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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석파정 서울미술관

석파정(石坡亭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서로 사용되었던

조선 말기 근대유적으로 아름다운 경관과 건축을 자랑하며 조상들의 풍류와 예술적 정서를 느낄 수 있다

*

석파문화원이 운영하는 서울미술관은 미술을 중심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문화 예술적 가치들을 발굴하여 연구, 전시, 교육하는 기관이다

창조적인 문화예술의 향유가 가능하도록 이끌고 새로운 예술 담론을 생성하여, 동시대의 문화예술을 선도하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석파정 서울미술관

 

 

 

 

서울미술관 M1 제1관

'안봐도 사는데 지장없는 전시' 준비 중이다

 

 

 

 

M1 3층 낭만다방

이중섭의 엽서가 전시되어 있다

 

 

 

 

이중섭의 엽서

 

 

 

 

이중섭의 엽서

 

 

 

 

이중섭 기념품점

 

 

 

 

이중섭 사진

M1 3층 매표소 앞에 있다

 

 

 

 

이중섭 레플리카실

 

 

 

 

통영 붉은 소 / 이중섭 1954년 레플리카

 

 

 

 

황소 / 이중섭 1953년 경 레플리카

 

 

 

 

피리부는소년 / 에두아르 마네 1886년 레플리카

 

 

 

 

소수운렴암 각자(巢水雲簾菴 刻字) 바위

위에 신라시대 삼층석탑이 있다

*

서울미술관 M1에서 나오면 석파정이다

 

 

 

 

소수운렴암 각자(巢水雲簾菴 刻字)

김흥근이 당시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라 불리웠던 별서를 조영하기 이전에 이 자리에 무었이 있었는지 알여져 있지 않다

다만 별서 초입 사랑채 맞은편에 커다란 암반이 있고

거기에 "소수운렴암 한수옹서증 우인정이시 신축세야(巢水雲簾菴 寒水翁書贈 友人定而時 辛丑歲也)"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김흥근이 별서 조영 시기 이전의 모습에 대해 추정하게 한다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집으로, 한수옹(寒水翁  · 權尙夏 권상하, 1641~1721)이

벗 정이(定而  · 趙正萬 조정만 1656~1739)에게 신축(辛丑 · 1721 경종 1년)에 글을 써주다"라는 뜻의 이 글귀는

매우 운치 있는 시적표현으로 자연을 대하고 노래하는 조선시대 선비의 심성을 느끼게 해준다

조선 숙종 때 문신인 오재(寤齎) 조정만의 별서 조성에 관한 기록은 따로 전해지지 않으므로 더 이상 고증된 자료는 없지만

이 암각을 통해 현재의 위치에 18세기 초 또는 그 이전부터 별서가 조성되어 경영되고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석파정

서울미술관(M2)을 관람하기 전 석파정을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구름길 들머리에서 내려다 봤다

 

 

 

 

석파정 별채

고종이 방문하였을 때 이곳에서 잠을 청했다고 전해진다

사랑채 위쪽에 위치하여 아래로 내려다 보았을 때 주변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당시에는 높은 건물이 없었으므로 더욱 빼어난 장관을 연출했을 것이다

 

 

 

 

별채 협문으로 나온다

 

 

 

 

석파정 별채 협문으로 나오면 구름길의 붉은 벤치가 있다

 

 

 

 

구름길

붉은 벤치 계단을 올라 뒤돌아 보니 별채가 보인다

 

 

 

 

왼쪽부터 별채 · 안채 · 사랑채가 있다

 

 

 

 

벽화가 그려진 담장을 끼고 오르는 계단 길이다

 

 

 

 

이중섭을 지난다

 

 

 

 

운보도 지난다

 

 

 

 

너럭바위

너럭바위는 코끼리 형상을 닮아 코끼리바위라고도 하는데 바위산으로서 인왕산의 특징을 잘 드러내주는 수려한 자연석조물이다

그 비범한 생김새와 영험한 기운으로 인해 소원을 이뤄주는 바위로 알려져 바위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들이 구전되어 온다

아이가 없던 노부부가 이 바위 앞에서 득남을 빌어 소원을 이루었고

아들의 시험 합격을 기원한 한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로 결국 아들이 출세의 길에 들어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소원바위 혹은 행운바위로 불리게 되었다

*

이곳부터는 「물을 품은 길」이다

 

 

 

 

석파정(石坡亭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

흥선대원군 별서에 자리 잡은 정자로, 대원군의 호를 따 석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석파정은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과 중국(당시 청나라)의 건축양식이 적절히 조합되어 있는 정자로

김흥근이 청나라 장인을 직접 불러와 조영했다는 설이 있지만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정자에 남아 있는 청나라풍의 문살 모양과 평석교의 형태 등을 통해 건축 당시 이국 취향의 정자가 주었던 독특한 아름다움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또한 바닥을 나무로 마감하는 한국의 전통 정자와는 달리 화강암으로 바닥을 마감한 점은 건축적으로 매우 특이하다 하겠다

