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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부천교육박물관

2003년 개관한 부천교육박물관은 천자문으로 시작하는 서당교육에서부터

민족교육과 해방 후 7차 교육과정을까지 우리 교육의 현장을 보여준다

 

 

부천교육박물관

 

 

 

 

박물관 실내 배치도

 

 

 

 

선사시대~고려시대 교육연표

선사시대 / 의식주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교육이 주류

 

고조선(BC. 2333) · 홍익인간을 기치로 하는 교육적 의지를 밝힘

삼국시대 / 백제(258) · 박사 왕인을 일본에 보내어 논어와 천자문을 전함

고구려(372) · 국가최고교육기관인 태학 설립

신라(576) · 삼국사기에 화랑도가 시작되었다고 기록

 

통일신라시대 (682) · 학교기관 국학 설립

 

고려시대 (958) · 과거제 시행

고려(1127) · 지방에 학교를 세워 교육에 힘쓰라는 조서를 내림(향교 교육의 시초가 됨)

 

 

 

 

조선시대~근대 교육연표

조선(1398) · 국립고등교육기관 성균관 설치

 

근대(1883) · 통역관 양성소 동문학 설치, 민간인 최초의 사립학교 원산학사 설립

1885 · 선교사에 의한 최초의 사학 배재학당 개교

1886 · 최초의 여성고등교육기관 이화학당 개교

1924 ·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 개교

1941 ·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개칭

 

 

 

 

광복~현대 교육연표

1946 · 학제를 초등학교(6년), 중등학교(6년), 고등교육(3년)으로 개혁

사범대학 신설, 서울대학교 창설

1949 · 중등학교를 3년제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

1962 · 각 도에 1개씩의 교육대학 설립

1968 · 중학교평준화시책에 따라 중학교 무시험제 시행

1972 · 방송통신대학 신설

1980 · 과외수업 금지

1996 ·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개칭

2001 · 중학교 무상의무교육 전국 확대 실시

 

 

 

 

조선시대 문방사우

문방사우는 삼국시대에 이미 존재하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선비들의 학문탐구와 과거공부를 위해 매우 친근해진데서 불리운 이름이다

 

 

 

 

조선시대 · 근대  부천의 교육 · 교육발전에 기여한 인물

조선시대 부천지역은 부평도호부 관할지역으로 국립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부평향교가 있었다

사설 초등교육기관인 서당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는데

*

1917년 당시 통계를 보면 경기도 내의 서당 숫자가 2,463개소였었다

1924년에는 소사보통학교(현 부천북초등학교)가 설립되었고

1950년 6월에 소사농업중학교(현 부천공업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

교육발전에 기여한 인물

한항길(1897~1979)

1958년 소사공업학교를 설립 운영하였으며 1978년 한길학원을 설립하여 부천공업전문대의 초대이사장을 역임했다

 

신성우 마르꼬 신부(1893~1978)

1947년 소사본당에 2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1954년 완공된 성당을 활용하여 여학생을 위한 야학을 개설하였고

이듬해 소사 최초의 여자고등학교인 소명가정기술학교(현 소명여고)를 개교하여 초대 교장을 역임했다

 

 

 

 

교육의 개념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며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바람직한 인간을 양성하여 개인생활은 물론

가정과 사회에서의 모든 생활에서 보다 행복하고 가치 있는 나날을 보내기 위한 것이며 나아가 사회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가정교육

조선시대의 교육은 과거를 통해 관리로 나아가기 위한 유교적 교육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는 남성들에게 해당되는 교육이었으며 여성들은 학교 교육에서 제외되었다

조선시대 가정교육은 여성들에 대해 실시되었던 성리학적 바탕 위에서의 생활교육이 주된 것이었다

 

 

 

 

삼국시대 ~조선시대 교육환경

 

 

 

 

대학(大學)

 

 

 

 

서당

초등교육기관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사립학교라 할 수 있다

고구려의 경당이나 고려의 서재 등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서당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더욱 활발하게 운영되어 선비나 평민의 자제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사학이나 향교에 입학하지 못한 8~16세 사이의 학생들이 들어와 천자문 · 동문선습 · 통감 등의 교과목을 배웠다

 

 

 

 

조선시대 과거시험 답안지(조선시대 후기 · 122.5 × 72.5cm)

답안지 오른쪽 하단에는 응시자의 신상명세가 적혀 있어 채점시에는 이 부분을 접어서 채점자가 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시험에 붙었을 때는 답안지에 붉은 먹으로 당(當)이란 글자를 떨어졌을 경우에는 락(落)이란 글자를 크게 써 놓았다

