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의 한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서울미술관은 신관(M2)를 여는 첫번째 기획 전시로서 조선 후기의 모습을 화폭에 옮긴 서양화가 폴 자쿨레를 조명한다
프랑스 태생의 폴 자쿨레는 아시아인들의 문화에 애정을 갖고 이를 주제 삼아 동양의 전통 기법인 다색판화를 제작한 작가이다
서울미술관은 폴 자쿨레의 작품 중 한국을 주제로 한 대표작품 20여 점을 선정하여
아시아를 그린 서양화가라는 폴 자쿨레의 작업 세계를 한국으로 좁혀 깊이 있게 살펴본다
다색조선
폴 자쿨레는 자신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을 솔직하면서도 날카롭게 포착하였다
짧은 저고리 밑으로 가슴을 드러낸 아낙, 장죽을 물고 있는 노인, 시뻘건 고추를 말리는 남정네, 족두리와 버선 등은
서양의 이방인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이국적 정경이었을 것이다
그는 강렬한 원색의 대비와 장식성을 배제하고 부드러운 파스텔 조의 색채와 선묘, 단순한 배경처리와 여백을 통해 정적인 화풍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폴 자쿨레는 질박하고 담백한 「한국의 미」를 담는 실험적 면모를 보여준다
폴 자쿨레(Paul Jacoulet 1896~1960)
프랑스 태생 폴 자쿨레는 20세기 초 한국 · 일본 · 중국 등 아시아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한 판화가이다
그는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 정착하게 되었고 어린 나이부터 일본의 학교가 아닌 개인교습으로 프랑스 문화와 서양화 · 판화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교육의 영향은 1930년대 이후 발표된 폴 자쿨레의 작품에 반영된다
폴 자쿨레는 아시아인들의 문화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이를 주제 삼아 유럽적 감수성의 조화와 균형 속에서
동양의 전통기법의 방식으로 다색판화를 제작하였다
특히 폴 자쿨레는 우리나라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에서 지내는 어머니를 뵙기 위해 한국에 자주 방문하였으며 당시 한국의 모습을 다색판화에 옮겼다
그는 한국인 나영환을 작업 조수로 맞았으며, 나성순 또한 양녀로 삼을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폴 자쿨레 연보
서울미술관 M2(신관) 1층 전시실
겨울 준비 / 1951
어느 두 여인이 이불의 겉감에 바느질을 하는 모습을 담았다
여인들의 의복을 보아 다가올 추위에 대비하여 월동을 준비하는 듯하다
열려진 창을 통해 비가 내리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하단에 'Pouh-zan'이라고 표기한 것을 보아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빨개진 손끝과 다소 지친 표정으로 보아 긴 시간의 바느질의 고됨이 느껴진다
화면 오른쪽 하단에 쪽가위가 있지만 이로 실을 끊는 모습에서 숙련된 여인들의 바느질 솜씨를 느껴볼 수 있는데
자쿨레에게는 재미난 장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방랑하는 승려 / 1948 · 개인 소장
중년의 남성이 기다란 지팡이를 든채 방랑하고 있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지팡이와 바람에 휘날리는 두루마기의 표현이 방랑자의 심란한 마음을 묘사하는 듯하다
방랑자라기에는 너무나 깨끗한 갓의 상태와 남성의 기괴한 표정, 찢어지고 옷감을 덧댄 얇은 누더기 두루마기와 대비되는
깨끗한 노란 한복과 흰 내의복으로 보아 그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거나 익살스러운 장면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 남성의 자세 · 복장 · 큰 갓 등을 미루어 자쿨레가 소장한 엽서 〈고승각행〉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추측한다
자쿨레는 엽서의 모습과는 다르게 작품 속 남성의 손에 담뱃대와 부채 대신 탁발을 위한 그릇을 그려넣었다
자쿨레는〈고승각행〉엽서 뒷면에 priest of Korea(한국의 승려)라고 적었는데 이는 그가 엽서의 등장인물인 양반을 승려로 잘못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거지들의 걸식 / 1938
