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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화개정원

화개정원은 교동도의 제1봉 화개산(華蓋山 259m)을 품은 오색(역사문화 · 추억 · 평화 · 치유 · 물) 테마정원으로
모노레일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산 위 스카이워크에 오르면 화개정원과 교동도 풍경을 돌아볼 수 있다
또 연산군 유배지에 있는 유배지문화관에서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강화와 교동에 유배된 왕과 왕족들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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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산(華蓋山)은 산정의 형태가 마치 「솥뚜껑을 덮어 놓은 것」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었다

 

 

화개정원

스카이워크 전망대로 가는 모노레일 타는 곳이 앞에 있다

 

 

 

 

화개정원 안내판

화계정원 입장료 5천원 · 모노레일 12천원이다

모노레일을 타려면 평일인데도 1시간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화개정원

연산군 유배지 · 유배문화관 등을 보며 걸어서 올라갔다

 

 

 

 

연산군 유배지(圍籬安置 위리안치) 빗돌

위리안치는 유배된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이다

 

 

 

 

교동도 유배문화관

2018년 교동도 연산군 유배지에 세워졌다

강화도와 교동도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1천 년 동안 왕족들의 유배지였다

교동도는 급한 바다 물살이 외부인과의 접촉을 차단할 수 있고, 한양과 가까워 유배인들에 대한 정보가 쉽사리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고려시대 때에는 21대 희종 · 22대 강종 · 30대 충정왕 · 32대 우왕 · 33대 창왕 무려 다섯 명의 왕과

조선시대 때에는 광해군 · 안평대군 · 영창대군 · 사도세자의 장남 은언군 · 흥선대원군의 손자 영선군 등이 이곳에 유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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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치적 반대파를 잔혹하게 숙청하는 사화(士禍)를 일으키며 폭정을 일삼던 조선 10대 왕 연산군(1476∼1506)이

중종반정으로 폐위돼 위리안치(圍籬安置)된 곳이 교동도 화개정원 안에 있다

 

 

 

 

왕과왕족의 유배지

교동은 인구 약 3천명 · 면적 47㎦로 예성강 · 임진강 · 한강이 만나 형성된 조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다

대운도(戴雲島) · 혹은 고림(高林) · 달을신(達乙新)으로 불리다가 고목근현(高木根縣)으로 명명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757년(경덕왕 16) 교동현으로 개칭되었다가 고려시대 5도 양계 중 양광도(楊廣道)에 속하였다

1629년(인조 7) 경기수영 이전과 함께 교통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633년(인조 11)에 경기 · 황해 · 충청도를 총괄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되었다

1896년 교동군으로 되었다가 1914년 강화군에 편입되어 1934년 교동면으로 불리게 되었다

 

 

 

 

유배형(流配刑) · 왕족들의 유배지, 교동

유배지역은 함경도 · 평안도와 같은 국경지역과 제주도 · 남해도 · 진도 · 거제도 · 흑산도와 같은 섬으로 배정되었다

그 중 「강화」는 왕족의 유배지로 사용되었다

유배형은 차마 사형에 처하지 못하고 먼 곳으로 보내어 죽을 때까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다

유(流)는 황무지와 해변의 고을에 보내는 것이며, 배(配)는 유형지의 지명을 기록하는 것이다

유배형의 종류는 살던 곳과 유배가는 지역과의 거리를 기준으로 세 등급으로 구분하였으나

왕족이나 고워관료를 일정한 장소에 격리하는 안치(安置)와 같은 독특한 유배도 있었다

유배 가운데 가장 가혹한 것은 배가 아니면 육지와의 연결이 차단되는 절도(絶島) 안치이며

집 주위를 가시나무로 둘러 싸고 담장을 설치하여 그 곳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위리안치이다

강화와 교동은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죄인을 감시하기 쉬웠으며

왕족을 일반서민과 같이 먼 지방으로 보내기 어려운 측면을 모두 만족시키는 유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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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의 유배생활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제한되었고 글을 쓰는 것조차 함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유배생활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다만 왕조실록 등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연산군의 유배행로 · 연산군 유배지(圍籬安置 위리안치)

당시 백성들이 가시 울타리 안에 갇힌 연산군을 조롱하며 불렀던 노래가 연산군일기에 전한다
"충성은 거짓(詐謀)이요 / 거동은 교동일세 / 일만 흥청 어디 두고 / 석양 하늘 끝 뉘 따라가는고

두어라, 예 또한 각시집이니 / 날 새우기 무방하고 조용도 하네"
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 사모(紗帽)를 남을 속여넘기는 모략을 뜻하는 사모(詐謀)로 바꾸고

가시 울타리에 둘러싸인 것을 각시(婦)집으로 바꿔 주색에 빠졌던 왕을 비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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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나무를 두른 초가집 안에 들어가 앉은 연산군과 주변을 지키는 나인 · 군사 등을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연산군의 유배행로

소달구지를 타고 유배 온 연산군의 모습 등이 재현되어 있다

 

 

 

 

물의 정원

 

 

 

 

화개정원 포토존

 

 

 

 

화개산 모노레일

 

 

 

 

스카이워크

 

 

 

 

스카이워크

화개정원 · 교동도 · 북녘의 땅을 볼 수 있다

 

 

 

 

스카이워크

 

 

 

 

스카이워크

화개산 정상이 옆에 있다

 

 

 

 

스카이워크 유리 바닥을 통해 봤다

 

 

 

 

스카이워크

스카이워크 외곽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다

 

 

 

 

봉화산 · 어라산 · 봉화리마을

북녘의 산과 마을을 알 수 있게 유리에 써있다

 

 

 

 

봉화산 · 어라산 · 봉화리마을

고구저수지가 앞에 있다

 

 

 

 

고구저수지

 

 

 

 

고구저수지

고구저수지 주변에 집들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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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5 사진)

 

 

 

 

대룡리 · 화개정원

 

 

 

 

대룡리

대룡시장이 있는 마을이다

 

 

 

 

화개정원

고구저수지가 옆에 있다

 

 

 

 

석모도 · 미법도 · 서검도

말도 · 볼음도 · 아차도 · 주문도가 너머로 있다

 

 

 

 

석모도

기장섬이 앞에 있다

 

 

 

 

화개산

모노레일 타는 곳이 앞에 있다

 

 

 

 

교동도의 제1봉 화개산(華蓋山 259.6m) 정상목

고구저수지가 아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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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5 사진)

 

 

 

 

화개산 모노레일

 

 

 

 

화개산(華蓋山) 쉼터

산정의 형태가 마치 「솥뚜껑을 덮어 놓은 것」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었다

 

 

 

 

스카이워크

에전 한증막 같은 돌탑들이 앞에 있다

 

 

 

 

한증막

조선 후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둘레 15m · 직경 4.5m · 높이 3m · 면적 3.8평이다

마른 솔가지 등으로 안에 불을 지펴 온도가 높아지게 되면 재를 꺼내고 무성한 생솔가지를 바닥에 깔고

그 안에 들어가 땀을 낸 후 옆 시냇물로 몸을 식혀 한증을 반복하는 방법으로

선조들의 병환과 피로를 다스리는 민간요법으로 이용되어 온 시설로써 여럿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규모로 1970년 대까지 사용되었다

현대 찜질방의 근원이며 선조들의 치병과 목욕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학술적 가치가 있는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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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전 연산군 유배지(圍籬安置 위리안치) 빗돌 옆에 있었다

(2010. 9. 5 사진)

 

 

 

 

화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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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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