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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김마리아길

김마리아 길은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제7~10대 회장을 역임한 김마리아 열사의 행적을 돌아보는 길이다

항일여성독립운동가 김마리아 길은 종로구 연지동 연동교회를 시점으로

세브란스관(옛 정신여고 본관) · 회화나무 · 선교사의 집(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 여전도회관까지 이어진다

김마리아 길과 관련해 종로구청은 일제강점기 최대 여성 비밀 항일단체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독립운동의 거점장소를 돌아보는 코스라고 소개했다

 

 

연동교회

김마리아가 세례 받고 학생시절 신앙생활 한 장소다

대한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김마리아는 연동여학교(1909년부터 정신여학교) 시절

연동교회에서 부목사격으로 사역하던 선교사 밀의두(E.H.Miller)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김마리아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연동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사랑 · 나랑 사랑 · 이웃 사랑을 실천해갔다

연동교회는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는데, 그중 정신여학교 출신으로 김마리아 · 신의경 · 김영순 · 이혜경 · 장선희 · 김필례 · 오현관 등이 있다

 

 

 

 

연동교회 빗돌

김마리아 길이 위치한 연지동은 과거 연못골이라 불렸다

이 주변은 교회가 설립될 무렵부터 미국북장로교회 선교부가 대지를 매입해 기틀을 잡은 곳으로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중심이 됐다

선교사 밀의두 목사는 연동교회를 중심으로 종로5가 일대를 선교언덕이라고 명명할 정도였다

 

 

 

 

연동교회 첫번째 예배처소 자리(초가 1894~1896) 빗돌

왼쪽 검은 빗돌이다

 

 

 

 

세브란스관(옛 정신여자중 · 고등학교 본관)

김마리아를 포함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김마리아는 1910년 정신여고를 졸업하고 1913년 모교에서 교사로 전임해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곳은 3 · 1운동 당시 항일 여성독립단체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한 김마리아 열사가 교사 시절 두 차례에 걸쳐 체포 · 연행된 곳이다

당시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비밀문서 등 독립운동 자료들을 마룻바닥을 뚫고 숨겨놓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회화나무 보호수 / 서울시 보호수 제120호

정신여자고등학교가 있었던 자리로서 3 · 1운동 당시 김마리아 선생이 영도한 대한민국 애국부인회의 산실이었던 정신여고가

일본 관헌의 수색을 받았을 때 비밀문서와 태극기 그리고 교과목으로 금지되었던 국사 교재들을 이 고목 구멍에 숨겨 위험한 고비를 넘겼고

후일 각종 비밀문서를 보존하여 역사적인 자료를 남기게 한 유서깊은 수목이다

 

 

 

 

회화나무 보호수 / 서울시 보호수 제120호

정신여학교와 독립운동의 순간을 함께해 「독립운동 나무」라고 불리는 회화나무는 1982년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됐다

*

나무 높이 21m · 둘레 390cm · 나이 515년 · 지정일자 1981. 10. 27

 

 

 

 

순국열사 김마리아 / 1892~1944

대한의 독립과 결혼한 김마리아는 일본유학 중 2 · 8독립선언에 참여 후 독립선언서를 국내로 밀반입하여  3 · 1운동을 일으키는 데 일조하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전국조직 활동으로 두 번의 옥고를 겪다

가혹한 고문으로 인한 발병으로 병보석 치료중 상해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황해도 대의원에 선출되다

국민대표회의(1923년 1~6월)에 참석, 임시정부의 개조 존치를 강력 주장하다

1923년 미국으로 재망명하여 교포 사회를 향해 실력양성으로 자주독립을 이루자는 연설을 하며 독립정신을 고취하다

1924년~32년에 걸쳐 파크대학 · 시카고대학원 · 콜롬비아대학원 · 뉴욕신학교에서 수학하고 뉴욕에서 근화회를 조직하여 여성독립운동을 계속하다

형시 만료로 귀국 후, 일제의 거주제한 등으로 원산의 마르타윌슨여자신학교 교수로서 성경을 통한 애국정신 진작에 힘쓰다

장로교전국여전도회 회장으로 활동 · 신사참배를 거절하다

1944년 순국한 선생은 대한독립의 진정한 영웅이다

*

2019년 5월 3 · 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회화나무 근처에 김마리아 흉상을 세웠다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한국기독교 사적 제1호 동판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벽에 붙어 있다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선교사의 집

김마리아는 3 ·1운동 배후자로 지목돼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에 시달리다가 면소판결로 출옥한 뒤

당시 정신여학교 부교장이었던 천미례(L.D.Miller) 선교사의 집 2층에 머물렀다

1919년 10월, 10여 명의 여성계 대표들이 김마리아가 머물고 있던 이 선교사의 집에서 모임을 갖고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재조직했으며 김마리아를 회장으로 선출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한달 여 만에 회원 2천여 명 전국 15개 지역 · 해외지부 설치 등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했다

이곳은 독립운동의 거처가 되기도 했다

 

 

 

 

여전도회관

1층 역사전시관에선 김마리아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다

김마리아는 1921년 중국 상해, 1923년 미국으로 망명하며 해외에서 수학한 뒤 1932년 조국으로 돌아왔다

 1934~1937년 김마리아는 여전도회전국연합회 7~10대 회장을 역임하며 여전도회 조직을 크게 발전시켰다

 

 

 

 

여전도회관 역사전시관

 3 ·1만세 운동과 연관된 목사 전도사 평신도 등을 소개하고 있다

 

 

 

 

김마리아 길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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