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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시립박물관 서화실 · 기증실

인천시립박물관 3층 서화실 · 기증실

서화실에는 산수화 · 화조도 · 사군자 등 다양한 장르의 조선시대 회화와 고문서를 전시하였다

회화 중에는 특히 강세황 · 김홍도 · 이하응 · 정수영의 작품들을 눈여겨 볼만하다

한편에는 대각국사 의천의 탑비 · 북관대첩비의 탁본 등도 전시하였다

기증실에는 우리박물관이 개관한 1946년 이래 기증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의 발자취

2층 공예실을 나와 3층 서화실로 올라가는 복도 벽면에 있다

 

 

 

 

초대 박물관장 이경성

1945년 10월 인천시립박물관 초대 관장으로 부임하여 1954년 3월 사임할 때까지 8년 5개월간 박물관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개관, 맞이한 시련

1946년 4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개관 당시의 전시유물은 364점이었는데 그 중에는 국립박물관과 국립민족박물관에서 대여한 물품 94점이 포함되어 있었고

나머지는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미처 회수하지 못하고 남겨 놓은 미술품들이었다

개관 이후 활발한 문화사업을 추진하였던 인천시립박물관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휴관에 들어갔으며

같은 해 9월에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의 함포사격으로 건물이 완전 소실되었다

 

 

 

 

복관, 그리고 찾아온 정체

인천상륙작전의 포화로 잃어버린 인천시립박물관은 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3년 4월 1일 개관 7주년을 맞이하여 인천 송학동 제물포구락부(지금 중구문화원) 건물에서 복관하였다

그러나 박물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줄어들게 되면서 정체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후 1988년 올림픽을 맞이하여 박물관 신축이 추진되어 1989년 12월 20일 청량산 기슭에 건물이 완공되면서 44년간의 송학동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전개관, 그리고 새로운 시작

1989년 12월 31일 송학동 시대를 마감한 인천시립박물관은 1990년 5월 4일 이전개관식을 거행하였다

박물관 규모는 대지면적 2,950평 · 연면적 814평 · 전시면적 242평으로 늘어났으며 박물관 직원도 3명에서 20명으로 대폭 확충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인천국제공항 개항 · 송도신도시의 개발 등 국제도시 인천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서

박물관 기능의 변화와 그에 따른 박물관 시설의 확충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2004년 3월부터 2년여에 걸친 시설 개보수 공사를 실시하였고

단순한 전시공간을 탈피하여 다양한 문화체험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3층 서화실 입구에서 봤다

 

 

 

 

서화실 입구

 

 

 

 

조선시대 회화

조선 후기 사회는 영조(1725~1776)와 정조(1777~1800)의 치세를 바탕으로 문학 · 회화 · 음악 등 문화전반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다

이 시대의 회화는 남종문인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였고

이를 토대로 산수를 독특하게 표현한 진경산수와 한국인의 생활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린 풍속화 · 서양화법이 전래되고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남종문인화

남종화는 명나라 말기 선종의 남북분파에 착안하여 중국산수화를 출신 성분과 화풍에 따라 남북으로 구분한데서 비롯되었다

직업화가가 아니라 학문과 교양을 갖춘 문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남종문인화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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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석인물화

도교와 불교 관련 인물을 그린 그림을 도석화라고 한다

따라서 불교나 도교에서 예배대상으로 삼는 여러 존상의 인물 또는 종교의 교리 · 설화를 그림으로 나타내거나

도사나 조사들의 행적을 묘사한 그림이 여기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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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전통회화의 영향을 토대로 일반 서민들 사이에 유행하던 소박한 예술을 의미한다

우리말로 하면 세화(歲畵)에 그 바탕을 둔 속화(俗畵)라고 할 수 있다

 

 

 

 

나한도 / 조선 · 박동보

17세기 죽리 박동보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나한도이다

나한(羅漢)은 아라한을 줄여서 부르는 이름으로 석가의 불법을 듣고 깨닫음을 얻어 최고위에 오른 성자이며

불멸 후에도 각지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제도하도록 위임 받은 분들이다

 

 

 

 

산수도(이도영) / 대한제국 · 산수도(정수영) / 조선 · 산수도(이용우)/ 대한제국

 

 

 

 

산수도강세황) / 18세기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서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높은 감식안을 지닌 서화평론가로도 명성이 높았다

그는 1744년부터 1773년까지 영조의 배려로 영릉 참봉에 임명될 때까지

안산을 중심으로 처남 유경종 · 문인화가 심사정 · 허필 등과 폭넓은 교유를 하고 시서화를 창작하며 최고의 예술적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그는 중국의 여러 화보를 임모하며 자신의 개성적 남종화풍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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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순봉도(김홍도) ·  방동원산수도(이희수)가 전시되어 있다

 

 

 

 

옥순봉도 / 18세기말~19세기초

조선 18세기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수묵담채화이다

높은 암벽을 중심으로 하였는데 붓을 아래로 죽죽 내려그어 쭉쭉 뻗은 바위를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커다란 바위산 뒤로 멀리 산들이 보인다. 근경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다

 

 

 

 

방동원산수도 / 19세기 후기~20세기 초기

조선 말기의 서화가인 이희수(1836~1909)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산수도이다

