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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강화도 마니산

T.V에서 본 겨울 마니산 영상이 너무 멋지다고 했더니 빅터가 그럼 가자고 한다
원래 마니산 이름은 우두머리라는 뜻의 「두악(頭嶽)」으로 고려사 · 세종실록지리지 · 태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으며
마리는 머리를 뜻하며, 민족의 머리로 상징되어 민족의 영산으로 불러오고 있다

 

 

마니산
배차 간격이 2~3시간인 700-1번 버스로 도착한 마니산 국민관광지에서 봤다
멀리서 웃으며 반기는 듯하다

 

 

 

 

작은 다리

입장료 1,500원을 내고 잠시 걸으니 계단로와 단군로 갈림길에서 단군로 코스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넜다

 

 

 

 

마루금으로 오르는 계단

다리를 건너 계곡을 따라 잠시 걸으면 오른쪽에 있다

 

 

 

 

한얼교 중앙회 한얼온궁
마루금을 잠시 걸으면  오른쪽 숲 사이로 보인다
빅터가 자켓을 벗고 배낭을 정리하는 사이 잠시 내려갔다

 

 

 

 

한얼교 중앙회 한얼온궁을 다녀온 사이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졌다
회사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이 지나갔다고 한다

 

 

 

 

참성단
사람들과 계단을 올라 안부를 지나니 상수리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다시 잠시 오르니 참성단과 장화리 갈림길이다

 

 

 

 

흥왕리 마을
미루지돈대가 있는 마을이다

 

 

 

 

석모도
다시 오른쪽 장화리 방향이다

 

 

 

 

삼칠이계단
2006년 6월 25일 준공되었다는 삼칠이계단 안내판이다

 

 

 

 

삼칠이계단

오르는 계단마다 칠선녀계단 · 웅녀계단 등이 나오는데
이름이 생소한 걸로 보아 지난 번 마니산을 다녀간 게 2006년 이전인 듯하다

 

 

 

 

선수선착장 · 후포항선착장
마을이 있는 곳으로 계단을 올라 돌아 봤다

 

 

 

 

신도 · 시도 · 모도
물 빠진 바다에 나른하게 누운 듯 보이는 섬이다
신도 벚나무가 좋아 봄에 다시 찾겠다는 생각을 한 게 언젠인가 싶다

 

 

 

 

분오리돈대 마루금

다시 왼쪽으로 분오리돈대로 가는 마루금이 있다

 

 

 

 

참성단
안부를 지나 바위에 오르니 보인다
실은 설산을 기대하고 왔는데 며칠 전 내린 비로 씻긴 듯하다

 

 

 

 

참성단 소사나무 / 국가지정문화재 제502호
나무 데크길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니 시산제를 지내러 회사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로 가득찼다
그린색과 노란색 쪼끼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다
*
나무 나이 150년 ·  나무 높이 4.8m

 

 

 

 

참성단 / 사적 제136호
단군이 쌓고 제사를 지냈다는 높이 6m의 제단이다
이곳에서 전국체육대회 성화가 채화되며 해마다 개천절에는 개천대제가 거행된다

 

 

 

 

함허동천 · 정수사 마루금
헬기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참성단에서 봤다

 

 

 

 

참성단

 

 

 

 

후포항선착장 · 외포리선착장 · 석모도

참성단 오른쪽이다

 

 

 

 

진강산 · 혈구산 · 고려산

다시 오른쪽 방향이다

 

 

 

 

함허동천 · 정수사 방향안내판

 

 

 

 

참성단 중수비 /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
참성단 중수비는 참성단을 개축한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암벽 정남향으로 가로 50cm · 세로 105cm의 음곽 테두리를 마련하고 그 안에 250글자를 새겨 넣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강화유수 최석항은 조선 숙종 43년(1717) 봄에 관내를 순시하면서

마니산에 올랐다가 참성단의 상당부분이 무너진 것을 보고 선두포별장과 전등사 총섭승에게 명하여 공사를 마쳤다고 한다

 

 

 

 

참성단 중수비
"우리나라 국토 수천여 리를 통틀어 강화는 나라의 방패가 되는 중요한 곳이며 강화 수백 리에서도 마니산은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 산 서쪽 제일 높은 곳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든 곳이 있으니 이곳이 참성단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돌을 쌓아 대를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던 곳이라 한다
돌이켜 보건대 연대가 오래되어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 서쪽과 북쪽 양면이 반쯤 무너졌으며
동쪽 계단 또한 많이 기울어져 이 고을 여러 어른들이 서로 더불어 개탄한지 오래되었다
부족한 내가 이곳 유수로 와 이 고을을 지키게 되어 올 봄에 고을을 두루 살피면서 시험 삼아 한번 올라가 보았는데 분연히 이곳을 중수할 뜻이 생겨

 선두포 별장 김덕하 · 전등사 총섭승 신묵에게 그 일을 주관하게 하여 다시 쌓게 하니 열흘이 채 아니 되어 공역을 다 마쳤다
정유(1717 · 숙종 43) 단양월(端陽月 · 5월)에 (강화)유수 최석항이 기록하다"

