총 소요시간 126시간 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