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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서대문독립공원

서대문독립공원은 1992년 8월 15일 개원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거하다 옥고를 치렀던 애국지사의 자주독립 정신을 후손에게 기억시키기 위해

2007년 4월 16일부터 재조성사업을 추진하여 독립문 · 역사관 · 독립관 · 순국선열추념탑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2009년 10월 28일 재개장했다

특히 그동안 시민들의 접근을 막았던 독립문을 112년 만에 시민에게 개방하였다

 

 

서대문독립공원

 

 

 

 

독립문(獨立門) / 사적 제32호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중국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세웠던 「영은문」을 철거하고

1898년 6월 독립협회에서 자주독립의 상징물로 시민의 기금을 모아 건립하였다

이 문은 원래 동남쪽으로 70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1979년 성산대로 공사 때문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영은문 주추(迎恩門 柱礎) / 사적 제33호

모화관의 정문인 영은문의 기둥을 받쳤던 초석이다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1407년(태종 7)에 서대문 밖 지금 위치에 모화루(慕華樓)를 짓고

1430년(세종 12)에는 모화관(慕華館)으로 이름을 바꾸고 홍살문을 세웠다

이후 1536년(중종 31)에 격이 낮은 홍살문을 없애고 청기와를 덮은 영조문(迎詔門)을 만들었으며 3년 뒤 이름을 영은문으로 고쳤다

독립협회를 설립한 서재필이 사대외교의 상징인 영은문을 없애고 독립문을 지을 것을 주장하여

그의 의견에 따라 1896년(건양 1)에 모화관을 수리하여 독립관으로 하고 영은문을 없앤 터에 독립문을 세웠다

 

 

 

 

금강소나무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로 적송 · 육송 · 미송이라고도 부른다

목재는 단단하고 잘 썩지 않으며 벌레가 생기거나 휘거나 갈라지지 않는다

 

 

 

 

송재 서재필 선생 상

3 · 1독립선언기념탑이 뒤에 있다

 

 

 

 

송재 서재필 선생 상

대한민국은 자주국가다. 독립신문을 높이 든 송재 서재필 선생의 동상이다

서재필 선생은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고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한국 독립의 상징인 독립문을 세웠다

시민들을 모아 나라의 독립과 개혁에 대한 토론을 시키고 만민공동회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 조차 요구를 반대하는 등 국민의 독립사상과 민권사상을 크게 신장시켰다

 

 

 

 

3 · 1독립선언기념탑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3 · 1독립선언기념탑

원래는 3 · 1운동 발원지인 탑골공원에 있었으나 1979년 공원 정비사업 때 철거되었다

이에 각계의 복원 건의가 잇달았고 그 뜻을 살려 항일운동의 터전인 독립공원에 원상태로 다시 세웠다

 

 

 

 

3 · 1독립선언기념탑 상부

 

 

 

 

3 · 1독립선언서

吾等은 玆에 我朝鮮의 獨立國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오등은 자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

탑 뒤에 있다

 

 

 

 

남산

언덕을 오르며 돌아 봤다

 

 

 

 

독립관

조선시대 중국사신들의 영접연과 전송연을 베풀던 영빈관의 하나인 모화관 건물을

1894년(갑오경장) 이후 서재필이 발의하고 독립협회에서 주도하여 개수한 후 독립관으로 개칭하고

이곳에서 애국토론회를 개최하여 자주 · 민권 · 자강사상을 고취하는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독립문과 함께 독립사상을 표현하였으나 일제에 의하여 철거되었다

현재는 복원하여 순국선열들의 위패 봉안과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

 

 

 

 

순국선열추념탑

애국지사들과 항일투사들이 가장 많이 옥고를 치른 조국수난의 현장이었던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하여

우리 산하와 해외 각처에서 조국 광복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

장렬히 순국하신 선열들의 얼을 되새기며 원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서울특별시에서 1992년 8월 15일에 건립하였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펜스 서너 칸마다 독립에 관한 사진과 글들이 있다

 

 

 

 

서대문형무소 순국선열 / 의열투쟁

일제의 한반도 침략전쟁에 앞장서 추진했던 일본인이나 친일파들을 처단하다가 피체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순국한 의사 · 열사이다 

 

 

 

 

서대문형무소 순국선열 / 국내 항일 · 비밀결사

일제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하여

일제와 맞서 싸우다 피체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애국지사이다

 

 

 

 

서대문형무소 순국선열 / 해외독립운동

중국 · 러시아 · 미국 · 일본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피체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거나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전경(2007)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1923년에 지어진 목조 건물로 일제강점기 이후 400여 명의 애국지사들이 사형, 순국한 장소다

 

 

 

 

서대문형무소 격벽장

 

 

 

 

서대문형무소 보안과 청사

2003년 지어진 지상 2층 · 지하 1층의 건물로

형무소 내 행정처리 및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취조 · 고문했던 장소다

 

 

 

 

경성감옥(1908)

일제가 그들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의병 및 애국계몽운동 인사들을 감금 · 탄압하기 위해

1908년에 세운 수용인원 500명 규모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감옥이다

 

 

 

 

서대문감옥(1920년대)

한일합방 이후 늘어나는 독립운동가들을 감금하기 위한 공간이 부족해지자

1912년 현재의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다른 감옥을 짓고 경성감옥이라 이름 붙이면서

1912년 경성감옥에서 서대문감옥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서대문형무소(1930년대)

1923년 서대문감옥에서 서대문형무소로 명칭 변경

이후 1945년까지 서대문형무소로 불리면서 일제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탄압 장소로 사용했다

 

 

 

 

서울구치소(1980년대)

해방 이후 경성형무소(1946) · 서울형무소(1950) · 서울교도소(1961) · 서울구치소(1967)로 명칭 변경

1987년 11월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908년 경성감옥 · 1920년 서대문감옥 등의 사진이 펜스에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망루가 보이는 담장이다

 

 

 

 

서대문독립공원 안내도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4.7km, 소요시간 4시간 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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