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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수원화성

수원화성(水原華城)

조선시대의 개혁군주 정조대왕의 꿈이 담긴 성곽으로 우리나라 성곽 건축 사상 가장 독보적인 면모를 자랑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으나

축조 상황을 기록한 세계기록유산 「화성성역의궤」에 의거하여 1975년부터 보수 · 복원하였으며

1997년에는 그 우수성이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매교역 5번출구

시점이다

 

 

 

 

수원천

세천교에서 수원천으로 내려왔다

 

 

 

 

빨래터

 

 

 

 

모천회귀 / 김경환 작

현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다

급속한 고도성장으로 발전을 이루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매년 명절 때마다 귀성행렬을 이루는 대이동은 강력한 회귀본능을 지닌 연어처럼

근원적인 것과 존재 확인에 목마른 우리의 내면풍경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귀소본능이야말로 일상의 압박과 피로를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모천회귀는 죽음을 무릅쓰고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역동적인 모습 속에 다시 수원천으로 돌아온 버들치 떼의 형상을 함께 투영하여

우리의 귀소본능과 생명의 경외감 및 소중함, 따뜻한 가족애를 표현한 작품이다

 

 

 

 

수원교

 

 

 

 

수원 영동시장

 

 

 

 

상도의 벽 / 김경환

"장사는 상도덕이 있어야 한다. 상도덕이란 서로 상부상조해 모두가 잘 살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라는

수원 유상(柳商)들의 정신과 자존심을 핸드프린팅으로 담아 냈다

수원천변의 9개 전통시장에서 30년 이상 영업에 종사한 상인들을 선정하여 상점의 가훈과 상인들의 손도장을 받아 작품화하였다

작가와 상인이 함께한 시민 참여형 작품이다

 

 

 

 

남수문(南水門)

남수문은 화성의 남쪽 성벽이 수원천과 만나는 곳에 설치한 수문이다

수원천 상류에 있는 북수문에 일곱 칸의 홍예를 만든 반면 하류에 있는 남수문에는 아홉 칸의 홍예를 두었다

남수문의 바깥쪽은 홍예 위로 벽을 높이 쌓아 적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고, 안쪽에는 군사 수백 명이 수문을 지킬 수 있는 장포(長舖)를 만들었다

아홉 개의 수문에는 철책을 설치하여 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1922년 큰 홍수로 유실되어 2012년에 「화성성역의궤」를 바탕으로 복원했다

복원한 남수문은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하부에 수로를 설치했다

 

 

 

 

남수교

남수문 위에서 봤다

 

 

 

 

지동시장

팔달문으로 가다 돌아봤다

 

 

 

 

팔달문(八達門 · 보물 제402호)

수원성 남문인 팔달문은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수원성에 있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게 지어진 문으로 원래는 문의 좌우로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성벽이 있던 자리에 도로가 만들어져 있다

 

 

 

 

팔달문 관광안내소

 

 

 

 

남치(南雉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수리)

남치는 남포루(南砲樓)와 팔달문 서쪽 남서적대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화성에는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남치는 서쪽 경사지에 만들었기 때문에 치성의 길이가 짧고 폭도 좁다

서3치와 마찬가지로 치성 안쪽에 돌로 담을 쌓고 출입구를 냈는데 이 구조는 적대와 비슷하다

남치는 원형이 잘 남아 있다

 

 

 

 

고향의 봄 노래비

난파 홍영후(洪永厚 · 창씨명 森川潤 1898~1941)가 태어난 지 70년이 되던 해를 기념하여 1968년 건립되었다

명문(銘文)에는 화홍문화제가 열린 10월 15일 '수원 시민의 날'이 건립일자로 되어 있으나 제막식은 23일에 있었다

앞면에는 이원수 작사 · 홍난파 작곡 「고향의 봄」 악보가, 뒷면에는 건립 내력이 새겨져 있다

*

이곳에서 음악회가 열릴 예정이다

 

 

 

 

남포루(南砲樓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누각 복원)

남포루는 팔달산의 남쪽 기슭 경사지에 지은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는데 주변 지형 조건에 따라 크기를 달리했다

그 중 남포루는 규모가 가장 작다

「화성성역의궤」에는 포루 내부 높이가 균일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지형에 따라 각 층의 높이가 다르다

