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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종묘

가벼운 산책길로 「창덕궁 후원」을 선택했다

인터넷 예약을 하려니 마지막 회인 오후 4시 입장권이 달랑 한 장 남아 있다

너무 늦다 싶어 다음 날인 일요일로 검색하니 표가 아예 없다

잠시 생각하다 늦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생각날 때 가자며 4시 입장권을 예약했다

실컷 늦잠을 자고 T.V로 시간을 보내다 근처 종묘를 들릴 생각이 났다

 

 

월남 이상재 동상

종묘광장공원을 지나 종묘 외대문 옆에 있다

 

 

 

 

종묘 외대문

종묘엔 조선 태조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27대 519년을 이끌었던 왕과 왕비들의 신주가 모셔져 있는데

그 중 묘호를 받지 못한 연산군과 광해군 두 명의 왕은 신주가 없다

*

종묘 정문이다

 

 

 

 

종묘 세계문화유산비

외대문을 들어서면 역대 왕과 왕비가 다녔다는 참도 옆에 있다

이곳에서 향대청으로 갔다

 

 

 

 

망묘루(望廟樓)

종묘를 관리하던 관원들이 업무를 보던 곳이다

망묘루는 종묘의 정전을 바라보며 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

공민왕 신당 옆에 있다

 

 

 

 

공민왕 신당(恭愍王神堂)

고려공민왕영정봉안지당(高麗恭愍王影幀奉安之堂)이 정식 이름이다

 

 

 

 

공민왕 신당(恭愍王神堂) 내부

고려 31대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종묘에 고려 왕을 모셨다는 점이 특이하지만 그 이유는 정확히 알수는 없다

역성혁명의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의도와 종묘를 창건할 때 공민왕 영정이 바람에 실려 종묘 경내에 떨어졌는데

조정에서 회의 끝에 그 영정을 봉안하기로 하여 공민왕 신당이 건립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 31대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영정

사당 정면에 있다

 

 

 

 

공민왕 말 그림

영정 왼쪽으로 공민왕이 친히 그렸다고 전하는 말 그림이다

 

 

 

 

향대청 행각(香大廳行閣) · 종묘 교육홍보관

종묘제례 및 제례악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요 솔치된 전시공간이다

제1전시실은 종묘제례 영상물을 상영하며 제2전시실은 종묘 신설과 제수신설을 재현하여 전시하고 있다

 

 

 

 

향로(香路)

전석(磚石)이 깔려있는 길로 종묘제례 때 향과 축문을 모시는 길이라 하여 향로라 한다

이 길은 신로 · 신향로 · 향어로 · 어로 · 세자로와 같이 존엄을 나타내기 위해 다른 길과 다르게 전석을 깔아 차별을 두고 밟고 다니지 못하게 하였다

종묘의궤수록에는 이 길이 향대청 밖으로 계속 이어져 남북으로 각각 외대문 앞과 재궁 옆의 길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향대청(香大廳)

제례에 사용할 향과 축문 · 폐백과 같은 제사 예물을 보관하는 장소이자 제향에 나갈 제관들이 제복으로 갈아입고 기다리던 곳이다

 

 

 

 

현장학습

선생님과 학생인 듯 종묘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알아 듣기 쉬워 잠시 들어보았다

 

 

 

 

향대청 제2전시실

신주를 모신 정전 내부 · 태실 1칸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뒤쪽으론 향 ·· 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축문

태조고황제의 제향에 사용하는 축문이다

 

 

 

 

태조 옥책 · 옥책함 · 정조 죽책

태조 옥책은 숙종 9년(1683) 정의광덕이라는 시호를 올릴 때 태조 생전의 공덕을 기리는 내용들을 옥돌에 새겨 만든 책이다

*

옥책함은 옥책을 보관하는 함으로 표면에 붉은 칠을 한 다음 금으로 봉황 · 매화 · 난초 · 대나무 등의 문양을 그렸고 뚜껑에는 자물쇠를 달았다

*

정조죽책은 영조대왕이 정조를 세손으로 임명할 때 내린 문서의 매용을 대나무 조각에 금으로 글을 새겨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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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은 왕과 왕비의 공덕을 기록하여 만든 금책 · 옥책 · 죽책 등을 보관하는 장이다

 

 

 

 

태조금보 · 신의고황후 옥보 · 보통 · 보함

태조금보는 태조의 시호 "강헌 지인계운 응천조통 광훈영명 성문신무 정의광덕 대왕지보"를 새긴 금으로 만든 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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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고황후 옥보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 1899년에 태조와 비를 고황제와 고황후로 추존하면서 옥으로 만든 황후의 도장이다

*

보통은 어보를 담는 내함으로 구리 · 주석 · 납을 합금으로 만들었고 내부에는 붉은 비단 천을 발랐다

*

보함은 보통을 담은 외함으로 뚜껑에는 거북이 모양의 손잡이가 있으며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

*

보장은 왕과 왕비의 시호를 새긴 금보 · 은보 · 옥보를 보관하는 장이다

 

 

 

 

종묘 일간도(宗廟 一間圖)

