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月精寺)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산(聖山)으로
산 전체가 불교성지가 되는 곳은 남한에서는 오대산이 유일하다
월정사는 자장율사에 의해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창건된다
자장은 중국으로 유학하여 산서성 오대산의 화지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이때 문수보살이 보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전해준 뒤, 신라에서도 오대산을 찾으라는 가르침을 주게된다
이후 귀국하여 찾게된 곳이 강원도 오대산이며
이때 월정사를 창건하고 오대(五臺) 중 중대(中臺)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조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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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9층석탑 · 목조문수동자상 · 상원사중창권선문 · 상원사동종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금강교(金剛橋)
오대천 금강연
금강교에서 봤다
금강교
열목어 서식지 안내판이 옆에 있다
천왕문(天王門)
금강교를 지나 제일 먼저 만나는 문이 천왕문이다
일명 사천왕문(四天王門)이라고도 하며 대개 일주문 다음에 천왕문이 있다
1974년 만화 스님이 중건했다
천왕문(天王門) 편액
금강루(金剛樓)
금강루는 사천왕문을 지난 곳에 있다
일주문 · 사천왕문 ·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한국사찰 배치로 보아 월정사는 불이문 자리에 금강문을 두고 있다
전면 3칸 ·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1997년 12월 현해 스님이 착공하여 1999년 10월에 낙성했다
금강루(金剛樓) 편액
금강문(金剛門) 편액
금강루 안쪽 아래에 있다
청류다원(淸流茶院)
전통찻집으로 옆에는 커피 가게가 따로 있다
보장각(寶藏閣)
연건평 206평의 팔작지붕 형태의 건물로 월정사 성보박물관으로 지어졌으며
현재는 지상 1층은 월정사종무소 · 지하 1층은 회의실로 사용중이다
보장각(寶藏閣) 편액
월정사 조실, 오대산연수원 원장으로서 승려들을 지도했던 탄허(呑虛) 스님의 글씨다
월정사의 많은 편액을 썼다
동당(東堂) 설선당(設禪堂)
적광전 왼쪽 동당(東堂)으로 불리는 설선당이 있다
ㅁ자형으로 지어진 큰 당우로 건물 내부에는 중정(中庭)을 두고 있다
1979년 만화 스님이 중건하고 2002년 현해 스님이 전면 보수했다
용금루(湧金樓)
본래 팔각구층석탑 가까이 있던 것을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누각의 기초를 화강석 기둥으로 하여 밑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누마루형식의 건축이다
정면 7칸 · 측면 2칸 팔작지붕이며, 1977년 만화 스님이 중건했다
용금루(湧金樓) 편액
탄허 스님의 친필이다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국보 제48호
월정사의 본당인 적광전의 앞뜰 중앙에서 조금 비껴난 자리에 팔각구층석탑이 서 있다
팔각구층석탑은 연꽃무늬로 치장한 이층 기단과 균등하고 우아한 조형미를 갖춘 탑신
그리고 완벽한 형태의 금동장식으로 장엄한 상륜부 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뛰어난 석탑이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하나, 그 무렵의 탑들은 평면 정방형에 삼층 또는 오층의 탑으로 이루어진 것에 견주어
이 탑은 평면이 팔각형이며 탑의 층수도 9층에 이르는 늘씬한 자태를 이루어
고려시대의 석탑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탑은 전체를 화강암으로 조성하고 상륜부에 일부 금동장식을 더하였는데
여러 차례의 화재로 손상을 입은 부분이 더러 있으나 오늘날까지도 본래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해 오고 있다
기단은 아래 층 각 면에 안상을 새기고 연꽃 장식을 베풀었다
그 위로는 굄돌을 놓아 위 층 기단을 정성스레 받들어 기단 전체가 마치 부처님의 연꽃 대좌처럼 장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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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팔각구층석탑은 높이 15.2m로 우리나라의 팔각석탑으로는 가장 크다
그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움에서도 단연 으뜸이며 고려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주목받고 있다
적광전(寂光殿)