남포루 1층은 1.7m, 2층은 1.25m로 만든 누각이 있는 3층은 높이 3m 이상을 확보하였다

남포루는 포루 중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다

 

 

 

 

 

서남암문 · 서남포사(西南暗門 · 西南舖舍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서남포사 복원)

서남암문은 화성 서남쪽에 낸 비상 출입문이다

화성의 5곳 암문 가운데 유일하게 문 위에 군사들이 머무는 포사를 세웠다

이곳은 지형상 적에게 빼앗기면 성안이 노출될 우려가 있어서 특별히 포사를 만들어 침입에 대비했다

암문에는 화공에 대비하여 오성지도 설치하였다

이름은 암문이지만 성 안팎을 드나드는 통로가 아니라 용도를 거쳐 서남각루(화양루)로 나가는 문이다

 

 

 

 

용도(甬道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복원)

용도는 좁고 긴 성벽으로 둘러싸인 통로를 가리킨다

이곳은 좌우 지형이 급경사를 이루면서도 우뚝 솟아 있어 남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만약 적에게 빼앗기면 성안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서남암문 밖으로 좁고 긴 성벽인 용도를 만들었다

용도 중간에는 좌우에 치성을 하나씩 만들어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했다

용도 끝에는 서남각루가 자리잡고 있다

 

 

 

 

서남각루(西南角樓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복원)

서남각루는 화성 서남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로 '화양루(華陽樓)'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화성에는 모두 4곳의 각루가 있다. 화성 축성 초기에는 서남각루를 만들 계획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곳은 남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로 만약 적에게 빼앗기면 공격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계획을 변경하여

서남암문 바깥으로 길게 용도를 내고 그 끝에 각루를 세웠다

건물 전면은 장수가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벽돌을 깔았고, 후면은 바닥을 높이고 창문을 달아서 실내에서도 주변을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화성을 찾은 정조는 화양루에서 시작하여 성곽 일대를 두루 살폈다

 

 

 

 

화양루(華陽樓) 현판

 

 

 

 

3 · 1독립운동기념탑 · 대한민국독립기념비

3 · 1독립운동기념탑은 단기 4302년(서기 1969년) 3월 1일

우리 선열들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항쟁한 성업을 길이 빛내고 선열의 명복을 빌자는 참뜻을 두고 건립하게 되었다

이후 광복 후 중포산에 세운 것을 삼일동지회가 1969년 10월 15일 팔달산 중턱으로 옮겨놓은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원래 중포산에 세워진 3 · 1독립운동기념탑은 왜경 수원경찰서 사범계 주임 노구찌 소위의 순국비를 허물은 자리에 세운 것이었다

삼일동지회는 1969년 4월 12일 창립총회 때 3 · 1정신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3 · 1독립운동기념탑 건립과 동공원에 있는 대한민국독립기념비를 같은 자리에 이전하기로 결의하였고

수원시를 비롯한 각급 기관과 학교 및 학생들의 자율적인 협찬을 받아 건립하게 되었다

*

대한민국독립기념비는 대한민국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단기 4281년(서기 1948년) 8월 15일 수원시민이 세운 기념비이다

이 비는 수원시민과 학생 일동이 대한민국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수원 동공원에 건립하였던 것인데

1969년 수원시민의 날인 10월 15일 3 · 1독립운동기념탑과 함께 3 · 1동지회가 이곳 수원시 팔달산 중턱으로 이전 설치하였다. 높이는 4m이다

 

 

 

 

서3치(西三雉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수리)

서3치는 서포루와 서남암문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서3치 바깥은 지형이 비교적 평탄하여 팔달산에 설치한 다른 치성에 비해 길이가 길다

치성 안쪽으로는 여장에서 1m 정도 돌출한 담을 쌓고 가운데 출구를 냈다

적대와 비슷한 구조는 서3치와 남치에서만 볼 수 있다

 

 

 

 

화장실이 있는 밖으로 통하는 문이다

 

 

 

 

서포루(西砲樓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누각 복원)

서포루는 서암문과 서3치 사이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러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화성에는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 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1포루, 동2포루,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서포루는 서장대 쪽으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동북포루와 형태가 같다고 기록되어 잇다. 서포루 누각은 복원했으나 치성은 원형이 잘 남아 있다

 

 

 

 

효원의 종(孝園의 鐘)

