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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홍유릉(금곡릉)

조선 제26대 고종황제(1852~1919)와 황후인 명성황후 민씨(1851~1895)를 합장한 홍릉과
제27대 순종(1874~1926)과 순명효황후 민씨(1872~1904)및 계후 순정효황후 윤씨(1894~1966)를 합장한 유릉은
선대의 다른 왕릉과 달리 황제릉으로 조성되어 능역 상설제도의 변화가 뚜렸하다

 

 

금곡역
홍유릉을 가기 위해 찾은 금곡동에 경춘선의 추억을 품고 있는 금곡역이 있다
버스로 홍유릉 전 정거장인 구 금곡역 버스정거장에 내리면 육교로 연결된 맞은편 언덕에
1939년 7월 개통하여 2010년 12월 21일 신 역사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이제 사라질 운명을 기다리는 금곡역이 있다

 

 

 

 

금곡역 플랫폼
재작년 영업을 할 때 한 번 오려 했으나 못오고 철로까지 뜯긴 지금에서야 서보는 추억의 플랫폼이다
예전 초등학교 때 소풍을 왔고 또 대학 신입생 야유회 때 왔던 추억도 함께 묻히는 듯해 서운하다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간직한 금곡역을 홍유릉과 연계해 재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볼 수는 없을까?

 

 

 

 

금곡역

 

 

 

 

금곡사거리
금곡역에서 봤다

 

 

 

 

홍유릉 입구
예전과 변함 없는 길이다

 

 

 

 

예전 능참봉 집

홍유릉 입구에서 먼저 오른쪽 길로 잠시 들어가면 나오는 첫 번째 삼거리다
왼쪽 길이 영친왕과 영친왕비의 묘인 「영원」 · 덕혜옹주 묘 · 의친왕 묘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집이 예전 능참봉 집이다

 

 

 

 

예전 능참봉 집

 

 

 

 

홍릉 · 유릉 역사박물관
다시 돌아와 홍유릉 삼문 앞에 있는 홍릉 · 유릉 역사박물관에 먼저 들어가 본다

 

 

 

 

홍릉 · 유릉 종합안내도

 

 

 

 

고종과 명성황후의 생애
고종은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일본에 의해 강제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1919년 1월 경운궁(덕수궁)에서 돌아가셨다
고종의 갑작스런 죽음은 일제의 폭압적인 통치와 경제적 수탈에 시달리던 민중들에게 항일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3 · 1운동은 각 종교계의 민족지도자들과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계획하여, 고종의 발인을 이틀 앞두고 거행되었다

 

 

 

 

순종 · 순명효황후 · 순정효황후 생애
순종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아들로 1897년 대한제국 수립 후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며, 1907년 대한제국 제2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순종은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과 강제로 병합되면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1926년 창덕궁에서 돌아가셨다
순종의 승하는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항일운동인 6 ·10만세운동이 일어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26년의 6 ·10만세운동은 1919년 3 · 1운동처럼 황제의 인산일을 기점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으로
대한제국의 쇠망과 황제의 죽음을 슬퍼하는 민중의 모습과 조선의 주권을 되찾고자 하는 민중의 의지가 표출된 역사적 사건이다

 

 

 

 

대한제국 황실 가계도
흥선대원군과 고종 · 순종 그리고 영친왕 · 덕혜옹주 · 이진 · 이구 등의 출생이 설명되어 있다
그 밖에 조선 왕릉 분포도와 석실 왕릉과 회격 왕릉을 만드는 방법 등을 설명하는 동영상 등이 있다

 

 

 

 

순종 승하와 6 · 10만세운동

 

 

 

 

홍유릉 삼문

 

 

 

 

금천교

 

 

 

 

아버지 능인 홍릉으로 가는 길이다

 

 

 

 

연지
숲길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원지원도 형식의 연지가 있다
천원지방(天圓地方 · 밖은 땅을 상징하는 사각형이고 안은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의 연못이 아닌
가운데 둥그런 섬을 두고 연못 전체의 형태도 원형인 원지원도 형식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수라간
연지를 지나면 왼쪽으로 수리중인 수라간이 있다

 

 

 

 

홍릉 재실
홍릉의 재실도 수리로 출입금지다

 

 

 

 

홍릉 홍살문

 

 

 

 

홍릉 배위

 

 

 

 

홍릉 참도
참도 중 가운데 높은 길은 돌아가신 선왕의 혼령이 걸어가는 신도이며 오른쪽 낮은 길은 왕이 지나는 어도다
참도는 일부러 울퉁불퉁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넘어지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걸으며 선왕의 대한 존경을 표하라는 의미다

 

 

 

 

능침 호석(護石)
양석(羊石)과 호석(虎石) 대신 기린 · 코끼리 · 사자 · 해태 · 낙타 각 1쌍 · 마석(馬石) 2쌍을 2단의 하대석 위에 올려놓았다

 

 

 

 

낙타

 

 

 

 

무인석

 

 

 

 

문화재청 사람에게 물으니 뭔지는 모르는데 밑으로 물이 빠지게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연못은 아니란다
이곳이 조금 습한 곳이고 참도 밑에 수로가 있는 걸로 보아 물이 잘 빠지게 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였을까 추측한단다

 

 

 

 

