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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남양주 조안 슬로시티길

남양주 조안면에 슬로시티길이 있다

슬로시티란 1999년 10월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의 파올로 사투르니니 전 시장을 비롯한 몇몇 시장들이

위협받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의 미래를 염려하여 치따슬로(cittaslow), 슬로시티(slow city) 운동을 출범시켰다

따라서 이 운동은 슬로푸드 먹기와 느리게 살기(slow movement)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는 현재 세계 19개국 125개 도시(2012년 9월 기준)가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남양주시 조안면을 포함하여 10곳이 슬로시티로 인증 받아 슬로라이프를 실현하고 있다

 

 

운길산역

운길산 · 예봉산 등산 들머리이자 다산길 1 · 3 · 4코스 종점이자 역출발 시점이다

슬로시티길을 걷는다

 

 

 

 

남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인줄 알고 돌아가려다

마진산성전망대를 놓치고 봉용골전망대로 오르는 길이다

 

 

 

 

정암산 · 해협산

언덕을 오르니 양수대교 너머로 보인다

 

 

 

 

봉용골전망대

낮지만 남한강 풍경이 멋지게 들어온다

 

 

 

 

양수철교 · 양수대교

봉용골전망대에서 봤다

 

 

 

 

운길산 · 수종사

정상 아래로 단풍 물결이 잔잔하다

 

 

 

 

생태체험마을로 내려간다

 

 

 

 

바람맞는 나무

비탈진 언덕에 홀로 있다

 

 

 

 

남양주 슬로시티길 방향안내판

 

 

 

 

생태체험마을 나무데크길

전철 터널을 지나 작은 다리 건너 우측이다

 

 

 

 

생태체험마을

우렁이농법과 유기농법의 논밭이 있다

 

 

 

 

유기농법 안내판

자연농법 · 생명농법을 설명한다

 

 

 

 

2011세계유기농대회정

환경보전과 안전한 농산물 생산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아시아 최초로

2011년 제 17차세계유기농대회(IFOAM OWC)를 남양주 조안면 일원에서 개최됨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했다

 

 

 

 

변협 · 변응성장군 묘로 간다

 

 

 

 

수종사와 변협 · 변응성장군 묘 갈림길이다

 

 

 

 

남양주 슬로시티 방향안내판

안내지도와 함께 자주 있어 처음 가는 사람도 길찾기 쉽다

 

 

 

 

변협 장군 묘로 가는 길

 

 

 

 

억새

 

 

 

 

변협(邊協 · 1528~1590)장군 묘

조선 중기 무신으로 1548년 무과에 3등으로 급제하고 선전관을 거쳐 명종 5년(1555) 해남현감이 되었다

이때 을묘왜변이 일어나 왜선 600여 척이 전라도에 침범하여 전라 병사 원적과 장흥부사 한온 등을 죽이고

영암군수 이덕견을 생포한 뒤, 연이어 난포 · 마도 · 장흥부병영 · 강진현 · 가리포를 차례로 함락하고

해남으로 침입하려 하자 섬을 방어하고 왜구를 격퇴한 공으로 장흥부사가 되었다

사후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변응성(應星 · 1552~ ?)장군 묘

조선 중기 무신으로 공조판서 겸 도총관 협의 아들인데 묘는 위쪽에 있다

선조 12년(1579) 무과에 급제하였고 강계부사를 역임하고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물러나 있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주부사에 임명되었으나

경주에 도착하였을 때 이미 경주가 왜군에 점령된 뒤여서 부임하지는 못했지만

돌아가지 않고 경상우수사가 되어 경주읍성 탈환전에 참가하였다

그 후 이천부사가 되어 여주목사 원호와 협력하여 남한강에서 적을 무찔렀다

이것이 이른바 「마탄전투」다. 후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고려장 터 안내판

 

 

 

 

고려장(高麗葬)

