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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해미읍성~해미향교

해미(海美)라는 지명은 조선 태종 7년(1407)에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병합하면서

정해현에서 해(海)자를 따고 여미현에서 미(美)자를 가져와 해미(海美)로 부르기 시작하며 유래되었다

1895년(고종 32) 군(郡)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서산군에 병합, 1917년 해미면이 되었다

1995년에는 서산군과 서산시가 통합되어 서산시가 되었다

*

해미읍성과 해미순교성지를 1박 2일 걷기여행했다

첫날은 해미읍성과 해미향교를 찾았다

 

 

해미시외버스정류장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은 오후 1시 쯤 도착했다

 

 

 

 

해미면행정복지센터

해미읍성으로 가는 길이다

 

 

 

 

유성뚝배기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문했던 곳이다

 

 

 

 

유성뚝배기 방문 유명인 사진

대통령 문재인 · 국악인 김영임 · 송소희 · 배우 최불암 · 송강호 · 박신양 등의 사진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소머리수육과 사골설렁탕을 드신 자리다

 

 

 

 

소머리곰탕

 

 

 

 

해미읍성(海美邑城 · 사적 제116호) 진남문(鎭南門)

해미읍성 남문으로 문 주변의 성돌은 육축(陸築)이라 해서 큰돌로 견고하게 쌓고 홍예문 위에 3칸의 누각을 세웠다

해미읍성은 일반적 행정기능의 읍성이 아닌 조선 전기 충청병마절도사의 병영성(兵營城)이다

해미읍성은 서산 9경 중 제1경이며 한국관광 100선 중 하나다

 

 

 

 

포루(砲樓)

진남문 서쪽 포루로 모두 측면 3칸 · 정면 1칸의 규모다

 

 

 

 

지성루(枳城樓)

해미읍성 서문이다

 

 

 

 

동헌(東軒) · 객사(客舍)

 

 

 

 

북암문(北暗門)

북문은 문루가 없고 문은 판문으로 되어 있는 성벽이 지나는 평거식이다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도록 안쪽으로 들여 문을 설치했다

 

 

 

 

해자(垓字)

해미읍성 성벽에서 9∼10m 떨어진 거리에 해자 내벽이 위치했던 사실이 확인됐으며

1, 2차 외벽과 성벽 회절구간 해자의 형태도 일부 파악됐다

해자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판 뒤 물을 댄 것을 말한다

 

 

 

 

청허정(淸虛亭)

조선 성종 22년(1491) 충청병마절도사 조숙기(曺淑沂 · 1434~1509)가 건립한 것으로

조선 전기 대표 학자 성현(成俔 · 1439~1504)의 개인문집 〈허백당집(虛白堂集)〉에 그 유래가 전한다

정자 이름인 청허(淸虛)는 잡된 생각이 없이 마음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으로

이곳에 오는 이들에게 한결같은 마음가짐을 당부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청허정(淸虛亭) 현판

조선 초기 해미읍성은 충청도 육군사령부 역할을 하는 충청병영성으로 최고 책임자는 병마절도사(병사 · 兵使)였다

조숙기가 병사로 부임하여 해미읍성을 수리하면서 소나무 숲이 우거진 뒷동산에 청허정을 지었다

이후 이곳에 온 관리들은 청허정에서 무예를 익히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 시를 짓고 글을 남겼다

1494년 방문한 충청감사 조위(曺偉 · 1454~1503)는 청허정 주변 소나무와 멀리 보이는 바다 풍경의 시를 남겼고

권오복(權五福 · 1467~1498)의 〈수헌집 · 睡軒集〉에 절도사와 수령이 일을 마치고 청허정에 모여 지은 시가 전한다

1579년 충청병영에서 근무했던 이순신, 1790년 해미로 귀양왔던 다산 정약용도 이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1872년 해미현지도에는 옛터(古址)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1800년대에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신사(神社)가 세워졌다가 광복 후 철거되었고, 1976년 복원한 후 2011년 다시 정비하였다

 

 

 

 

잠양루(岑陽樓)

해미읍성 동문으로 평거식 문 위에 문루가 있다

동문과 서문은 1974년 복원했다

 

 

 

 

조선시대 병장기(兵仗器)

불랑기 · 운제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해미읍성 회화나무(충청남도 기념물 제172호 · 나무 나이 300년 이상)

이 나무의 고유 이름처럼 불리는 〈호야나무〉는 회화나무의 충청도 사투리다

1790~1880년 사이 이곳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어

이 나무의 동쪽으로 뻗어 있던 가지에 철사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하였으며

철사줄이 박혀있던 흔적이 현재까지도 희미하게 남아 있고 폭풍으로 부러져 외과 수술을 시행하였으나

재차 부패되어 2004년에 외과수술 및 토량개량 등을 거쳐 보호관리되고 있다

1962년 태풍으로 잘려진 가지는 절두산 성지에 보관 중이고

해미순교성지기념관에는 2004년 회화나무 수술시 제거된 가지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

1984년에는 한국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이곳을 찾았다

 

 

 

 

순교기념비(殉敎記念碑)