 

 

 

 

대한신지지l(1908. 12. 15 · 장지연 저)

장지연이 현채의 '대한지지'를 보완하여 편찬한 한국의 지리 개설서

 

 

 

 

애국가

배재학당 학도들이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부른 애국가다

 

 

 

 

일제시대의 교육

1910년 국권이 상실되면서 1945년까지 조선의 교육정책은 식민지 지배 정책에 따라 변화했다

1911년 조선교육령이 발표되면서 일본제국에 복종케하는 교육정책이 시행되었고

1922년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교육을 분리하는 개정교육령이 발표되었다

1938년에는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전시체제하의 교육을 위주로 하면서 모든 수업을 일본어로 진행할 것을 강요하였다

 

 

 

 

일제시대 교육과정

 

 

 

 

일제강점기 일본인 교사가 착용했던 칼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항일민족교육

일제강점기의 교육은 독립을 위한 자주교육과 일본제국에 의한 침략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제는 민족교육 말살을 위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학교에 대한 탄압과 폐교를 목적으로 1911년 '사립학교규칙'을 공포했다

그 결과 1910년에 1,973개의 사립학교가 1912년에는 1,317개로, 1919년에는 690개로 줄어 들었다

아래 사진은 105인사건에 숭실전문학교 학생들과 함께 투옥되었던 미 선교사 모우리 교수다

 

 

 

 

항일교육과 학생들

평양숭실학교(현 숭실대학교)의 전경(1916)과 신민회사건을 보도한 신문들이다

 

 

 

 

일제강점기의 교사

일제강점기에는 교사들이 교실에서도 칼을 차고 수업을 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한일병합과 동시에 각급 학교장을 일본인으로 임명하고 교사들은 헌병 · 경찰과 같이 제복을 입게했다

 

 

 

 

광복과 미군정기의 우리교육

광복과 함께 우리나라는 일제청산과 민주교육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정책이 대두되었다

미군정에 의해 민주교육과 교육정책의 자치화가 시도되었다

그리고 성인들의 문맹퇴치운동, 국어의 회복과 각급 교육기관의 확충 등 새로운 교육체제의 정비에 주력하였다

 

 

 

 

미군정기의 교육활동과 광복 후 각급 학교의 성장

 

 

 

 

미군정청시대(1945. 9. 9 ~ 1948. 8. 15)에 발행된 교과서들

 

 

 

 

우리의 맹세

1949년 7월 문교부가 제정한 '우리의 맹세'다

교과서는 물론 모든 서적 뒤에 빠짐없이 인쇄되었고 학생들은 모두 이를 암기해야만 했다

 

 

 

 

6 · 25전쟁(1950 ~ 1953) 당시 발행된 중등학교 교과서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해 설명한 교재들과 문교부장관이 발행한 전시학생증

 

 

 

 

유네스코와 교과서 원조

광복 이후 한국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교육사업 시행이 원활하지 못하였다

당시 한국은 유네스코로부터 지원을 받아 교과서를 제작하였으며

특히 국정교과서를 생산하기 위하여 설립된 대한문교서적주식회사가 유네스코와 운크라(UNKRA-국제연합한국제건단)의 원조기금으로 도입 설치한

최신 인쇄 시설로 제작 공급함으로써 교과서의 대량생산에 의한 적기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다

 

 

 

 

교지

교지란 각급학교에서 발행하는 기관지로서 학교잡지의 준말이다

교지의 발행은 학교에서도 발행하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교우회, 학생회, 문우회, 친목회 등에서 발행한 잡지를 일컫는 말이다

현존하는 교지로 가장 오래된 것은 보성중학교 친목회가 1910년 6월에 만든 '보성친목회보'이다

 

 

 

 

60년대 이후 우리의 교육

1961년 9월 교육자치제 폐지하고 국가 주도의 교육 실행

1963년에는 5년제의 실업학교 발족

1968년 대학예비고사 실시, 중학교 무시험제 시행

1970년대 반공교육 역점

1974년 전국에 방송통신고등학교와 기능대학을 설치

 

 

 

 

학생혁명시집(1960. 7. 10. 교육평론사)

4 · 19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전국의 학생(중 · 고 · 대학)을 대상으로 작품을 현상 모집하여 펴낸 시집

 

 

 

 

의거고등학생회 창립총회에서 발표한 결의문(1960. 5. 7)

"불의와 부정과 압정에 항거하여 피를 쏟으며 싸워 쓰러진 고 동지들의 유지를 길이 받들고 이어 받어 빛나는 새 조국 건설에 미력하나마 이바지하고저

우리들 남은 서울시내 남녀고등학교 학생들은 "의거고등학생회"를 조직하고..."