이 종은 유서깊은 효원의 성곽도시이자 날로 발전해 가는 수원시의 드높은 기상을 나타내는 효의 상징으로서

그간 주요행사에 타종해왔던 팔달동종(유형문화재 제69호)이 300여 년 경과하여 낡았을 뿐만 아니라

그 규모가 작고 소리가 탁하며 울림이 없어 더 이상 타종이 어려운 한계에 이르러

1991년 11월 4일 종 주조추진위원회를 구성 그 제작을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1년여만에 완성하였으며

또한 온 시민에게 효행심을 심어주고 영원한 화합과 전진을 다지는 한편

선진시민상을 구현함으로서 온 시민이 한마음을 이루는 구심적 표상으로 삼고자 제작된 것으로써

우리시의 상징물인 시목(은행), 시화(철쭉), 시조(비둘기) 그리고 수원화성과 화홍문을 전면에 새겼으며

그 규모는 구경 2.15m, 높이 3.54m이고 총 중량이 3,300관(약 12.5톤)에 이르는 대형 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

현재 우리시 상징물은 1999년 12월 29일 시목(소나무), 시화(진달래), 시조(백로)로 변경되었다

 

 

 

 

서암문(西暗門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수리)

서암문은 화성 서쪽 팔달산 꼭대기 성벽에 설치한 비상 출입문이다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을 의미한다

화성에는 5곳의 암문이 있는데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서암문은 성벽을 안쪽으로 90도 꺾어 들어가도록 쌓고 그 사이에 문을 내 바깥에서 알아차리기 어렵다

화공에 대비하기 위한 오성지나 적을 감시하기 위한 비예 같은 별도의 방어 시설을 두지 않고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 살렸다

 

 

 

 

서노대(西弩臺) · 서장대(西將臺)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자리 잡은 군사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서장대는 군사 훈련 지휘소로 썼다

서장대는 시야가 트여 있어 멀리 용인 석성산 봉화와 현륭원 입구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고 한다

서장대는 아래층은 사면 3칸, 위층은 1칸으로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진 형태다

아래층은 장수가 머물면서 군사 훈련을 지휘하고, 위층은 군사가 주변을 감시하는 용도로 썼다

정조는 서장대에서 군사 훈련인 성조(城操)를 거행했는데 1795년의 행사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다

위층 처마 밑에 걸린 화성장대(華城將臺)와 시문 현판은 모두 정조의 작품이다

1795년 성조가 끝난 뒤 정조는 화성장대 현판의 글씨를 직접 쓰고 만족스럽고 기쁜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정조가 지은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서장대(西將臺)

 

 

 

 

화성장대(華城將臺) 현판

 

 

 

 

정조가 화성장대에서 군사훈련을 비켜본 후 감회를 읊은 시(正祖御製 華城將臺 親閱城操有詩 · 1795년 현판 제작 · 2020년 복제)

정조는 1795년 수원행차 넷째 날인 윤 2월 12일에 서장대에 올라 장용영 외영 군사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튿날 새벽까지 실시된 군사 훈련을 참관한 후 정조는 군사들을 칭찬하고 견고하게 쌓은 화성 성곽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날의 훈련을 기념하고자 친히 시를 짓고, 이 시를 현판에 새겨 서장대에 걸도록 하였다

본래 서장대 2층에 게기되어 있었으나 복제본은 1층에 두었다

원래 원본 현판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華城將臺 親閱城操 有詩題于 楣上(화성장대 친열성조 유시제우 미상)
화성장대에서 친히 군사훈련을 점검하고 지은 시를 문 위에 걸다

拱護斯爲重 經營不費勞(공호사위중 경영불비노)

현륭원 호위 중하지만 세금과 노역을 쓰지 않았네

城從平地迥 臺倚遠天高(성종평지형 대의원천고)

성곽은 평지 따라 둘러있고 먼 하늘에 기댄 장대는 높다랐구나

萬垛䂓模壯 三軍意氣豪(만타규모장 삼군의기호)

많은 성가퀴 구조 굳건하고 군사들 의기 호기롭네
大風歌一奏 紅日在鱗袍(대풍가일주 홍린재린포)

대풍가 한 곡조를 연주함에 붉은 햇살이 갑옷을 비추는구나

 

 

 

 

수원제일교회

봉돈과 동남각루 사이 숲이 앞에 있다

 