1866년(고종 3) 병인박해 이후 1882년(고종 19)까지 진행된 천주교 탄압 때

충청도 지방에서 잡아온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 · 처형한 곳이 해미읍성이고

나중에 잡아온 신도 수가 너무 많아지자 1,000여 명을 생매장한 곳이 해미읍성 인근이다

*

2014년 8월,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곳을 방문하여 순교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하였다

 

 

 

 

해미읍성 옥사(牢房)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의 천주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다

교도들을 투옥하고 문초를 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터만 남아 있던 옥사를 발굴 작업 뒤 복원 · 재현하였다

1935년 간행된 〈해미순교자약사(海美殉敎者略史)〉의 기록을 토대로 복원하였으며

내옥과 외옥이 있고, 각각 정면 3칸 건물로 남녀의 옥사가 구분되어 있다

1790년부터 100여 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곳에서 투옥 · 처형을 하였는데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비오)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호서좌영(湖西左營)

충청병영이 청주로 옮겨진 후, 호서좌영이 들어서 무장으로 호서좌영장과 해미현감을 겸직해 근무하던 곳이다

효종 3년(1652) 해미에 있던 충청병마절제사영을 청주로 이설한 후

해미읍성에는 충청도의 5개 병영 중 하나였던 호서좌영을 설치하고 반양리에 있던 해미동헌을 옮겨 왔다

서산 관아문을 모방해 1970년대에 복원한 2층 문루다

 

 

 

 

동헌(東軒)

동헌은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겸영장(縣監兼營將)의 집무실로서

관할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이 행해지던 건물이다

해미현감겸영장은 인근 12개 군 · 현의 병무행정과 토포사(討捕使)를 겸한 지위였다

 

 

 

 

십자가의 길 제1처

해미순교성지까지 가는 길에 14처가 있다

 

 

 

 

객사(客舍)

고려 · 조선 시대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사(館舍)로 객관(客館)이라고도 했다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나 사신의 숙소로 사용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전패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왕궁을 향해 망궐례를 행하였다

 

 

 

 

진남문(鎭南門)

해미읍성 정문으로 외부는 홍예식이고 안쪽은 석주를 세우고 평보를 걸친 평거식 구조다

해미읍성을 도는 마차가 지난다

 

 

 

 

황명홍치4년신해조(皇明弘治4年辛亥造)

황명홍치는 명나라 효종의 연호로 조선 성종 22년(1491)에 문루를 포함해 중수가 있었음을 기록한 것이다

 

 

 

 

포루(砲樓)

남문과 서문 사이 2개 포루가 방형으로 돌출해 있다

남쪽 포루는 성밖으로 7.5m · 서남쪽 포루는 7.6m 돌출해 있고, 두 곳 모두 측면 3칸의 장포를 세웠다

 

 

 

 

순교현양비

서문 밖 순교성지다

 

 

 

 

순교 자리개 돌 · 십자가의 길 제4처

해미읍성 서문 밖 수구 위에 놓여 있던 돌다리로서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자리개질로 처형했던 사형도구이다

그동안 서문 밖 순교지에 보존 중이었으나 해미도시계획 도시개설로 인하여

2009년 1월 8일 생매장 순교성지(여숫골)로 옮겨 보존하고 이곳에는 모조품으로 꾸며져 있다

 

 

 

 

순교 자리개 돌

서문 밖 형장과 자리갯돌에서도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다

2014년 8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에서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하였다

*

안내판 사진이다

 

 

 

 

해미읍성 설명해설판 03

 

 

 

 

서산아라메길(2구간) 해미성지순례길

 

 

 

 

지성루(枳城樓)

해미읍성은 둘레에 적의 침투를 막기위해 탱자나무를 많이 심어 탱자성이라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해미읍성의 본래 이름은 해미내상성(海美內廂城)이었다

 

 

 

 

해미읍성 북암문으로 가는 길이다

 

 

 

 

느티나무 보호수(품격 · 시나무) · 하마비(下馬碑)

나무 높이 25m · 나무 나이 300년 · 지정일자 1982. 10. 15

 

 

 

 

해미향교(충청남도 기념물 제117호)

태종 7년(1407)에 창건된 후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해미향교는 제향 공간인 대성전 · 교육 공간인 명륜당 ·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 서재로 이루어져 있고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에는 출입문인 내삼문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 27분의 위패를 모셔 해마다 봄 ·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현재 명륜당은 201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2013년 복원한 것이다

현재 해미향교에는 〈청금록(靑衿錄)〉 · 〈선안(仙案)〉등과 같은 전적류 판본이 소장되어 있고, 현판 11개가 남아 있다

 

 

 

 

해미연좌불상

 

 

 

 

해미현감 홍인걸 영세불망비

해미향교 하마비에서 남쪽으로 5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선조 9년(1576)에 건립된 해미현감 홍인걸 영세불망비가 남아 있다

 

 

 

 

오학리빗돌

해미읍성이 뒤에 보인다

 

 

 

 

서산고등학교

 

 

 

 

해미우체국

 

 

 

 

해미우시장

 

 

 

 

곱창구이

막걸리와 함께 1차로 했다

 

 

 

 

특수부위모듬

2차로 했다

 

 

 

 

마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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