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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길상사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삼청각 · 청운각과 더불어 3대 요리집 중 하나였던 대원각을
주인 김영한(법명 길상화)씨가 1987년 무소유의 법정 스님께 시주하면서 요정 대원각은 길상사로 바뀌었다
길상사는 그녀의 법명인 길상화를 본따서 지었다

 

 

삼각산 길상사(三角山 吉祥寺)

 

 

 

 

봉황(鳳凰)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서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다

 

 

 

 

여기 침묵의 그늘에서 그대를 맑히라
이 부드러운 바람결에 그대 향기를 실으라
그대 아름다운 강물로 흐르라
오 그대 안 저 불멸의 달을 보라

 

 

 

 

관세음보살상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가 만들어 봉안한 석상으로 종교간 화해의 염원이 담긴 관세음보살상이다
"길상사의 뜻과 만든이의 예술혼이 시절 인연을 만나 이 도량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샘물 석조(石槽)

 

 

 

 

범종각(梵鐘閣)

 

 

 

 

범종(梵鐘)
전에는 여인들이 옷을 갈아 입는 곳이었다

 

 

 

 

설법전(說法殿)
묵언(默言)이 크게 써있다
템플스테이 하는 곳인데 하루 8시간 이상 참선을 한다

 

 

 

 

송월각(松月閣)
스님의 개인적인 처소다

 

 

 

 

능소화길

 

 

 

 

맑음은 개인의 청정을
향기로움은

그 청정의 사회적 메아리를 뜻합니다

 

 

 

 

길상선원(吉祥禪院)
재가자들을 위한 시민 선원이다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라
묵은 수렁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라

 

 

 

 

계곡 옆에 지어진 스님 거처다

 

 

 

 

숲에는 질서와 휴식이 그리고 고요와 평화가 있다

숲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안개와 구름, 달빛과 햇살을 받아들이고

새와 짐승들에게는 깃들일 보금자리를 베풀어준다

숲은 거부하지 않는다
자신을 할퀴는 폭풍우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너그럽게 받아들린다
- 법정 스님 「서있는 사람들 중에서 -

 

 

 

 

길상화 공덕비로 가는 다리

 

 

 

 

시주 길상화 공덕비
기명은 진향(眞香) · 필명은 자야(子夜)로 월북시인 백석을 지독히 사랑했다 한다
백석도 그녀를 위해 많은 연애시를 썼다고 한다
요정을 법정스님께 시주하고 수중 현금 2억 원은 백석문학상 기금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내 사랑 백석〉과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을 출간했다

 

 

 

 

시주 길상화 공덕비
고인의 2주기를 맞아 공덕비를 세웠다
불기 2545년(2001) 11월 21일

 

 

 

 

길상사 계곡
공덕비로 건너는 다리에서 봤다

 

 

 

 

능소화가 핀 문

 

 

 

 

적묵당(寂默堂)

 

 

 

 

무소유(無所有)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가 있다

 

 

 

 

적묵당(寂默堂)

 

 

 

 

극락전(極樂殿)
시주 길상화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미로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극락전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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