홍릉 침전
고종황제의 신위를 모시는 제전으로 중국을 섬기는 제후국가의 예의 따라 만들어진 조선 역대 건물과는 형식과 규모가 다르다
종래의 「丁」 자 모양의 정자각 대신 정면 5칸 · 측면 4칸의 건물을 지었으며 그 양쪽 앞에는 문무석이 서있다

 

 

 

 

침전 내부

 

 

 

 

비각
침전이 오른쪽 · 어정이 뒤에 있다

 

 

 

 

고종황제 · 명성황후 신도비

 

 

 

 

홍릉
조선 제26대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의 묘소로 을좌신향(乙坐辛向)한 동봉이강릉(同封異岡陵)이다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에서 67세로 승하하여 같은 해 3월 3일 남양주시 금곡동에 초장봉릉(初葬封陵)되었다
명성황후 민씨는 1895년 8월 20일 경복궁에서 일본 낭인(浪人)들에게 시해당하여
1897년 11월 22일 한성부 동부 인창방(仁昌坊) 청량리(현 숭인원)에 처음 장사지냈으며
1919년 1월 16일 현재 위치로 능을 옮겼다

 

 

 

 

홍릉
불암산이 멀리 보인다

 

 

 

 

재실

홍릉에서 보는 재실로 아버지인 고종황제가 아들인 순종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장명등
혼유석 앞에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도록 세웠다

 

 

 

 

망주석

 

 

 

 

망주석 세호
왼쪽 망주석의 세호는 땅으로 내려가고 오른쪽은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혼유석
혼이 나와서 놀도록 한 혼유석을 잡귀를 막는 귀면(鬼面)을 새긴 둥근 북을 닮은 고석(鼓石)이 받치고 있다

 

 

 

 

어정 · 비각

 

 

 

 

어정(御井)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어정(御井)

 

 

 

 

예감

 

 

 

 

수복방
수리중이다

 

 

 

 

홍릉
순종이 아버지인 고종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국왕이 제사로 궁궐을 오래 비울 수 없기에 대개 궁궐 100리 안쪽에 능을 만들었다
그래도 근대의 왕인 순종은 차를 이용해 10시쯤 오셨다 오후 3시쯤 가셨다 한다

 

 

 

 

금천교
홍릉에서 유릉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왕릉의 금천을 건너는 다리로서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한다

 

 

 

 

어정(御井)
유릉 능역 내에는 두 개의 어정이 있는데 그 중 금천 주변의 어정은 둘레석만 남아 있다

 

 

 

 

유릉 재실

 

 

 

 

재실

 

 

 

 

재실 내부

 

 

 

 

재실

 

 

 

 

재실 뒷편

 

 

 

 

어정(御井)

 

 

 

 

유릉 침전 · 비각

 

 

 

 

석물
홍릉과 같이 능침 앞에서부터 기린 · 코끼리 · 사자 · 해태 · 낙타 각 1쌍 · 마석(馬石) 2쌍을 2단의 하대석 위에 올려놓았다

 

 

 

 

침전 · 비각 · 수복방

 

 

 

 

유릉
조선 왕조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 · 순명효황후 민씨 · 순정효황후 윤씨 묘소로
조선 왕릉 가운데 한 능침에 세 명을 모신 유일한 동봉삼실 합장릉 형태다

 

 

 

 

유릉
순종은 1926년 4월 25일 대조전(大造殿)에서 53세로 승하해 같은 해 6월 11일 이곳에 초장봉릉되었다
순명효황후 민씨는 1904년 9월 28일 경운궁 강태실(康泰室)에서 33세로 죽어
같은 해 11월 29일 양주군 용마산 내동 현재 어린이대공원 경내에 초장되어 유강원(裕康園)이라 하였다
1907년 황후로 추봉되고 능호도 유릉으로 했으며 1926년 6월 5일 이곳에 천릉되었다
순정효황후 윤씨는 1966년 1월 13일 72세로 죽어 이 곳에 묻혔다

 

 

 

 

유릉
능의 상설로 홍살문과 석물 침전은 일직선상이나 능침은 옆으로 비껴 있다

 

 

 

 

장명등
영조 이전 문양인 연꽃 문양이다

 

 

 

 

혼유석

 

 

 

 

난간석 · 병풍석

 

 

 

 

예감

 

 

 

 

비각

 

 

 

 

순종황제 · 순명효황후 민씨 · 순정효황후 윤씨 신도비

 

 

 

 

수복방

 

 

 

 

묘표비
순명효황후 민씨는 1904년 9월 28일 경운궁 강태실(康泰室)에서 33세로 죽어
같은 해 11월 29일 양주군 용마산 내동 현재 어린이대공원 경내에 초장되어 유강원(裕康園)이라 하였다
1907년 황후로 추봉되고 능호도 유릉으로 했으며 1926년 6월 5일 이곳에 천릉될 때 왔다

 

 

 

 

홍유릉과 능역 내 안내지도
실은 홍유릉과 능역 내에 있는 영원 · 덕혜옹주 묘 등을 둘러보고 점심 식사 후 사릉까지 걸으려 하였으나
영원과 사릉이 비공개 지역인데다 홍유릉에서 예상 외로 시간을 많이 소요해 점심도 못하고 홍유릉만 보았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6.9km, 소요시간 3시간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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