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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서울 육상궁(칠궁)

서울 육상궁(毓祥宮 사적 제149호)은 영조의 생모이며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 원년(1724)에 세워 숙빈묘라 했으나 영조 29년(1753)에 승격시켜 육상궁이라 고쳐 불렀다
고종 19년(1882) 화재를 당하여 다음 해에 복구했다
육상궁은 칠궁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1908년에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 7개의 궁들을 이곳에 옮겼기 때문이다
칠궁은 육상궁 · 저경궁 · 대빈궁 · 연호궁 · 선희궁 · 경우궁 · 덕안궁을 일컫는데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친모로서 정비에 오르지 못한 7인의 신위를 모셔 제사지내는 곳이다

일반적으로는 칠궁(七宮)이라는 이름이 익숙하지만, 문화재로서는 서울 육상궁이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149호로 지정되어 있다

*

2022년 5월 10일 청와대가 일반인에 개방됨에 따라 함께 완전히 개방되었다

 

 

서울 육상궁 정문

하마비(下馬碑)가 옆에 있다

 

 

 

 

하마비(下馬碑)

 

 

 

 

서울 육상궁 재실(齋室)

조선 민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서울 육상궁 재실(齋室)

건물 주위의 뜰은 한국식 정원의 전형을 이루어 정숙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육상궁 재실(齋室)

송죽재 · 풍월헌이 있다

*

출입금지 구역이다

 

 

 

 

덕안궁 삼문

 

 

 

 

저경궁 · 대빈궁 · 선희궁 · 경우궁 · 덕안궁 감실과 신주 사진이다

 

 

 

 

덕안궁(德安宮)
덕안궁은 영친왕의 어머니이며 고종의 후궁인 순헌 귀비 엄씨(純獻貴妃 嚴氏)의 사당이다

순헌 귀비 엄씨는 1897년(광무 1)에 영친왕을 낳은 뒤 귀인으로 책봉되었고

고종이 엄씨가 거처할 궁을 경운궁(현재 덕수궁) 안에 지어 경선궁(慶善宮)이라 하였다

1900년(광무 4)에 순빈(淳嬪)에 봉해졌으며, 1901년(광무 5)에 순비(淳妃) · 1903년(광무 7)에 황귀비(皇貴妃) · 1910년(융희 4) 순헌 귀비로 진봉되었다

1911년 순헌 귀비 엄씨가 세상을 떠난 뒤 경선궁을 덕안궁이라 개칭하였다

1913년 태평로에 사당을 새로 지어 옮겨 모셨다가 1929년 육상궁으로 옮겼다

 

 

 

 

덕안궁(德安宮) 현판

 

 

 

 

저경궁 · 대빈궁 · 선희궁 · 경우궁

 

 

 

 

저경궁(儲慶宮) · 대빈궁(大嬪宮)

 

 

 

 

대빈궁(大嬪宮)

대빈궁은 경종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禧嬪張氏)의 사당이다

1701년(숙종 51)에 희빈 장씨가 사사된 후 장씨의 신위를 정동에 모셨다가

1722년(경종 2)에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으로 추존되면서 경행방에 사당을 세웠다

1870년(고종 7)에 육상궁 안으로 옮겨졌으나 1887년(고종 24)에 원래 있었던 경행방으로 옮겨졌고, 1908년에 다시 육상궁으로 옮겨졌다

*

계단과 기단이 높은 문에 검은색 경첩을 달아 왕비에 올랐던 희빈 장씨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대빈궁(大嬪宮) 현판

 

 

 

 

저경궁(儲慶宮)

저경궁은 추존 왕인 원종의 어머니 · 인빈 김씨(仁嬪金氏)의 사당이다

인빈 김씨는 선조의 후궁으로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을 낳았다

인조는 반정으로 즉위하면서 아버지를 원종으로 추존하였다

1755년(영조 31) 인빈의 신위를 원종의 옛 집인 송현궁(松峴宮)으로 옮기고 저경궁으로 개칭하였다

1870년(고종 7) 수빈 박씨의 사당인 경우궁 안 별묘로 옮겨졌다가 1908년에 육상궁으로 옮겨졌다

 

 

 

 

저경궁(儲慶宮) 현판

 

 

 

 

경우궁(景祐宮)

경우궁은 순조의 어머니이며 정조의 후궁인 유비 박씨(綏妃朴氏)의 사당이다

1822년(순조 22) 유비 박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창경궁 도총부 안에 신주를 모시고 현사궁(顯思宮)이라 하였다

1824년(순조 24)에는 별묘를 세워 경우궁이라 하였다

1886년(고종 23)에 인왕동으로 옮겨 지었다가 1908년 육상궁으로 옮겨졌다

*

선희궁(宣禧宮)

선희궁은 추존 왕 장조(사도세자)의 어머니이자 영조의 후궁인 영빈 이씨(暎嬪李氏)의 사당이다

영조는 1764년(영조 40) 영빈 이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에 사당을 의열묘(義烈廟)라 하였다