적광전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통례인데
이곳 적광전은 그 통례를 깨고 석굴암의 불상 형태를 그대로 따른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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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만화 스님이 법당 중창 당시에는 편액이 대웅전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탄허 스님의 오대산수도원을 기념하기 위해 결사의 주(主) 정진이었던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의미로 적광전으로 고쳐 편액을 달았다
적광전(寂光殿) 편액
탄허 스님의 친필이다
석조보살좌상 / 국보 제48-2호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팔각구층석탑 앞에는 탑을 향하여
오른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공양을 드리는 모습을 한 석조보살좌상이 있다
입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는 이 보살상을 일명 약왕보살(藥王菩薩)이라고도 한다
강원도 일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로 조성된 이 보살상은
턱이 약간 길고 눈두덩이 두껍고 뺨은 도톰하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고 있어 복스럽게 느껴진다
머리 위에 높다란 원통형 관을 쓰고 있는데 관 옆에 작은 구멍이 얕게 파져 있는 것으로 보아
관에 장식이 달려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보발(寶髮)은 양 어깨의 앞과 뒤로 단정하게 드리워져 있고, 두 귀는 보발 등으로 살짝 감추어져 있다
목에는 삼도를 새기고 앞가슴은 영락으로 장엄한 채 두 손은 가슴 앞에 모아 무엇을 잡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석조보살좌상 / 국보 제48-2호
이 보살은 탑을 향하여 한가운데가 아닌 오른쪽으로 조금 치우쳐 앉아 있고
상체가 하체에 견주어 큰데 이것은 우리 눈의 착시현상을 감안한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 무릎을 꿇은 것은 고대 인도의 관습에 따라 자신을 낮추고 스승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이 보살상이 약왕보살임은 법화경에 잘 나와 있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는 과거 일월정명덕(日月淨明德) 부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희견보살(喜見菩薩)이 부처님으로부터 법화경 설법을 듣고 현일체색신삼매(炫一切色身三昧)를 얻었다
환희심에 가득한 보살은 여러가지 공양을 올렸고
마침내 1,200년 동안 향을 먹고 몸에 바른 후 자신의 몸을 태우며 공양하였다
그리고 다시 몸을 받아 일월정명덕국(日月淨明德國)의 왕자로 태어났을 때
일월정명덕여래는 그가 장차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주었다
희견보살은 부처님의 사리를 수습하여 팔만사천의 사리탑을 세우고
탑마다 보배로 만든 깃발과 풍경을 매달아서 장엄하게 꾸몄다
그러고도 모자라 탑 앞에서 자신을 두 팔을 태우며 72,000세 동안 사리탑을 공양하였으니 이 분이 바로 약왕보살이다
좌상의 전체 높이는 1.8미터이다
적광전(寂光殿)
서당(西堂) 대강당(大講堂)
서당은 주요 행사나 모임이 있을 때 행사장이나 수련법회장으로 쓰이며 또한 스님들의 요사채로 쓰인다
탄허 스님 때에는 정진을 공부하는 강원(講院)으로 지어졌다
지금도 탄허 스님이 쓴 대강당 편액과 큰 방에는 탄허 스님의 친필 액자가 걸려 있다
정면 11칸 ·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1976년 만화 스님이 중건했다
대강당(大講堂) / 탄허(呑虛)
수광전(壽光殿) · 지장전(地藏殿)
무량수전은 서방 극락정토의 교주 아미타불을 모신 곳으로, 수광전 · 극락전이라고도 불린다
아(阿)란 아미타(바)Amitabha 무량광(無量光) · 무량수(無量壽) 한량없다(無)의 뜻이며
미타는 수명을 뜻하니 목숨이 없는, 수명의 다함이 없는 부처님이란 뜻이다
월정사 무량수전은 상단에는 아미타부처님과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뒤쪽으로 극락의 법회 장면을 묘사한 목각탱화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를 모시고 있다
삼성각(三聖閣)
삼성각은 독성 나반존자 · 산신님 · 칠성님을 함께 모신 곳이다
나반존자는 남이도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십이연기(十二緣起)를 깨달은 성자로
우리나라에서는 단군을 신격화한 것으로 신앙되고 있다
칠성님은 본디 중국에서 유입된 도교신앙의 신으로 북두칠성의 별자리를 신격화한 것으로
