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1월, 조국에 돌아온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요인들은
자주 통일의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무위원회를 개최하고,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하여 활동하던 중 1949년 6월 26일 경교장 2층 응접실에서
대한민국 육군 소위이자 주한미군 방첩대(CIC) 요원이었던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셨다
김구 선생의 통일에 대한 원대한 꿈은 비록 비극으로 끝나버렸지만
그 열망과 간절함은 여전히 살아남아, 이곳 전시실을 찾는 관람객에게 전해지고 있다
제3전시실
임시정부 요인들 · 백범 김구의 삶 · 백범 김구 연보
임시정부 경무국장 시절 가족의 단란한 한때 / 1922년
왼쪽부터 김구 · 큰 아들 인 · 부인 최준례
가족 사진 / 1934년
왼쪽부터 큰아들 인 · 김구 · 어머니 곽낙원 · 둘째아들 신
부인 최준례의 묘비 옆에 선 가족 / 1924년
왼쪽부터 둘째아들 신 · 김구 · 어머니 곽낙원 · 큰아들 인
백범 김구의 삶
동학에 입문하여 구국운동을 펼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다
마지막 독립운동 - 통일정부 수립을 위하여 헌신하다
백범 김구 연보
임시정부 요인들
이름을 터치하면 약력과 활동 사항이 나온다
신기독(愼其獨) · 태극기
김구 서명 태극기 / 1941)
김구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매우사 신부에게 준 태극기로
바탕에 광복군에 대한 우리 동포들의 지원을 당부한 김구의 친필 묵서가 있다
김구 인장
김구가 사용하던 사인(私印)으로 관화(寬和) · 김구지인(金九之印) · 백범(白凡)이라고 새겨진 낙관 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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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친필 서명본
김구가 1949년 3월 1일 임경일에게 증정한 백범일지 친필 서명본으로 1948년 3월 1일 발행한 재판본이다
신기독(愼其獨) / 김구 유묵
김구 서거 당시 책상 위에 있던 유묵으로 「홀로 있을 때도 삼가한다」라는 의미이다
백범 시계 / 1949년 6월
원래는 윤봉길 의사의 시계였으나 윤봉길이 의거를 위해 상하이 홍커우공원(虹口公園)으로 떠나던 날 김구의 시계와 맞바꾼 것이다
김구 주석 최근언론집 · 백범일지 초판본
김구 혈의 / 1949년 6월
김구가 안두희의 저격을 받아 서거할 당시 입고 있던 저고리와 바지가 있다
옷 전체에 혈흔이 남아 있고, 저고리에는 탄흔이 남아 있다
고 백범 김구 선생 국민장 절차
김구 서거 후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영결식과 효창공원에서 열린 하관식 식순이다
국민장 위원장에 오세창 · 부위원장 김규식 · 조완구 · 이범석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라이프지
김구 서거 직후인 1949년 7월 발행된 잡지로 서거 관련 사진 및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백범 김구 데드마스크
김구 서거 당일(1949. 6. 26) 조각가 박승구가 뜬 데드마스크이다
야설(野雪) / 이양연(1771~1853)
1938년 당시 경교장 천정 원형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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