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여강길은 도보여행길로 12개의 코스가 있다
여강길 8코스(파사성길)는 당남리섬 입구를 시점으로 파사성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길로
코스 길이 5.4km · 소요시간 2~3시간으로 안내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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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성에 소나기가 내릴 때의 풍경인 파사과우(婆娑過雨)가 여주8경 중 제8경이다
천서리막국수
양평역에서 천서사거리까지 버스로 와 막국수로 점심을 했다
시점이다
이포보
여주시의 새인 「백로와 생명을 품은 알」을 형상화하여 디자인한 이포보는 전국 16개 보 가운데 강장 아름다운 보로 선정되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하천변에 오토캠핑장과 축구장 · 야구장 등 체육시설과 동식물의 서식지인 생태공원 · 습지공간으로 드넓은 수변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문화지킴이 · 민족지킴이 장승
행복지킴이 · 행복한 순간 · 마음의 빛 · 마음이 부자인 사람 장승 등이 있다
장승들은 목아 박찬수님 작품이다
파사성 연결 보도현수교
전통적인 파사성 성문의 형상을 모티브로 하여 주탑 디자인으로 차용하고
여주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로 연결하는 관문을 표방하여 독창적인 상징성을 부여한 경관 교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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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현수교 옆에 주차장이 있다
파사성 정상 · 주차장 방향안내판
남문지(南門址)
발굴조사에서 남문은 원래 사다리를 이용해서 올라가야 하는 현문식(懸門式) 성문이었으나
조선시대 다시 쌓으면서 성벽 바깥쪽을 성문의 높이까지 흙을 쌓아 완만한 경사면을 만들어 성문으로 출입하기 쉽도록 하였다
여주 파사성 남문 안내도
남문 터에서는 문루의 팔각 주춧돌이 양편에 있다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파사성 포루(치)
성벽에 딸린 시설로는 동벽 남쪽 · 남문터 서쪽 · 북벽 서쪽의 성벽이 돌아가는 부분에서 치와 포루터 3곳이 확인된다
양평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楊平 上紫浦里 磨崖如來立像)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1호
커다란 바위벽을 깎아서 선으로 새겨 조각한 불상이다
파사성 연인소나무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사이가 안좋았던 부부는 부부애가 좋아진다고 한다
개군면
개군산 · 추읍산 품안이고 남한강이 앞으로 흐른다
파사산 정상
이포대교 · 이포보
정상에서 봤다
여주 파사성(驪州 婆娑城) / 국가사적 제251호 안내판
남한강 동쪽에 있는 파사산(230. 4m) 꼭대기에 있는 돌로 쌓은 성이다
이곳은 한강의 수상교통과 중부 내륙의 육상교통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이포대교 주변의 넓은 한강 유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성의 둘레는 1,800m이고 최대 높이는 약 6.5m로 규모가 큰 편이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일부 구간은 최근에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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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으로 가는 계단이 옆에 있다
마애여래입상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와 돌아봤다
마애여래입상은 성밖 양평에 있어 여주 여강길에는 들어 있지 않다
동문지(東門址)
파사산에서 수호사로 가는 길이다
묘소 앞이다
수호사 대웅전
느네마을 방향안내판
신내천(神來川)으로 가는 길이다
천서리는 신내천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느네마을 방향안내판
신내천을 따라 걷다 느네마을로 드는 들머리다
느네마을
산으로 둘러 싸인 아늑한 마을로 이름이 능내라 한다
지명 유래 조사에 따르면, 왕의 능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능내라 부르다가 느내로 바뀌고 현재 능내 혹은 느네로 병기하여 사용한다
천서리 일대에서 왕의 능 존재와 관련한 사료는 없다
다만 천서리 일대는 고삼국 시대 각축장으로 왕에 대한 지명 · 설화 등이 다수 존재하는 곳이다
산으로 든다
천서리막국수촌으로 가는 언덕에서 왼쪽 마루금으로 걷는다
이포보
산불감시소(?)
당남리 앞 날머리다
당남리 입구다
이포보자연학습장
이포보자연학습장에서 이포대교로 간다
강계봉진막국수
막국수로 이른 저녁을 했다
결국 점심 · 저녁식사를 막국수로 했다
파사산
이포대교를 건너며 봤다
이포보
파사산 파사산성
이포대교 건너로 보인다
이포대교를 건너서 돌아봤다
파사산 파사산성
이포대교 건너로 보인다
당남리섬
선착장
이포(梨浦) 나루터 옆이다
이포(梨浦) 나루터 빗돌 · 파사산
이포나루터는 전해 내려오는 설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파사의 천령국이란 부족국이 있어 싸움이 잦았다고 하며
강원도 태백산 정선, 영월 · 충청도 제천, 단양, 충주지방에 목재 및 농산물은 물론 약재를 싣고가던 뗏목, 배 여객이나 사공들이 쉬어가던 곳이며
한양에서 올라오는 소금이나 생활품을 싣고 올라왔으며
애환의 단종대왕이 영월로 유배가시면서 한양을 그리워하며 통곡을 하시던 곳이었다
또한 고종황제의 정비인 명성황후께서는 고종 19년(1882)에 발생한 임오군란의 화를 피하기 위해
이곳 이포나루터에서 3일을 기거하신 후 재입성을 기다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장호원으로 피신하였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6 · 25사변 때는 치열한 격전지로 유명했으며
1991년 이포대교의 준공으로 도선운행이 중단되면서 옛 이포나루의 추억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당남리섬
이포나루에서 봤다
이포(梨浦) 나루터 빗돌 · 이포나루의 유래
금사면 이포리와 남한강 건너편의 대신면 천서리를 연결하던 한강 4대 나루의 하나로 이포대교가 건설된 1990년까지 운영되었다
교통요충지로서 수많은 배가 정박했고 큰 장이 섰으며 온갖 물산이 거래되던 곳이다
1919년 3 · 1만세운동 때엔 무려 3,000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곳이기도 하다
리버하우스모텔
마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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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9. 17)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0.13km, 소요시간 6시간 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