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개항 이래의 역사문화 유적이 곳곳에 산재해
인천의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인천 동구 · 중구를 모처럼 비무장으로 걸었다
동인천역 북광장
재개발로 어수선하다
동인천역
재개발로 어수선하다
대책없는 개발사업 가정해체 웬말이냐
전국철거민연합 동인천광장 대책위 펼침막이 걸렸다
배다리
19세기 말까지 이곳에 큰 갯골이 통해 있어 만조 때가 되면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배를 댈 수 있는 다리가 만들어 지면서 「배다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근처에 전통공예거리와 헌책방거리가 있다
경원만두
오래된 만두 맛집이다
배다리 헌책방거리
6 · 25전쟁 이후 폐허가 된 배다리에 리어카 책방이 모이면서 형성되었다
한창 때는 50여 곳에 달했는데 대형서점에 밀리면서 현재 6곳만 남았다
고원사진관 · 한미서점
SPACE 빔
아직 「인천양조주식회사」란 간판이 붙어 있는 전시공간이다
스페이스 빔은 〈도시유목 2〉 프로젝트를 마친 2007년 여름 이곳으로 이사하였다
새로 얻은 공간은 1926년에 만들어진 인천양조장 건물로 여기서 만들던 소성주는 인천에서 유명한 막걸리였다
그러나 회사가 1990년대 중반 부평구로 이전하면서 빈 공장으로 있다가
2002년부터 2005년 사이에는 아벨서점 곽현숙 사장님이 「아벨전시관」을 만들어 운영했었다
정윤희 작가
인도차이나반도를 중심으로 인도 · 네팔을 여행하며 얻은 느낌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표현하였는데
작가의 표현이 아시아적 가치가 서구적 시선으로부터 규정되어지는 것의 반작용으로 출발했지만
작가도 작가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 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고 한다
진도여인숙 · 성진여인숙
송림초등학교 · 송림유치원
중앙시장
송현동 개천가에 노점들이 모여들어 밤 늦도록 불을 밝히면서 형성된 야시장에
1936년 양철지붕을 얹어 일용품시장으로 변모하였는데 이것이 중앙시장의 시작이다
지금은 이불가게와 한복집이 많다
송현시장
배다리 전통거리를 지나면 있는 50년 전통의 시장이다
수도국산박물관
1904년 일제강점기 왜병들의 강제 이주에 의한 새 거주지로 정착한 곳이며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산업화에 의하여 모인 3천여 가구 사람들이 모듬살이를 한 곳으로 일명 달동네가 되었다
2005년 개관한 수도국산박물관이 지난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수도국산박물관 옛 가옥
실제 수도국산이 철거될 때 대표되는 집들을 원형대로 살려 재현해 놓았다
추억의 기념품 판매소
쫀득이 · 번개 아톰 · 못난이 삼형제 · 딱지 등 추억의 물건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만화가게
만화를 볼 수 있다
6 · 25 그날 이후 전시회
전시장엔 가슴 아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화도진
서구들이 조선을 탐내는 것을 안 고종황제께서
1878년(고종15) 8월, 당시 어영대장이던 신정희로 하여금 축조공사를 맡기고 이듬해 7월에 완공되었다
고종황제는 이곳을 화도진이라 명명하고 서해안 방어를 맡게 하였다
화도진의 정문 솟을 대문이다
동헌
수령 등이 정무를 집행하는 곳이다
동헌 왼쪽 방
조선후기 무관인 이석구장군의 애마시(愛馬詩) 병풍이 있다
"천하를 내달리면 바람과 구름이 일고
한 번 울부짖으면 천지가 진동하니
말의 위용은 백수의 우두머리요
그 공덕을 논하자면 가축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동헌 오른쪽 방
고종 19년(1882) 5월 22일, 고종의 전권대신 신헌과 미국의 전권대신 슈펠트제독 사이에 〈한·미 수호조약〉이 체결되었다
한국이 서구와 맺은 최초의 조약이다
뒷뜰
낮은 굴뚝은 남을 위한 배려와 적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연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화도진도
동헌 오른쪽에 있는 옛 행랑채를 개조한 전시장에 있다
신정희
고종황제의 명으로 화도진 축조공사를 했다
당시 어영대장이였다
별왕자총통 · 시한폭탄 비격진천뢰
왜구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를 가장 무서워했다
육모정
짝수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하여 팔각정처럼 짝수로 지었다
병사들의 휴식처였다
내사(內舍)
동헌 왼 육모정 옆으로 난 협문으로 들어가면 안주인의 거처인 내사가 나온다
한 · 미 수교 100주년기념비
홍이포 · 중포 · 소포와 함께 화도진 뒷쪽에 있다
화평동 세숫대아 냉면거리
냉면가게 수에 놀라고 · 냉면그릇 크기에 놀라고 · 마지막으로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놀란다
국화빵
국화빵과 어묵을 간식으로 먹었다
송월시장
문을 닫은 상점이 많아 설렁하다
차이나타운으로 가다 봤다
북성동 차이나타운
뒤에 빨간 건물이 자장면의 효시로 알려진 공화춘 건물이다
인천시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의선당
의를 지키고 착하게 살도록 하는 교훈을 주는 곳으로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건너 온 중국인들이
이국 땅에서 잘 적응하고 살도록 하기 위한 화교들의 교화 기관이다
관음보살과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을 모시고 있다
선린문
응봉산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곳이다
삼국지 벽화거리
공자상
인천항을 굽어보고 있다
이 돌층계를 경계로 오른편 청국조계지 · 왼편 일본조계지다
자유공원 연오정(然吾亭)
한미수교 100주년기념탑
맥아더 동상
1888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서구식 공원으로 서울 탑골공원보다 8년이나 앞섰다
이 공원의 원래 이름은 「각국공원」으로 공동조계지 안에 살던 외국인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었다
광복 이후에는 「만국공원」으로 불리다, 1957년 맥아더장군 동상이 세워지면서 「자유공원」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인천세관용지 · 철이십일 표지석 / 1910년 이후
인천세관 영내 구역 경계 표시 용도와 경인철도 구역비의 21번째 비석으로
중구 항동 출입항 옆과 경인철도 종점 철로변에 철도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비석인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이 곳으로 옮겨져 있다
홍예문
일본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08년 준공했다
처음에는 혈문이라고 불렀다
홍예문 커피집
인천내동교회
당초 교회는 1891년 9월 30일 축성되었으나 6 · 25동란시 소실하여
이곳에 옮겨 1955년 8월 28일 정초식을 갖고 1956년 6월 23일 준공되었다
지금 교회 자리는 랜디스가 세운 성누가병원으로, 1902년 6개월간 러시아 영사관으로 사용되었고
1904년 제물포해전 당시 일본적십자병원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1955년에는 중학교 교사로도 이용하였다
고요한 · 랜디스 동상
성공회는 영국의 국교로 인천에서의 선교는 1890년 9월 영국 해군 종군신부였던 코프(고요한)주교와
내과의사인 랜디스(남득시)가 인천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코프 주교는 현 인성여자고등학교 체육관 뒤 송학동 3가 3번지에 있던 교회를 중심으로 포교를 전념하였고
랜디스가 성누가병원을 세워 의료구호사업에 전심하여 교세 확장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회성당인 내동교회 입구에 있다
'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원화성 (0) | 2010.12.26 |
---|---|
창영동 · 금곡동 벽화마을 (0) | 2010.12.25 |
늠내2길(갯골길) (0) | 2010.12.12 |
늠내4길(바람길) (0) | 2010.11.28 |
서울성곽길(숭례문~흥인지문) (0) | 2010.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