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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종주이야기

진주성

1592년 10월, 2만 명이 넘는 왜병이 공격해 왔다

진주목사 김시민은 겨우 3,800여 명의 군사와 백성들이 힘을 합쳐 일 주일 간에 걸쳐 밤낮 없이 싸워 임진왜란 사상 최초 육전 대승첩을 이룩하였다

그 후 크게 패한 왜군이 10만여 명으로 재침하자 7만의 민관군이 최후까지 싸우다 장렬히 순절했다

*

 삼천포에서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30분이다

미리 예매한 버스 시간이 2시간 정도 남아 진주성에 왔다

 

 

진주성 촉석문

 

 

 

 

의암사적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3호)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어 7만 명의 민관군이 순절하자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의기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진주의 사민(士民)들은 정식(1683~1746)이 지은 비문으로 비를 세웠고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비각을 세워 「의기논개지문」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의암((義巖)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다

선조 26년(1593) 6월 29일 임진왜란 2차 진주성싸움에서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적들은 촉석루에서 자축연을 벌였다

이때 관기였던 19세 논개가 왜장을 의암으로 유인하여 이 바위에서 순국하였다

 

 

 

 

진주 남강 유등축제

유등을 띄우는 〈유등놀이〉는 성 밖의 의병 등 지원군과 연락하기 위한 군사신호로 풍등을 올리기도 했고

횃불과 함께 남강에 등불을 띄워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전술로 쓰였으며 멀리 두고온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도 쓰였다

 

 

 

 

촉석루(矗石樓)

남강 바위 벼랑 위에 있는 영남 제일의 누각으로 전쟁시에는 지휘본부로 평화시에는 향시를 치루는 고시장으로 사용되었다

남원 광한루 · 밀양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이다

 

 

 

 

촉석루(矗石樓) · 남장대(南將臺)

고려 고종 28년(1241)에 창건하여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던 이 누각은 진주성의 남장대로서 장원루(壯元樓)라고도 하였다

 

 

 

 

의기사(義妓祠)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영조 16년(1740)에 경상우병사 남덕하(1688~1742)가 창건하였다

*

해설을 듣고 있는 빅터

 

 

 

 

논개 영정

왜장을 끌어안은 깍지 낀 손가락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 영정이다

 

 

 

 

지수문(指水門)

 

 

 

 

의랑 논개의 비

하나인 것이 동시에 둘일수 없는 것이면서 민족의 가슴팍에 살아있는 논개의 이름은 백도 천도 만도 넘는다

마지막 그 시간까지 원수와 더불어 노래하며 춤추었고 그를 껴안고 죽어간 입술이 앵도보담 붉고 서리 맺힌 눈섭이 반달보다 고왔던 것은...

 

 

 

 

진주를 예찬한 최초의 시문

진주의 아름다운 산천은 영남에서 제일이다

 

 

 

 

진주에서 지어진 최초의 시

고려 고종 28년(1241) 진주목사 김지대가 상주목사 최자에게 보낸 우정어린 통신문이다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단(晋州城壬辰大捷癸巳殉義壇)

이 단은 진주성의 임진대첩과 계사순의 때에 순절한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하여 진주시민의 소망을 담아 문화공보부와 진주시가 세운 제단이다

1986년 12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987년 12월에 마쳤다

 

 

 

 

김시민 장군 전공비 · 촉석정충단비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성싸움을 승리로 이끈 주장 김시민장군의 전공을 새긴 비이다

선조 26년(1593) 6월 19일~29일 사이의 제2차 진주성싸움에서 장렬하게 순국한 삼장사 김천일 · 황진 · 최경희 및 군관민의 영령을 제사하기 위해 세운 정충단의 비석이다

 

 

 

 

조선시대 대형총통

왼쪽부터 천자총통 · 지자총통 · 현자총통이다

 

 

 

 

순기(巡旗)

성곽을 따라 내려간다

 

 

 

 

진주 남강 유등축제(2014.10.1~10.12)

1593년 6월 진주성은 10만 왜군에게 점령당했다

현재까지 진주 사람들은 이 일을 「계사순의」로 기리고 있다

계사순의 이후로는 당시 순절한 7만 명의 민관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유등을 뜨웠으며 이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오늘의 유등축제로 자리잡았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상

1554년 충남 천안 병천에서 태어나 1578년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군기시 판관을 거쳐 1591년 진주판관이 되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목사가 병으로 죽자 그 직을 대신하다

사천 · 고성 · 진해 · 지례 · 금산 등지에서 승전고를 울리며 목사로 승진하였다

 

 

 

 

진주성 둘레길

버스 시간이 다가와 반만 돌고 공북문으로 나갔다

 

 

 

 

진주성 공북문

옆에 투호놀이 등 여러 놀이기구들이 있다

 

 

 

 

진주고속버스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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