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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강화 문화탐방길 · 강화성곽길

강화나들길팀과 「나들길 0코스」를 같이 했다
크게는 강화성곽길을 돌고 작게는 강화읍 문화탐방을 했다

 

 

강화도 행렬도
1849년 6월, 헌종의 왕위를 계승하게 될 강화도령 변(조선 25대 철종)을 모시러 강화도로 오는 행렬을 그린 역사기록화로

지형에 따라 구불구불 길게 늘어선 행렬과 강화도의 전경을 12곡 병풍에 담았다
현재 조선미술박물관(평양)에 소장되어 있으며 강화도 전경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
강화버스터미널에서 남문으로 가는 길에 있다

 

 

 

 

철종대왕 등극로

강화산성 성곽길이다

 

 

 

 

안파루(晏波樓 남문)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지은 것인데 1234년부터 본격적 공사에 들어갔다

고려 때 쌓은 성으로 내성(內城) · 중성(中城) · 외성(外城)의 형태를 취했는데, 이 중 내성이 지금의 강화성이다

중성은 내성을 지키기 위하여 1250년 축조했으며 길이가 약 9㎞의 토성으로 모두 8개의 성문이 있다

외성은 1233년부터 강화 동쪽 해협을 따라 공사를 실시하였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4개 · 암문(暗門) 4개 · 수문(水門) 2개가 있다

문루로는 남쪽 안파루(晏波樓) · 서쪽 첨화루(瞻華樓) · 북쪽 진송루(鎭松樓) · 동쪽 망한루(望漢樓)가 있다

강화산성 동문 안쪽 현판으로 전 국무총리 김종필의 글씨다

 

 

 

 

부조고개길
남문 왼쪽에 있다

 

 

 

 

선화골약수터
오른쪽 길로 남산을 올라간다

 

 

 

 

강화나들길 리본

괴불과 고마리가 반기는 남산을 리본을 매달며 올라간다

 

 

 

 

남산길

비로 개스가 가득 꼈다

 

 

 

 

남산약수터로 오르는 길은 비로 어둡고 사진기는 개스로 뿌옇다

 

 

 

 

비로 어두워 약수터 길에 불을 밝혀 놓았다

 

 

 

 

세심정(洗心亭)

남산약수터 정자로 약수를 마시며 마음을 씻으라는 뜻이다

 

 

 

 

암문(暗門)
비가 점점 더 내린다

 

 

 

 

남산 성곽길

정상 방향 성곽길을 암문 위에서 봤다
우회 길로 올랐다

 

 

 

 

기와 더미

남산 정상 앞이다

 

 

 

 

남산 암문 방향

남산 정상 부근에서 봤다

 

 

 

 

군사관련 건물지

예전 군사시설 관련 건물이 있었던 곳이다

 

 

 

 

남장대

남산(221.75m) 위에 복원되었다

강화산성은 고려 고종(1232)때 토성으로 만들어졌다가 몽골의 요구로 헐리게 된다

이후 강화도의 전략적 중요도가 부각되면서 조선 숙종(1710)때 현재와 같은 규모로 개축되었다

2008년 발굴조사 및 기술자문회의를 거쳐 2010년 복원하였다

남장대에서 달보기가 〈강화10경〉 중 하나다

 

 

 

 

공동묘지

 

 

 

 

하산 길에 비가 더 거세다

 

 

 

 

국화저수지 둑길

 

 

 

 

강화고교 방향

태풍으로 쓰러진 벼 위로 비가 또 온다

국화저수지 둑에서 봤다

 

 

 

 

국화저수지

 

 

 

 

동락천

이 때까지도 비가 정말 세차게 오는구나 생각만 했지 서울 · 인천등이 물바다가 되는 줄은 몰랐다

서문쪽에서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강화문화체육센터

 

 

 

 

비가 정말 억수로 내렸다

 

 

 

 

옛날 원조 팥죽
60년 전통의 장무순 할머니의 국수집이다
반찬을 담고 계시는 할머니다

 

 

 

 

장터국수

할머니집에선 장터국수를 먹어야 한다
비로 사진기에 습기가 차 렌즈를 닦아도 소용 없다

 

 

 

 

유수부로 통하는 주 도로인데 직선이 아닌 곡을 주어 길 끝이 서로 안보이게 설계되었다
사진으로 봐도 배불림 현상이 뚜렸하다

 

 

 

 

문화주택

박정희대통령시절 주택개량사업으로 지은 문화주택인데 다른 곳과 달리

지금의 주상복합아파트처럼 상가를 겸한 주택으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의미있는 공간이다

 

 

 

 

상가 골목길
6평 상가는 개인 소유이나 길은 군 소유로 상가 전체가 합심하지 않으면 개발이 안된다고 한다

 

 

 

 

대흥보신탕

서울에서도 오는 강화 제일의 보신탕집이다

 

 

 

 

부민의원
성병과 낙태로 다른 의원과는 달리 뒷골목에 있다

 

 

 

 

대성닭집 · 신흥여관

 

 

 

 

색시집

 

 

 

 

이모네 · 그때 그집
골목안 술집이다

 

 

 

 

조양방직 골목

 

 

 

 

조양방직
1934년 건설된 강화도 면방직업의 모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근대식 방직공장이다

 

