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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융건릉~용주사

융건릉과 용주사를 찾는 걷기다

 

 

분당수인선 오목천역

시점이다

 

 

 

 

목련 열매

오목천역 앞이다

 

 

 

 

융건릉사거리 버스정류장

오목천역에서 720-2번 버스로 왔다

 

 

 

 

융건릉 매표소

 

 

 

 

조선왕릉 세계유산

 

 

 

 

융릉 · 건릉역사박물관

 

 

 

 

융릉 · 건릉역사박물관 내부

 

 

 

 

융릉 · 건릉 재실(隆陵 · 健陵 齋室)

재실은 제례에 앞서 제관들이 미리 도착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다

평소에는 참봉(參奉 · 종9품) 등 관리가 이곳에 상주하면서 능역을 돌보았다

주요 시설로 재실 외에 향(香)을 보관하는 안향청 · 제례(祭禮) 업무를 주관하는 전사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 행랑채 등이 있었으며 단청은 하지 않았다

 

 

 

 

융릉 · 건릉 재실(隆陵 · 健陵 齋室)

평상시 능참봉이 근무하며,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능역을 관리하고 수호하는 사람들의 근무 장소이다

 

 

 

 

융릉 홍살문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이다

 

 

 

 

융릉 정자각(丁字閣)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모시는 곳이다

 

 

 

 

융릉(隆陵 · 사적 제206호)

조선 영조의 둘째 아들로 사후 왕으로 추존된 장조(莊祖 · 사도세자)와 부인 헌경왕후(獻敬王后) 홍씨를 합장한 무덤이다

 

 

 

 

건릉 초장지로 가는 길이다

 

 

 

 

맹꽁이 서식지

 

 

 

 

정조대왕 초장지 안내판

1800년 6월 정조가 승하하자 생전에 아버지 곁에 묻히고자 했던 정조의 뜻에 따라 현릉원(현재의 융릉) 근처 동쪽에 건릉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1821년 정조비 효의황후가 승하하여 건릉에 합장하려고 할 때 건릉의 능자리가 길지가 아니므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 결과 정조가 생전 능자리로 염두에 두었던 여러 곳 가운데 수원향교 옛 터에 정조와 효의황후를 합장하여 모시게 된 것이 현재 건릉이다

정조가 처음 묻혔던 곳은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다가 2011년과 2012년 이곳에서 왕릉 규모의 봉분 구역과 담장시설

그리고 왕릉 부장품에 적합한 유물이 발굴되면서 이곳이 정조가 처음 묻힌 곳으로 알려졌다

 

 

 

 

융릉 · 건릉 둘레길

융릉에서 건릉을 화산둘레길을 이용해 간다

 

 

 

 

정자각(丁字閣)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모시는 곳이다

 

 

 

 

건릉(健陵) / 사적 제206호

조선 22대 정조와 효의왕후의 능이다

 

 

 

 

화성 태안3지구 택지개발사업단지

융건릉에서 용주사로 가는 길이다

 

 

 

 

황구지천으로 이어지는 물길이다

 

 

 

 

화산1지하차도

 

 

 

 

용주사 사천왕문

불법을 보호하고 악귀의 출입을 막아 사찰의 청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세워졌다

지국천왕 · 광목천왕 · 증장천왕 · 다문천왕 등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용주사는 대웅보전 낙성식 전날 밤, 정조대왕이 꿈을 꾸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 하여 이름지었다

 

 

 

 

부모은중경탑(父母恩重經塔) / 보물 제1754호

〈부모은중경탑〉에는 부모의 크고 깊은 10가지 은혜에 보답하라는 가르침이 새겨져 있다

전엔 호성전(護聖殿) 앞에 있었다

*

부모님의 열가지 은혜

첫째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 / 어머니 품에 품고 지켜 주신은혜

둘째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 낳으실 때 괴로움을 겪으신 은혜

셋째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 자식 낳고 모든 시름 잊으신 은혜

넷째 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 / 쓴 것 삼키고 단 것 뱉어 먹이신 은혜

다섯째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  /  진자리 마은 자리 가려 누이신 은혜

여섯째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 젖먹여서 키우신 은혜

일곱째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 손발이 닳도록 깨끗하게 씻어주신 은혜

여덟째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 먼 길 떠나갔을 때 걱정하시는 은혜

아홉째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 자식 위해 나쁜 일까지 감당하시는 은혜

열째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 / 어른 돼도 끊임없이 걱정하신 깊은 은혜

 

 

 

 

삼문

양쪽에 7칸의 행랑을 지닌 맞배지붕 양식으로 동서의 옆문과 중앙에 대문이 있어 삼문이라 부른다

삼문 하단부 초석이 유난히 높고 크며 그 앞엔 석조 해태상 두 마리가 버티고 있다

다른 사찰과는 달리 마치 양반집 대가 같은 형태인 것은 사도세자 현륭원의 재궁(齋宮)으로 지어진 사찰이기 때문이다

네 기둥엔 「龍珠寺佛(용주사불)」의 네 자를 각각 첫 글자로 한 시구의 주련이 걸려있는데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죽농 안순환(竹濃 安淳煥) 글씨다

 

 

 

 

천보루 / 경기도문화재자료 제36호

1790년 절의 창간 당시 지어진 건물로 경상도 영천 은해사(銀海寺) 쾌성(快性)스님이 도편수를 맡았고

강원도 삼척 영은사(靈隱寺)의 팔정(八定)스님이 단청을 하였다

천보루는 대웅보전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문루인데 일반적인 사찰의 건축양식보다는 궁궐이나 대갓집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는 용주사가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로 세워졌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건물 밖의 현판에는 천보루 · 안의 현판에는 홍제루라 적혀 있는데

이는 밖으로는 하늘이 보호하는 곳이고 안으로는 널리 백성을 구제하여 백성들이 불성을 깨닫게 하는 곳이다라는 의미이다

 

 

 

 

대웅보전(大雄寶殿) / 보물1942호

1790년 용주사의 창건과 함께 지어진 유서 깊은 건물이다

보경당(寶鏡堂) 사일(獅馹)스님이 팔도도화주(八道都化主)를 맡아 145칸의 전각과 함께 지었다

대웅전 안에는 목조 삼세불 좌상과 삼세여래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는데

특히 「삼세여래후불탱화(보물 제1942호)」는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다

 

 

 

 

여의주 ·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이 대웅보전 현판 양쪽에 있다

 

 

 

 

중앙선원

선방(禪房)으로 좋은 곳이라 많은 스님들이 찾는다

 

 

 

 

중앙선원

 

 

 

 

병점육교 방향

병점역 육교에서 봤다

*

용주사에서 버스로 왔다

 

 

 

 

병점역

 

 

 

 

벌말교 방향

병점역 육교에서 봤다

 

 

 

 

벌말교 방향

병점역 육교에서 봤다

*

(2022. 10. 23)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9.32km, 소요시간 5시간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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