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에 있는 성산(城山 · 176.1m) 사산성(蛇山城)을 올랐다가
직산현관아 · 온조왕사당 · 직산향교 · 민익현가옥 · 직산조씨 시조묘 등을 돌아 봤다
성환역
시점이다
옛 집
포치 현관 문위에 사무실이라 적힌 명패가 붙어 있다
옛 집
매주사거리로 가는 성환1로에 있다
신선동길
구부러진 길이 예전 길 같다
매주사거리
이곳에서 진천 · 입장 방향인 왼쪽으로 간다
「친정엄마와 2박3일」 연극 공연 가로등 배너
매주사거리를 지나 돌아 봤다
카페 코발트
복지관사거리 앞이다
천안대로 토끼굴
중앙아파트 · 삼풍아파트 · 농협 · 하나로마트
매주저수지로 가는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봤다
매주저수지로 가는 길
도로 가운데 나무를 살린 게 좋다
매주저수지 둑
남서울대학교 입간판이 왼쪽에 있다
매주저수지
눈 위에 쓴 〈전일 ♡〉가 있다
남서울대학교
매주저수지를 끼고 있다
만경사길
남서울대학교 · 만경사 갈림길이다
호경공재록선생추념비(湖鏡孔在祿先生追念碑)
1906년 11월 13일,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신리(正南面 新里)에서 곡부공씨(曲阜孔氏) 어촌공(漁村公) 19대손인
수열(秀烈)씨의 4남매 중 2남으로 태어나 6세 때에 부친과 사별하고 편모슬하를 떠나 생활하였다
지방의 각급 단체장(團體長)으로 추대되었고, 성환초등학교 육성회장 15년 · 직산향교 장의(掌儀)와 전교(典校)를 12년간 역임했다
1981년 천안시 성환읍 매주리 성산서록(城山西麓) 묘(墓) 아래 세운 추념비는
향토인(鄕土人) 김성열(金聖烈)이 건립을 돕고, 인영선(印永宣)은 삼가 글씨를 썼다
만경사(万敬寺)
성산 정상 850m 방향안내판
만경사(万敬寺)
벤치 쉼터
이곳에서 이동식을 했다
직산 사산성(稷山 蛇山城) / 충청남도 기념물 제104호
테뫼식산성과 포곡식산성이 함께 연결된 산성이다
테뫼식산성의 규모는 동서 길이 300m · 남북 너비 150m · 성의 둘레는 약 750m 정도이다
포곡식 산성의 길이가 1,030m로 테뫼식 산성의 동서 양단에서 시작되어
그 바깥쪽에 연장되어 있는 능선에 성벽을 쌓았으며 북쪽의 경사면 밑에 있는 좁다란 계곡을 둘러 쌓았다
성벽의 구조는 테뫼식산성에서는 약간의 돌덩이를 흙과 혼합하여 쌓은 부분도 조사되었고, 포곡식산성에서는 흙을 층층이 다져 쌓았다
두 가지 형식의 산성 가운데 테뫼식산성이 먼저 쌓은 것이고, 포곡식이 뒤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로는 백제 · 고구려와 관련이 있는 5~6세기의 보시기류와 단지, 6세기 후반의 신라계 유물인 단각고배(短脚高杯) 등이 있다
남아 있는 성곽의 상태가 좋으며 문헌사나 고고학상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성산 · 남서울대학교 · 직산 부영, 청호 아파트 방향안내판
운동시설이 있는 쉼터
정상 마지막 계단이다
꽃과 같은 마음은 꽃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정상 바로 밑, 예전 군 시설에 붙어 있는 글이다
성산(城山 · 176.1m)
정상은 군 헬기장이다
성산(城山 · 176.1m)
1984년에 세운 삼각점이 가운데 있다
직산읍
성환읍 · 직산읍이 정상에서 나뉜다
사산성(蛇山城) 빗돌
호서 제일관문 사산성
·
본래 백제의 사산(蛇山)이며 군명(郡名)은 위례성 사산이다
사산은 직산의 진산(鎭山)이며 고을 서쪽 3리에 있다
토성이며 둘레 2,948m · 높이 13척 · 우물 1개가 있다
*
빗돌 옆 · 뒷면에 있는 글이다
성산님 은공비 빗돌
파평윤씨 33세손 윤재화 · 성장순 부부가 우리 성산님을 소유해서 우리 조상님을 모시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아버님 윤웅섭 님 · 어머님 이상순 님이 9남매 자손을 낳으셔서 잘 길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단기 4347년 음력 9월 9일 · 서기 2014년 양력 11월 1일
문확석
둥근 모양으로 파인 돌이 양편에 있다
직산 사직단터로 가는 길이다
직산초등학교 · 만경사 방향안내판
직산 사직단(稷山 社稷壇) 터
사단은 땅 신을 의미하며 동쪽에 배치하고, 직신은 곡식 신을 뜻하며 서쪽에 배치하였다
국토와 오곡은 국가와 민생의 근본이 되므로
고대에는 국가와 민생의 안정을 기원하고 보호해 주는 데 대한 보답의 의미에서 사직단을 설치하고 1년에 3번 제사를 지냈다
따라서 사직은 왕실의 조상들을 제사 지내는 종묘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시되어 국가를 가르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한양에 있는 사직단은 왕이 제를 지냈으며 각 고을의 사직단은 왕을 대신해서 고을 수령이 제를 지냈다
직산 사직단(稷山 社稷壇)
안내판에 있는 사진이다
솔숲
군 참호
벤치 쉼터
주차장
직산 청정(PURE) 둘레길 안내판
초록쉼터에서 성산 · 향교 · 관아를 한 바퀴 도는 길이다