커다란 바위 절벽의 배경 아래 나무 한 그루가 있고 그 밑에 강을 인접한 정자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 상단에는 제시가 있는데

이들이 함께 어울어져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잘 표현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준다

 

 

 

 

포도도(최석환) / 19세기 · 묵란도(이하응) / 19세기

 

 

 

 

묵란도(이하응) / 19세기

석파 이하응(1820~1898)은 서화에 능했으며 특히 난초를 잘 그렸다

난초 그림들 가운데서 대원군의 진품을 식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당시 소위 「귀인의 난초」라 하여 그의 난초를 요구하는 사람이 많았고

말년에 일본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많이 요구해서 일일이 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랑방에 대필할 사람을 두고서 대신 그리게 하였다

 그의 대필자 중 유명한 사람이 소호 김응원이다

 

 

 

 

해진도(작가미상) / 18~19세기

삼도수군통제사가 군선을 통제영 앞바다에 정렬시켜 훈련하는 모습을 그렸다

수(帥)자 깃발을 달은 군선을 중심으로 130여 척의 배가 첨자진(尖字陣)을 이루고 있으며 진의 형태를 사실적으로 설명적으로 그렸다

 

 

 

 

책가도(작가미상) / 조선 말기

책가도는 서책 · 고동기 · 삽화병 · 소과반 ·  · 벼루 · 연적 등의 기물이 나열된 서가를 한 폭에 그려 넣은 그림을 말한다

 

 

 

 

대각국사비 탁본 · 북관대첩비탁본 / 조선

황해도 개성 영통사에서 출토된 대각국사비의 탁본으로 비석은 1125년 건립되었다

글은 당대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김부식이 지었고 글씨는 오연후가 고려 전기에 유행한 구양순체의 해서로 써서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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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북평사 직을 맡고 있던 정문부 장군이 임진왜란 중 의병을 모아 왜군을 격퇴한 공을 기려

조선 숙종 때 북평사 최창대가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면(지금 함경북도 김책시 임명동)에 세운 전공기념비석을 탁본한 것이다

 

 

 

 

열성어필 / 1725년

조선 제1대 국왕 태조로부터 제20대 국왕 경종에 이르는 임금의 어필을 모아 판각한 목판본이다

숙종 어필까지 11대에 이르는 임금의 필적은 경종 3년에 판각하였고 경종 어필 9쪽은 영조 1년에 보각하였다

이 유물은 경종 어필 9쪽을 포함하고 있는 보각본이다

 

 

 

 

기증실

1946년 개관 이래 기증·기탁된 유물을 선별하여 전시한다

인천 출신으로 일제시기 개성부립박물관장을 역임한 우현 고유섭 선생의 유물을 비롯하여

흥덕왕릉 비석편, 서구 공릉동에서 출토된 숙의문씨 묘지석 등의 귀중한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시장가는 사람들(1970년) · 열차 안에서 바라본 군자역 풍경(1968년) / 김수용

수인선 군자역의 모습이다

책으로는 에도막부 말기 메이지 다이쇼 80년 역사를 담은 사진첩과 1904년 4월 발행된 일로전쟁실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현 고유섭 영정

1992년 9월 2일 우현 고유섭 선생의 동상 제막을 기하여 손연칠 선생이 그린 영정과 1992년 9월 2일 수여된 금관문화훈장이 전시되어 있다

 

 

 

 

추도문 · 부고(計告) · 조사(弔辭)

1992년 9월 2일 우현 고유섭 선생의 동상제막을 기하여 우리 박물관에 기증된 우현 선생의 유품으로

추도문은 1944년 7월 9일 우현 고유섭 선생의 제자인 황수영 박사께서 쓰신 추도문이고 조사(弔辭)는 공성학과 김정호가 쓴 것이다

 

 

 

 

고유섭 친필 서예 / 일제강점기

고유섭은 국내 최초로 근대적인 미술사학의 토대를 구축한 학자로 이 서예는 고유섭이 제자인 황수영에게 써준 것을 황수영이 인천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글의 내용은 보각선사의 선어로 선(禪)이란 것은 일체의 집착이나 사념을 벗어난 다른 곳에 존재하니

선을 하려는 생각조차도 아니하는 공(空)의 세계에 속해 있다는 내용이다

 

 

 

 

박고통금(博古通今) / 나봉훈

2015년 제12회 대한민국서각대전에서 특선 작품으로 선정된 작품과 재봉틀 · 비디오카메라 등이 전시되어 있다

 

 

 

 

4호선 개통기념 지하철 승차권 · 대통령 취임 기념 지하철 승차권 · 을지로구간 개통기념 지하철 승차권

 

 

 

 

경기도 · 인천 버스회수권

 

 

 

 

기증자 명패

 

 

 

 

기증실

우리박물관이 개관한 1946년 이래 기증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작은 전시실

신문 호외가 전시되고 있다

기증실에서 계단으로 내려오면 2층에 있다

 

 

 

 

중일전쟁 발발 호외

 

 

 

 

 김일성 사망 호외

 

 

 

 

체험교실 

그밖에 석남홀 · 뮤지엄샵 · 체험코너 · 기획전시실 · 세미나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