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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경서동 녹청자박물관~류사눌 묘

인천 경서동 녹청자박물관과 류사눌 묘를 가기 위한 걷기다

 

 

아시아드경기장역 4번출구

시점이다

 

 

 

 

경명대로

공촌사거리에서 왼쪽 길로 간다

 

 

 

 

롬비아군 참전기념비

카리브바다의 정기를 타고난 콜롬비아의 용사들 !

국제연합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가 마침내 611명의 고귀한 생명이 피를 흘렸다

우리는 그들을 길이 기념하고자 여기에 비를 세운다

- 대한민국 제33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 콜롬비아 국방장관 방한을 이에 기념하면서 -

*

경명공원이다

 

 

 

 

롬비아군 참전용사상

롬비아군 참전기념비 옆에 있다

 

 

 

 

경명공원 인공폭포

부모와 물놀이 나온 아이들이 많다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

 

 

 

 

정서진 · 경인아라뱃길 방향안내판

아시아드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 대각선 방향으로 간다

 

 

 

 

인천 서구 자전거도로 종합안내

아시아드 사거리에 있다

 

 

 

 

디딤돌 다육화원 안내판

 

 

 

 

디딤돌 다육화원 갤러리 · 승환포도원으로 가는 길이다

 

 

 

 

청라국제도시

승환포도원으로 가는 길에서 봤다

 

 

 

 

승환포도원

 

 

 

 

승환포도원에서 도요지로로 가는 길이다

 

 

 

 

인천 서구 녹청자박물관

인천 경서동 녹청자 도요지(가마터)에서 출토된 녹청자 조사연구를 위해

2002년 「녹청자 도요지(도기를 굽던 가마터) 사료관」을 열었고, 2012년 「녹청자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어 재개관했다

역사전시실 · 기획전시실이 있고, 도예 정규 교육과정과 1일 체험과정을 운영한다

 

 

 

 

인천 서구 대표 관광지

녹청자박물관 입구에 있다

 

 

 

 

녹청자박물관 역사전시실

 

 

 

 

녹청자란 무엇인가?

녹갈색의 유약을 발라 구운 조질청자(粗質靑磁)로 일상 생활용품으로 생산된 그릇이다

이들 녹청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던 초기 청자 이후에

도자기 제작에 있어 고려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지방 수요를 위해 만들어진 고려시대의 도자기이다

녹청자는 1965년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천시립박물관이 함께 인천 경서동 녹청자요지를 발굴조사하게 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대표적인 녹청자 가마터 유적으로는 인천 경서동과 해남 진산리 가마터가 있으며

근래에는 가마 유적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건물지나, 고분 등과 같은 유적에서도 동반 출토되고 있다

이들 유적에서 출토되는 녹청자 그릇의 형태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용기인 대접과 완 · 접시가 대부분 차지하며

그 외에도 자배기 · 병 · 항아리 · 매병 · 장고 등이 출토되고 있어 생활성이 강한 도자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녹청자는 양질의 고급 청자에 비해 그릇 표면이 다소 거칠고 투박하게 보이지만 질박하고도 독자적인 유색을 보여줘

다른 도자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멋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 도자기 역사에서도 중요한 맥락을 이루는 도자기라고 할 수 있다

 

 

 

 

인천 경서동 녹청자요지(국가사적 제211호) 조사 개요

인천 경서동 녹청자 요지는 1964년 당시 국립 현대미술관장이었던 이경성 선생이 당시 최순우 미술과장에게 경서동 가마의 발굴 경위를 알리게 되면서

인천시에서 주관하고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천시립박물관이 공동 발굴했던 도자기 생산 유적이다

이 유적은 바다와 면한 완만한 경사의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5년 12월부터 1966년 5월까지 4차에 걸쳐 조사되었다

 

 

 

 

인천 경서동 녹청자요지 발굴 개요 · 발굴 결과 및 의의

발굴 결과 가마는 동남 - 북서 방향으로 위치해 있으며 3차례에 걸쳐 개축하여 사용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노출된 가마의 폭은 120cm이며, 경작과 훼손으로 인하여 길이 7.3m 정도만 확인되었다

가마의 내부 구조는 특별한 시설물은 없으나 경사진 도침을 이용해서 도자기의 수평을 맞추는 구조로 되어 전형적인 고려시대 토축요(土築窯)이다

*

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의 대부분은 대접과 접시 등 생활용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곳에서 출토된 녹청자들을 통해 고려시대 양질의 고급 청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품질과 유형의 청자를 생산하였음이 확인되었으며

고려청자의 발생과 · 변천 · 특징 · 유통구조 등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연구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인천 경서동 녹청자 요지가 조사된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경서동 녹청자요지 보호각

 

 

 

 

청자장식기법 Ⅱ / 철화기법

청자 위에 유약을 시유하기 전 초벌상태에서 산화철이 주성분인 철화안료를 사용하여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장식기법이다