직산초등학교
1897년 직산현 사립경위학교로 설립된 학교다
호서계수아문(湖西界首衙門)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2호
직산현관아는 조선시대 행정관청 건물이다
임진왜란 후인 1606년(선조 39) 신순일 현령에 의해 현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조선 후기 지리지와 지도에는 객사 19칸 · 동헌 14칸 · 내아 30칸 등 많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내아 · 동헌 · 내삼문 · 외삼문 등 4동이 남아 있다
현감이 업무를 보던 동헌은 정면 7칸 · 측면 3칸으로 가운데 4칸은 큰 대청이 있고 좌우로 온돌방이 있다
현감의 살림집인 내아는 정면 4칸 ·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삼문은 정면 9칸 ·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창고로 쓰던 고방이 딸려 있다
호서계수아문(湖西界首衙門) 현판
다른 지역 관아와 달리 호서계수아문이라는 현판이 걸린 외삼문은 정면 3칸 · 측면 2칸의 2층 문루로 이루어져 있다
호서계수아문이란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는 호서의 첫 관문이라는 뜻으로
한양에서 삼남으로 통하는 길목을 상징하는 장소로서 많은 관리와 시인이 오가면서 글을 남긴 곳이다
관찰사 · 현감의 선정비와 영세불망비들이 있다
직산현관아 외삼문 · 비석군
직산현관아 내삼문
석탄 이신의 시비(石灘 李愼儀 詩碑) / 사우가(四友歌)
소나무(松)
바위에 서 있는 솔 어엿하여 반갑구나
풍상을 겪었어도 여윈 흔적 전혀 없네
어찌해 봄빛을 쪼여도 그 모습이 같은가
국화(菊)
동쪽 울 밑 심은 국화 귀한 줄 뉘 아는가
봄빛을 마다하고 된 서리에 홀로 피니
오호라 청고한 내 벗은 너 말고는 없구나
매화(梅)
하 많은 꽃 중에서 매화를 심는 뜻은
눈 속에 흰 빛으로 꽃이 피기 때문이라
더 더욱 그윽한 향기는 귀하고도 귀하네
대나무(竹)
백설이 잦은 날에 대를 보려 창을 여니
온갖 꽃 다 저버리고 대숲만이 푸르구나
때마침 부는 청풍을 반기면서 춤추네
*
이신의(李愼儀 · 1551~1627) 본관은 전의(全義) · 자는 경칙(景則) · 호는 석탄(石灘)으로
광해군 때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하려는 데 대해 상소를 올렸다가 함경북도 회령에 유배되었을 때 창작한 연시조다
당대 불안정한 정치 상황 속에서 보신을 위해 자신의 지조를 꺾는 속된 선비들과는 달리 시류에 영합하지 않겠다는 지조를 보여 주고 있다
소나무 · 국화 · 매화 · 대나무의 「사우」는 엄혹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불변성을 지키는 대상으로 올곧은 선비들의 고고한 기상을 상징하는 식물이다
작가는 사우를 벗으로, 그들의 긍정적 속성과 내재된 가치관을 자신의 삶과 관련지으며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성산탁주제조장
문을 닫은 양조장이다
온조왕사당 · 직산향교
온조왕사당
온조왕은 백제의 시조(始祖)로 아버지는 고구려왕 주몽(朱蒙)이고 어머니는 소서노(召西奴)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온조왕사당이 직산현 관아 동북쪽으로 2km정도 거리에 세종 11년(1429) 7월에 세웠고 봄 ·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1499)」에서는 "온조왕사당이 세조 11년(1465)에 직산현 관아 동북쪽으로 1.5km정도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사당은 정유재란(1597)에 불타 없어졌다고 전한다
그 후 선조 36년(1603) 온조왕사당의 건립 제의가 있었고, 조선 인조 17년(1639)에 남한산성에 건립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현재 남한산성에는 온조왕사당인 숭렬전이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을 토대로 천안시에서는 현재로서 문헌상 기록된 것으로 추측되는 위치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자료는 미흡하나
백제왕인 온조왕을 재인식하고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사당을 신축하였다
온조왕사당
위례산 · 성거산
직산중앙교회 · 직산읍교회 뒤로 보인다
직산중앙교회
직산읍교회
남산
직산읍교회 뒤에 있다
직산향교 옆문
온조왕사당으로 통하는 문이다
직산향교(稷山鄕校) / 충청남도 기념물 제109호 명륜당(明倫堂)