고구려시대 때의 장사를 지내던 풍속으로 늙고 병든 사람을 묘실에 옮겨 두었다가

죽으면 거기에 안치하고 금은보화를 넣은 다음 돌을 쌓아 봉토하였다 한다

 

 

 

 

고려장 터

이러한 「고려장」 풍습은 고려시대까지 병든 노인을 깊은 산골에 버리는 풍습으로 전해졌으며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의 예조 교지의 내용을 보면 일부 행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이곳 고려장 터는 바로 이러한 고려장을 실행하던 구체적인 장소였던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지표조사에 따르면 삼국시대 석관분이라 한다

 

 

 

 

다산길 5코스 안내판

 

 

 

 

숲속 쉼터

고려장 터에서 다시 변협장군 묘로 내려와 잠시 걸으면 있다

 

 

 

 

잣나무 숲

숲속 쉼터를 지나 잠시 걸으면 좌측에 안내판이 있다

 

 

 

 

잣나무 아래에서 졸고있는 새

조안면이 새가 편안히 깃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더니 무슨 새가 30cm 안에서 촬영을 해도 날아가려 하지 않는다

혹시 병이 들었나 염려하며 편히 쉬라며 몇 발자국 옮겨 잣송이를 까다 돌아보니 없다

 

 

 

 

잣송이

숲에 잣송이가 많이 떨어져 있다

이 잣송이를 까고 새가 궁굼해 돌아보니 날아가고 없었다

 

 

 

 

한 송이에서 나온 잣이다

 

 

 

 

운길산

송촌리에서 봤다

 

 

 

 

송촌초등학교

 

 

 

 

송촌초등학교 채소밭

 

 

 

 

 이덕형 별서터로 가는 길

 

 

 

 

읍수정(挹秀亭) · 은행나무 보호수(2본)

한음 이덕형 선생은 부친을 봉양하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산수가 빼어난 이곳에 별서인 대아당을 지으셨다

선조 33년(1605) 45세 때의 일이다

현재는 공이 말을 타고 내릴 때 쓰던 노둣돌만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무렵 공이 손수 심은 은행나무 2그루는 공의 고귀한 얼이 서린 듯 지금껏 꿋꿋이 서 있다

이곳은 1611년 선생을 찾아온 노계 박인로가 공의 심경을 읊은 사제곡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

나무 높이 15m · 나무둘레 5.5m · 나무 나이 400년 · 지정일자 1982. 10. 15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 · 1561~1613) 별서 터 빗돌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 · 1561~1613) 별서 터

한음 이덕형은 조선 최연소인 31세에 대제학 · 42세에 영의정에 오른 뒤

45세 되던 1605년 부친을 모시고 용진 사제촌의 한적하고 소박한 별서로 왔다

집의 이름을 《대아당(大雅堂)》이라 불렀고 읍수정(挹秀亭)과 이로정(怡老亭)이라는 두 개의 정자를 지었다

읍수는 주위의 빼어난 경치를 가져온다는 의미이고, 이로는 벼슬에서 물러나 만년을 즐긴다는 뜻에서다

서실 이름을 애일(愛日)이라 한 것은 '하루하루의 시간을 아끼고 사랑하여 어버이에게 효도한다'는 뜻에서다

 

 

 

 

한음이 말을 타고 내릴 때 쓰던 노둣돌과 공이 손수 심은 은행나무다

 

 

 

 

송촌2리마을회관

송촌2리마을은 운길산을 소재한 마을로 한음 선생이 여생을 보낸곳이기도 하며

딸기 수확 및 장담그기 등 각종 전통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마을이다

또 마을공연장을 이용하여 수풍음악회 등 문화적 활동을 이어가는 마을로

2010년 마을가꾸기 우수 마을 콘테스트에서 녹색마을상을 받았다

 

 

 

 

연세중학교

이곳에서 운길산역과 청량리역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슬로시티 길 안내판

 

 

 

 

GPS를 늦게 켜, 걸은 거리는 안내판에 써있는 거리로 대체함

걸은 거리 2.88km, 소요시간 4시간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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