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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청량리역~숭인원~영휘원~세종대왕기념관~고려대역

영휘원(永徽園)은 조선 26대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씨의 원이다

순헌귀비(1854~1911)는 의민황태자 영왕(英王)의 어머니로 명성황후가 일본인에 의해 시해된 후 고종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조선총독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황태자로 책봉된 의민황태자는

1907년에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인질로 일본에 잡혀갔다가 1963년 귀국하였으나, 1970년 병으로 돌아가셨다

신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귀비는 양정의숙 · 진명여학교를 설립하였고, 숙명여학교의 설립에 기부하여 근대 사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

숭인원(崇仁園)은 고종황제의 넷째 아들인 의민황태자의 첫 아들 이진의 무덤이다

이진(1921~1922)은 일본에서 태여나 의민황태자 내외가 귀국하였을 때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이후

순종황제의 명에 의해 특별히 원으로 조영된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청량리역 2번출구

시점이다

 

 

 

 

동대문구 힐링산책길 바닥안내판

 

 

 

 

천주교 청량리성당

청량리 본당이 설립된 1955년경은 한국전쟁 직후로 피폐했으나

들이 넓고 한반도 최초의 전차 〈청량리선〉이 있는 교통 요충지인지라 급격한 인구의 증가가 있었다

당시 제기동 본당도 새로이 마련해야할 처지에 있어 때마침 교적을 두고 있던

청량리 · 휘경동 · 이문동 · 답십리 · 전농동 및 제기동 일부에 거주하는 교우들의 정성어린 헌금으로 60만환의 기금을 마련하여

본당 신부를 모시지 못한 상태에서 당시 교구장 노기남 바오로 주교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청량리 본당 건립기성회를 발족하게 되었다

 

 

 

 

성당

부지 선정에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 요한과 고 아나다시아 부부는 자신이 거주하던 집을 팔아서까지 기부금을 냈으며 모든 교우가 합심 협력하였다

당시 평양교구장 서리이신 Georg M. Carrol(安) M.M몬시뇰(미국인)과 골롬반 외방선교회 지 신부님(스코틀랜드인)께서도 거금을 모금해 주셨고

교구장 노 주교님께서도 많은 지원을 해주셔서 직조공장이던 대지 약660㎡를 매입함으로써 본당 건립 기초를 마련하였다

 

 

 

 

성모자상

 

 

 

 

본당 역사전시관

 

 

 

 

영휘원 · 숭인원 입구

 

 

 

 

숭인원 홍살문

 

 

 

 

정자각 · 비각

판위가 신로 옆에 있다

 

 

 

 

숭인원

정자각 · 비각 사이로 보인다

 

 

 

 

숭인원 표석

원손 숭인원(元孫崇仁園)

 

 

 

 

어정(御井)

임금에게 올릴 물을 긷는 우물이다

 

 

 

 

어정 앞 벤치에서 이동식을 했다

 

 

 

 

영휘원 홍살문

 

 

 

 

정자각

 

 

 

 

영위원 기신제 진설도 · 기신제

 

 

 

 

영휘원 비각

1911년 순헌황귀비가 세상을 떠나고 세운 표석이 있다

 

 

 

 

영휘원 표석

순헌귀비 영휘원(純獻貴妃 永徽園)

 

 

 

 

영휘원

 

 

 

 

제실(祭室)

 

 

 

 

힐링산책길

세종대왕기념관으로 가는 길이다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각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보물 제1805호)

최고의 성군이라 불리는 세종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452년(문종 2)에 세운 비석이다

현재 비신이 심하게 부식되어 표면의 조각이 떨어져 나가 비문을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지만

비문을 지은 정인지와 글씨를 쓴 이용의 이름은 확인할 수 있다

1469년(예종 1) 영릉을 경기도로 옮기면서 서울 영릉에 있었던 신도비와 석물을 묻었다

1691년(숙종 17)과 1738년(영조 14)에 영릉 신도비가 노출되었는데, 논의 끝에 다시 묻어 두었다

1974년 옛 영릉 터를 발굴하여 비신과 이수를 발견하였으나 비석의 받침돌은 찾지 못하였다

1999년 2월에 받침돌을 새로 제작하여 그 위에 비신과 이수를 다시 세웠고 2004년 6월 비각을 건립하였다

 

 

 

 

세종대왕기념관

 

 

 

 

