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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평택 농성

농성(農城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74호)은 안성천과 아산만이 합쳐지는 지역에 형성된 평야지대에 있는 성이다
성은 해발 24m의 구릉 경사면을 이용하여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동쪽과 서쪽에는 문터가 남아 있다
형태는 원형에 가까운 장방형으로 전체 둘레는 약 300m에 이르고 성벽의 높이는 5~8m이다
축성 시기는 나말여초, 팽성읍의 호족 임팔급이 쌓았다는 설과 임진왜란 때 왜군이 군량미를 저장하기 위해 쌓았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농성(農城)이라는 명칭은 18세기에 편찬된 팽성지에 「삼국이 전쟁할 때 농민들의 곡식을 거두어 감춰두기 위해 쌓았다」는 내용에 근거하지만
주민들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았다는 설에 기인하여 왜성(倭城) · 이성(夷城)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성산으로 불렸으며 성안에는 평택현의 관아 건물이었던 성황사와 우물이 하나 있었다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농성(農城)
성벽은 전체 길이가 약 300m로 동벽 93m · 서벽 85m · 남벽 56m · 북벽은 71m이다

 

 

충절공 임팔급(忠節公 林八伋) 상
한국 임씨(林氏) 시조인 충절공 임팔급은 신라의 이부상서에 올랐을 때 적병이 변방을 침입하므로
공이 분연히 토벌하여 위난을 평정한 공훈으로 팽성군(彭城君)에 봉해지고 신덕왕조에서 충절공의 시호를 받았다
충절공은 중국 당나라에서 18세에 등과하여 한림학사를 거쳐 병무시랑 예부상서로 있을 때
간신배들의 모함을 받아 칠학사와 함께 850년 경에 우리나라 평택 팽성에 와서 농성을 쌓고 정주하였다

 

 

서문지(西門址)
성벽의 높이는 동벽 · 북벽이 8~10m로 높고, 남 · 서쪽은 6~8m로 다소 낮다
문지는 동벽과 서벽 중간부에 위치하며 크기는 하단 너비 8~10m · 상단 너비 2m 내외다

 

 

동문지(東門址)
서문지로 들어서 봤다

 

 

성곽 북쪽
성내 면적은 약 14,900㎡이며, 높이는 4~5m 가량이다

 

 

충절공 임팔급(忠節公 林八伋) 상
성곽 위를 돌면서 봤다

 

 

서문지(西門址)
성곽 축조 방법이 고려 때 만들어진 덕목리성 · 처인성 등과 유사하며 출토유물들이 고려시대 것이 많다

 

 

안정순환로
동문지 부근에서 봤다

 

 

평택브라운스톤 험프리스아파트
농성 북동쪽 방향이다

 

 

안정리 · 원정리
농성 북쪽 방향으로 논에 철새들이 많다

 

 

안성천 팽성대교 방향
평택 서부지역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성곽문화재가 남아 있다
이러한 문화재는 아산만 일대의 해안방어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유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농성 북서쪽 방향
미군기지의 영향으로 새로 지은 집들이 많다

 

 

농성 남동쪽

 

 

농성 남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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