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淸凉山 172m)은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위치한 산으로
고려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이 장관이 수려하여 청량산이라 이름지었다고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송도 신도시와 인천대교를 전망하기 좋은 곳이다
자유수호의 탑
청량산 앞에 있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정면에 있다
탑 왼쪽 푸른 지붕에 배처럼 보이는 것이 청량산 전망대이다
해벽을 오르는 미 해병대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외부에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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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메로 로페즈 중위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크로마이트'가 개시되고 적색해안으로 미 해병 5연대가 상륙정을 타고 돌격을 개시했다
높은 방벽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했으나 포화로 인해
그 누구도 먼저 사다리에 오르려 하지 않아 난항을 격고 있을 즈음 한 용기 있는 청년이 사다리에 올랐다
그 청년의 이름은 제1해병사단(증강) 제5연대 제1대대 A중대 소대장 '발도메로 로페즈'
그가 담당한 상륙구역은 적의 사격 벙커로부터 가해온 사격 때문에 기세가 껶인 상태였다
적의 자동화기 사격에 몸을 노출시킨 채 수류탄을 투척하려던 순간
오른쪽 어께와 가슴에 피격당한 로페즈 중위는 뒤로 쓰러지며 그 치명적인 수류탄을 떨어뜨렸다
곧 몸의 방향을 돌린 그는 수류탄을 다시 집어 적에게 투척하기 위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부상의 고통과 과다 출혈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어서 수류탄을 투척할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을 강하게 쥘 수 없었다
그러자 그는 소대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기 보다는 자신을 희생하기로 선택했다
부상당한 팔을 크게 휘둘러 수류탄을 배 밑에 깔고 폭발의 충격을 모두 자신의 몸으로 흡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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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있는 죽움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 스크립스 하워드 종군기자 '제리 소프'의 글이다
인천시립박물관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옆에 있다
우현 고유섭(1904~ 1944) 선생 상
미술사학자이자 1933년 경성박물관장을 지냈다
박물관 마당에 있다
잠령공양탑(蠶靈供養塔)
인간에 의해 생을 다하지 못한 누에의 영혼을 위로하며 또 누에농사가 잘되길 기원하면서 세운 탑이다
누에를 키워 실을 뽑는 잠업은 쌀 · 면화 등과 함께 일제가 우리 농촌에서 수탈해간 대표적 농산물이였다
1925년부터 1938년까지 이른바 "누에고치 100만 섬 증수계획"을 수립하여 군비확충을 위한 대대적인 잠업 증산을 독려하였다
1926년 서구 공촌동 길가에 세워졌던 이 석비는 농촌 수탈의 일면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일본 하나부사 공사 일행 조난비
1882년 6월 임오군란 당시 일본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타다를 비롯한 공관원 일행이 월미도를 통해 조선을 탈출하기 전
인천도호부 관아(현 문학초등학교)에 머물렀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34년 일제가 세운 석비이다
석비는 현재 좌우 측면이 쪼개진채 중앙 부분 25cm만 남아 있는데 비문에는 하나부사 공사를 수행했던 일본 공관원 6명의 성명과
이들을 환대해준 죄로 대원군의 소환을 받게되자 자결한 인천부사 정지용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다
하나부사는 1871년 조선주재 대리공사로 부임하여 조선의 강제 개항을 지휘하였으며
조선이 개항하던 1880년부터 1882년까지 초대 공사를 지낸 인물이다
이러한 까닭에 일제 침략에 상징물과도 같던 이 석비는 해방 이후 쪼개어져 땅에 묻힌 것으로 보인다
2002년 3월 문학초등학교 인근 공사장에서 발견되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고려시대 삼층석탑(추정)
이 석탑은 원래 송학장(중구 송학동 구 시장관사)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66년 인천 공보관으로 옮겼다가, 1990년 박물관 이전과 함께 다시 현재의 위치로 이관한 것이다
문인석(文人石)
원대 · 명대 · 송대 철종
고인돌
남구 학익동에 위치한 인천구치소(당시 소년형무소) 서쪽 구릉 위에 있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주변 문학산에는 8기의 고인돌이 있었으며
그 중 3기가 일제강점기에 수습되었는데 이 고인돌은 그 중 한 기다
청량산 들머리
인천상륙작전기념관과 인천박물관을 거쳐 청량산으로 오른다
라마다송도호텔
송도 신도시가 너머에 있다
송도 신도시
인천시립박물관
오른쪽 하늘색 지붕 건물이다
인천대교가 멀리 보인다
인천축현초등학교
서해아파트 · 쌍용아파트단지가 너머에 있다
삼각점 · 방위각
인천광역시는 현대적 지적측량을 최초로 실시한 도시라고 써있다
용학유정(龍鶴遊亭)
용과 학이 노니는 정자라는 뜻이다
청량산 정상
문학산(217m)
인천도호부 남쪽에 있다하여 남산 · 산의 형세가 학의 모습과 같다하여 학산 · 산꼭대기에 봉수대가 있어 봉화둑산
산 위에 산성이 있어 성산(城山) · 봉화의 모양이 배꼽 같이 보여 배꼽산으로 불렀다
문학산으로 가기 위해 청량산을 냐려간다
계단을 오른다
포망골약수터
백제우물터 빗돌
청량산에서 서해아파트로 내려와 청학사거리를 거쳐 청학사 가는 길 주택 단지에 있다
문학터널
청학사와 삼호현 오르는 길에서 봤다
멀리 터널 왼쪽 산이 봉재산 · 오른쪽 산이 청량산이다
삼호현(三呼峴)
문학동에서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문학산과 연경산 사이에 있는 고갯길로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은 부평의 별리현(비류고개)을 거쳐 이 고개를 넘어 능허대로 갔다
배웅하러 왔던 가족들은 별리현에서 이별을 했고
사신들도 삼호현에 오르면 그 때까지 별리현에 서 있던 가족들에게
큰 소리로 이별인사를 세번하고 이 고개를 넘어 갔다 하여 삼호현이라 부른다
삼호현에서 문학산으로 가는 나무 계단이다
돌먹는 나무
SBS 프로 "있다 없다"에 방영돤 나무다
나무 나이 30~40년된 아까시나무로 높이 12m다
문학산성
총 둘레 577m · 현존하는 부분은 339m이다
군 시설물이 있는 산성 위가 문학산 정상이며 미추홀왕국 발상지다
문학산 정상
청량산 정상
송도국제도시가 너머에 있다
오봉산
소래포구 방향이다
계양산
중앙에 제일 높은 산이다
그 옆 중구봉 · 천마산 · 원적산 · 동암산 그리고 만월산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 마루금이 보인다
문학경기장
만월산이 너머로 보인다
문학경기장 옆 베겟골로 하산하였다
천천히 걸어 4시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