 

 

 

 

석파정(石坡亭)

계곡 윗쪽에서 내려다 본 그림이다

 

 

 

 

석파정

물을 품은 길로 걷다 내려다 봤다

 

 

 

 

물을 품은 길에도 쉴 수 있는 벤치가 여럿 있다

 

 

 

 

버킷리스트 / 2007

사랑이란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말합니다

 

 

 

 

해피투게더 / 1997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건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

 

 

 

 

석파정 안채와 신라시대 삼층석탑이 살짝 보인다

 

 

 

 

신라시대 삼층석탑

이중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올리고 그 정상에 머리장식(상륜 相輪)을 장식한 3층 석탑으로 화강암 재질의 높이 4.5m 석탑이다

4장의 돌로 잔 기단부 중 아래층 기단의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우주 隅柱)과 가운데 기둥(탱주  撐柱) 2개가 새겨져 있고

윗층 기단 윗면의 탑신 받침이 2단으로 구성되어 신라석탑의 특징을 보인다

탑의 중심 부분인 탑신부는 몸돌(탑신석 塔身石)과 지붕돌(옥개석  屋蓋石)이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몸돌의 각 모서리에는 층마다 기둥 모양이 조각되었을 분 다른 장식은 찾아볼 수 없다

각 층의 지붕돌은 크기가 줄어든 정도가 적당하고,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 윗면에 완만한 경사가 흐르다가 양끝에서 부드럽게 살짝 들려 경쾌함을 더한다

현재 3층 지붕돌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노반석 露盤石)만이 남아 있는 모습이지만

전체적인 형태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근처의 개인 소유 경작지에서 수습해 현재의 모습으로 조립하였고, 2012년 6월 경 현 위치로 이전 설치되었다

 

 

 

 

삼층석탑에서 내려서면 소수운렴암 각자 앞 물길이다

 

 

 

 

삼계동(三溪洞) 바위

 

 

 

 

삼계동 각자(三溪洞 刻字)

흥선대원군 별서의 사랑채 서측 후면 암반에 새겨져 남아 있는 삼계동(三溪洞)이라는 각자는

김흥근이 별서를 지어 이를 경영할 당시 이곳이 삼계동 정사(三溪洞精舍) · 삼계정 · 삼계동 산정 등으로 불렸을 것을 추정하게 한다

이는 소치(小癡) 허련(許鍊)이 집필한 「소치실록(小癡實錄)」과 양의영의 유북한기 등 일부 문헌들에서도 드러나는데

부근에 세 갈래의 내가 합쳐져 흘러 삼계동이라 불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흥선대원군이 이곳을 소유한 후 별서의 앞산이 모두 바위이므로 자신의 호를 석파(石坡)로 바꾸고 정자의 이름도 석파정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사랑채 뒷꼍

위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별채다

 

 

 

 

천세송(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제60호)

사랑채 측면으로 너른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노송이다

천세송은 천년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그 역사를 석파정과 함께 지내왔다

이 노송은 약 650년의 세월을 지내온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천세송 · 사랑채 · 안채

석파정은 본디 8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현재는 안채 · 사랑채 · 별채 그리고 석파정만이 남아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바깥주인이 주로 머물며 외부 손님들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별서의 중심부가 되었던 공간이라 볼 수 있다

 

 

 

 

사랑채(현대루 · 玄對樓)

흥선대원군과 김흥근은 예술적 기질이 뛰어났다

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왕족과 권문세가라는 좋은 집안 배경과 예술적 자질 · 정치적 보수성을 들 수 있다

대원군의 그림은 추사 김정희도 칭송할 만큼 뛰어났고, 김흥근은 수장고까지 둘 정도로 골동서화를 좋아했다

석파정 사랑채인 이곳은 김흥근의 서화수장고 역할을 했던 현대루(玄對樓)이며

그가 평소에 지인들과 더불어 소장하고 있던 고서화를 보는 공간이기도 하다

*

정수동은 조선시대의 시인으로 본명은 정지윤이다

그는 '김삿갓'으로 알려진 김병연과 함께 조선 최고의 기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만년에 산하를 자유로히 주유하다 철종 9년(1858) 2월, 만취하여 이곳 사랑채에 와서 자다가 지천명의 나이인 쉰한 살에 갑자기 죽었다고 전해진

 

 

 

 

안채

원래 40간이었으나 지금은 20간만 남아 있는데 화강석 기단 위에 잣나무로 지어졌다

방은 큰방 · 건넌방 · 대청방 등으로 나뉘었는데 대원군은 큰방에 기거하며 지냈고, 건넌방은 손님접대용으로

대청방은 그가 즐겨 그렸던 난초를 그릴 때만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별채로 통하는 문

 

 

 

 

별채로 통하는 문

 

 

 

 

서울미술관 M2(신관) 앞 정원

350여 년된 산수유 고목이 멋지다

*

이제 미술관으로 들어간다

 

 

 

 