철화안료는 소성전에 적갈색을 띄고 있으나 유약을 발라 구워내면 흑갈색으로 발색된다

철화기법에서 많이 사용되는 문양으로는 국화문 · 당초문 · 모란문 등의 초화무늬가 대부분이다

 

 

 

 

 

인천국제CC

인천 경서동 녹청자요지로 가는 길이다

 

 

 

 

인천국제CC

인천 경서동 녹청자요지로 가는 길이다

 

 

 

 

인천 경서동 녹청자요지 안내판

울타리를 쳐논 곳이다

 

 

 

 

인천 경서동 녹청자요지 단면도

 

 

 

 

인천 녹청자요지(仁川 綠靑磁窯址) 사적 제211호 빗돌

이곳은 본래 해안과 맞닿아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던 지역으로

1965년부터 1966년까지 4차례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천시립박물관이 함께 발굴 · 조사한 곳으로 도자기를 생산했던 곳이다

지금은 인천국제컨트리클럽 안에 있으며 골프장 안의 언덕에는 조사된 가마터 이외에 여러 곳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에서 발굴 · 조사된 가마는 1개소로 조사 당시 도로가 새로 생기면서 유적이 파손된 상태였다

지금 남아 있는 가마의 길이는 7.3m · 폭은 1.05m이며 두 차례 고쳐 쓴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 가마는 경사가 20º 내외이며 바닥에 모래를 깔고 받침으로 도짐이(도침 陶枕)를 사용하여 그 위에 그릇을 얹어 구웠다

도짐이는 한쪽은 높게, 한쪽은 낮게 만들어 경사를 극복하도록 만들었다

이 유적을 발굴할 당시에는 유적이나 녹청자가 사용되었던 시기를 토기에서 청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기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릇의 모양과 문양 · 유약의 색 · 굽의 특징과 자료를 종합하여 비교한 결과

지방에서 사용하는 생활용 청자로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녹청자는 가마터 · 무덤유적 등 고려시대 유적에서 발견되는데

한국 청자의 품질이 다양화되는 단계에서 제작되어 청자의 보급에 크게 기여했을 것으로 평가된다

 

 

 

 

경고 안내판 · 노란 리본

도요지로와 경서로 25번길이 만나는 곳 왼쪽 길로, 가이아상베르2차아파트 202동 앞이다

앞의 좁은 길로 들어가야 한다

 

 

 

 

류사눌 묘로 가는 길이다

 

 

 

 

류사눌 묘로 가는 길로 인천국제컨트리클럽 울타리를 끼고 간다

 

 

 

 

가이아상베르2차아파트가 보인다

 

 

 

 

인천국제컨트리클럽 울타리를 끼고 간다

 

 

 

 

류사눌 묘로 가는 길이다

 

 

 

 

류사눌 묘 안내판

 

 

 

 

문화류씨(文化柳氏) 묘역

문숙공파는 대승공 류차달의 14세손인 류사눌에서부터 시작된다
류사눌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자는 이행(而行) ·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충장공 류임(柳臨)의 아들이며 하정공(夏亭公) 류관(시호 문간)의 조카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인 하정공 밑에서 학문에 힘써 문장에 능하고 경전에 밝았다

*

류사눌 묘가 가장 윗편에 위치하고 있다

 

 

 

 

문숙공 류사눌 묘(文肅公 柳思訥 墓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5호)

고려 말 · 조선 초 문신으로 1393년(태조 2) 식년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합격하였고, 1407년(태종 7) 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22년(세종 4)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이듬해 경기도관찰사로서 중군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를 역임하였다
1428년(세종 10) 한성부윤을 거쳐 예문관 대제학이 되었으며

1430년(세종 12) 악학제조(樂學提調)를 겸하여 박연(朴堧)과 함께 《아악보(雅樂譜)》를 완성하였으며

1435년(세종 17)에는 구악(舊樂)을 정리하는 등 맹사성(孟思誠) · 박연(朴堧) 등과 함께 조선 초기의 악학 정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438년(세종 20)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를 거쳐 이듬해 다시 예문관대제학이 되었으며, 또 그 이듬해 향년 66세로 졸했다

봉분 앞에는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있으며 그 앞에는 장대석(長臺石)으로 계절(階節을 쌓았으며

가운데에 장명등(長明燈)을 배치하였고 좌우로 문인석을 세워놓았다

 

 

 

 

류사눌 묘 안내판

청라국제도시역으로 가는 길이다

 

 

 

 

금산(金山 52.7m)

류사눌 묘가 있는 산이다

청라국제도시역으로 가면서 돌아 봤다

 

 

 

 

청락구제도시 · 경인아라뱃길 방향안내판

북인천 IC 입구 사거리다

 

 

 

 

경명대로를 걷다 돌아 봤다

 

 

 

 

하나금융그룹

 

 

 

 

청라국제도시역

 

 

 

 

청라국제도시역

마침점이다

 

 

 

 

걸은 거리 8.7km · 소요시간 5시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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