 

 

 

서노대(西弩臺 / 1795년(정조 19) 창건 · 1971년 복원)

서노대는 기계식 활인 노(弩)를 쏘기 위해 높게 지은 시설로 군사지휘소인 서장대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노대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로도 쓰였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있다

서노대는 화성의 서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팔달산 꼭대기에 있어 적을 감시하기에 적합하다

팔각형의 몸체가 위로 가면서 줄어드는 안정적인 형태로

안에는 흙을 채우고 겉은 벽돌을 붙였으며 여덟 방향의 모서리는 돌로 깎아 마감하였다

 

 

 

 

서2치(西二雉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수리)

서2치는 서포루와 서암문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서2치는 팔달산 정상으로 향하는 급격한 경사지에 자리잡고 있어 규모가 작다

붉은 빛을 띤 다양한 크기의 성돌이 잘 남아 있는데

평지 성벽보다 규모가 큰 장방형 석재를 하부에 설치하여 하중을 지탱하도록 했다

 

 

 

 

서포루(西砲樓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복원)

서포루는 팔달산 중턱에 설치한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동북포루,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는데 주변 지형 조건에 따라 크기를 달리했다

서포루는 경사지에 지었기 때문에 평지에 설치한 북서포루와 북동포루보다 규모를 작게 만들고

화포와 총을 쏘는 구멍의 숫자도 줄였다

포루는 3층 구조로 아래 두 층에는 화포나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이 있고, 상층에는 누각이 있다

서포루 상부의 누각은 복원했으나 벽돌로 만든 하부에는 창건 당시의 모습이 일부 남아 있다

 

 

 

 

화성어차가 지나는 길이다

화성어차는 수원화성의 주된 관광 포인트를 순환하는 관광열차로 순종이 타던 자동차와 조선시대 국왕의 가마를 모티브로 하였다

 

 

 

 

서1치(西一雉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수리)

서1치는 서북각루와 서포루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치성은 보통 좌우 방어 시설과 100m 이상 거리를 두고 만들었으나, 서1치는 북서각루에서 약 55m 떨어진 지점에 있다

화서문에서 뻗은 성벽이 팔달산 정상을 향해 크게 꺾이는 요충지이기 때문에 치성에 가깝게 설치한 것이다

 

 

 

 

서북각루(西北角樓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복원)

서북각루는 화성 서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4곳의 각루가 있다. 화북각루는 팔달산으로 오르는 경사지에서 성벽이 휘어진 곳에 자리 잡아 서북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래층에는 군사들이 머무는 방에 온돌을 놓았고 위층은 마룻바닥을 만들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사면에 널빤지 문을 달고 구멍을 내서 적을 감시했다

 

 

 

 

화서공원

 

 

 

 

광교산

 

 

 

 

서북각루(西北角樓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5년 복원)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 화서문(華西門)

화서문은 화성의 서문으로 화성의 서쪽이란 뜻이지만 서쪽에는 팔달산이 있어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화서문 문밖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높다란 서북공심돈을 함께 세웠다

조선시대 건축에는 일정한 위계질서가 있다

화서문은 장안문과 팔달문에 비해 격을 낮추어 석축의 규모도 작고, 1층 문루에 팔작지붕 형태이다

창건 당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18세기 건축기술을 보여준다

 

 

 

 

화서문(華西門) 현판

 

 

 

 

화성행궁으로 가는 길이다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 1796년(정조 20) 창건)

서북공신돈은 화성 서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보통 돈대(墩臺)는 성곽과 떨어진 높은 곳에 세워 적을 감시하는 시설이나, 서북공심돈은 서북쪽 성벽이 꺾이는 위치에 설치했다

치성 위에 벽돌로 3층의 망루를 세우고 꼭대기에는 단층의 누각을 올려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했다

외벽에는 화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을 뚫어 공격 기능까지 갖추었다

 

 

 

 

북포루(北砲樓 / 1795년(정조 19) 창건 · 1975년 누각 복원)

북포루는 북서포루와 서북공심돈 사이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화성에는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 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1포루, 동2포루,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북포루는 화성에서 가장 평탄하고 시야가 트인 곳에 있어서 주둔하는 군사의 수도 많고 규모도 크다. 군포루라고도 불렀다

 

 

 

 

