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이야기

남양주종합촬영소 영화인 명예의 전당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선구자로서

영화인들이 '위대한 영화인'으로 선정한 감독과 영화배우의 흉상 및 생애 사용했던 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영화인 명예의 전당은 남양주종합촬영소 영상지원관 2층에 있다

 

 

영화인 명예의 전당 입구

 

 

 

 

신상옥(1926~2006)

경성중학교와 일본 도쿄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에서 미술부 작업을 시작으로 조감독 생활을 했다

1952년 대구에서 연출한 16mm 영화인 「악야(惡夜)」로 감독 데뷔했다

명예의 전당에 2006년 헌액됐다

 

 

 

 

신상옥 감독 작품

 

 

 

 

상록수

신상옥 감독 작품 중 하나다

 

 

 

 

신상옥 감독 연대기

1952년 감독으로 데뷰한 「악야惡夜)」부터 북에서 탈출한 1984년까지의 연보

 

 

 

 

20여 년간 덧붙여 사용했던 수첩 · 지갑

 

 

 

 

30년 동안 즐겨 쓰던 시계

해외 여행시 사고에 대비하여 착용했던 본인 이름이 새겨진 팔찌

 

 

 

 

신상옥 감독의 상징인 스커프와 사진들

 

 

 

 

신상옥 감독 영화 포스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 성춘향 · 로맨스 그레이 등이 있다

 

 

 

 

신상옥 감독 의상 · 의자

 

 

 

 

유현묵(1925~2009)

사리원에서 태여나 고향의 덕성보통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 휘문중학교에 진학하였다

어둡고 내성적인 성격이 예술적 지향과 만나 잠재되어 있던 예술적 본능이 들어나기 시작하여 문학뿐 아니라 음악 · 미술 · 무용 등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47년 이규환 감독의 조감독으로 출발하여 1948년 동국대학교 국문과 시절

최초의 대학영화 서클인 영화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해풍」이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 인생이 시작되었다

명예의 전당에 2006년 헌액됐다

 

 

 

 

유현묵 감독 작품

 

 

 

교차로

유현묵 감독 작품 중 하나다

 

 

 

 

유현묵 감독 연보

첫 작품인 「해풍」을 만들었던 1947년부터 「말미잘」을 만들었던 1995년까지의 연보다

 

 

 

 

책을 들고 친구와 찍은 사진이 재미있다

 

 

 

 

유현묵 감독 부부 · 대한민국 예술원

 

 

 

 

촬영현장에서 이용했던 물건들

 

 

 

 

유현묵 감독 의자

 

 

 

 

여배우 황정순(1925~2014)

경기도 시흥에서 태여나 서울 동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40년 동양극장 전속극단에서 연기를 배우기 시작해 같은 해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1941년 허영 감독의 「그대와 나」에서 단역으로 영화에 데뷔했다

명예의 전당에 2007년 헌액됐다

 

 

 

 

영화배우 황정순 흉상

 

 

 

 

한국영화 역사에 숨쉬는 배우

황정순 · 복혜숙 · 고선애 · 최지애 · 최은희 · 이빈화 · 최지희 · 한은진

 

 

 

 

1960년대 최고의 디자이너였던 노라노의 의상

 

 

 

 

1940년대

당시 16세의 끼 많은 소녀 황정순은 동양극장 연수생으로 무대와 인연을 맺었다

생애 첫 출연작품인 「청춘좌」에서는 아무 대사도 없는 산송장이였다

 

 

 

 

1950년대

1957년 이강천 감독의 「사랑」에 출연하여 제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주연배우상을 받았다

그 때는 후시 녹음이라 성우들이 녹음을 했지만 김승호와 황정순은 성우를 시키면 캐릭터가 맞지 않았다

 

 

 

 

1960년대

당시 연극계에서는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예술과 등지는 걸로 치부하고 있었다

이 무렵 부군 이용복 박사가 「상해 리루」란 영화를 제작했다가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1970년대

「팔도강산」의 성공으로 연작이 제작되어 어머니하면 황정순이 섭외될 정도로 어머니역엔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70년대 후반 TV가 각광 받기 시작하자 영화의 제작편수가 줄어들어 어쩔 수 없이 TV드라마에 출연하게 된다

 

 

 

 

(재)한국영화인복지재단 이사장 정진우 감독과 함께

 

 

 

 

출연작품 연보

1943년 첫 작품 「그대와 나」부터 1984년 「피막」까지의 연보

 

 

 

 

배우 김지미(1940~     )

대전광역시 출생으로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명예의 전당에 2010년 헌액됐다

 

 

 

 

김지미 사진과 사용하던 물건들

 

 

 

 

김지미의 대표작(약 800여 편) 연보

 

 

 

 

비오는 날의 오후 3시

 

 

 

 

암굴왕

 

 

 

 

바보 칠성이

 

 

 

 

최무룡과 함께

 

 

 

 

장동휘와 함께

 