주시경 스승 묘비

1876년 11월 7일 황해도 봉산군 쌍산면 무룡골에서 태어나 19세 때인 1894년에 서울에 올라와 배재학당에서 신학문을 닦고

이로부터 20년 동안 우리 말글 연구와 교육 및 한글운동을 하시다가

39세 되던 해인 1914년 7월 27일 작고하시어 유해는 서대문 밖 수색 고택골(현 은평구 신사동)에 안장하였다

그 뒤 한글학회가 1959년 10월 7일 「고 주시경 선생 이장 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스승의 묘소 이장과 묘비 건립을 서둘러 이전할 산지와 묘소가 마련되고 묘비가 제작되어

「주시경 스승 이장식」과 「묘비 제막식」을 1960년 10월 1일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장현리 묘소에서 각계 인사들과 유족들 참배리에 거행하였다

그 뒤 1981년 12월 12일 국립묘지 국가 제2유공자 묘역으로 다시 옮기실 때 묘비를 비롯한 석물을 옮기지 않고

그 옛 무덤 터에 그대로 세워두었다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한글학회가 2008년 7월 31일 이곳으로 옮겨와 다시 세웠다

 

 

 

 

구 영릉 석물(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2호 · 문종 2년(1452)

영릉은 세종대왕과 왕비인 소헌왕후를 모신 왕릉으로 처음에 헌릉 서쪽 산등성이인 양주 대모산(강남구 대곡동)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길지가 아니라는 논의가 일어나서 예종 원년(1469)에 여주군 능서면으로 옮겨 갔다

이 때 능을 치장했던 석물은 운반하기 어려워 가져가지 않고 현지 주변 땅에 묻었는데 1970년대에 발굴하면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인석

 

 

 

 

무인석

 

 

 

 

세종대왕 상

대왕의 위업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와 서울신문사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의 자문을 받고 국민들의 뜻을 모아 단기 4298년 3월부터 추진하여 4301년 5월 4일 덕수궁 중화전 동쪽 광장에 모셨던 것이다

이제 세종대왕 탄신 육백열다섯 돌을 맞이하여 대왕의 성덕과 위업을 좀더 성실히 기리고 대왕의 높은 뜻을 드높이고자

세종대왕동상이전위원회가 문화재청 등 정부의 도움을 받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중심 전당인 세종대왕기념관이 자리잡은 세종공원으로 옮겨 모셨다

 

 

 

 

수표(보물 제838호)

조선시대에 한양을 가로질러 흐르는 청계천의 물높이를 재기 위하여 수표교 서쪽에 세웠던 수위측정기다

수표는 1441년(세종 23)에 나무로 만들어 처음 세웠고 성종 때(1469~1494)에 돌로 다시 만들었다

현재의 수표는 조선 후기에 청계천 바닥에 쌓인 토석을 걷어내는 준설 공사를 벌인 후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수표

청계천 바닥에 직육면체의 초석을 두고 그 위를 기둥 모양으로 깎아 세웠으며 맨 위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덮개돌을 얹었다

돌기둥은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길게 육각 모양으로 만들어 그 표면에 1자에서 10자까지 눈금을 새겼다

한 눈금은 주척(周尺) 1자로 평균 21.5cm 간격이다

그 중 3자 · 6자 · 9자를 각각 갈수 · 평수 · 대수로 삼았다

이 수표는 청개천을 덮는 복개공사 때문에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다가 1973년 10월 다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조선시대의 농사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가뭄과 홍수를 예측했던 과학문화재로서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전체 높이는 3m다

 

 

 

 

측우기

비가 온 양을 재는 기구로서 세종 23년(1441)에 당시 세자인 문종에 의해 창안되어 세종 24년(1442)까지 과학기술자들이 제작한 세계 최초의 우량계이다

쇠를 부어 만들었으며, 서울은 서운관에 설치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헌종 3년(1837)에 제작한 측우기(보물 제531호) 1기와 측우대 5기가 남아 있다

 

 

 

 

세종대왕기념관 입구 벽면이다

 

 

 

 

한글조형물

 

 

 

 

물시계(누각)

아래 물통에 물이 드는 대로 자가 떠올라서 자의 눈금을 가지고 시간을 알도록 한 것이다

물시계 역사는 이미 신라 성덕왕 때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 20년(1438)에는 더 정밀한 자격루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 물시계는 중종 31년(1536)에 주조된 것으로 현재 덕수궁에 보전되어 있는 것을 1/2로 줄여서 만든 것이다

 

 

 

 

세종대왕기념탑

 

 

 

 

청례대중궁

 

 

 

 

가족

수림아트센터 앞을 지난다

 

 

 

 

국립산림과학원

평일엔 입장 불가다

 

 

 

 

정릉천 위로 내부순환도로가 지난다

 

 

 

 

정릉천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역이 마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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