 

 

 

 

정수사 갈림길 마루금

중수비에서 작은 언덕을 오르니 멀리 보인다

 

 

 

 

참성단 정수사 마루금
예전과 달리 로프와 다리가 있어 안전하고 편하게 걸을 수 있다

 

 

 

 

다시 작은 봉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참성단
계단을 올라서 봤다

 

 

 

 

다시 작은 바위봉을 오른다

 

 

 

 

송설소나무
떡을 켜켜이 쌓아놓은 듯한 봉에 있다

 

 

 

 

송설소나무 전망대
안내판에 신도 · 시도 · 모도 · 장봉도가 있다

 

 

 

 

분오리저수지 · 동검도
전망대에서 내려서면 함허동천과 정수사 갈림길이 있다
그 마루금 갈림길에서 봤다

 

 

 

 

길상산
가운데 여우 꼬리 같이 생긴 것 맞은 편 산이다
꼬리 오른쪽이 함허동천 · 왼쪽이 이건창 생가가 있는 사기리다

 

 

 

 

문수산
왼쪽 진강산 오른쪽 섬처럼 보이는 산이다

 

 

 

 

길동무 빅터

정수사 갈림길을 지나 함허동천으로 내려가다
전망이 좋은 바위에서 분오리저수지와 동검도를 보는 있다

 

 

 

 

길상산 · 동검도
함허동천마을 건너로 보인다
강화나들길에 포함되어 있는 코스다

 

 

 

 

함허정

 

 

 

 

함허동천 야영장

 

 

 

 

강남교회
1905년도에 세워진 교회로 함허동천야영장을 지나면 있다

 

 

 

 

함허동천상회
이건창 생가로 가는 길이다

 

 

 

 

분청사기 요지
조선시대 분청사기 가마터로 추정되며 가마의 크기는 현재 남아있는 규모로 보아 60m×80m로 짐작된다
주변 일대에 분청사기 편들과 분청사기를 구울 때 사용되었던 굽받침 등이 산재해 있으며 이를 통해 15세기 경 가마터로 추정할 수 있다
도요지가 위치해 있는 「사기리」란 여기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분청사기 편

사진을 만들려 하니 옆에서 보던 빅터가 몇 개를 주워와 보태준다

 

 

 

 

사기리 안내판
분청사기 요지에서 잠시 걸으면 왼쪽으로 이건창 생가가 보인다
작은 밤색 안내판이 이건창 생가 안내판이다

 

 

 

 

이건창(李建昌 1852~1898) 생가 / 기념물 30호
조선시대 문신이자 대문장가로 충청우도 · 경기도 암행어사 등을 지내면서 관리들의 비행을 단속하고 백성들의 구휼에 힘썼다
저서 「당의통락」은 파당과 족친을 초월하여 공정한 입장에서 당쟁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기술한 명저이다

 

 

 

 

이건창의 조부 이시원(1790~1866) 묘
조선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아우 지원과 함께 유서를 남기고

죽어 귀신이라도 적을 물리치겠다는 각오로 음독 자결하였다

*
저서로 시문 10권 · 고금서 1백여 권 등이 있다

 

 

 

 

시원의 고조부 이대성(1651~1718) 묘
정부인 풍산홍씨부좌(貞夫人 豐山洪氏祔)
증이조판서 행가선대부((贈吏曹判書行嘉善大夫)
호조참판 이공대성지묘(戶曹參判 李公大成之墓)

 

 

 

 

탱자나무 / 천연기념물 제79호
이 나무는 4월이면 잎보다 지름 3~5cm의 흰꽃이 먼저 피고 열매를 맺는 가을이면 노랗게 익는다
수령 400년 · 높이 3.8m · 땅 위 2.8m 높이에서 세 갈래로 갈라져 용트림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가지의 굵기로 미루어 볼 때 매우 컸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현재 대부분 가지가 죽고 동쪽 가지만 살아 있다
*
이건창 생가 길 건너에 있다

 

 

 

 

천연기념물 제79호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빗돌
강화도는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몽고의 침입을 피해 있었던 곳이며 조선 인조(재위 1623∼1649)도 정묘호란(1627) 때 난을 피했던 장소이다
이 때 외적을 막는 수단으로 강화도에 성을 쌓고 성 바깥 쪽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외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탱자나무는 그 때 심은 것이 살아남은 것으로 추측된다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심은 국토방위의 유물로서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한계선인 강화도에 자리하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길상산
오른쪽 펜션이 있는 곳이 마루금에서 볼 때 꼬리처럼 생긴 곳이다

 

 

 

 

이건창 생가 버스정류장
1시간 마다 지나는 1번 버스를 5분여 만에 탔으니 행운이다
또 1번 버스에서 내린 온수리에서 다시 6분만에 700번 버스를 탔다
마니산이 웃으며 반긴 행운인다 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8.1km, 소요시간 5시간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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