북서포루(北西砲樓 / 1794년(정조 18) 창건 · 1975년 복원)

북서포루는 장안문 서쪽에 설치한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동북포루,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는데 주변 지형 조건에 따라 크기를 달리했다

이 중 평탄한 곳에 지은 북서포루가 가장 높다

포루는 벽돌로 만든 3층 구조로 아래 두 층은 화포나 총을 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상층은 군사들이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누각을 만들었다

북서포루와 북동포루는 안팎의 지붕 형태가 다르다

이는 「화성성역의궤」에 수록되어 있는 각 시설물 자재 목록을 바탕으로 복원된 것이다

 

 

 

 

관리사무소 · 장안문

 

 

 

 

북서적대(北西敵臺 / 1795년(정조 19) 창건 · 1968년 수리)

북서적대는 장안문 서쪽에서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방어 시설이다

화성에는 장안문과 팔달문 좌우에 적대를 설치했는데 현재 장안문에만 남아 있다

장안문 좌우 적대에는 현안 세 줄을 설치한 반면 팔달문 적대에는 두 줄을 설치했다

현안은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의 동향을 살피고 동시에 공격도 가능하도록 만든 시설이다

적대는 우리나라 성곽 중 유일하게 화성에만 있다

 

 

 

 

북서적대 홍이포(北西敵臺 紅夷砲)

홍이포는 명나라 말부터 청나라 때까지 사용된 유럽식 화포로 포구쪽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하여 발사하는 포구장전식 화포이며

사정거리가 700m에 달하는 위력적인 화기로써 성곽 또는 포루 등에 배치하거나 성곽 공격용으로 사용하였다

 

 

 

 

장안문(長安門)

장안문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보통 성(城)의 남문을 정문으로 정하지만, 조선시대 당시 임금이 한양(지금의 서울)에서부터 수원으로 오실때

가장 먼저 맞이하는 문이 북문(장안문)이었기 때문에 북문을 정문으로 정했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2칸의 다포양식으로 이루어진 중층의 문루가 세워져 있다

또한 가운데에 홍예문이 나있는 벽돌로 쌓은 옹성이 있으며, 양 옆에 다른 성벽보다 높이가 약간 높은 두개의 적대를 설치하였다

장안문의 이름은 중국의 옛 왕조인 전한(前漢), 수(隋), 당(唐)나라의 수도였던 장안(현재의 시안시)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당나라 때의 장안성처럼 화성 또한 융성한 도시가 되라는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

 

 

 

 

북동적대(北東敵臺 / 1795년(정조 19) 창건 · 1969년 수리)

북동적대는 장안문 동쪽에서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방어 시설이다

화성에는 장안문과 팔달문 좌우에 적대를 설치했는데 현재 장안문에만 남아 있다

안쪽은 성벽과 같은 높이로 대를 쌓아 군사들이 지키고, 바깥쪽에는 현안이라고 하는 세로 방향의 긴 홈을 냈다

현안은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의 동향을 살피고 동시에 공격도 가능하도록 만든 시설이다

적대는 우리나라 성곽 중 유일하게 화성에만 있다

 

 

 

 

북서적대 홍이포(北西敵臺 紅夷砲)

홍이포는 명나라 말부터 청나라 때까지 사용된 유럽식 화포로 포구쪽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하여 발사하는 포구장전식 화포이며

사정거리가 700m에 달하는 위력적인 화기로써 성곽 또는 포루 등에 배치하거나 성곽 공격용으로 사용하였다

 

 

 

 

북동적대(北東敵臺) · 북동치(北東雉 / 1796년(정조 20) 창건 · 1969년 수리)

북동치는 장안문 동쪽 북동적대에 붙여서 세운 치성이다

치성은 성벽의 바깥으로 덧붙여 쌓은 시설로,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북동적대 위치에서 성곽이 급하게 꺾이기 때문에 북쪽을 방어하기 위해 적대에 치를 덧붙였다

북동치는 장안문을 지키는 중요한 위치이므로 가장 크게 치성을 만들고,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는 총안과 타구를 설치했다

 

 

 

 

북동포루(北東砲樓 / 1794년(정조 18) 창건 · 1977년 복원)

북동포루는 장안문 동쪽에 설치한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동북포루,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는데 주변 지형 조건에 따라 크기를 달리했다