거인(去人) Walking Man

서울미술관 신관 M2의 개관 기념 전시 거인(去人)은 서울미술관 설립자인 안병관 회장이 직접 기획하였으며

서울미술관을 대표하는 소장품들 중 서울미술관 신관의 설립이념과 비전을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만을 엄선하여 소개한다

전시 제목인 거인(去人)은 묵묵히 꿈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의 뜻으로

전통과 현재 · 미래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서울미술관을 착실하고 굳건한 걸음으로 지켜내고자 하는 안병광 회장의 의지가 오롯이 담겨있다

이번 전시는 끝없는 고뇌와 자기 수양의 과정을 거쳐 한국 특유의 서정적 영감이 내재된 미술 양식을 확립한

김환기 · 서세옥 · 정상화 등 한국 근현대 회화 대가들의 회화 작품과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는 도예 명장 권영달의 달항아리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김환기의 최고 걸작 〈십만 개의 점 04 Ⅳ 73 #316〉이 개관 이래 처음으로 공개된다

*

서울미술관 M2(신관) 지하 1층이다

 

 

 

 

다색조선 / 폴 자쿨레

프랑스 태생 폴 자쿨레는 20세기 초 한국 · 일본 · 중국 등 아시아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한 판화가이다

그는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 정착하게 되었고 어린 나이에서부터 일본의 학교가 아닌 개인교습으로 프랑스 문화와 서양화 · 판화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교육의 영향은 1930년대 이후 발표된 폴 자쿨레의 작품에 반영된다

폴 자쿨레는 아시아인들의 문화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이를 주제 삼아 유럽적 감수성의 조화와 균형 속에서

동양의 전통기법의 방식으로 다색판화를 제작하였다

특히 폴 자쿨레는 우리나라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에서 지내는 어머니를 뵙기 위해 한국에 자주 방문하였으며 당시 한국의 모습을 다색판화에 옮겼다

그는 한국인 나영환을 작업 조수로 맞았으며, 나성순 또한 양녀로 삼을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

서울미술관 M2(신관) 1층

 

 

 

 

겨울 준비 / 1951

어느 두 여인이 이불의 겉감에 바느질을 하는 모습을 담았다

여인들의 의복을 보아 다가올 추위에 대비하여 월동을 준비하는 듯하다

열려진 창을 통해 비가 내리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하단에 'Pouh-zan'이라고 표기한 것을 보아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빨개진 손끝과 다소 지친 표정으로 보아 긴 시간의 바느질의 고됨이 느껴진다

화면 오른쪽 하단에 쪽가위가 있지만 이로 실을 끊는 모습에서 숙련된 여인들의 바느질 솜씨를 느껴볼 수 있는데

자쿨레에게는 재미난 장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관 (M2) 2층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는 도심 속의 왕가 정원들을 소개하며 석파정의 지나온 역사를 살펴본다

경복궁의 경회루 · 창덕궁의 부용정 등 역사와 유구한 세월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공간을 함께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화폭으로 담아낸 석파정의 모습을 이한철의 〈석파정 병풍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왕이 사랑한 정원 · 석파정

 

 

 

 

서울미술관 M2(신관) 2층

석파정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석파정 / 이한철 · 조선시대 · 140.97×251.46cm · 8첩 병풍 · LACMA소장

석파정은 예로부터 아름다운 경치와 주변 경관으로 많은 화가들의 화폭에 담겼다

특히 조선 후기 왕궁 소속 화가로 활동했던 이한철의〈석파정 병풍도〉에서는 더욱더 장엄했던 옛 석파정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추사 김정희 아래에서 이한철과 함께 그림을 배우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흥선대원군은 가장 아끼던 석파정을 그려줄 것을 청했다 한다

지정학적 정확도와 빼어난 기교가 돋보이는 이한철의〈석파정〉은 연이은 산맥의 장관에 둘러싸인 석파정의 모습을 담아낸 병풍화이다

석파정이란 이름은 흥선대원군이 소유권을 가진 이후에 지어진 이름인데  자신의 호로 사용하기도 했다

 

 

 

 

M2 2층에서 본 석파정

서울 종로구 부암동 201 산기슭 1만3천여 평의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거동시켜 당시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의 저택을 강제로 빼앗은 것이다

대원군의 부인 민씨가 몸이 불편하게되자 세검정에 있는 김씨 집을 요양처로 빌어 있게한 후 고종을 이곳에 거동시켜 하룻밤을 묵게했다는 것이다

당시 왕궁의 법도는 임금이 하룻밤이라도 묵게되면 그 집은 왕실의 재산이 되게 되어 있었다

그후 대원군은 왕실로부터 이 집을 하사받아 소유했다

 

 

 

 

소수운렴암 각자(巢水雲簾菴 刻字) 바위

위에 신라시대 삼층석탑이 있다

*

미술관에서 나와 만들었다

 

 

 

 

삼계동(三溪洞)

석파정 서울미술관 후문으로 삼계동은 부근에 세 갈래의 내가 합쳐져 흘러 삼계동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석파정 신관 입장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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