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도역사문화길로 불리는 강화나들길1코스는
지붕없는 박물관인 강화의 주요 문화유적지를 돌아 보는 코스로
강화나들길 안내서에 총거리 18km · 소요시간 6시간으로 되어있다
강화터미널
터미널 앞 조그만 웅덩이에서 물놀이하는 청둥오리들이 귀엽다
시점이다
강화군청
조금 늦은 시간 출발한데다 길이 막혀 강화우체국사거리를 지날 때 거의 12시가 되었다
일단 망한루를 지나면 식사가 어려워 군청 앞 식당에서 점심를 했다
망한루(望漢樓)
고려가 몽골의 제2차 침입에 대비해 고종 19년(1232) 고려궁지를 중심으로 둘러싼 강화산성의 동문이다
망한(望漢)은 한양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망한루(望漢樓) 천장
1층 천장에 동쪽을 상징하는 청용이 그려져있다
청룡 · 백호 · 주작 · 현무는 삼국시대에 고구려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다
긴 빨랫줄과 짓지 않는 개가 있는 집을 지난다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19m · 둘레 7m · 나이 600년 · 지정일자 1982. 10. 15
강화 성공회성당 / 사적 제424호
고요한 초대 주교가 1900년 11월 15일 건립한 동서 10칸 · 남북 4칸의 한식 중층건물로
서양의 바실리카식 교회건축 공간구성을 따르고 있으나 가구 구조는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는 점이 특징이다
용흥궁 외전
강화도령이라 불렸던 조선 철종(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 거처했던 잠저로
원래는 초가였으나 강화유수 정기세가 철종 4년(1853) 현재와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이라 했다
강화도령 첫사랑길 시점
용흥궁공원부터 철종 외가까지 가는 11.7km의 길이다
강화 삼일독립운동기념비
1994년 견자산에 이 기념비를 세웠다가 1995년 8월 28일 당시 만세운동발상지인 관청리 523번지 웃장터로
이전 재건립하였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기념비의 뜻을 알리고자 2011년 8월 9일 이곳 용흥동공원으로 이전하였다
강화문학관
강화문학관 1층에는 강화의 자랑스러운 문화 전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학전시관이 마련되어 있고
2층에는 오늘의 문학관이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고(故) 조경희선생의 문학세계와 생애를 전해주는 기념관이 있다
강화읍 용흥궁공원에 있다
승평문(昇平門)
강화 고려궁지(江華 高麗宮址) 외삼문이다
북관제묘로 가는 길이다
은행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25m · 둘레 6m · 나이 680년 · 지정일자 1982. 10. 15
북관제묘(關帝廟)
고종 29년(1892) 강화산성 수문장 윤의보가 사당을 건립하고 외삼문은 광무 10년(1906)에 중축한 것이다
유비 · 관우 · 장비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북관제묘 사당
지붕과 문이 비닐로 덮여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강화향교로 가는 길이다
한옥마을
강화향교(江華鄕校) / 인천 유형문화재 제34호
고려 인종 5년(1147) 내가면 고천리에서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고종 19년(1232) 갑곶리로 옮겼다가, 고종 46년(1259) 서도면 볼음도로 옮겼고
조선 인조 7년(1629)에 유수 이안눌이 위패를 모시고 명륜당을 세우는 등 비로서 완전한 체제를 갖추어 학궁이라 하였다 한다
현종 14년(1673) 유수 민시중이 남산골로 옮겼으나, 영조 7년(1731) 유수 유적기가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은수물약수터 · 빨래터
진송루(鎭松樓)
고려 고종 19년(1232) 도읍을 옮기고 궁궐을 지을 때 도성도 함께 쌓았는데
개성의 성곽과 비슷하게 내성 · 중성 · 외성으로 이루어졌으며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 현재 강화산성이다
원래는 흙으로 쌓았으나 숙종 3년(1677) 현재와 같은 석성을 이루었다
성곽길 오른쪽이 북장대로 오르는 길이다
강화산성은 길이 7,122m · 대문 4개 · 암문 4개 · 수문 2개 · 성문장청 2개가 있다
강화산성 북문이다
북장대 터
고려산
북장대 터에서 봤다
북녘 땅
한강 너머의 땅이다
북장대 마루금에서 봤다
오읍약수(五泣藥水)
고려의 강화 천도시 실향민들의 향수로 하늘 · 땅 · 임금 · 신하 · 백성이 울었다 하여 명명되었다는 설과
1232년 강화로 천도하여 2년간에 걸쳐 내성과 궁궐 · 관아를 건축할 때 날씨가 가물어 더욱 힘들었다 한다
고종은 북문 앞에 제단을 쌓고 기우제를 올렸고 제가 끝날 즈음 하늘에서 벼락이 큰 바위에 떨어져 갈라지며 물이 솟았으며
제를 지내던 모든 사람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오읍약수라 부른다는 설이 있다
새떼
대월초등학교
황대유 합장묘
통훈대부 군자감 상주판관 창원 황공대유 배숙부인 직산조씨지묘
(通訓大夫 軍資監 尙州判官 昌原 黃公大猷 配淑夫人 稷山趙氏之墓)
북녘이 고향인 사람들의 묘 같다
황무산길이다
혈구산 해넘이
월영대(月迎臺) 달터
달을 맞는 곳이란 뜻으로 샌드위치판넬에 써있다
월곶돈대 · 연미정(燕尾亭)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
월곶돈대 꼭대기에 세워져 있어 파주 · 김포시 · (북한)황해도 개풍군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언덕 위에 있다
조해루(朝海樓)
강화외성은 1233년 몽골의 침입에 맞서 강화 동쪽 해안 방어를 위해 적북돈대에서부터 초지진까지 쌓은 길이 23km의 성이다
높이 20척 · 폭 5척이고, 조해루 · 복파루 · 진해루 · 참경루 · 공조루 · 안해루 등의 문루 6개소 · 암문 6개소 · 수문 17개소를 설치했다고 한다
개경(開京)에서 천도한 정부가 38년간 육지로부터 보급물자를 지원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연미정(燕尾亭)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
한강과 임진강이 합하여 흐르다가 이곳에 이르러 두 갈래가 되어
한 줄기는 남쪽 ·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흘러 마치 제비꼬리처럼 생겼다 하여 연미정이라 하였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
강화 10경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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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공 황형 장군 택지비(莊武公黃衡將軍宅址碑) / 향토유적 제3호
조선 중기 무신이었던 황형(1459~1520) 장군의 옛 집터 비가 앞에 있다
연미정 서쪽 방향이다
연미정 남쪽 방향이다
월곶돈대
오가는 사람 없는 조용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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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스 종점은 갑곶돈대지만 밤이 늦어 연미정에서 마감했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3.2km, 소요시간 6시간 1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