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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인천광역시 중구는 「제물포」가 위치한 곳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이 이름은 지금의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군사시설 제물진에서 유래하였다

1883년 인천 개항 이후 중구 일대에는 일본 · 청국인들의 거류지가 만들어졌다

또, 지금의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을 중심으로 공원이 조성되고 주변에는 외국인 공동거류지인 각국조계가 생겨났다

근대문물이 들어오면서 서양식 건축물과 시설들이 마련되자 개항장 일대는 상당히 이국적인 도시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1910년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중구 일대는 점차 일본인 위주의 도시로 변화하였고

1945년 광복 전까지 인천 내의 조선인들은 주체가 아닌 주변인으로 생활하였다

광복 후인 1949년 8월 인천은 경기도 인천시가 되었고, 1968년 1월 행정적으로 구제(區制)가 실시되면서 동구 · 남구 · 북구와 함께 중구가 탄생하였다

 

 

동인천역

시점이다

 

 

 

 

인천아트플랫폼

인천아트플랫폼이 위치한 인천 중구 해안동 일대는 1883년 개항 이후 건립된 건축문화재 및 1930~4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잘 보존된 구역으로

당시의 근대건축기술 및 역사적 기록을 지니고 있어 건축조형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곳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예전 일본우선주식회사(등록문화재 제248호)를 비롯한 근대 개항기 건물과

1930~40년대에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창작스튜디오 · 공방 · 자료관 · 전시장 · 공연장 등 총 13개 동의 규모로 조성되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이러한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최대한 살려 문화적으로 재활용하자는 시민들의 뜻과 인천시의 의지가 합쳐져 탄생하였다

인천아트플랫폼을 중심으로 이곳 개항장 일대는 거대한 스트리트 뮤지엄으로 확장되어나갈 예정이며

그것은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되 현재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일 것이다

 

 

 

 

개항호 · 짬뽕맨

 

 

 

 

짬뽕맨

배트맨 머리 · 상체는 헐크 · 허리와 골반은 원더우먼 · 플래시 다리 · 팔은 스파이더맨 그리고 수퍼맨 망토를 둘렀다

 

 

 

 

2016 드라마 도깨비 포스터 · 도깨비 여행 엽서 이벤트

"당신의 도깨비에게 엽서를 전해 드립니다"

내 도깨비는 누구고 어디 있을까?

 

 

 

 

부엉이 상

스튜디오 건물 벽에 있다

 

 

 

 

인천자유공원 석정루

그 아래 1883년 설정된 일본조계와 1884년 마련된 청국조계와의 경계 계단이 있다

계단 왼쪽 차이나타운 · 오른쪽 일본조계지다

 

 

 

 

서성 왕희지(書聖 王羲之 307~365) 상

한자의 서체는 전서 · 예서 · 초서 · 해서 · 행서 순으로 완성되었는데 이중 행서는 초서를 읽기 쉽고 해서를 바르게 쓸 수 있도록 절충하여 만든 서체다

이를 집대성한 인물이 서성으로 존경받는 동진시대의 왕희지다

그는 행서를 완성하고, 해서와 초서를 실용서체에서 예술서체로 승화시켰으며 또한 동진 서법을 완성했다

 

 

 

 

천사의 날개

서성 왕희지 상 옆 무대에 있다

 

 

 

 

인화문(仁華門)

패루(牌樓)는 중국의 기념비적인 문형의 건축으로 패방(牌坊)이라고도 한다

충신이나 절부 · 효자 등의 현창시설로 시작되어 기념비 건축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주간(柱間)의 수에 따라 한간패루 · 삼간패루 · 오간패루 등으로 분류된다

 

 

 

 

마차

진시황 2호마차와 마차만 다른 것 같다

 

 

 

 

한중문화관

한 · 중 간 문화 · 예술 교류 및 지역 예술 활동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개관했다

 

 

 

 

인천화교역사관

한중문화관을 먼저 보고 2층 연결다리로 인천화교역사관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내화예술품

내화예술은 청나라 제11대 황제인 광서(재위 1874~1908) 16년에 중국 산동성 치박시 박산구에서 전해지기 시작한 문화로 신화적 예술로 칭찬을 받고 있다

내화예술이 표현된 내화유리병은 특별히 제작한 가느다란 변형 붓으로 입구가 아주 작은 병안에 산수화초 · 인물 · 새와 짐승 등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한중문화관 3층 우호도시홍보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 · 중 역사 연대표

한중문화관 2층 한중문화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국화교역사관

인천 화교 정착 역사를 소개하고 그들이 실제 사용했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니하오! 나의 살던 고향은

화교가 한국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82년으로 임오군란 때 한국에 파견된 군대를 따라 40여 명의 상인이 입국하였는데 이들이 한국화교의 시초이다

화교는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되는데 화인(華人)과 화교(華僑) 그리고 화예(華裔)로 나뉜다