포루는 벽돌로 만든 3층 구조로, 아래 두 층은 화포나 총을 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상층은 군사들이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누각을 만들었다

정약용은 중국의 제도를 두루 살펴 화성의 발전된 형태의 포루를 설계했는데

그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북수문(北水門 · 화홍문(華虹門)

북수문은 화성의 북쪽 성벽이 수원천과 만나는 곳에 설치한 수문이다

일곱 칸의 홍예문 위로 돌다리를 놓고 그 위에 누각을 지었는데 화홍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누각은 본래 적군의 동태를 살피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군사 시설이지만 평소에는 주변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쓰였다

수문을 통해 흘러온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쾌하게 떨어지는 모습인 화홍관창(華虹觀漲)은 화성에서 꼭 보아야 할 경치로 손꼽힌다

화홍문은 조선 현종 14년(1848)에 수문과 누각을 다시 지으면서 형태가 약간 달라졌다

1932년에는 '수원명소보전회'를 주축으로 수원주민이 힘을 모아 10년전 홍수로 무너진 누각을 다시 지었다

2016년에는 「화성성역의궤」를 근거로 창문을 복원했다

 

 

 

 

 

화홍문(華虹門) 현판

 

 

 

 

동북각루(東北閣樓 / 1794년(정조 18) 창건 · 1934년 해체 수리)

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용두(龍頭) 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다

군사 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있어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정조는 이를 현륭원이 있는 화산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柳川)을 가르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방화수류정에는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보통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각루 1층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방화수류정에는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두고 창문을 설치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정조는 방화수류정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를 지었다

지금은 온돌방과 창문이 사라졌지만 원형의 건축물이 잘 남아 있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현판

동북각루(東北閣樓)의 별칭 현판이다

 

 

 

 

용연(龍淵)

동북각루 아래로 있다

 

 

 

 

북암문(北暗門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2년 수리)

북암문은 화성 북쪽에 낸 비상 출입문이다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을 의미한다

화성에는 5곳의 암문이 있는데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북암문은 지형에 맞춰 좌우 성벽까지 벽돌로 둥글게 만들었다

문 위에는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기 위해 여장을 만들었는데 반원형은 원여장, 장방형은 비예라고 부른다

축성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동북포루(東北砲樓 · 각건대(角巾臺)

북암문에서 봤다

 

 

 

 

동북각루(東北閣樓)

북암문이 앞에 있다

 

 

 

 

동북각루(東北閣樓)

용연(龍淵)이 아래로 있다

 

 

 

 

동북포루(東北砲樓(角巾臺)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6년 누각 복원 · 2019년 누각 복원)

북동포루는 방화수류정과 동장대 사이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5곳의 포루가 있는데

동북포루는 지붕의 모습이 조선 선비들이 쓰던 각건(角巾)이란 모자와 비슷해 보여서 각건대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동북포루는 다른 포루에는 없는 시설을 갖췄다

여장과 건물 사이를 벽돌로 채워서 벽등(甓磴)이라는 단을 만들고, 누각의 계단도 벽돌로 만들었다

지붕 양 끝에 올린 용머리 모양의 장식 기와 역시 북동포루에서만 볼 수 있다

동북포루의 특징을 살려 2019년에 다시 복원했다

 

 

 

 

 

동암문(東暗門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6년 복원)

동암문은 화성 동쪽에 낸 비상 출입문이다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을 의미한다

화성에는 5곳의 암문이 있는데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동암문 상부에는 윗부분을 둥글게 만든 원여장을 설치했고, 좌우에는 네모난 비예를 세웠다

비예는 암문 위에서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기 위해 여장을 만든 여장이다

성 안쪽에 도로가 생기면서 지형이 높아져 1976년 동암문 복원시 계단을 추가했다

 

 

 

 

KB손해보험이 있는 가운데 있다

 

 

 

 

관광안내소

연무대 삼문 뒤에 있다

 

 

 

 

동장대(東將臺 / 1795년(정조 19) 창건 · 1976년 주변 부속건물 복원)

동장대는 군사 훈련을 지휘하던 곳으로 연무대(練武臺)라고도 불린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서장대는 군사 훈련 지휘소로 썼다

동장대는 대지 전체를 3단으로 나누고 마당 한가운데에 장수가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경사로를 만들었다