세 명의 거지들이 밥을 빌어먹는 장면을 묘사했다
이는 자쿨레가 즐겨 사용하는 '3인구도'로, 세 명의 인물이 이야기를 하거나 동일한 행위를 하는 모습이다
여기저기 헝겊이 덧대진 누더기와 찢어진 갓을 걸치고 깡통과 깨진 그릇에 밥을 먹는 거지들의 모습
서로 주고받는 시선과 수다를 떠는 입모양 등 다른 작품에 비해 등장인물들과 현장의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다
작품의 제작시기였던 일제강점기의 우울한 한국의 모습과는 달리 구걸한 밥을 먹으며 나발대는 능청맞은 거지의 모습에서 삶의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설야 / 1934
중년의 한 남자가 눈내리는 밤에 어디론가 향하는 장면이다
화면의 배경은 흑백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검게 표현된 칠흑 같은 밤의 모습과 흰눈이 쌓인 마을의 전경은
마치 무대 같이 연출되어 감상자는 자연스럽게 인물에 집중하게 된다
머리에 쓰고 있는 고깔 모양의 삿갓은 '우장'으로, 조선시대 비나 눈이 내릴 때 갓 위에 덮어쓰던 용도로 쓰였다
매서운 눈바람에 우장이 날아가지 않도록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에 든 초롱으로 길을 밝히며 걷는 남자의 모습과
제대로 뜨지 못한 두 눈, 발갛게 변한 손가락 끝, 켜켜이 입은 한복 등의 표현으로 한겨울 추위를 표현했다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길을 걷는 남자의 표정은 상념에 빠진 우울한 표정이다
모질게 소복이 쌓여가는 겨울밤의 흰 눈송이들은 당시 어두웠던 한국의 시대적 시류를 반영한 듯하다
두 형제 / 1937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본 작품은 일본인 소장자가 이번 전시를 위해 서울미술관에 기증하였다
이즈에 사는 두 형제를 그린 작품으로, 소년인 형이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있다
곤히 잠든 동생의 모습과 형의 차분한 표정이 잔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면을 메우고 있는 푸른 회색조의 배경과 형의 갈색 도포 동생의 짙은 녹색 모자는 새벽 밤의 고요함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우키요에(うきよえ · 浮世絵)
통상적으로 다색 목판의 기법으로 제작된 에도(江戶)시대 말기(14~19세기)에 서민계층을 중심으로 발달한 일본 고유의 회화를 말한다
전쟁의 시대 이후 안정된 사회로 접어든 에도시대의 신흥 세력이었던 상인 계층의 모습을
'우키요(うきよ)' 즉 '덧없는 속세'이라는 뜻에 빗대어 향락적인 분위기로 기록한 판화인데 다양한 소재를 담아낸다
풍경과 미인 · 명소 · 만물 · 무사 · 춘화 · 역사화 등 당대의 풍속이나 유행이 주된 소재이다
판화의 특성상 대량생산이 가능하기에 신문 · 달력 등의 삽화로 활용되다가
이야기책의 삽화로 사용되면서 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되어 독립적으로 제작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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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는 19세기 중엽에 유럽으로 수출된 일본도자기의 포장지로 유입되어
반 고흐와 클로드 모네 등 프랑스 인상주의 회파의 대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르네상스 회화 이후 원근법과 명암감에 입각한 고전회화에 익숙했던 그들에게 우키요에의 강렬한 원색적 색감과
대담한 구도 · 정교한 패턴 등의 풍부한 표현력은 새로운 소재를 탐구하고 참신한 색채 구성을 발달시키며 서구 미술에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였다
폴 자쿨레의 판화 제작시 모티브가 된 엽서들과 채색 도구들이다
폴 자쿨레의 사진 · 자화상과 소개글이 실려 있는 책이다
일본 가루이자와 생활 당시의 모습과 친필 사인 / 1959
판화 제작시 모티브가 된 폴 자쿨레의 소장엽서들의 레플리카
'방랑하는 승려'의 모티브가 되었던 〈고승각행〉도 보인다
족두리를 쓴 여인
"타인이 기뻐할 만한 것을 하라" / 폴 자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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