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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고양 흥국사

흥국사(興國寺)는 신라 문무왕 원년(661년) 당대 최고의 고승이였던 원효 스님께서 북한산 원효암에서 수행하시던 중

북서쪽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보시고 산에서 내려와 이곳에 이르시게 되었고

서기를 발하고 계신 석조 약사여래부처님을 보신 원효 스님께서 인연도량이라 생각하여 본전에 약사부처님을 모시고

「상서로운 빛이 일어난 곳이라 앞으로 많은 성인들이 배출될 것이다」하시며 이름을 흥성암(興聖庵)이라고 하여 오늘의 흥국사를 창건하시었다

- 미타전 아미타글 복장 연기문 -

 

 

흥국사(興國寺) 일주문

흥국사가 언덕 위에 있다

 

 

 

 

흥국사(興國寺) 일주문

 

 

 

 

한미산(노고산) 흥국사 만일회비기비석(興國寺 萬日會碑記碑石)

고양의 천년고찰 흥국사는 의병장 연기우의 근거지였다

그는 강화진위대 출신으로 의병 조직을 체계화한 고양지역 최초의 부대장이다

박석고개 등에서 고양 · 양주 등으로 넘어오는 일본군에 맞서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이후 점차 경기북부지역으로 그 활동범위를 넓혀나갔다

*

만일회비기비석은 1904년부터 1929년까지 매일 국가의 독립과 왕실의 안녕 등을 기원했던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흥국사의 창건과 연혁 · 보수 등의 내용이 기록되었다

당초에는 만일 동안 매일 법회를 올릴 계획이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삼십 년은 채우지 못하였다

 

 

 

 

불이문(不二門)

 

 

 

 

해탈문(解脫門)

불이문의 안쪽 이름이다

 

 

 

 

흥국사(興國寺)

해탈문 앞에서 봤다

 

 

 

 

흥국사느티나무  보호수

이 나무는 한미산 아래 흥국사 경내 입구에 위치하여 절을 찾는 이들이 제일 먼저 접하게 되며

흥국사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노거수로 동공이 크게 형성되고

수간이 기울어져 있는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꿋꿋하게 비바람을 이겨내고 있다

나무 높이 15m · 둘레 3.7m · 나이 450년 · 지정일자 2003년 8월 1일

 

 

 

 

흥국사 대방 / 국가지정등록문화재 제592호

대방은 전통사찰 흥국사에서 가장 큰 건축물로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어 일명 미타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록에 의하면 1904년 25칸으로 증축하였으며, 1912년 또는 1915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말 염불이 성행하고 접대를 위한 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불전과는 다른 기능으로 대방이 지어지기 시작하였으며 규모가 큰 절 · 특히 왕실의 원찰을 중심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이는 사찰의 기능을 하나로 합쳐 경제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점에서 근대불교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흥국사 대방은 19세기부터 나타난 대방이 대부분 사라진 가운데 조선 말기 대방의 전체적인 형태와 구조를 원형대로 잘 보존하고 있으며

근대 불교 대방 건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약사전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7호

5층석탑이 마당 가운데 있다

 

 

 

 

흥국사 대방 실내

 

 

 

 

흥국사 극락구품도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43호 · 아미타여래좌상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04호

흥국사 미타전 안에 봉안된 극락구품도는 가로 205cm · 세로 146cm 크기로 전체 크기를 각각 3등분하여 총 9면에

아미타불에 의한 극락정토의 아미타회상 장면과 왕생장면을 상품 · 중품 · 하품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

어두운 실내에 유리까지 끼워져 있어 사진으로 보기엔 적합하지 않다

 

 

 

 

흥국사 아미타여래좌상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04호

불상의 머리는 소라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듯한 머리 형태를 하고 있으며

얼굴은 평편하게 깍은 후 눈 ·  · 입 등을 조각하여 다소 평면적이지만 입가에 미소를 머금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두 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양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다리는 결가부좌한 자세이다

양 어깨를 모두 감싼 옷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차례로 계단식의 주름을 만들고 있다

얼굴의 표현이나 옷주름, 조각수법 등에서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양식을 보이고 있고

1758년에 보수한 기록으로 보아 18세기를 전후한 불상으로 생각된다

비록 규모는 작으나 매우 부드러운 느낌의 이 불상은 조선 후기 불상양식을 보여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극락구품도

어두운 미타전에 유리까지 끼워져 있어 걸개 그림을 사진으로 만들었다

 

 

 

 

흥국사 괘불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9호

면 바탕에 채색 · 세로 628cm · 가로 381cm인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인 괘불도이다

1902년 고종의 후궁인 순비 엄씨가 발원하고 왕실이 시주자가 되었다

순비 엄씨는 상궁으로 궁궐에 입궁하여 황귀비의 지위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로 조선 말기 많은 불사를 후원하였다

괘불도의 도상은 서방 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불과 협시 보살인 관음 · 대세지보살, 가섭 · 아난존자와