유학을 가르치던 조선시대 관립 교육기관으로 1413년(태종 13)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최초의 위치는 이곳에서 서쪽으로 200m 떨어져 있는 구 향교골이며 숙종 대에 이르러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직산향교는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동 · 서재를 두고, 뒤쪽에 제례 공간인 대성전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로 이루어져 있다
명륜당에는 직산향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기문 현판과 조선시대 직산 선비의 향촌 활동을 알리는 다양한 고문서 자료가 보존되어 있으며
봄 · 가을에 공자에게 제례를 올리는 춘추석전제례와 다양한 유림 활동이 이루어지는 직산 유교 문화의 거점이자 상징적인 공간이다
*
명륜당(明倫堂) 현판은 주자(朱子)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것으로 보인다
내삼문(內三門)
평열문(平列門)에 삼태극이 그려져 있고 계단 양편에는 삼강지목(三綱之木) · 오륜지목(五倫之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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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대성전(大成殿)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서적 · 노비를 지급 받아 5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지금은 봄 · 가을 제사만 지내고 있다
공자를 비롯한 5성(五聖) · 송조2현(宋朝二賢) ·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직산향교 홍살문
군서1길
민익현 가옥(閔益鉉 家屋)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0호
1820년(순조 20) 규장각 대제학으로 있었던 민승세(閔承世)가 직산으로 낙향하여 지은 집이라 한다
안채는 'ㄱ'자 형태로 되어 있는데, 안채의 상량문(上樑文)에
「광서16년 경인윤이월십육일(光緖十六年 庚寅閏二月十六日)」이라고 상량한 날이 쓰여 있어 건축 연대가 1890년(고종 27)임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ㅡ'자 형태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부분적으로 많이 고쳐진 집이나, 조선 말기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주며, 집 뒤에는 집안의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가묘(家廟)가 있다
안채
'ㄱ'자 형태의 건물로 상량문(上樑文)에 「광서16년 경인윤이월십육일(光緖十六年 庚寅閏二月十六日)」이라고
상량한 날이 쓰여 있어 건축 연대가 1890년(고종 27)임을 알 수 있다
교동공려조합장 민공재기송덕비(校洞共勵組合長閔公載祺頌德碑)
민익현 가옥 앞쪽에 있다
구억마을(군동1리) 빗돌
구억마을은 직산(稷山) 역사 중심으로 백제 온조왕의 첫 도읍지 위례성(慰禮城 · BC 18~BC 5)의 터잡은 땅이며
삼국의 각축장으로 고구려~신라시대에는 사산현으로 용에서 뱀으로 격하되었다
고려 초(936년 경) 태조 왕건이 순행하며 직산최씨 최양유(崔良儒)에게 사직을 지켰다고 하여 이름을 직산이라 하였다고 최홍재 묘비명에 전한다
사직지위 곤명직산(社稷之衛 困名稷山)
구직산 묵집
대를 이은 맛집에서 묵밥을 먹었다
직산조씨 시조묘(稷山趙氏 始祖墓)
백제 개국공신 하남백 휘 성(河南伯 諱 成) 어른께서 잠들고 계신 곳이다
직산조씨 시조묘(稷山趙氏 始祖墓)
백제 개국공신 경양군 예성부원군 하남백 직산조공휘성지묘
(百濟 開國功臣 慶陽君 醴城府院君 河南伯 稷山趙公諱成之墓)
서운산 · 위례산
뉴클린환경산업
트럭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청일중기골재
남서울대학교
성암학사(星岩學舍)
남서울대학교 외부에 위치한 자율형 기숙사다
천안시 성환문화회관
천안어린이체험관이 옆에 있다
천안성환배 100년 홍보상징물
천안배 100년에 즈음하여 재배농가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배 고장임을 널리 알리고자 우리지역 명품인 천안배의 과거 · 현재 · 미래를 담아 상징물을 세웠다
세계로 미래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진취적인 천안배를 하늘과 땅과 사람이 소중하게 감싸는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
「왕지봉 배꽃」은 천안 12경 중 제9경이다
왕지봉 배꽃단지는 성환읍 왕지봉을 중심으로 조성된 국내 최대의 배 주산지로 4월에 피는 새하얀 배꽃이 장관이다
성환역
마침점이다
걸은 거리 12.1km, 소요시간 6시간 10분
*
(2023.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