본래 전면은 개방하고 나머지 삼면은 벽이나 창문을 단 형태였으며, 가장 안쪽에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건물 뒤쪽으로는 수키와로 담장을 꾸민 영롱장(玲瓏墻)이 있다

정조는 동장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려주는 호궤 행사를 베풀었다

화성 축성이 마무리되던 시기인 1796년 8월 19일, 감독관과 일꾼 등 2,700여 명이 호궤에 참여했다

*

제30회 홍재(弘齎) 백일장 펼침막이 있다

 

 

 

 

연무대(練武臺) 현판

 

 

 

 

창룡문(蒼龍門)

음악회가 준비 중이다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6년 복원)

동북공신돈은 화성 동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보통 돈대(墩臺)는 성곽과 떨어진 높은 곳에 세워 적을 감시하는 시설이나 동북공심돈은 성벽 안쪽에 설치했다

외벽에는 밖을 감시하고 화포로 공격할 수 있는 구멍을 곳곳에 뚫었다

동북공심돈은 3층으로 이루어진 원통형의 벽돌 건물로서 출입문에서 통로를 따라 방글빙글 올라가면 꼭대기 망루에 이르는 구조다

이 모습을 빗대서 소라각이라고도 부른다

정조 21년(1797) 정월, 채제공은 동북공심돈을 올라가 본 뒤 "층계가 구불구불하게 나 있어 기이하고도 교묘하다"며 감탄했다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절반 이상 무너졌는데 1976년에 복원해 모습을 찾았다

 

 

 

 

동북노대(東北弩臺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6년 수리)

동북노대는 기계식 활인 노(弩)를 쏘기 위해 높게 지은 시설이다

노대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로도 쓰였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있다

동북노대는 별도의 높다란 대를 만들지 않고 성벽에서 돌출시켜 만들었지만 주변이 평탄해서 시야가 확보되었다

동북노대와 좌우 성벽이 만나는 지점을 살짝 좁혀 쌓았는데 「화성성역의궤」에서는 그 모양을 '벌의 허리'와 같다고 표현했다

 

 

 

 

창룡문(蒼龍門 / 1795년(정조 19) 창건 · 한국전쟁 때 문루 파괴 · 1976년 문루 복원)

창룡문은 수원 화성의 동문이다. 창(蒼)은 푸른 색을 가리키므로 '동쪽 방향을 지키는 신령한 청룡'을 상징한다

창룡문은 바깥쪽에서 보면 안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돌출된 좌우 성벽이 자연스럽게 성문을 보호하는 치성 역할을 한다

문 안쪽의 넓은 공터는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쓰였다

조선시대 건축에는 일정한 위계질서가 있다

같은 성문이지만 장안문과 팔달문은 높은 격식을 갖춘 반면 창룡문과 화서문은 한 단계 낮춘 형태이다

장안문과 팔달문이 2층 문루에 우진각 지붕인 반면 창룡문과 화서문은 1층 문루에 팔작지붕이다

옹성은 서울의 흥인지문처럼 한쪽 모서리를 열어둔 형태다

창룡문 옹성 안 석축에는 공사를 담당한 감독관과 석공 우두머리 이름을 새긴 실명판이 잘 남아 있다

한국전쟁 때 문루가 파괴되어 1976년에 복원했다

 

 

 

 

창룡문(蒼龍門) 현판

 

 

 

 

동1포루(東一砲樓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9년 복원)

동1포루는 창룡문 남쪽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 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1포루, 동2포루,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동1포루는 지형이 평탄하고 조망이 트인 곳에 있어서 적의 움직임을 잘 살필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

치성을 길게 내밀었으며, 다른 포루와 달리 기둥 사이에 벽을 치지 않고 사방을 개방했다

 

 

 

 

동1치(東一雉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9년 복원)

동1치는 동1포루(東一砲樓)와 동포루(東砲樓)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치(雉)는 꿩을 말하는데, 꿩이 몸을 잘 숨기고 엿보기를 잘하는 특성이 있어 이런 이름을 붙였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동1치는 평탄한 지형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을 조망하기 위해 규모를 크게 만들었다

 

 

 

 

동포루(東砲樓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9년 복원)

동포루는 동1치와 동2치 사이에 지은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는데 보통 평지에서는 규모를 키우고 경사지에서는 규모를 줄였다