문수 · 보현보살의 7존상을 그린 아미타괘불로 당시 불교 신앙이 반영되었다

불화 제작은 19세기 중반~20세기 초반까지 근기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친 경선 응석과 12명의 화승들이 담당하였다

괘불의 도상은 아미타삼존을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존자, 문수 · 보현보살이 등장하는 아미타칠존도이다

19세기 말 서울과 경기 지역에는 아미타 정토신앙의 유행으로 아미타괘불이 성행하게 되었다

석가모니불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존자, 문수 · 보현보살은 주존불의 도상과 관계없이 아미타계 불화에 삽입되었으며

문수와 보현보살은 머리를 두 갈래로 묶은 동자형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아미타불이 오른손을 길게 내려 내영인을 취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어 이 도상의 전거로 여겨진다

*

워낙 큰 괘불이라 사월초파일에만 전시된다

 

 

 

 

약사여래부처님

 

 

 

 

흥국사 약사전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7호 · 5층석탑

약사전은 흥국사의 주전불이다

흥국사는 신라 문무왕 1년(661년) 원효대사가 절을 짓고 흥서사라고 이름했다

조선 숙종 12년(1686) 절을 다시 지었고, 영조 46년(1770)에는 이 절의 약사불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고 하여 절 이름을 흥국사로 고쳤다

이와 함께 약사전을 크게 중건하고 궁궐의 상궁들이 번갈아 머무르면서 선학을 공부하도록 허락했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현판은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조선 후기인 고종 4년(1867) 승려 뇌응(雷應)이 약사전을 다시 세웠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수리해 왔다

약사전은 정면 3칸 · 측면 2칸의 규모로 다포계 팔작지붕이다

정면의 기둥머리에는 용 조각의 안초공이 창방과 평방에 직각 방향으로 놓고 결구되어 있다

건물 내부에도 대들보 위에 직각 방향으로 놓여 합각부의 하중을 받아

측면 평주와 대들보에 분산시켜주는 역활을 하는 충량의 머리에 용 조각이 공포와 잘 어우러져 있다

 

 

 

 

약사전 현판

현존하는 약사전의 현판은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약사여래부처님 ·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약사여래부처님

조선 숙종 12년(1686년) 절을 다시 지었고 영조 46년(1770년)에는 이 절의 약사불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고 하여 절 이름을 흥국사를 고쳤다

이와 함께 약사전을 크게 중건하고 궁궐의 상궁들이 번갈아 머무르면서 선학을 공부하도록 허락했다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상 옆에 있는 그림이다

 

 

 

 

명부전(冥府殿)

 

 

 

 

나한전(羅漢殿) / 향토유적 제34호

흥국사 본전인 약사전에서 보아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는 나한전은 약사전에 비하여 규모가 약간 작은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잘 다듬어진 화강석의 기단 위에 4개의 배수구가 있는 직사각형의 초석을 두르고 있으며, 정면 가운데 계단을 두었다

나한전은 광서(光緖) 4년(1878년)에 지어진 정면 3칸 · 측면 2칸 규모로 기둥은 배흘림이 거의 없으며 머리에는 평방과 창방을 돌리고

그 위에 여러 개의 공포를 짜 맞춘 맞배지붕 건물로 19세기 후반의 일반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문은 매우 섬세하고 화려한 무늬의 문살로 장식되었으며 건물의 측면은 단청을 한 방풍판이 있으나 특별한 문양이나 조각은 보이지 않는다

 

 

 

 

나한전 실내

1832년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탱화가 보관되어 있다

 

 

 

 

여덟 나한상(오른쪽)

수박가 · 반탁가 · 나호라 · 나가서나존자 등이다

*

원래 나한전 정면에는 초서체로 쓴 뛰어난 필체의 「칠성각(七星閣)」이라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이 현판은 조선 후기 김성근이 소나무 판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 법당에 나한을 모신 관계로 나한전이란 현판으로 바꾸고 건물의 명칭을 나한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여덟 나한상(왼쪽)

벌사라불다라 · 가리가 · 발라타 · 낙거라존자 등이다

 

 

 

 

삼성각(三聖閣)

 

 

 

 

범종각(梵鍾閣)

 

 

 

 

왼쪽부터 인수봉 · 백운대 · 만경대 · 노적봉 그리고 백운대 앞쪽 염초봉 · 원효봉이다

흥국사 북한산 전망대에서 봤다

 

 

 

 

흥국사 상수리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12m · 둘레 3.3m · 나이 약 250년 · 지정일자 1982년 10월 28일

*

왼쪽부터 의상봉 · 용혈봉 · 용출봉 · 나월봉 · 보현봉 · 나한봉 · 문수봉 · 승가봉 · 비봉 · 향로봉 · 족두리봉까지다

 

 

 

 

혜명선원(慧命禪院)

스님의 수행공간이라 출입 금지다

 

 

 

 

혜명선원(慧命禪院) 현판

 

 

 

 

흥국사 둘레길 안내판

혜명선원 앞이다

 

 

 

 

흥국사 둘레길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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