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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동관왕묘~신당창작아케이드~서울역

어릴적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를 좋아했다

특히 명동 등 도심에서 친구와 만났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남산길과 퇴계로길을 자주 걸었다

남산이야 자연을 즐기며 걷는 길이니 최상이었고 퇴계로는 종로 · 청계천 · 을지로보다 한가해서 좋았다

 

 

동묘역 3번출구

벼룩시장 상인들의 물건 상자가 쌓여 있다

시점이다

 

 

 

 

CD 한 장에 천 원

얼굴이 주현미라고 생각하고 카메라로 보니 전현주다

하지만 이름 3자 중 2자는 맞는다

 

 

 

 

동관왕묘 벼룩시장

막 기지개를 켜는 시간이다

 

 

 

 

책 한 권 천 원

천천히 찾아보면 필요한 책도 있으련만 오늘은 훑어만 본다

 

 

 

 

니콘 · 캐논 · 미놀타 · 아사이펜탁스 · 야시카 등 한때 날렸던 카메라들이다

 

 

 

 

동관왕묘 벼룩시장

옷도 천 원씩이라 검은 비닐봉투에 수십 벌씩 담는 사람도 있다

다시 팔 사람인 것 같다

 

 

 

 

서울 동관왕묘 정전(보물 제142호)

동관왕묘는 서울의 동쪽에 있는 관왕묘라는 뜻으로 중국의 장수 관우(162~219)의 조각상을 두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LP 무조건 3천 원

동묘를 돌고 다시 벼룩시장을 구경하며 신당아케이드로 간다

 

 

 

 

선글라스 무조건 5천 원

 

 

 

 

녹음기

 

 

 

 

영사기

 

 

 

 

영도교(永渡橋)

영도교는 단종비 송씨가 단종을 영월로 떠나보낸 이별의 다리다

당시 청계천에 있던 다리 중 가장 동쪽에 있던 다리로 정순왕후로서는 자신이 나갈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까지 배웅한 셈이다

단종과 생이별했을 때 18세였던 그녀는 64년을 홀로 살다 82세로 숨을 거뒀다

*

정순왕후 송씨가 숨질 때 '백발 노인이 된 나를 당신(단종)이 몰라볼까 걱정이다.'라는 시를 썼다

*

예전 책에 영도교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영이별 다리라고 영리교(永離橋)라 불렀는데

청계천 복원공사 후 영도교로 이름하였다

 

 

 

 

곱창골목

 

 

 

 

서울중앙시장

예전 자주 왔던 시장이다

 

 

 

 

서울중앙시장

 

 

 

 

중앙시장을 구경하고 시장 지하에 있는 신당창작아케이드로 간다

 

 

 

 

신당창작아케이드

입구 횟집들을 지나면 대부분 공예작가 공방 등이 있다

미장원과 옷과 이불가게도 있다

 

 

 

 

성동공업고등학교

신당창작아케이드를 신당역 쪽에서 들어가 성동공고 방향으로 나왔다

 

 

 

 

모처럼 신당동에 왔으니 점심을 떡볶이로 하기로 했다

앞에 보이는 중부소방서 골목으로 잠시 걸으면 떡볶이타운이다

 

 

 

 

신당동 떡볶이타운

 

 

 

 

마복림떡볶이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 "

"이젠 며느리도 알아요!!"

 

 

 

 

떡볶이 2인분

만천 원 선불이다

 

 

 

 

떡볶이로 점심을 하고 뒷골목을 이용해 퇴계로로 간다

 

 

 

 

광희문

서소문과 함께 시신을 내보내던 문으로 수구문 또는 시구문이라고도 한다

 

 

 

 

소나무 가로수 특화거리

모터사이클 판매점이 몰려 있는 퇴계로5가다

 

 

 

 

소나무 가로수 가꿈이 명판

소나무 마다 가꿈이 명판이 붙어있다

 

 

 

 

퇴계로5가 버스정류장 벤치

 

 

 

 

TAKE A BREAK FOR A MOMENT WITH 7-11

서울침례교회 앞쪽에서 잠시 쉬었다

 

 

 

 

유성룡집터

동물병원들이 몰려 있는 필동 SK주유소 앞에 있다

 

 

 

 

대한극장

1955년 미국 20세기 폭스 필름의 설계로 1,900여 개의 좌석을 갖추고 개관했다

예전 벤허 · 클레오파트라 등 70mm 대작을 주로 상영했었다

 

 

 

 

명동을 지나 회현지하쇼핑센터 레코드 가게

수입 LP 원판 5천 원씩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숭례문

신세계백화점을 나와 남대문시장 카메라가게를 기웃거리며 왔다

 

 

 

 

숭례문

안으로 들어가 본다

 

 

 

 

숭례문

 

 

 

 

왈우(曰愚) 강우규 의사 상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 노인단(老人團)의 길림성 지부장인 강우규는

1919년 7월에 러시아인으로부터 영국제 수류탄 1개를 구입하여 8월 서울에 잠입하여

9월 2일 남대문 정거장(지금의 서울역)에서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총독 암살에는 실패했지만 정무총감 · 만철(滿鐵)이사 · 일본경찰 등 37명을 사상시켰다

거사 뒤 현장에서 빠져나와 오태영(吳泰泳)의 소개로 장익규(張翊奎) · 임승화(林昇華) 등의 집에 숨어다니다가

9월 17일 일제의 앞잡이 김태석(金泰錫)에게 붙잡혀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

마침점인 서울역 광장에 있다

 

 

 

 

斷頭臺上 /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猶在春風 /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有身無國 /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豈無感想 /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강우규 의사가 순국 직전에 남긴 유시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0.3km, 소요시간 4시간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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