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호)
이 정자는 정조 때 배다리(舟橋)로 한강을 건너는 전후에 휴식하던 주정소(晝停所)였다
정조는 효심이 지극하여 아버지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가 있는 수원 화산(華山)의 현륭원(顯隆園)을 자주 찾았다
그 때마다 노들강(지금의 한강)에 배다리를 가설하여 건넜는데 시간이 걸렸으므로
잠시 어가(御駕)를 머물게 하고 쉴 자리가 필요하여 이 정자를 지었는데 축조연대는 1789년(정조 13) 이후로 보고 있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점심을 들었기 때문에 일명 주정소(晝停所)라 부르기도 하였다고 전하여진다
처음에는 정문과 누정 등 두세 채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용양봉저정만 남아 있다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
노들나루공원 건너편에 있다
용양봉저정
계단을 올라서 봤다
용양봉저정
노량주교도섭도 · 정선의 동작진 · 정조능행도 등이 내부에 전시되어 있다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 현판
용양봉저정 뒷쪽이다
용양봉저정 내부
1795년 정조의 화성행행 〈반차도〉 · 노량주교도섭도(용양봉저정 모습) · 정선의 동작진 그림이다
노량주교도섭도(용양봉저정 모습)
13회의 화성능행 중 가장 장엄했던 을묘능행(1795)을 담은 〈정조능행도〉 8폭 병풍 중
노량주교섭도 상단에 「용이 뛰놀고 봉황이 높이 난다」는 뜻의 용양봉저정 그림이다
지금은 정자 한 채만 남아있지만 1791년 준공 당시는 상당한 부속 건물을 갖춘 규모있는 행궁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버들이 늘어서 있고 도진촌이 들어앉은 노들나루(노량진)의 전경과 하얀꽃이 만발한 동산과 정조의 행차를 구경나온 군중의 모습이 생생하다
동작진(銅雀津) / 정선
현재 전철 4호선 동작역이 있는 이수천 입구로 추정된다
과천을 거쳐 호남 · 호서로 가는 지름길로 동재기나루는 동작구 이름의 연원이 되었고 노량진 관할의 사진(私津)이였으나 이괄의 난 후 별장이 파견되었다
〈춘향전〉에는 '이도령이 숭례문을 내달아 동작강을 얼른 건너 남태령을 뛰어너머 과천에 이르니...'라고 지름길임을 암시하였다
1795년 정조의 화성행행 〈반차도〉
원래 두루마리 형태였는데 서울대학교 한영우 교수의 고증에 의해 새로 채색 제작된 것이다
1,700여 명의 인물과 근 800필의 말을 담은 이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지휘하에
김득신 · 이인문 · 장한종 · 이명규 등 진경시대의 쟁쟁한 화원들의 공동작품이다
정조대왕 능행길 · 1975년 화성행차 일정
정조대왕 능행길 간략도
망주석
용양봉저정 옆 화단에 있다
용양봉저정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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