한국으로 들어와 토착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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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현애 스님 때 중건했다
삼성각(三聖閣) 편액
탄허 스님 친필이다
개산조각(開山祖閣)
개산조각은 규모가 정면 5칸 ·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월정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진영(眞影)을 모신 곳이다
1804년에 제작된 통도사 자장율사의 진영이 가장 오래되었고, 월정사의 진영은 최근 제작된 것이다
1958년 영해당 경덕 스님이 중건했으나 현존하는 월정사 당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개산조각(開山祖閣) 편액
자장율사(慈藏律師) 진영(眞影)
진골 출신 관리 호림공(虎林公) 김무림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를 일찍 여의자, 처자를 버리고 원녕사(元寧寺)를 지어
고골관(枯骨觀 인생의 무상함을 마른 뼈와 같이 여기는 관념)을 닦았다
이때 선덕여왕이 재상에 임명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자장율사(慈藏律師) 진영(眞影)
636년(선덕여왕 5년) 왕명으로 제자 승실 등 10여 명과 함께
중국 당나라의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가사와 사리를 받고, 불도를 닦았다
훗날 화엄종의 시조가 되는 두순(杜順)과 계율종(戒律宗)의 도선(道宣)에게 배운 뒤
643년(선덕여왕 12) 장경 1부와 불구를 가지고 돌아왔다
분황사 주지로 있으면서 궁중과 황룡사에서 《대승론》 · 《보살계본》 등을 강론하였다
그 후 대국통이 되어 승려의 규범과 승통의 일체를 주관하였다
또한 황룡사 9층 목탑의 창건을 건의하여 645년에 완성하였으며, 통도사와 금강계단을 세웠다
국 각처에 10여 개의 사탑을 세웠고, 중국의 제도를 본받아 신라에서는 처음으로 관복을 입게 하였다
이어 650년 진덕여왕 때 당의 연호 사용을 건의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자장율사(慈藏律師) 진영(眞影)
만년에는 강릉부에 수다사(水多寺)를 짓고, 후에 태백산에 석남원(정암사)을 세워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저서로 《아미타경의기》·《출관행법》·《제경계소》 등이 있다
진영각(眞影閣)
개창주(開創主)나 중창주(重創主)와 같은 고승의 진영을 모시는 전각이다
월정사의 진영각은 개신조각을 따로 두어 개창주를 따로 모시고 있어 근 · 현대의 스님만을 모시고 있다
정면 5칸 ·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태인 진영각에는
근대 월정사에 주석한 조계종 초대 종정이신 한암 스님 · 현대불교학의 아버지이신 탄허 스님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지암 스님 · 한국전쟁 후 월정사를 중건한 만화 스님 진영을 모시고 있다
1975년 만화 스님이 중건하고 1994년 현해 스님이 2009년 퇴우 정념 스님이 증축했다
진영각(眞影閣) 편액
한암당중원대종사(韓巖堂重遠大宗師) 진영(眞影)
월정사에 주석한 조계종 초대 종정이다
한암당중원대종사(韓巖堂重遠大宗師) 진영(眞影)
한국전쟁 후 월정사를 중건한 만화 스님 진영을 모시고 있다
한암당중원대종사(韓巖堂重遠大宗師) 진영(眞影)
현대불교학의 아버지이신 탄허 스님을 모시고 있다
대법윤전(大法輪殿) · 선불장(選佛場)
큰 법을 굴리는 집이란 뜻으로 사찰에서의 강당을 의미한다
석가모니께서 정각을 이룬 후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버버을 한 역사적 사실에서 당호를 지었다
강당은 1층 · 공양채는 지하에 있다
대법윤전(大法輪殿) · 선불장(選佛場) 편액
선불장(選佛場)
철야정진방
청신남(男) · 청신녀(女) 방으로 나뉘어 있다
스님들의 수행공간
해행당(解行堂) 편액
종고루(鐘鼓樓)
적광전 앞에 있는 앞면 3칸 ·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다
범종 · 목어 · 운판 · 법고 등의 불전사물을 봉안하여 새벽 · 저녁예불 때 사용한다
종고루(鐘鼓樓) 편액
불유각(佛乳閣)
부처님 우유가 있는 집이란 뜻으로 월정사를 찾는 이에게 시원한 감로수를 제공하고 있다
큰 석확 안에 물이 좋기로 유명한 오대산의 샘물이 솟아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불유각(佛乳閣) 편액
해행당(解行堂)
천왕문을 지나 오른편에 있는 팔작지붕 건물로 1978년 만화 스님이 중건했다
종무소로 쓰이다 현재는 종무원의 요사채로 쓰인다
오대산 월정사(五臺山 月精寺)
천왕문 지나 안쪽에서 봤다
예전 용금루에 걸려 잇는 편액이
오대산 월정사(五臺山 月精寺) 편액
월정사 대공덕주 김송덕비 · 조중훈송덕비
정덕삼공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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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