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장(사적 제465호)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백범(白凡) 김구(金九)의 숙소이자 환국 후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다
일제강점기 부호 최창학의 주택으로 김구는 1945년 11월 23일 환국하여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저격을 받아 서거할 때까지 3년 7개월 동안 머물렀다
명칭은 서대문 부근에 있던 「경교(京橋 경구교의 약칭)라는 다리에서 따온 것이다
경교장에서 임시정부 요인들이 모여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반탁운동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는 등 해방 후 혼란정국을 수습하였다
백범 서거 후 외국 대사관저 · 미군 시설 ·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2005년 사적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1 · 2층과 지하를 원형대로 복원하여 2013년 3월 2일 전시관으로 개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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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친구 모임이 있어 간단한 걷기로 경교장을 찾았다
경교장(京橋莊)
1938년 일제강점기 광산업으로 큰 부를 축적한 최창학에 의해 건립되었다
원래 일본식 이름인 「죽첨장(竹添莊)」으로 불리었으나 김구 선생이 근처에 있는 다리 「경교(京橋)」에서 이름을 따서 한국식으로 개명하였다
오리엔테이션실(영상실)
1층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앞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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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실 입구 안내판에 영상실 · 지하 전시실 · 1층 · 2층 순서로 관람하라고 안내되어 있다
경교장 제1전시실
경교장
대한민국의 혼이 살아 숨쉬다
죽첨장 시기 / 1938~1945
최창학의 저택으로 사용된 시기다
죽첨장 건축주 최창학(1891~1959)
경교장 시기 / 1945~1949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및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의 숙소로 사용된 시기다
김구 주석 일행 15명 작일 오후 귀환 등의 기사 · 사진
훼손 및 복원기 / 1949~2013
1949년 김구 선생이 경교장에서 서거한 후에는 중화민국대사관 사택 · 월남대사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1967년 병원시설로 이용되었다
이 시기에 경교장은 병원으로 내 · 외부가 개조되어 원형이 변형된 시기다
경교장의 변신
광업시대, 최창학씨와 아방궁
최창학에 의해 죽첨장이 건립되고 있는 과정을 소개한 기사이다
당시 경성에서 보기 드물게 거대한 규모로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건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과 건축」제17집 8호 「최창학씨 저」
건축 당시 경교장(당시 죽첨장)의 설계 도면 · 각 실 사진 · 건축에 사용된 자재 · 시공 방법 등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1930년대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 경교장
경교장은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건축구조 전문가로 활약했던 김세연(1897~1975)이 설계하고
일본의 건축회사 오오바야시구미(大林組)가 시공한 서양식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비례와 아치창을 이용한 단아한 외관이 특징이며 1930년대 근대 건축 성숙기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경교장, 60년만에 제모습을 찾다
1960년대부터 경교장을 보존하고 복원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1990년대가 되서야 본격적으로 문화재 지정을 위한 검토가 시작되었다
2001년 마침내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5년 국가 사적으로 승격된 후, 2010년 실제 복원이 시작되었다
보존의 목소리가 제기되다 / 1960~1980년
문화재로 지정되다 / 1990~2000년대
원형복원되다 / 2009~2013년
경교장의 어제와 오늘
사진과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1938~1966 / 임시정부 및 월남대사관으로 사용 당시의 경교장
1968 / 후면에 고려병원이 신축되었을 당시 전경 사진
제1전시실 영상실
백범 김구 선생의 삶과 임시정부의 역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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