4 · 19혁명 당시 계엄령 하에서 서울 시내의 고등학교 대표자들이 건국대 낙원동 교사에 모여 채택한 결의문이다

 

 

 

 

국민교육헌장

1968년 12월 5일에 반포된 교육헌장 선포일인 12월 5일은 1973년 3월 30일 대통령령으로 정부주관 기념일이 되었다

1994년부터 기념식행사는 개최하지 않았으며 2003년 11월 27일 교육헌장선포기념일이 폐지되었다

 

 

 

 

1960~70년대의 교육과정

1973년 국민학교와 중학교의 한자교육을 폐지하고 국사교육을 강화하였으며 중고등학교에서는 실과교육을 필수로 편제하였다

 

 

 

 

1960년대 사용했던 학교종

김메리 작사 · 작곡의 "학교종이 땡땡땡~어서모이자~♬"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어린이 · 청소년잡지들

 

 

 

 

70년대 교과서

1973년 제3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교과서의 편찬과 보급은 국적 있는 교육, 주체성을 지닌 교육

유신이념을 실천하는 교육 등의 이념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10월 유신과 교수지침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유신체제의 이념과 관련하여 이른바 민족주체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이 주류를 이루기도 하였다

...10월 유신의 당위성을 전달하고자 하였던 의지를 분명히 살필 수 있게 한다"

 

 

 

 

70년대 참고서

초등학교 참고서는 전과(全科)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었고 수련장이라는 이름으로 예상시험문제를 모은 참고서도 발행되었다

 

 

 

 

1960년대 교실

 

 

 

 

전시장

교실은 오른쪽에 있다

 

 

 

 

성적표

 

 

 

 

생활통지표

 

 

 

 

80년대 이후 우리의 교육

중학교 무상의무교육은 1985년 도서 · 벽지에서부터 시범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하여

2001년에는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됨으로써 전국민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1980년 국가학력고사가 실시되어 대학시험을 국가에 의해 관리되었으며 대학설립 조건을 꾸준히 완화함으로써 대학의 수가 상당히 늘어났다

1996년에는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개칭함으로써 일제시대 이후 사용되었던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상장

시험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주는 우등상 · 백일장과 각종대회에서 수상하게 되는 우수상

효성이 지극한 학생에게 수여하는 효행상 · 착한 일을 한 학생에게 주는 선행상 등 여러가지가 있다

 

 

 

 

졸업장

각급학교의 정해진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에게 주는 증표가 졸업장이다

 

 

 

 

졸업앨범

지나간 학교생활이 떠오를 때마다 들쳐보는 졸업앨범은 구한말 근대교육의 시작과 함께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졸업앨범은 학교의 모든 생활상을 간략하게 담아내는 사진첩이라 할 수 있다

 

 

 

 

체력검사와 건강검진

학교는 연례적으로 학생들의 체력과 건강상태를 점검하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혈액형 검사를 시작으로 각종 예방주사를 맞추어 주었다

한편 기생충 검사를 위해 학생들의 변을 채취하여 제출하기도 하였다

 

 

 

 

수학여행과 방학

지금처럼 여행이 쉽지 않던 예전 학생들이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수학여행이다

대부분 전세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설악산이나 경주로 수학여행을 했다

방학은 못다한 학업 또는 미진한 교과목을 보완한다고 하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학생들에게는 학교생활을 벗어난다고 하는 데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전통시대의 과학교육

백제 554년 일본에 천문관측과 관련한 기술과 역서를 전하여 주었으며 신라에서는 647년 천문관측을 위한 첨성대를 만들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국자감에 산학과를 두었으며 별도로 태의감과 사천대를 설치하여 각각 의학과 천문학을 가르쳤다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에 산학을 관상감에서는 천문학과 지리학을 전의감에서는 의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인문학을 중시하였던 조선의 교육체계로 말미암아 과학기술 교육은 중앙의 기술직 관리를 양성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대부분 과학기술은 도제식 교육에 의하여 전수되었다

 

 

 

 

신교육시대의 과학교육

광복이전 · 광복 후~1950년대 · 1960년대 · 1970년대~1980년대로 구분 설명해 놓았다

 

 

 

 

변화하는 세계, 변화하는 교육

세계화되어 가는 시대적 상황에 발맞추어 교육의 흐름 또한 변화되어야 하며

외국어교육과 정보화교육은 21세기를 맞는 우리들에게 절실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어야 하며 민족정신을 계승하는 토대 위에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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