정조가 1788년(정조 12)에 묘호를 선희궁으로 고쳤다

1870년(고종 7)에 육상궁 안으로 옮겨졌으나 1897년(고종 34) 원래 있었던 순화방으로 옮겼다

1908년에 다시 육상궁으로 옮겨졌다

 

 

 

 

경우궁(景祐宮) 현판

 

 

 

 

저경궁 · 대빈궁 · 선희궁 · 경우궁

 

 

 

 

이안청(移安廳)

이안청은 신주를 임시로 보관하던 곳으로, 덕안궁을 바라보고 서쪽에 있다

원래는 각 궁마다 이안청이 하나씩 있었으나

1976년 이후 도시계획에 따라 경내가 축소되면서 이 권역에는 하나의 이안청만 남게 되었다

 

 

 

 

냉천정(冷泉亭)

건립 기록이 자세히 전해지지는 않으나 숙빈묘라는 이름으로 육상궁이 처음 건립된 영조 초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 두 칸은 온돌방 · 동쪽 한 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다

냉천정에는 영조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었다

 

 

 

 

냉천정(冷泉亭)

서쪽 두 칸은 온돌방 · 동쪽 한 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다

냉천정에는 영조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었다

 

 

 

 

난간

 

 

 

 

냉천정(冷泉亭)

 

 

 

 

자연(紫淵)

냉천정 남쪽 아래에 있는 네모난 연못으로 냉천에서 나오는 물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간다

화강암의 장대석을 쌓아 만들어졌으며 가로 7.5m · 세로 6.3m · 수심 0.9m이다

연못의 남쪽 면에는 자연(紫淵)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어 이 연못의 이름이 자연임을 알 수 있다

*

재실(齋室)이 보인다

 

 

 

 

재실 삼문

청와대 영빈관과 담을 하나 두고 붙어 있어 경호상 이유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다

 

 

 

 

육상궁 재실(齋室)

 

 

 

 

재실 협문

 

 

 

 

수복방(守僕房)

수복방은 냉천정을 바라보며 서쪽에 길게 자리잡고 있다

원래 육상궁에 딸린 시설이었으며 1753년(영조 29)에 육상묘가 육상궁으로 승격되면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육상궁(毓祥宮) 삼문

칠궁 권역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다

영조께서 즉위하시고 그 어머니인 숙빈 최씨를 기리기 위해 사당을 건립하고 처음에 숙빈묘라고 불렀다

그 후 즉위 30년에 걸쳐서 어머니에 대한 추송작업을 해나간다

그 결과 이곳은 조선조 시대 왕실사당으로서의 최고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육상궁(毓祥宮) 수구(水口)

 

 

 

 

육상궁 감실 · 연호궁 감실과 숙빈 최씨 신주 · 정빈 이씨 신주 사진

 

 

 

 

육상궁(毓祥宮)  · 연호궁(延祜宮) 감실

 

 

 

 

연호궁(延祜宮)

이안청이 양편에 있다

 

 

 

 

이안청(移安廳)

이안청은 신주를 임시로 보관하던 곳으로 육상궁과 연호궁의 앞쪽에 동서로 대칭되게 마주보고 있다

 

 

 

 

이안청(移安廳)

 

 

 

 

육상궁(毓祥宮)

육상궁은 영조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淑嬪崔氏)의 사당이다

1725년(영조 1) 경복궁 북쪽인 현재의 자리에 영조가 숙빈묘(淑嬪廟)를 세웠다

1744년(영조 20)에 묘호를 올려 육상묘(毓祥廟)라 하였고, 1753년(영조 29)에 묘(廟)를 궁(宮)으로 승격하여 육상궁으로 부르게 되었다

육상궁은 1882년(고종 19)에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이듬해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른다

*

연호궁(延祜宮)

연호궁은 추존 왕인 진종(효장세자)의 어머니이며 영조의 후궁인 정빈 이씨(靖嬪李氏)의 사당이다

정조가 즉위 후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추존하고 정빈을 위해 사당을 세워 연호궁이라 하였다

1870년(고종 7)에 육상궁에 합사되어 오늘에 이른다

 

 

 

 

연호궁(延祜宮) 현판

육상묘(毓祥廟) 현판이 안쪽에 있

 

 

 

 

육상묘(毓祥廟) 현판

 

 

 

 

육상궁 삼문

 

 

 

 

육상궁 화단

 

 

 

 

육상궁 협문

 

 

 

 

냉천(冷泉)

냉천정 뒤편에 있는 우물이다

냉천 북쪽 장대석에는 재위 3년째가 되던 1727년 3월 육상궁에 거동한 영조가 지은 오언시가 새겨져 있다

*

소박하고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형적인 정원 형태이다

 

 

 

 

냉천(冷泉) 장대석

영조 재위 3년째가 되던 1727년 3월 육상궁에 거동한 영조가 지은 오언시가 새겨져 있다

 

 

 

 

냉천(冷泉) 안내판

 

 

 

 

사각정자

냉천 뒤에 있다

 

 

 

 

냉천정(冷泉亭)

 

 

 

 

육상궁 협문

 

 

 

 

느티나무

 

 

 

 

덕안궁 삼문

 

 

 

 

칠궁 관람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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