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395m)는 야산으로 전쟁 전에는 눈여겨 보지 않던 무명고지에 불과했으나
전선이 고착되면서부터 철의 삼각지 좌견부를 감제하는 중요 지형지물로 유명해진 곳이다
명칭의 유래는 전쟁 중 포격에 의해 수목이 다 쓰러져 버리고 난 후의 형상이 누워있는 「백마」처럼 보였기 때문이라는 설과
당시 참전했던 어느 연대의 부연대장이 외신기자 질문에 「화이트 호스 힐」이라고 대답하여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격전을 치루고 난 후 처절한 산의 형상이 백마의 와상(臥像)과 같다 하여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전투를 계기로 전투를 수행한 제9보병사단의 부대 애칭을 「백마부대」라 부르게 되었다
묘장초등학교와 철원두루미평화마을정보센터
백마고지(산정에 건물이 있는 곳) · 김일성고지(고암산 · 가운데 제일 높은 산) · 대성산(오른쪽 · 북한)이 뒤에 있다
대마리 백마고지 빗돌
대마사거리에서 백마고지로 가는 들머리에 있다
백마상
백마교 앞에 있다
백마고지전승비(白馬高地戰蹟碑)
백마고지위령비(白馬高地慰靈碑)
백마고지전적비 · 상승열쇠부대 시계탑이 있다
백마고지위령비(白馬高地慰靈碑)
백마고지기념관 · 백마고지전적비가 뒤에 있다
백마고지위령비(白馬高地慰靈碑)
백마고지에서 희생된 국군 898위의 영혼을 진혼키 위해
5사단 전 장병과 대마리주민 · 백마고지참전전우회의 뜻을 모아 세웠다
백마고지기념관
백마고지 호국영령 충혼비
백마고지전투 전승기념일인 10월 16일, 민 · 관 · 군 합동위령제를 백마고지 전적 기념관 앞에서 거행하고 있다
DMZ 내 백마고지 정상에 있다
육탄 3용사
1952년 10월 12일, 아군은 고지탈환을 위한 세 차례의 돌격에도 불구하고
적의 발악적 기관총 화력으로 혼전만 거듭할 때 강승우 소위 · 오귀봉 하사 · 안영권 하사는 우국충정의 군인정신으로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탄우 속을 헤치며 단숨에 고지 정상으로 내달아 적 기관총진지를 박살내고 장렬히 산화하였다
전 장병은 육탄3용사의 투혼에 사기를 진작시켜 순식간에 고지 정상을 휩쓸고 마침내 백마고지에 태극기를 꽂았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친 3용사는 백마의 삼군신(三軍神)으로 추앙받아 호국의 별이 되었다
전투에 임하는 장병들에게 / 9사단장 김종오장군 훈시
여기에 우리의 뼈를 묻자!
그리하여 우리 9사단의 빛나는 명예를 지키자
1952. 10. 5 백마고지 전투를 앞두고
백마고지 1차전투(1952, 10, 6)~12차전투(1952, 10, 15)까지의 경과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고지를 빼앗기 위해 중공군 1만여 명이 전사상 또는 포로가 되었으며
국군 9사단도 총 3,4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당시의 군수품
철모
백마고지 전적비
상승각으로 가는 길이다
상승각(常勝閣)
상승열쇠부대 5사단 장병들이 1990년에 백마고지 전적지를 조성하면서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상승각(常勝閣)
상승각 뒤쪽에서 DMZ 내 백마고지가 보인다
백마고지 상승각 종
백마고지에 누운 영혼들을 천도하고 통일 염원의 정성을 모아 이 자유의 종을 빚어 깊은 소리를 울리나니
철조망 너머 북녘 땅에 이르기까지 온누리의 어두움을 깨뜨리는 자유의 쇠북소리되게 하소서
DMZ 내 백마고지
김일성고지라 불리는 고암산(오른쪽) · 그 왼쪽이 북한의 대성산이다
민간인 출입 통제선
DMZ 내 백마고지 방향으로 내려가 보았다
고대산
경기도 연천군과 강원도 철원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위령탑에서 내려오며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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