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구간으로, 우리 조상의 불굴의 독립정신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헤이그 밀사인 이준 열사 ·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 묘소 ·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17위의 광복군 합동묘소 등
모두 12기의 독립유공자 묘역이 조성되어 있으며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 4 · 19 민주묘지가 있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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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둘레길 1구간에 이어 2구간(순례길 구간)을 걸었다
2구간은 거리 2.3km · 소요시간 1시간 10분이다
순례길 구간
북한산둘레길 1구간 마침점이자 2구간 시점이다
1구간이 짧기에 2구간까지 걸었다
보광사로 가는 길이다
갈림길에서 왼쪽 목책 길로 가야 한다
국립 4 · 19민주묘지
목책길을 잠시 오르면 4 · 19민주묘지 전망대가 있다
국립 4 · 19민주묘지
보광사(普光寺)
사찰의 연혁은 기록으로 전하는 것이 없는데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1788년 금강산에서 수도한 원담스님이 창건하여 신원사라 하였다 한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고 일부 건물만이 남아 법등(法燈)을 이어왔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근래까지 이 지역에 살았던 노인들의 증언으로 알 수 있었으며
1980년대 건물을 지을 때 땅에서 많은 기와가 나왔다고 하여 신뢰를 더한다
보광사 대웅전(普光寺 大雄殿)
1940년대 보광사의 옛 이름이 신원사인데, 묵조(默照)스님이라는 분이 신원사 강원에서 후학을 지도했다는 내용이
1998년 감로사에서 소신공양으로 열반한 충담 스님의 행장(활동 이력)에 기록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보광사는 신원사로 불렸으며, 비교적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해줄 만한 유물로는 현재 경내 관음전 앞에 큰 맷돌이 있어 당시 대중의 규모가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일 스님은 1979년 포교의 원을 세우고 이곳에 주석하면서 불사를 시작하여 1980년 11월 보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이어서 1985년에는 관음전과 요사를 새로 지었고, 1990년에는 서울 도심의 유일한 비구 수행처인 보광선원을 신축하였다
1993년에는 대웅전을, 2002년에는 설법전을 짓는 등 참선수행도량, 청정천도도량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 현판
여의주를 물은 용이 양쪽에 있다
석불 지장존상
보광사 포교당
관음전(觀音殿)
맷돌
일제강점기에 보광사는 신원사로 불렸으며, 비교적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해줄 만한 유물로는 관음전 앞에 있는 큰 맷돌로 당시의 규모가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승탑
남산당 정일대선사비(南山堂正日大禪師碑) 옆에 있다
남산당 정일대선사비(南山堂正日大禪師碑)
사산금표(四山禁標)
도성 안 성저 10리 이내(한성부 관할권 내)에서 송림(松林)의 벌채를 금지하고 장지(葬地)를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세웠다
조선 후기 도성 안의 인구가 팽창하면서 도성 부근의 무분별한 벌채와 장지의 확대가 증가하자
이를 막기 위한 방책으로 실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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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장(宮禁場)이라 바위에 써있다
나무계단을 내려간다
강재 신숙(剛齋 申肅) 선생 묘
경기도 가평 출신 독립운동가였으며 3 · 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교정 및 인쇄 · 배포하였다
3 · 1운동 직후 독립운동 단체인 대동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임시정부를 만드는데 관여했고 활동을 지원했다
1930년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고 한국독립군 참모장으로 활약했다
건국훈장 독립장(1963)을 받았다
유시(遺詩) / 강재 신숙(剛齋 申肅)
강재 신숙 선생님 묘비에 쓰여 있으며, 선생께서 만주에서 한국독립군을 편성하여 일제에 항전하던 중
일본군의 초격을 피하고자 모친의 묘소에 은거하면서 시절에 대한 한탄과 회한을 읊은 시이다
인수재로 오르는 계단이다
인수재(仁壽齋)
인수재(仁壽齋) 현판
상산 김도연(常山 金度演) · 노광임(盧光姙) 부부 합장묘
경기도 김포 출신 독립운동가 정치가였으며 일본에서 1919년 1월 1일 비밀리에 조선독립청년당을 조직하고
2월 8일 선생을 포함한 11명의 대표는 독립선언을 주도하여 옥살이를 하였다
1942년에는 일본이 조선어학회를 해체시키려는 사건으로 인해 또 다시 2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광복 후에는 입법의원과 제헌 국회의원을 거쳐 초대 재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상산 김도연(常山 金度演 1894. 6. 16~1967. 7. 19) 박사 묘비
건국훈장 애국장(1991)을 받았다
애국지사의 불빛(김도연) / 윤보영
북한산둘레길 안내지도
주말농장
북한산둘레길 안내판
진달래 능선 갈림길
오른쪽 길이 서상일 · 김창숙 · 양일동 묘로 가는 길인데 지난 번에 갔던 곳이라 지나쳤다
백련사지원탐방센터로 내려가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오른다
단주 유림선생 묘비
예전 섶다리가 있던 곳이다
단주 유림(旦洲 柳林 1898. 5. 3~1961. 4. 1) 선생 묘비
독립운동가 · 정치인이며 아나키즘 진영을 대표로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의정원 의원을 역임하였고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 정당인 독립노동당을 창당하여 당수로 활동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1962)를 받았다
대동천
계곡이 깊고 투명하다
광복군 선열지묘(光復軍先烈之墓)
광복군 17위의 합동 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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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2)
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省齋 李始榮 1869. 12. 3~1953. 4. 17) 선생 묘
서울 출신 정치가 · 독립운동가 · 강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하고
임시정부 법무 · 재무총장을 역임 · 광복 후 초대 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이승만 대통령 통치에 반대하여 사직하였다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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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합동묘역 위쪽에 있다
일성 이준(一醒 李儁 1858. 12. 18~1907. 7. 14) 열사 묘
함경남도 북청 출신 순국선열 애국계몽운동가로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07년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침략행위를 세계에 호소하였다
을사늑약 폐기 상고운동 중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보안회 · 대동협동회를 조직, 일본인의 황무지개척권을 반대하였고
국민교육회 · 한북흥학회 · 헌정동지회를 조직하여 애국계몽운동을 폈쳤다
4 · 19로로 올라가며 돌아 봤다
돌탑
북한산둘레길 탐방지원센터
근현대사기념관
시간이 없어 못 들렸다
이준 열사 · 손병희 등 독립운동가 상이 있다
서상일 · 김창숙 등의 흉상이 있다
국립 4 · 19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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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앞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했다
걸은 거리 7.7km · 소요시간 5시간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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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둘레길 1 · 2구간을 걷고 식당에서 지낸 시간까지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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