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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

인천 동구의 금곡동과 창영동을 아우르는 《배다리마을》은

1883년 제물포 개항 이후 외국인 조계지에서 밀려난 조선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다

1917년 이 지역에 설립된 조선인촌주식회사는 인천의 편리한 교통과 제품 판매의 넓은 시장

그리고 배다리 마을 인근의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성장하였다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

 

 

 

 

2019 인천민속문화의 해 / 신 도깨비불 ! 인천성냥공장

1883년 개항 이후 개항장에서 밀려난 조선인들의 터전인 배다리는 인천 금곡동과 창영동을 중심으로 주변 일대를 포함하는 지명이다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되고 배다리에는 조선인을 위한 학교와 시장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냥공장을 비롯하여 간장과 술 · 고무 등을 만드는 산업시설이 번성했다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이 위치한 이곳은 1917년 문을 연 조선인촌주식회사 자리이다

조선인촌은 신의주와 평양에 지점을 내고 전국적인 판로를 개척한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성냥공장이었다

그리고 6 · 25전쟁 이후 조선인촌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기술이 인천에 퍼져 인근에 많은 성냥공장이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 공간에 개관했다

공장 폐업 이후 오랫동안 배다리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 동인천우체국과 같이

마을과 마을사람들을 위한 역사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뿌리내리고자 전시를 개최한다

 

 

 

 

전시개요

1883년 개항 이후 개항장에서 밀려난 조선인들의 터전인 배다리는 인천 금곡동과 창영동을 중심으로 주변 일대를 포함하는 지명이다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되고 배다리에는 조선인을 위한 학교와 시장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냥공장을 비롯하여 간장과 술 · 고무 등을 만드는 산업시설이 번성했다

성냥은 사람들에게 편리한 생활을 가져다준 발명품이다

성냥이 보급되기 전, 불을 얻기 힘들었던 옛 사람들은 한 번의 마찰로 불이 일어나는 모습이 「도깨비불」처럼 보여 인촌(燐寸)으로도 불렀다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이 위치한 이곳은 1917년 문을 연 조선인촌주식회사 자리이다

조선인촌은 멀리 신의주와 평양에 지점을 내고 전국으로 판로를 개척한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성냥공장이었다

1930년대 후반에 공장 직공이 800명 · 부업 종사자가 2,800명에 달해 그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6 · 25전쟁 이후 조선인촌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기술이 인천에 퍼져 인근에 많은 성냥공장이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대한성냥 · 고려성냥 · 인천성냥 등이 이 시기에 생겨났다

2019년 인천 민속문화의 해를 맞이하여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이 개관하였다

공장 폐업 이후 오랫동안 배다리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 동인천우체국과 같이 마을을 위한 공간으로 함께하겠다

 

 

 

 

불의 이용 역사시대

 

 

 

 

성냥의 역사를 이야기하다

1827년 영국에서 처음 개발된 성냥은 범어사 출신 개화승이었던 이동인(李東仁 ?~1881)이 1880년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1886년 독일 마이어(Meyer)상사가 제물포에 세창양행무역상사를 설립하면서 성냥을 수입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성냥공장이 만들어진 것은 1917년 10월 4일로 이 자리에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당시 만들던 성냥은 황린(黃燐) 성냥으로 독성이 있고, 인화점이 낮아 실온에서도 발화되는 등 매우 위험했다

그래서 1921년 황린성냥제조금지법에 의해 생산이 중단되고 이후 인화점이 높은 적린(赤燐) 성냥을 주로 만들게 되었다

성냥의 역사를 이야기하다에서는 성냥을 처음 접했을 때의 문화적 충격과 전국으로 확대된 성냥에서부터 성냥공장이 사라지는 과정을 담았다

 

 

 

 

부시쌈지 · 부시 · 인천시가도 · 일제강점기 성냥

 

 

 

 

부시쌈지 · 부시

 

 

 

 

부시 · 부시쌈지

 

 

 

 

인천시가도 / 일제강점기 1935년

인천의 주요 명소가 그려진 시가도에 조선인촌은 「マツチ會社 성냥회사」로 표기되었다

 

 

 

 

일제강점기 성냥 · 성냥라벨

(조선)대동인촌 · 조선동아인촌 · 조선명물 금강만두 · 비료조합

호랑표 갑성냥 · 조선총독부 철도국성냥 · 小公洞(소공동) 탁양월편 · 청주 선양

 

 

 

 

인천 성냥

朝鮮(조선)표 성냥 · 대한표 성냥

 

 

 

 

서울마포성냥공장

인천표 성냥 · 서울표 성냥

 

 

 

 

전국 성냥

충남 논산 부여 비사표성냥 · 전북 전주 군산 닭표성냥

 

 

 

 

조선인촌주식회사 입구 

 

 

 

 

조선인촌주식회사

공장 내 성냥이 적재되어 있는 모습이다

 

 

 

 

일제강점기 성냥공장 지도 · 대표적 성냥 상표

1827 영국 J. 워커 마찰성냥 발명

1845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성냥팔이 소녀」 발표

1880 개화승 이동인 성냥을 들여옴

1886년 외국인이 인천에 성냥공장을 세움

1917 조선인촌주식회사 설립

1947 석냥(성냥) 제조에 허가제 실시

 