「화성성역의궤」에는 균일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지형과 주변 여건에 따라 규모와 각 층의 높이를 달리 만든 것이다

동포루는 산상 동성구간에서 비교적 평평한 곳에 있지만 주변 성벽이 높지 않아 작게 만들었다

남포루와 마찬가지로 2층은 낮고 누각이 있는 3층은 높이 3m 이상을 확보했다

 

 

 

 

서장대(西將臺)

팔달산 정상에 자리 잡은 군사 지휘소가 보인다

 

 

 

 

동2치(東二雉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9년 복원)

동2치는 동포루(東砲樓)와 봉돈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동2치는 1979년에 화성을 복원하면서 다시 쌓았다

본래 성돌이 붉은 색을 띤 반면 새로 쌓은 곳은 가지런히 다듬은 흰색 돌로 만들어져 있다

치성 좌우에 있는 옛 성돌에서 돌을 뜨기 위해 정을 박은 흔적을 볼 수 있다

 

 

 

 

수원제일교회

 

 

 

 

봉돈(烽墩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1년 수리)

봉돈은 봉화 연기를 올려 신호를 보내는 시설이다

보통 봉화대는 높고 인적이 드문 곳에 두었으나 화성에서는 시야가 트인 동쪽에 설치해 화성행궁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봉돈은 화두(火竇) 다섯 개가 있다

평소에는 남쪽 끝에 있는 화두 한 곳에만 연기를 올리고, 상황에 따라 연기의 숫자를 증가시켜 전쟁 시에는 다섯 곳 모두 연기를 피웠다

 

 

 

 

동2포루(東二砲樓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9년 복원)

동2포루는 봉돈 남쪽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화성에는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 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1포루, 동2포루,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동2포루는 동1포루와 마찬가지로 사방이 개방된 구조이다

측면 3칸인 동1포루에 비해 치성이 짧아서 측면 2칸의 건물로 만들어졌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동1포루의 모습만 실려 있다

 

 

 

 

동3치(東三雉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9년 수리)

동3치는 동2포루(東二砲樓)와 동남각루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동3치는 치성 가운데 폭이 가장 넓고 길이가 짧다

성 바깥이 급하게 경사를 이루고 있어 치성의 길이는 짧게 만들고, 주변을 멀리 살피기 위해 전면 폭을 넓게 확보한 것이다

다른 치에는 현안을 한 줄만 내었지만 동3치는 폭이 넓어서 현안을 두 줄 설치했다

 

 

 

 

팔달산

정상에 자리 잡은 군사 지휘소인 서장대(西將臺)가 보인다

 

 

 

 

동남각루(東南閣樓 / 1796년(정조 20) 창건 · 1979년 복원 · 2016년 해체 수리)

동남각루는 화성 남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4곳의 각루가 있다

동남각루는 남수문에서 동쪽으로 솟아오른 경사지에서 성벽이 휘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풍수에서 안산(案山)에 해당하는데, 봉우리가 일(一)자 모양처럼 평평하여 일자문성(一字文星)이라고 불렀다

서북각루와 같은 구조로 아래층 군사들이 머무는 방에는 온돌을 놓았고, 위층은 마룻바닥을 만들었다

사면에 짐승 얼굴과 태극무늬를 그린 널빤지 문을 달고 활 쏘는 구멍을 냈다

 

 

 

 

남수문으로 가는 길이다

 

 

 

 

지동시장

 

 

 

 

불취무귀(不醉無歸)

정조는 화성 축성 당시 기술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회식자리에서 불취무귀(不醉無歸)라고 하였다

즉,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불취무귀란 말은 실제 취해서 돌아가라고 한 말이 아니라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이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술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주겠다는 의미이다

한편 아직도 그런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한 군왕으로서의 자책감과 미안함을 토로한 것이다

*

수원화성은 수원 중심에 위치하고 있고 길이는 약 5.7km로 성곽을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그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았다

 

 

 

 

 

수원통닭거리

1970년대부터 시작된 가마솥에 튀긴 푸짐한 옛날 통닭이다

*

줄이 제일 긴 진미통닭집에서 프라이드 치킨으로 맛보았으나 별로였다

 

 

 

 

수원천

시점인 매교역 5번출구로 돌아간다

*

(2022. 10. 15 / 다음 서버에 화재난 날)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1.28km, 소요시간 7시간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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