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소래포구 지역은 1930년대 염전이 생기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37년 일제가 수탈을 목적으로 수원과 인천 사이에 협궤철도(狹軌鐵道) 수인선을 부설할 때
천일염을 수탈하기 위해 소래역을 만든 이래로 소래포구는 작업인부와 염분를 실어 나르는 배들이 정박하면서 더욱 활성화됐다
*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대신 「물리적 거리두기」로 표현을 바꾸는 게 좋다고 한다
그 뜻에 따라 비교적 가깝고 한적한 소래포구를 다녀왔다
수인선 소래포구역
시점이다
소래역사
스캔한 사진(1993. 1. 6)
소래역으로 열차가 들어온 후 만든 사진이다
스캔한 사진(1993. 9. 1)
소래역 앞에 있는 노점이다
소래역사관
급속한 신도시 개발과 도시화로 사라져 가는 소래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아름다운 옛 모습을 보존하고자 건립된 인천광역시 남동구 최초의 공립박물관이다
2012년 6월 29일 개관했다
소래포구 꽃게상
I ❤ SORAE
에코메트로12단지
꽃길이 좋아 사진을 만들고 다시 소래포구로 돌아간다
소래포구 재래어시장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소래포구 재래어시장
2017년 3월 화재로 재건축 중이다
예전 소래포구 재래어시장
스캔한 사진(1993. 7. 27)
소래철교
예전 협궤열차용 철로를 활용해 소래와 월곶을 잇는 인도교로 만들었다
예전 소래철교
열차도 지나다니고 침목 아래로 바다가 보여 무섭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곤 했다
지금은 철길 뒤론 아파트만 보이지만 예전엔 시흥 군자산 자락이 보였다
스캔한 사진(1993. 9. 1)
예전 소래철교에 협궤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스캔한 사진(1993. 9. 1)
예전 협궤열차가 다니던 때의 전신주다
댕구산 전망대 · 장도포대지
해발 40m 정도 높이의 자그마한 섬인데 처음에는 「장도(獐島)」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장도는 글자 그대로 「노루섬」이라는 뜻이고 노루목 또는 노렴이라고도 했다
《화도진》 관할하에 있던 장도포대로서 쇠나 돌로 만들어진 30cm 정도의 탄환을 쏘는 대완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대완구가 「댕구」로 통용되면서 댕구산이 되었다
소래철교 쉼터
소래포구 · 어시장
수도권 최고의 어시장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5~6월에는 꽃게 · 9~10월엔 대하 그리고 4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회 등이 있다
소래교를 건설하고 있다
이때에는 갯벌과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스캔한 사진(1993. 7. 23)
소래포구 · 어시장
논현푸르지오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소래포구 · 어시장
스캔한 사진(1997. 12. 25)
소래철교
소래포구 건너편에서 봤다
소래철교
소래철교가 월곶을 잇는 다리로 개통된 후 맞는 주말로 다리가 끊어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왔다
남자들이 든 검은 비닐봉투엔 대부분 소주와 어시장에서 안주로 산 회가 들어있다
스캔한 사진(1998. 6. 20)
소래철교 · 소래포구
소래에코메트로아파트
인천역과 오이도역을 잇는 수인선 전철이 지나고 있다
북파공작 시흥본부
왼쪽에 길이 있다
소래산 · 인천서창LH아파트
소래대교를 지나 갯벌 안으로 들어가 봤다
시흥 늠내길을 따라간다
월곶아파트단지
방산대교 옆에서 봤다
소래산
자전거다리 왼쪽으로 조금 보인다
자전거다리
수리산
시흥 아파트단지 옆으로 보인다
수리산
수리산 앞쪽 산이 운흥산이다
관악산
수리산 왼쪽 제일 높은 산이다
시흥 포동 · 방산동 방향
다시 왼쪽 방향이다
시흥 맞은편 소래 · 월곶 방향이다
늠내길 안내판
자전거다리를 지나 갈림길 왼쪽에서 봤다
소래갯벌
8,000년 이상된 갯벌로 펄갯벌에 속하는데 바닷물길 입구인 소래포구 주변이 개발과정에서 매립되면서
수로폭이 좁아져 갯골까지는 하루 2차례 바닷물이 드나들지만 갯벌위에는 바닷물이 매일 들어오지 못하고
바닷물 만조 수위가 9m이상일 때에만 바닷물에 잠기기 때문에 한 달에 두 세번 정도만 바닷물에 잠긴다
*
소래습지생태공원 전망대 · 서창아파트단지 · 소래산이 보인다
소래 아파트단지
신천 부인교로 가는 길이다
두 쌍의 부자 자전거팀인 것 같다
부인교
소래산
서창아파트단지가 옆에 있다
부인교에서 봤다
소래산
한남정맥에 속하는 산으로 낮지만 사랑 받는 산이다
소래교
좌우로 월곶과 소래가 나뉜다
역시 부인교에서 봤다
소래습지생태공원 둘레길
부인교를 지나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이다
소래습지생태공원 빨간풍차
높이 7.5m · 날개 길이 7.2m · 동력 전기모터 · 설치년도 2009년
소래산 · 서창아파트단지
아파트에서 소래습지생태공원을 보면 시원할 듯하다
소금창고
1934년 이곳에 소금염전이 조성된 이후 60여년간 소금을 생산하다가
1996년에 폐업할 때까지 염전에서 생산한 소금을 외부로 반출하기 전에 쌓아두던 소금 저장시설이었다
소래습지생태공원 서문 안내목
서문이 생기기 전 소래습지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스캔한 사진(1997. 5. 5)
부서진 소금창고와 새로 지은 서창아파트단지가 대비된다
장수천 전망대
예전 나무다리가 있던 곳이다
나무다리
스캔한 사진(1995. 9. 3)
소금창고
소래습지생태공원에 습지를 조성하고 그 위에 나무데크 길도 만드는데
이런 소금창고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어떨까?
예전 어린이학습용으로 재활용했던 소금창고다
부서진 염전 타일판
위생과 작업의 편리성 때문에 사용하지만 여기에서 생산된 소금은 미네랄이 적다
염전 타일판
스캔한 사진(1997. 5. 5)
수문
수문 윗쪽에 소나무와 예전에 없던 CC TV 등이 있다
수문
나무문이 소박해 보인다
스캔한 사진(1998. 6. 20)
소금창고
소금창고
소금창고로 건너다니던 나무다리가 보인다
스캔한 사진(1993. 12. 19)
장수천 둑길
예전 소금을 실어나르던 철로가 있었다
협궤철로
예전 장수천 둑길엔 나무가 없었다
스캔한 사진(1993. 12. 19)
염전
소래습지생태공원전시관 옆에 있다
소래습지생태공원전시관 · 전망대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다
소염교
소래습지생태공원 아치가 앞에 있다
소염교
1933년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소금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다리 파손과 재설치를 거쳐 2006년 4월 11일 지금의 다리를 만들었다
소염교
1933년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소금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리다
왼쪽 뾰쪽한 소래산이 훤히 보인다
스캔한 사진(1997. 12. 25)
대영건설산업
아직 예전 모습의 논현동이다
호구포식당
소래역 맞은 편에 있는 일제시대 건물이다
논현교회 연혁에 1947년 1월 15일 구 전매청사에서 창립예배를 보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새로운 교회를 짓기 전 이곳을 예배당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매청사로 지은 건물로 지은 듯하다
*
이 길이 예전 소래포구 주도로였다
소래역 자리
마침점은 소래포구역으로 원점회귀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거리 11.6km, 소요시간 5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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