 

 

 

일제강점기 성냥공장 지도

 

 

 

 

배다리 부업

"배다리에 성냥공장이 있었는데 빈 성냥갑 받아다가 풀로 붙여서 갖다주면 얼마씩 받아서 그걸로 반찬값 보태면서 그러고 살았어요

초가집 위에는 통풍도 잘되고 볕이 잘 들어서 풀칠한 성냥갑을 널면 잘 말랐는데

그래서 집집마다 지붕 위가 울긋불긋하고 그랬다고 그래도 그 때가 이웃간에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정O이 / 1943년생 인천 동구 송림1동

*

배다리와 함께한 성냥공장

조선인촌주식회사가 6 · 25전쟁을 겪으면서 폐업한 후 송림동 · 화수동 등에 많은 성냥공장이 생겼다

성냥공장 주변 배다리마을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성냥갑 붙이는 부업을 하는 등 성냥공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왔다

 

 

 

 

성냥공장 화재사건

 

 

 

 

성냥, 일상속으로

성냥불에는 「불처럼 일어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에 양초와 더불어 집들이 선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렇게 일상 깊숙이 자리했던 성냥은 라이터의 등장으로 점차 사라져갔고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용품이 되었다

*

예전에는 곽(갑)도 나무로 만들었지

이만한 통성냥도 나무, 곽(갑)성냥도 나무, 그 전에는 종이박스라는 게 없었어

 

 

 

 

그 시절 성냥은 집들이 선물로 인기만점이었다

 

 

 

 

선물용 성냥 / 이사와 미신

이사하는 날 불을 가져가는 것은 가운(家運)이 불길처럼 번창하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홍보용 성냥

도서출판 홍성사는 최근 판매촉진의 일환으로 성냥광고를 이용했다

 

 

 

 

홍보용 성냥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성냥 라벨의 광고 기능은 시대가 흐를수록 강화되었으며

1960~1970년대에는 음식점 · 다방 · 의류점 · 호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홍보 성냥이 사용되었다

*

화순반점 · 남포이용원 · 해바라기백화점 · 대한극장 · 한미이용원 · 라이온스관광호텔 등의 성냥이다

 

 

 

 

성냥제조 공정도

원목집하 / 축목 1단계 / 축목 2단계 / 두약제작 / 두약찍기 / 포장작업으로 되어 있다

 

 

 

 

원목집하 / 축목 1단계

압록강 일대 삼림지에서 성장이 빠르고 가공이 편리한 나무를 구입하여 공장으로 운송한다

나무를 일정한 크기로 절단 후, 판목을 만드는 작업이다

판목은 대략 폭 35~40cm · 두께 2.2~2.5cm로 만든다

*

성냥 제작용 절단 원목 및 합판이 아래에 있다

 

 

 

 

축목 2단계

판목을 성냥 크기에 맞게 재단한다

 

 

 

 

성냥개비

판목을 성냥 크기에 맞게 재단한 것이다

 

 

 

 

두약 제작성냥의 꼭지에 바르는 물질을 만드는 과정이다

 

 

 

 

두약 재료와 두약

두약재료는 공장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며 색상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두약찍기

파라핀을 찍은 후, 두약을 바르는 과정이다

 

 

 

 

포장작업

완성된 성냥을 성냥갑 안에 담는 작업이다

 

 

 

 

대한표 성냥

 

 

 

 

일본 고베 성냥 나무상자 · 됫박성냥 · 재활용 성냥 · 인천 성냥공장을 주제로 한 보고서 및 전시도록

안녕하세요. 배다리 / 화생방전 / 성냥을 통해 본 우리의 옛날 / 인천공단과 노동자들의 생활문화 등의 도록이 있다

 

 

 

 

蔚山(울산) 성냥

재활용 성냥통이다

 

 

 

 

蔚山(울산) 성냥 / 품질의 자랑

품질의 자랑 · 울산 TEL 27이 재미 있다

 

 

 

 

조선인촌주식회사

 

 

 

 

서울마포성냥공장 / 인천성냥

인천 성냥이 유명하니까 서울에 있는 성냥공장이 성냥의 이름을 인천성냥이라고 했다

 

 

 

 

판목을 만드는 과정의 영상이다

 

 

 

 

재털이 · 등잔 · 재활용 등잔 · 양초 · 운세재털이

 

 

 

 

운세재털이

사람들의 일상 깊숙이 자리했던 성냥은 라이터가 등장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1970년대 후반부터 오모산업 · 삼지실업 등이 일회용 라이터를 만들기 시작했고

주안공단에 자리잡은 삼지실업의 「불티나 라이터」는 1980년대에 라이터 중 올해의 힛트상품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

띠별로 동전을 넣고 운세를 보는 재털이다

 

 

 

 

하루방 · 학 · 풍년초

 

 

 

 

홍보용 성냥

금곡다방 · 호수다실 · 한일다방 · 정다방 등이 있다

 

 

 

 

성냥갑 원숭이는 무슨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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