화인은 현지의 국적을 취득하여 중국 국적을 지니지 않은 집단을 지칭하고, 화교는 중국의 국적을 그대로 유지한 집단을 말한다

화예는 자신을 현지교민사회의 일원으로 인식하지는 않지만, 단지 문화적으로 자신들의 부계 조상이 중국으로부터 건너왔다고 생각하는 집단을 말한다

 

 

 

 

인천화교역사관 정문 앞에 설치된 조형물이다

 

 

 

 

해안성당

1950년대 후반 인천 선린동에 거주하는 화교를 대상으로 선교활동이 활발했으며

1960년 이들을 대상으로하는 북성동성당이 마련되었으나, 선린동에 모여사는 화교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선린동성당이라 불렀다

초대 주임 신부로 맥코막(요셉) 신부가 부임하였고 지금의 성당은 1966년 6월 9일 완공되었다

 

 

 

 

성당 성전

부활절로 제대 꽃 장식 중이다

 

 

 

 

짜장면박물관 공화춘(共和春 등록문화제 제246호)

1908년 무렵 중국 산동지방의 장인이 참여하여 지은 중정형 중국식건물로 외부는 벽돌로 마감하고 내부는 다양한 문양과 붉은색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처음에는 무역상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으로 이용되었으나 중화요리가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부터는

음식점 공간이 확대되어 대형 연회장을 갖춘 유명한 중국음식점으로 1980년대까지 그 명성을 날렸다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건물을 매입한 후 건물을 보수하고 내부에 전시공간을 마련하여 2012년부터 「짜장면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창반점

120여 년쯤 된 건물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온 중국음식점이다

 

 

 

 

풍미(豊美)

짜장면의 원조는 공화춘이지만 문을 닫었다 근래 다시 열었고, 영업을 계속한 집으로 가장 오래된 중국집이다

 

 

 

 

풍미 삼선짜장면

점심이다

 

 

 

 

차이나타운

날이 따뜻해선지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인천화교중산소학교

1902년 개교하였는데 이것이 한국화교 학교 교육의 효시다

화교가 이땅에 발을 들여 놓은 때는 1882년(고종 19)으로 추정된다

임오군란 직후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청나라 군인 3천 명과 상인 40여 명이 입국하였는데, 이들이 한국 화교의 시초가 되었다

 

 

 

 

인천 화교소학교 ·  인천화교 중산중학교

1884년 인천 북성동에 청국조계지가 설치되면서 1천여 명의 화교가 거주하게 되자, 중국 영사부 주도로 마침내 학교가 설립되었다

 

 

 

 

화상상회 회의청

1884년 이곳에는 중국 청(淸) 영사관이 설치되고, 이후 1885~1887년 관아 동쪽 사합원 형태의 전보국이 설치되었다

1905년 인천 화교 신상(紳商)들은 낙선호시(樂善好施)의 정신을 내세워, 이곳 전보국을 화상상회로 용도변경한다

 

 

 

 

예전 화상상회 사진

화상상회의 정신 「친인선인 국지보야(親仁善隣 國之寶也)」

「사람과 사람이 가까이 하고 이웃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바로 국가의 보배다」를 이어온

지금의 인천화교협회의 복도에는 20세기 격동의 시대 대한민국과 함께 겪어온 그 역사를 기리고 있다

 

 

 

 

일본조계지

1883년 설정된 일본조계와 1884년 마련된 청국조계의 경계계단 오른쪽이다

 

 

 

 

대불호텔전시관 · 중구 생활사전시관(1960~1970년대)

인천 일본인 조계지에 위치했던 한국 최초의 서양식호텔 대불호텔이 철거 40년 만에 호텔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그 옆에는 1960~1970년대 인천의 생활사를 알려주는 전시관도 함께 개관했다

 

 

 

 

대불호텔전시관 내부

 

 

 

 

중구 생활사전시관(1960~1970년대) 내부

 

 

 

 

중구 생활사전시관 · 대불호텔박물관

 

 

 

 

최초의 우편배달부

우리나라 우편제도는 1884년 11월 18일, 서울과 인천 간에 우편물이 교환되기 시작하면서 그 막이 올랐다

본 조형물은 근대 사진자료에 남아있는 우체부와 우체통(1912년식)의 모습에 기초해 제작하였다

 

 

 

 

드라마 「도깨비」를 촬영한 카페다

 

 

 

 

예전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

일본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18은행은 인천과의 무역량이 증대하면서 설치된 것으로 1890년 해외에 세운 최초의 지점이다

지금은 인천 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옛 사진 포토존

일본58은행 옆에 있다

 

 

 

 

인천영상위원회

 

 

 

 

혜명박물관

단청박물관이다

 

 

 

 

할매집 식당

 

 

 

 

신포동 공영주차장

 

 

 

 

인천 중동우체국(인천 유형문화재 제8호)

1924년 우편업무를 담당하기 위해서 지었으며 당시 명칭은 「인천우편국」이었으나 해방 후 개칭되었다

 

 

 

 

인천문화재단

앞에 있는 근대문화거리입구 버스정류장이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8.6km, 소요시간 7시간 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