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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효릉

효릉(孝陵 인종과 인성왕후)

효릉은 조선 12대 인종(仁宗 1515~1545 · 재위 1544~1545)과 인성왕후 박씨(仁聖王后 박씨 1514~1577)의 능이다

인종은 중종과 장경왕후의 아들로 태여났으나, 생모 장경왕후가 인종을 낳은 지 7일만에 세상을 떠나 문정왕후(중종의 세 번째 왕비)의 손에서 자랐다

1520년(중종 15)에 왕세자가 되었고 1544년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9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인성왕후는 1524년(중종 19)에 왕세자빈이 되었고, 인종이 왕위에 오른 후 왕비가 되었다

1577년(선조 10) 세상을 떠나 이듬해에 인종의 능 옆에 모셔졌다

*

조선왕릉 40기 중 유일하게 미개방으로 남아 있던 효릉이 9월 7일 개방됨으로써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는 조선왕릉 전체가 관람객을 맞게 되었고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후속 조건이었던 「조선왕릉 40기 전체 개방」 약속도 실현되었다

 

 

효릉 · 조선왕실 태실  · 분묘군 정문

*

(2022. 12. 18)

 

 

 

 

서삼릉 안내도

효릉 · 조선왕실 태실  · 분묘군은 이번에 개방되었다

 

 

 

 

효릉 · 조선왕실 태실  · 분묘군 안내도

 

 

 

 

효릉 · 조선왕실 태실권역 관람 안내

 

 

 

 

효릉가는 길

 

 

 

 

검역실

효릉 능역의 토지 소유권자인 농림축산부의 종우(種牛 씨젖소)의 구제역 방지를 위해 약 15초간 검역한다

 

 

 

 

효릉 재실 터(孝陵 齋室址)

예전 재실이 있던 자리다

 

 

 

 

연지(蓮池)

원래 연지는 안쪽에 있었는데 메워지고 이곳에 작은 연지만 남았다

 

 

 

 

효릉 가는 길 왼쪽 초지

서삼릉은 원래 137만 평의 넓은 지역이었는데

젖소개량사업소  · 골프장 등에 땅을 양도하여 지금은 약 7만 평만 남았다

 

 

 

 

효릉 가는 길 오른쪽 초지  

 

 

 

 

금천교(禁川橋)

능역과 속세를 구분하는 물길을 건너는 돌다리다

*

지금은 나무데크를 위에 깔았다

 

 

 

 

금천교 장대석

들어가면서 왼쪽 장대석이다

 

 

 

 

금천교 장대석

오른쪽 장대석이다

 

 

 

 

홍살문

왕릉의 들머리임을 알리는 건축적 장치로 이곳을 지날 때 몸과 마음가짐을 엄숙히 하고

여기 모셔진 분들에게 경건한 예를 갖추라는 뜻으로 세워진 것이다

홍전문(紅箭門)이라고도 한다

 

 

 

 

효릉 안내판 · 상설도 해설

 

 

 

 

판위(版位)

헌관이 제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곳으로 이곳에서 절을 4배 한다

배위(拜位)라고도 한다

*

전주이씨 3분이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조상께 국궁4배를 실현한다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향로(香路) · 어로(御路)가 옆에 있다

 

 

 

 

정자각 (丁字閣)

정자각은 왕릉에서 제향을 지내는 건물로 침전이라고도 한다

정자각은 제향 음식을 차려 놓는 정전과 제례를 올리는 배위청이 합쳐져 있는데

건물 위에서 내려다본 모양이 丁(정) 자와 같아 정자각이라 불렀다

왕릉에는 왕과 왕비를 함께 모신 경우에도 정자각은 하나를 세우고 제향을 함께 지냈다

대한제국 때는 침전 안에 집 모양 장식인 당가를 설치하면서 건물의 규모를 늘려 건물 모양이 '一(일)'자형으로 바뀌었다

*

효릉이 뒤로 보인다

 

 

 

 

향로(香路) · 어로(御路)

신계(神階) · 어계(御階)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자각 잡상

정자각 지붕 가운데에는 사나운 형상을 하고 있는 해태가 있다

벽사의 의미로 만든 형상이라는데 어떤이는 고릴라 형상이라고도 한다

*

암튼 다른 정자각에서는 없는 형상이다

 

 

 

 

정자각 잡상

대당사부 · 손행자 · 저팔계  ·  용두(龍頭)이다

 

 

 

 

안산(案山)

안타깝게도 지금은 서울한양CC 클럽하우스가 안산 정상에 있다

 

 

 

 

수복방(守僕房)

능에서 화재나 부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키는 수복이 근무하는 곳이다

 

 

 

 

수라간(水剌間址)

왕릉에 제향을 지낼 때 쓸 음식을 간단히 데우는 등의 준비를 하는 곳이다

*

동자석이 앞에 있다

 

 

 

 

동자석

난간석 돌기둥으로 땅속에서 발굴되어 세워 놓았다

 

 

 

 

예감

윗돌(뚜껑)이 옆에 있다

 

 

 

 

효릉(孝陵) 

효릉은 쌍릉 형식으로 인종의 능에만 병풍석이 있다

효릉을 처음 조성할 당시에는 병풍석이 없었으나 1578년(선조 11) 인성왕후의 능을 조성한 이후

인종의 능에만 추가로 병풍석을 추가하였다

 

 

 

 

산신석

 

 

 

 

신로(神路)

정자각 뒤에서 능상으로 향하는 왕의 혼을 위한 길이다

 

 

 

 

효릉 비각(陵 碑閣)

왕릉에 모신 왕과 왕비의 생애와 업적을 적은 비석인 신도비나 표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보통은 정면 1칸의 작은 건물이지만 비석 수가 늘어나면 칸 수를 늘려 짓기도 했다

 

 

 

 

효릉 표석

조선국 인종대왕 효릉(朝鮮國 仁宗大王 陵) 인성왕후부좌(仁聖王后祔左)

 

 

 

 

정자각 · 비각

 

 

 

 

정자각 ·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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