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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교동도 유배문화관

교동도 유배문화관은 2018년 교동도 연산군 유배지에 세워졌다

강화도와 교동도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1천 년 동안 왕족들의 유배지였다

교동도는 급한 바다 물살이 외부인과의 접촉을 차단할 수 있고, 한양과 가까워 유배인들에 대한 정보가 쉽사리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고려시대 때에는 21대 희종 · 22대 강종 · 30대 충정왕 · 32대 우왕 · 33대 창왕 무려 다섯 명의 왕과

조선 때에는 광해군 · 안평대군 · 영창대군 · 사도세자의 장남 은언군 · 흥선대원군의 손자 영선군 등이 이곳에 유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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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치적 반대파를 잔혹하게 숙청하는 사화(士禍)를 일으키며 폭정을 일삼던 조선 10대 왕 연산군(1476∼1506)이

중종반정으로 폐위돼 위리안치(圍籬安置)된 곳이 교동도 화개정원 안에 있다

 

 

연산군 유배지(圍籬安置 위리안치) 빗돌

위리안치는 유배된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이다

 

 

 

 

연산군 유배지(위리안치)

조선 10대 연산군이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이곳에 유배와서 11월 8일 역질에 걸려 사망할 때까지 2달가량 위리안치되었던 곳이다

철거된 집들인지 암튼 쓰러진 집들 가운데 연산군 유배지였음을 알리는 빗돌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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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5 사진)

 

 

 

 

교동도 유배문화관

2018년 교동도 연산군 유배지에 있다

 

 

 

 

교동도 유배문화관

 

 

 

 

왕과왕족의 유배지

교동은 인구 약 3천명 · 면적 47㎦로 예성강 · 임진강 · 한강이 만나 형성된 조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다

대운도(戴雲島) · 혹은 고림(高林) · 달을신(達乙新)으로 불리다가 고목근현(高木根縣)으로 명명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757년(경덕왕 16) 교동현으로 개칭되었다가 고려시대 5도 양계 중 양광도(楊廣道)에 속하였다

1629년(인조 7) 경기수영 이전과 함께 교통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633년(인조 11)에 경기 · 황해 · 충청도를 총괄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되었다

1896년 교동군으로 되었다가 1914년 강화군에 편입되어 1934년 교동면으로 불리게 되었다

 

 

 

 

유배형(流配刑) · 왕족들의 유배지, 교동

유배지역은 함경도 · 평안도와 같은 국경지역과 제주도 · 남해도 · 진도 · 거제도 · 흑산도와 같은 섬으로 배정되었다

그 중 「강화」는 왕족의 유배지로 사용되었다

유배형은 차마 사형에 처하지 못하고 먼 곳으로 보내어 죽을 때까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다

유(流)는 황무지와 해변의 고을에 보내는 것이며, 배(配)는 유형지의 지명을 기록하는 것이다

유배형의 종류는 살던 곳과 유배가는 지역과의 거리를 기준으로 세 등급으로 구분하였으나

왕족이나 고워관료를 일정한 장소에 격리하는 안치(安置)와 같은 독특한 유배도 있었다

유배 가운데 가장 가혹한 것은 배가 아니면 육지와의 연결이 차단되는 절도(絶島) 안치이며

집 주위를 가시나무로 둘러 싸고 담장을 설치하여 그 곳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위리안치이다

강화와 교동은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죄인을 감시하기 쉬웠으며

왕족을 일반서민과 같이 먼 지방으로 보내기 어려운 측면을 모두 만족시키는 유배지였다

*

왕족의 유배생활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제한되었고 글을 쓰는 것조차 함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유배생활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다만 왕조실록 등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고려시대의 강화

강화는 무인집권기에 이르러 왕의 유배지로 이용되어 희종 · 강종 · 고종이 이곳으로 유배를 온 바 있다

그러나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직면하게 되자 강화는 교역과 교통의 중계지로서 만이 아니라 군사적 요충지로서 부각되었다

1232년(고종 19) 강화군으로 승격된 강화는 고려의 수도인 「강도」라 지칭되었다

고려 말에는 왜구와 홍건적이 침입하는 과정에서 강화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어 성곽 및 행궁과 진보(鎭堡)와 봉수 등의 시설이 재건되었다

또한 이곳은 고려말 격변하던 정치와 관련하여 충정왕 · 우왕 · 창왕 등이 유배되었다

 

