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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명동성당

한국 최초의 본당이자 서울 대교구 주교좌 성당인 명동성당의 건립 공사는 1887년에 시작하여 1892년 5월 8일에 정초식을 거행하였다

당시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건축공사에 참여했거나 헌금한 조선인 신자 천여 명과 조선에서 사목한 선교사 명단도 성당의 머릿돌과 함께 묻었다

1898년 5월 29일 성신강림 대축일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를 수호성인으로 하여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역사적인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기공 후 무려 12년만이다

 

 

명동성당(사적 제258호)

1882년 명동은 한미수호조약의 체결로 종교의 자유를 얻게될 것을 예견한 제7대 교구장 블랑 주교에 의해 성당 터로 매입된다

블랑 주교는 이곳에다 우선 종현서당을 설립, 운영하면서 예비 신학생을 양성하는 한편 성당 건립을 추진해

한불수호통상조약(1886년)을 체결한 이듬해 5월 대지를 마저 구입하면서 그 해 겨울부터 언덕을 깍아내는 정지작업을 시작했고

명동대성당을 지을 때는 기해 · 병인박해 순교자가 암매장된 용산 왜고개 성지에 있는 흙으로 벽돌을 빚어 사용했다

 

 

 

 

명동성당

신자들의 열성으로 시작된 명동성당의 정지작업은

풍수지리설을 내세운 정부와 부지 소유권 분쟁에 휘말려 4년이 지난 1892년 5월 8일에 가서야 기공식을 갖는다

그 사이 초대 주임 블랑 주교가 1890년 선종하고 두세 신부가 2대 주임 신부로 부임했다

 

 

 

 

명동성당

성당 설계와 공사의 지휘 감독은 코스트 신부가 맡았는데 그는 약현(현 중림동) 성당과 용산신학교의 설계 감독도 맡았다

코스트 신부도 1896년 선종하고 그 뒤를 이은 프와넬 신부에 이르러서야 성당 건축을 마무리 짓고

드디어 1898년 5월 29일 성신강림 대축일에 축성식을 가졌다

 

 

 

 

명동성당

기공 후 무려 12년만에 완공된 명동성당은 처음 명칭은 종현성당이었으나 해방 이후 명동성당으로 바뀌었다

순수한 고딕 양식 건물로 그 문화적 가치가 높아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었다

 

 

 

 

김용택 시인 생가 마당에 있던 단풍나무

오른쪽 나무 앞에 안내판이 있다

 

 

 

 

지하 통풍구

성당 문양의 철판이다

 

 

 

 

나무 채광창

지하로 통하는 문이다

 

 

 

 

성모상

성당 뒤편에 있다

 

 

 

 

지하성당이 있는 성당 뒷편

지하성당은 성당 제대 하부에 위치하여 예배 장소와 성해 안치실로 쓰이는 곳으로

성당 건립 초기에는 아홉 개의 제대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두 개만 남아 있다

 

 

 

 

지하성당

현재 명동성당 지하묘역에 모셔져 있는 성인 및 치명자의 유해는

1839년 기해박해 시 순교하시고 1984년 시성되신  성 엥베르 주교 · 성 샤스탕 신부 · 성 모방신부 성해 일부

역시 기해박해 시 순교하시고 1984년 시성되신 성 김성우(안토니오) · 성 최경환(프란치스코) 등 다섯 분 성인의 유해

1866년 병인박해 시 새남터에서 순교하신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프리티에 신부와 프띠니콜라 신부의 유해

1839년에 순교한 무명의 순교자 두 분 유해 등 모두 아홉 분의 성인 및 치명자의 유해를 모시고 있다

 

 

 

 

성해 안치실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첫 입국해 1839년 9월 12일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신부 · 샤스탕 신부는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의 형을 받은 후 한강변 모래밭에 매장됐었다

순교한지 약 20일 후 칠팔 명의 신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세 분의 유해를 거두어 지금의 서강대학교가 소재한 노고산에 4년간 매장했다

그 후 유해는 1843년 삼성산으로 이장됐다가 1901년에 이곳에 모셔졌다

 

 

 

 

사형 선고 받으심 / 장동호 작

 

 

 

 

성수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요한 바오로 Ⅱ세 교황

성당 입구 오른쪽 성수 위에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당 입구 왼쪽 위에 있다

 

 

 

 

주보

4개국어로 인쇄되어 있다

 

 

 

 

명동성당 내부

한국 천주교회의 출발은 1784년 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한 뒤 귀국한 때로부터 치지만

그보다 4년 앞선 1780년 1월 천진암에서는 권철신을 중심으로 하는 강학회가 열렸고 여기에서 당시의 저명한 소장 학자들이 천주학을 접하게 된 것이다

*

그 해 가을 서울 명례방에 살던 통역관 김범우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에 입교하고 자신의 집에서 교회 예절 거행과 교리 강좌를 열게 된다

그럼으로써 수도 한복판에 겨레 구원 성업의 터전을 닦았고 바로 이곳에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산 역사인 명동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청량한 햇살을 받으며 성당을 나서는 수녀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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