종묘의궤에 수록되어 있는 신실 한 칸의 배치도이다

신주를 모신 신주장을 중심으로 서쪽에 책장 동쪽에 보장이 있다

신주장 앞의 신탑에는 궤가 놓여 있고 그 앞에 제상과 좌우에 봉선과 황개가 놓여있다

 

 

 

 

재궁의 어재실

임금이 제례를 준비하던 곳이다

 

 

 

 

어재실 내부

용교의(龍交椅) · 모란병풍 · 십이장복병풍이 있다

 

 

 

 

어재실 드므

드므란 넓적하게 생긴 큰 독이라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로

화마(火魔)가 물에 비친 제 모습에 놀라 도망가게 한다는 주술적 의미가 있으며 화재가 났을 때 방화수로 사용하였다

 

 

 

 

세자 재실(世子齋室)

어재실 동쪽에 세자가 머물렀던 곳이다

 

 

 

 

모란병풍 · 제기도병풍

모란병풍은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며 꽃 중에 제일가는 모란 그림을 병풍으로 만들어 각종 행사에 사용하였다

제기도병풍은 10폭으로 왕실 뿐만 아니라 일반 사대부집에서도 애호하던 제기를 그리고 이름을 적었다

 

 

 

 

어목욕청(御沐浴廳)

임금이 목욕재계하던 곳이다

 

 

 

 

소여(小輿)

종묘제례 때 임금님께서 궁궐에서 종묘 앞까지는 대여를 타고 오시며

소여는 종묘 안에서 이동할 때 사용하던 가마다

어목욕청 안이다

 

 

 

 

찬막단(餐幕檀)

전사청에서 만든 제사 음식을 제상 위에 차리기 전에 검사하던 곳이다

*

찬막단 오른쪽 전사청 · 왼쪽 수복방이다

수복방은 종묘를 지키고 청소하고 제사에 관한 일을 하던 사람들이 거처하는 건물이다

 

 

 

 

전하판위 · 세자판위

제례 때 제관이 정전 동문으로 들어와 잠시 멈추어 예를 갖추는 자리로

왕이 멈추어 서는 자리는 전하판위 · 세자의 자리는 세자판위라 한다

 

 

 

 

종묘 정전(宗廟正殿)

길게 펼쳐진 1층짜리 건축물로 검은색 지붕과 붉은색 기둥이 늘어선 모습은

전체적으로 엄숙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소박하고 간결하게 꾸며져 있다

 

 

 

 

정전 기둥

궁궐이나 유명한 옛 건축물에는 어김없이 장식된 화려한 단청은 고사하고 흔한 조각조차 없다

장식이라고는 동서쪽 지붕에 있는 악귀를 막아 주는 잡상이 전부다

정전은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였기 때문에 이렇게 장식 없이 간결하게 만들었다

 

 

 

 

공신당(功臣堂)

정전에 모신 역대 왕들의 공신들 위폐를 모신 16칸짜리 사당이다

공신당에는 모두 83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는데

이 중 이황과 이이는 공신당 · 성균관 · 자손 3곳에서 신주를 모셔져 있어 「트리플 크라운」이다

*

정전 월대 아래 동쪽에 있다

 

 

 

 

칠사당(七祀堂)

일곱의 작은 신들에게 왕실과 궁궐의 모든 일과 만백성의 생활이 아무 탈없이 잘 풀리도록 기원하는 사당이다

칠사는 봄의 사명(司命)과 사호(司戶) · 여름의 사조(司竈)와 중류(中霤) · 가을의 국문(國門)과 공려(公厲) · 겨울의 국행(國行)을 이르는 말이다

칠사에게 지내는 제사는 토속신앙과 유교사상이 결합된 국가 의례였다

 

 

 

 

귀룽나무(장미과)

5월에 흰꽃이 피며, 열매는 7월에 검게 익는다

어린 잎은 식용하며 열매는 날것으로 먹을 수 있다

 

 

 

 

영녕전 정문

 

 

 

 

영녕전(永寧殿) / 보물 제821호

세종 3년(1421) 정종의 신주를 정전에 모시며 신실이 부족하자 정전에 모시고 있던 신주를 다른 곳에 옮겨 모시기 위해 새로 지은 별묘다

그 이름은 「왕실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영녕전은 신주를 정전에서 옮겨왔다는 뜻에서 「조묘」라고도 한다

총 16칸으로 이루어진 영녕전은 정전에 비해 규모도 작고 모셔진 신주도 34위로 적다

 

 

 

 

악공청(樂工廳)

종묘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악기를 준비하고 기다리며 연습도 하던 곳이다

 

 

 

 

참도(參道)

외대문을 들어서면 거칠고 울퉁불퉁한 박석이 세가닥 길로 깔려있다

가운데 길은 혼령이 다니는 신로와 향 · 축문 · 폐백 등 제사 예물이 오가는 향로가 합쳐진 「신향로」이고

외대문에서 볼 때 동측(오른쪽)은 왕이 다니는 「어로」 · 서쪽(왼쪽)은 왕세자가 다니는 「세자로」이다

바닥에 거친 돌을 사용한 것은 경박스럽게 움직이지 말고 고개를 숙이고 진중하게 걸으라는 뜻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9km · 소요시간 1시간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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