 

 

 

김진규와 함께

 

 

 

 

서영춘과 함께

 

 

 

 

허장강과 함께

 

 

 

 

남정임 · 고은아 · 김지미 · 최은희

 

 

 

 

영원한 청춘배우 엄앵란(1936~     )

1956년 「단종애사」로 데뷔하였고 대한민국 학사 여배우 1호다

명예의 전당에 2012년 헌액됐다

 

 

 

 

엉앵란 출연 영화 포스터

 

 

 

 

노란사쓰를 입은 사나이(1962)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함께 출연했다 

 

 

 

 

김약국(金藥局)의 딸들(1963)

 

 

 

 

맨발의 청춘(1964)

신성일과 함께 출연했다

 

 

 

 

엄앵란의 사진과 사용하던 물건들

 

 

 

 

영원한 청춘배우 엄앵란

 

 

 

 

엄앵란 대표작 연보(약 191여 편)

1956년 「단종애사」부터 1976년 「짝」까지 있다

 

 

 

 

엄앵란

숙명여자대학교를 졸업한 대한민국 제1호 학사 배우다

 

 

 

 

신성일과 함께

 

 

 

 

엄앵란의 의상

앙드레 김 나이트가운 · 일본 도쿄영화제 참석 한복 · 영화 「배신」 촬영 당시 입었던 원피스

 

 

 

 

영화 「배신」의 한 장면

이 신을 촬영한 날 둘은 워커힐 나이트클럽에서 첫 데이트를 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청평호수에서 있었던 보트 안 러브신에서 둘은 연기가 아닌 진짜 키스를 나누었고

이 때 맺은 인연으로 결국 결혼까지 골인하게 된다

 

 

 

 

초콜릿 셋트

팬이 직접 만들어 준 초콜릿 셋트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패션쇼에서 모델로도 활동했던 여배우들의 모습을 포장지로 만들어 선물했다

 

 

 

 

영화감독 정진우(1938~    )

1961년 중앙대를 졸업하고 강범구 감독의 촬영 조감독으로 영화일을 시작했다

1963년  「외아들」을 연출하면서 한국 최연소 감독으로 데뷔했다

명예의 전당에 2014년 헌액됐다

 

 

 

 

정진우 감독 작품 · 수상 트로피

 

 

 

 

영화제작자 차태진

극동흥업 창립 대표로 맨발의 청춘(1964) · 김약국의 딸들(1963) · 아낌없이 주련다(1962) · 남과 북(1965) · 초우(1966) · 춘희(1967) 등

1960년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흥행작들을 다수 제작하였다

1959년부터 1971년에 이르기까지 120여 편에 이르는 작품 중 44편을 엄앵란 · 신성일과 함께 작업하여

이 들을 청춘영화의 콤비스타로 만드는데 큰 일조를 했다

 

 

 

 

촬영감독 전조명

1934년 평안남도 개천에서 태여났다

한국전쟁 이전에 홀로 월남하여 한양대 화공학과에 진학하였다가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여 촬영을 공부했다

1959년 김수용 감독의 「3인의 신부」의 촬영을 맡아 촬영감독으로 데뷔했다

1967년 김영수의 단편소설을 동명 영화화한 「소복」으로 감독 데뷔했다

 

 

 

 

촬영감독 정광석

1935년 서울 출생으로 한양공고를 졸업했다

정창화 감독의 「장화홍련전」(1956)의 조명부 조수로 영화계에 입문했고

장화홍련전의 촬영감독이었던 김영순이 촬영제2조수를 제안하여 촬영부로 파트를 옮겼다

이봉래 감독의 제안으로 「새댁」(1962)의 촬영을 맡으면서 촬영감독으로 데뷔했다

 

 

 

 

촬영감독 서정민(1934~2015)

 인천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4학년 때 박성복 감독의 추천으로 촬영부에 들어가면서 영화계에 입문했고

임원직 감독의 「촌 오복이」(1961)을 통해 데뷔한 그는 1964년 「돌아오지 않는 해병」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이만희 감독의 주요 작품을 거의 도맡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정진우 감독 흉상 · 촬영 모습

 

 

 

 

역대 영화인 명예의 전당 제작 도록집

 

 

 

 

정진우 감독 작품 시나리오들

 

 

 

 

정진우 감독 작품 · 기자재들

 

 

 

 

김기영 감독(1919~1998)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전쟁이 나자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중 주한미국공보원으로 스카우트되어 1955년 「주검의 상자」로 데뷔했다

2014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전후 1세대 한국영화의 거장 김기영 감독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헌액되어서인지 비교적 자료가 적다

'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양주종합촬영소 영화문화관  (0) 2016.02.20
남양주종합촬영소 사진으로 보는 한국영화사  (0) 2016.02.20
남양주종합촬영소  (0) 2016.02.20
인천 중구 내동  (0) 2016.02.14
인천 중구 경동  (0) 2016.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