 

 

 

조선시대의 교동

조선시대에는 교동은 폐군이나 종친의 유배지였다

교동으로 유배된 폐군으로는 연산군과 광해군이 있으면

종친으로는 세조의 동생인 안평대군과 원종의 아들 능창대군 · 사도세자의 아들 은언군 등이 있다

 

 

 

 

교동에 유배된 조선의 왕과 왕족

광해군 · 경안군 · 숭선군 · 낙선군 · 임창군 · 복평군 · 은언군 · 영선군 등이 있다

 

 

 

 

교동에 유배된 연산군

연산군(재위 1494~1506)은 성종의 장자이자 폐비 윤씨의 아들이다

1483년(성종 14) 세자에 책봉되었고, 계모 정현왕후의 아들로 성장하였다

연산군은 즉위초, 국방에 주력하였을 뿐 아니라 빈민을 돕고 《국조보감》 · 《여지승람》을 완성하는 등 다수의 업적을 이루었다

즉위 이듬해부터 어머니 폐비 윤씨를 왕후로 복권시키는 일을 추진하였으나

'사후 백년간 폐비 윤씨 문제를 논외에 부친다'는 선왕의 유언을 들어 폐비 복권이 반대되자

감정이 악화된 연산군은 사림파의 제거를 추진하게 된다

 

 

 

 

교동에 유배된 연산군

조선시대 가장 폐악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연산군의 학정으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이 일어났고 연산군은 그날 바로 폐위돼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되었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실린 연산군 유배 여정은 다음과 같다

연산군은 붉은 옷에 갓을 쓰고, 내전문(內殿門)을 나와서 땅에 엎드려

"내가 큰 죄를 지었는데 특별히 왕의 은혜를 입어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라고 고한 후 4명이 메는 평교자(종1품 이상이 타는 가마)에 올랐다

나인 4명 · 내시 2명 · 반감(飯監) 1명이 따라 갔고, 중종반정에 참여한 무신 심순경 · 최한홍 · 유계종 · 이곤이 동행하고

정3품 당상관이 군사들과 호위하였다

9월 2일 창덕궁 인정전 동쪽에 있는 선인문을 빠져나와 돈의문 서대문으로 한양도성을 벗어나 연희궁(지금의 연세대학교 정문) 근처에서 유숙한 뒤

둘째 날 김포 · 셋째 날 통진에서 유숙한 뒤 넷째 날 강화로 들어와 유숙하고 다섯 째 날인 9월 6일에 유배지인 교동에 도착했다

안치되는 곳의 울타리는 좁고 높아서 해를 볼 수 없으며, 작은 문 하나가 있어 음식을 간신히 넣을 수 있고

연산군이 안으로 들어가자 시녀들이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흥청망청이란 말을 만든 임금 연산군

연산군은 각지에서 미녀와 좋은 말을 구해오게 했으며, 성균관을 놀이터로 삼고, 원각사를 연회장 · 유흥장으로 만들었다

이때 선발해 들인 흥청들과 그들의 식비 · 유흥비 등으로 국가 정사가 피폐해진다 하여

「흥청망국」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 말은 곧 「흥청망청」의 어원이 되었다

 

 

 

 

연산군의 유배행로 · 연산군 유배지(圍籬安置 위리안치)

당시 백성들이 가시 울타리 안에 갇힌 연산군을 조롱하며 불렀던 노래가 연산군일기에 전한다
"충성은 거짓(詐謀)이요 / 거동은 교동일세 / 일만 흥청 어디 두고 / 석양 하늘 끝 뉘 따라가는고

두어라, 예 또한 각시집이니 / 날 새우기 무방하고 조용도 하네"
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 사모(紗帽)를 남을 속여넘기는 모략을 뜻하는 사모(詐謀)로 바꾸고

가시 울타리에 둘러싸인 것을 각시(婦)집으로 바꿔 주색에 빠졌던 왕을 비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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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나무를 두른 초가집 안에 들어가 앉은 연산군과 주변을 지키는 나인 · 군사 등을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연산군의 유배행로

소달구지를 타고 유배 온 연산군의 모습 등이 재현되어 있다

 

 

 

 

연산군의 유배행로

 

 

 

 

연산군 유배지의 생활 모형

탱자나무를 두른 초가집 안에서 생활하는 모형이다

 

 

 

 

연산군 유배지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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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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