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이야기

인천 능인사

인천 능인사의 역사는 곧 개항으로 시작된 인천 근대 불교의 역사다

1883년 강화도조약에 의해 인천이 개항되면서, 일본을 시작으로 외세 각 열강들이 인천으로 진출하고

인천은 세계 각국과 교통하는 조선의 중요한 거점이 된다

옛 지명인 제물포, 배다리 등의 명칭으로 미루어 인천 연안부두의 명성과 함께 중국 등으로 통하는 항구가 번성하였다

이에 불교계에서도 스님들의 해외 방문이나 중국 교류 등을 위해 인천 거점의 사찰을 마련하는데 이것이 곧 오늘날 능인사의 시작이다

능인사는 앝은 구릉지 맨 위 봉우리에 위치하고 있어 이를 용두산이라 하였다

혹자는 능인사의 지리적 위치를 용의 머리, 그리고 지금의 월미도 위치를 용의 꼬리라고 칭하고 있다

또한 사찰 우측 아래에는 용동큰우물이 있다

이는 용동 · 용동큰우물 · 용두산 · 월미도 등의 명칭과 능인사와 밀접한 관계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능인사는 기독교 · 천주교 · 성공회 · 천도교 등 각종 종교 성전과 더불어 항만 근처 지역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1884년 능인사의 시작은 숙박 등의 편의를 제공하고, 강연 등을 통해 주체적인 도심 포교 활동을 실시하였다고 전한다

1917년 제작된 「조선 오만분의 일 지형도」에는 오늘날의 능인사 자리에 사찰을 뜻하는 卍자 표시가 되어있어 개항 이후 지속되어 온 사찰임을 증명한다

용동절 등으로 불리었던 이 사찰은 1921년 건봉사가 인천에 「능인포교당」을 등록하며 비로서 오늘날의 능인사로 이어진다

포교당은 조선시대의 산사(山寺)를 벗어나 도심에서 대중과 직접 마주하는 사찰로 도심 포교의 의지를 보여주는 근대불교의 핵심이기도 하다

전국 30본산 중 하나인 건봉사 역시 도심포교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행하였는데

능인포교당은 1913년 평양 · 1915년 간성에 이어 건봉사에서 3번째로 세운 포교당이며 또한 인천에 최초로 세워진 불교 포교당이기도 하다

 

 

능인사

능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 설악산 신흥사 인천포교원이다

 

 

 

 

능인사

1980년 발생한 10 · 27법란 피해사찰과 능인교당 신중탱화 · 현왕탱화 안내판이 앞에 있다

*

10 · 27법란이란 1980년 10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수사단이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및 관련자를 강제 연행 · 수사하고

포고령 위반 수배자 및 불순분자를 검거한다는 구실로 군 · 경 합동으로 전국의 사찰 및 암자 등을 수색한 사건을 말한다

 

 

 

 

능인사 내부

 

 

 

 

능인교당 현왕탱화 / 인천문화재 자료 제24호

법당 입구 왼쪽 벽에 있다

 

 

 

 

능인교당 현왕탱화 / 인천문화재 자료 제24호

현왕은 지옥의 10대왕 중 염라대왕을 뜻하며 한국에서는 19세기부터 염라대왕의 심판 장면만을 묘사한 현왕도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이 불화는 가운데의 현왕을 중심으로 좌우의 앞쪽에서 서류를 들고있는 판관들이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간략화 현상은 20세기 불화의 특징 중 하나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화면 하단 화기에는 세존응화 2959년이라 하여 북방불기를 사용하였다

용리 능인교당 현왕탱을 1932년 2월 5일 봉안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금어는 석성화경스님으로 적혀있다

석성화경 스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으나

보응문성 스님과 일섭 스님 · 석성화경 스님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어 문성 스님의 화맥을 이은 화승임을 알 수 있다

능인교당 신중탱화 조성 10년 후에 조성한 그림으로 보응문성 스님으로 대표되는 마곡사 화맥이 능인교당 불사에 적극 참여한 것을 증명해 준다

 

 

 

 

지장보살 · 석가모니불 · 관세움보살

 

 

 

 

신중도

법당 오른쪽이다

 

 

 

 

칠성탱화(중앙)와 산신탱화

법당 왼쪽이다

 

 

 

 

칠성탱화 · 석고칠성군입상 · 석고일광보살입상

 

 

 

 

석고산신좌상

 

 

 

 

산신탱화

 

 

 

 

산신탱화 · 석고산신좌상

 

 

 

 

법당 불상 뒷편

 

 

 

 

능인교당 신중탱화 / 인천 유형문화재 61호

신중도는 불보살을 호법하는 여러 신중들을 그려 넣은 불화이다

이 불화는 가운데 위태천을 중심으로 양 옆에 범천 · 제석천이 합장하고 있다

이는 19세기부터 이어진 신중도의 도상 중 하나이다

화면 하단 가운데 불화 내력을 기록한 화기가 있는데 이에 따르면 대정 11년(1922) 음력 9월 30일 조성하여 인천 능인교당에 봉안하였다고 적혀있다

불화를 조성한 금어는 김보응 · 출초는 김일섭 스님이라고 쓰여있다. 이는 20세기의 유명한 금어 보응문성 스님 · 금용일섭 스님을 뜻한다

두 스님은 금오당 약효의 뒤를 이어 20세기 마곡사 화파의 화맥을 계승한 당대 최고의 화승들로 이 불화는 두 화사가 동시에 참여하여 의미가 깊다

후일담으로 일섭 스님께서는 보응문성 스님과 만난 첫해 조성한 불화로 의미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칠성탱화 · 산신탱 · 신중탱을 같이 조성하였다고 말씀하셨다

문성 스님과 일섭 스님이 협업한 최초의 불화로 근대 불교미술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불화이다

 

 

 

 

나무대성인로왕보살마허살(南無大聖引路王菩薩)

 

 

 

 

범종

 

 

 

 

용두산 능인사 포교당 징 / 불기 2553년 7월 15일

 

 

 

 

능인사 뒷골목

「능인사」는 삼성요양병원 옆에 있다

'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작충효길5코스(보라매길)  (0) 2019.12.30
인천 중구 용동  (0) 2019.12.28
동작충효길4코스(노량진길)  (0) 2019.12.26
동작충효길3코스(한강나들길)  (0) 2019.12.26
용양봉저정  (0) 2019.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