 

 

 

조양방직

건설 자재가 마당에 쌓여 있다

 

 

 

 

조양방직

 

 

 

조양방직

강화직물협회 · 강화중고등학교1회동창회 · 강화신미회(江華辛未會) 간판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간다

 

 

 

 

조양방직 사장실
태극기가 걸려 있는 게 임시정부청사 같은 느낌이 든다

 

 

 

 

사무실

호랑이 그림 · 미녀 사진 그리고 화투가 있다

 

 

 

 

공장 건물

 

 

 

 

공장 건물

 

 

 

 

공장 건물

 

 

 

 

조양방직 공장 안이다

 

 

 

 

처마 낮은 구옥 담장에 장작이 많이 쌓여 있다

 

 

 

 

굴뚝과 땔감이 있다

 

 

 

 

서문 첨화루(瞻華樓)
오른쪽 성곽을 따라 올라간다

 

 

 

 

백호(白虎)
사신도는 동쪽 청룡(靑龍) · 서쪽 백호(白虎) · 남쪽 주작(朱雀) · 북쪽 현무(玄武)를 이른다
동서남북에서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사신의 개념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한(後漢 25~220)대에 이르러 사신은 방위신(方位神)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후 회화와 공예의 주제로 많이 표현되었다
*
첨화루 천장에 있는 그림이다

 

 

 

 

서문 첨화루(瞻華樓)
오른쪽 성곽을 따라 올라간다

 

 

 

 

강화향교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4호

고려 인종 5년(1127) 내가면 고천리(고읍)에서 창건되었다 전한다

고종 19년(1232) 갑곶리(먹절)로 옮겼다가 고종 46년(1259) 서도면 볼음도로 옮겼고, 조선 인조 2년(1624)에는 유수 심열이 송악산 기슭으로 옮겼으며

조선 인조 7년(1629)에 유수 이안눌이 위패를 모시고 명륜당을 세우는 등 비로서 완전한 체제를 갖추어 학궁(學宮)이라 하였다 한다

현종 14년(1673) 유수 민시중이 남산골로 옮겼으나 영조 7년(1731) 유수 유척기(兪拓基)가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 · 서무,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비롯해 여러 부속 건물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 · 노비 · 책 등을 지원 받아 제사와 교육의 기능을 담당했으나

갑오개혁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게 되었다

 

 

 

 

대성전(大成殿)
5성(五聖) ·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화여자중학교가 뒤에 있다

 

 

 

 

은수물약수터 · 빨래터

 

 

 

 

강화여중 기숙사를 지으려 땅을 파다 고려 유물이 발견되는 바람에 공사는 중단되고 유물 발굴 작업중이다

 

 

 

 

진송루(鎭松樓 북문)
고려 고종 19년(1232) 도읍을 옮기고 궁궐을 지을 때 도성도 함께 쌓았는데
개성의 성곽과 비슷하게 내성 · 중성 · 외성으로 이루어졌으며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 현재 강화산성이다
원래는 흙으로 쌓았으나 숙종 3년(1677)에 현재와 같은 석성을 이루었다
성의 길이는 7,122m이며 4개의 대문 · 4개의 암문 · 2개의 수문 · 2개의 성문장청(城門將廳)이 있었다
*
오른쪽 계단이 북장대로 오르는 성곽길이다

 

 

 

 

산괴불나무

오읍약수터에서 커피와 떡 · 밤 · 과일 등으로 이동식을 했다

 

 

 

 

강화읍

 

 

 

 

다시 북문으로 나와 북문길(벗꽃길)을 내려간다

 

 

 

 

고려궁터 외규장각(外奎章閣) · 강화부동종(江華府銅鐘)
고려궁은 몽골 침략에 대항하여 1232년(고종 19)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후 39년간 사용하였으나
몽골과 화친하여 환도(1270)할 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을 모두 파괴하였다
그후 조선시대에는 행궁을 건립하였고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 외규장각 · 장녕전 · 만녕전등도 건립하였으나
이 또한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현재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 외규장각(2003년 복원) · 강화동종만 남아 있다

 

 

 

 

강화 고려궁터 승평문(昇平門)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
최우는 2,000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이곳에 왕궁을 건립하였다
규모는 작으나 궁궐과 관아의 명칭을 개경의 궁궐과 같게 하고 뒷산의 이름도 송악이라 하였다

*

고려궁의 정문이다

 

 

 

 

마을 골목길을 돌아 600년된 느티나무를 지나 다시 골목길이다

 

 

 

 

망한루(望漢樓 · 동문)
한양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망한루라 지었다
고려가 몽골의 제2차 침입에 대비해 고종 19년 (1232) 고려궁지를 중심으로 둘러싼 강화산성 동문이다

 

 

 

 

청룡(靑龍)
사신도는 동쪽 청룡(靑龍) · 서쪽 백호(白虎) · 남쪽 주작(朱雀) · 북쪽 현무(玄武)를 이른다
동서남북에서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사신의 개념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한(後漢 25~220)대에 이르러 사신은 방위신(方位神)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후 회화와 공예의 주제로 많이 표현되었다
*
망한루 천장에 있는 그림이다

*
도로로 터미널로 가 커피를 마시며 정리했다
37명이 시작한 걷기, 마무리는 7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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