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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 월미문화관

인천 월미문화관은 수신제가의 공간 · 치국평천하의 공간 그리고 기획전시실 등 세 전시실로 나뉘어 있다

 

 

월미문화관

2012년 개관했다 · 입장료 무료다

 

 

 

 

점박이 물범 친구들

인천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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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안내데스크에서 왼쪽 수신제가의 공간부터 보라고 일러준다

 

 

 

 

인천의 역사

월미문화관 정문 안내데스크 왼쪽 벽면이다

 

 

 

 

수신제가의 공간

한 인간의 출생과 함께 출산의례 및 특별한 행사 예절이었던 관혼상제 그리고 역사적 자취를 통해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

 

 

 

 

수신제가의 공간

회갑연 · 혼례 · 출생 등의 문화공간이 보인다

 

 

 

 

탄생 · 금줄달기

출산의례는 개인의 생이 시작되는 의례로서 통과의례의 첫 번째 과정으로 전통사회에서 혼인은 자녀 출산의 수단으로 여겼으며

혼인한 여성은 아이를 낳는 일을 가장 큰 의무인 동시에 소망으로 생각하였다

조선조에서는 아들을 낳아야만 후손의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알았고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은 이른바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한 가지를 어긴 것이 되어 시집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

금(禁)줄달기

부정을 막기 위하여 문이나 길 어귀에 건너질러 매거나 신성한 대상물에 매는 새끼줄로 「인줄」이라고도 한다

볏짚 두 가닥을 성인남자의 새끼손가락 정도의 굵기로 왼 새끼줄을 꼬아서 여기에 다른 물건을 첨가시켜서 만든다

아이를 낳으면 그 집에서는 대문에 금줄을 친다

 

 

 

 

돌잔치 · 돌상 · 돌잡이

돌잔치는 아기의 첫 생일을 축하하는 한국의 전통 문화이다

돌잔치의 「돌」은 12개월을 한 바퀴 돌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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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상의 주격인 음식은 백설기와 수수팥떡이다

백설기는 신성한 백색무구한 음식이고, 수수팥떡은 붉은 팥고물을 묻힌 경단으로 빨간색이 액(厄)을 물리친다는 토속적인 믿음에서 비롯한 풍습이다

아기 생일에 수수팥떡을 해주어야 자라면서 액을 면할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은 한국 전역에 걸친 것으로

아이가 10세가 될 때까지 생일마다 수수팥떡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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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어른 앞에서 아이 앞에 물건을 늘어놓고 아이가 집게 하는 풍습이 있다

이렇게 물건을 잡게 하는 풍습을 돌잡이라고 한다

잡는 물건에 따라 아이가 장차 커서 어떻게 되겠다는 얘기를 나누는데 이를 시아(試兒)라고 한다

 

 

 

 

서당교육

조선시대 서당에서의 교육은 주로 양반자제들의 과거를 준비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명종 때 제정된 「경외학교절목」에 따르면 동몽훈도에게는 먼저 소학을 가르쳐 구독에 익숙하게 하고

문리가 어느 정도 터득된 다음에 대학 · 논어 · 맹자 · 중용을 익히게 하여 사학(四學)에 진학시켰다

따라서 평민의 자제들은 수신제가의 일상적인 교양이나 생활의례 및 관혼상제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데 그쳤다

이처럼 평민의 자제들이 다니는 서당에서 민중교화를 목적으로 한 것은 정부가 유교사상에 입각한 예속의 교화에 중점을 둔 교육을 장려하였다

 

 

 

 

관례

예전에는 혼례를 치루기 전에 관례라는 의식을 가졌다

남자 15세부터 20세까지 관례를 행하는데 어른의 의복을 입히고 관(冠)을 씌워 성년이 되었음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절차이다

계례란 처녀가 처음으로 머리를 틀어 올려서 비녀를 꽂는 의식을 말하는데 여아 나이 15세가 되면 혼인을 정하지 않았더라도 계례를 행한다

예전에는 혼례를 치루기 전에 관례라는 의식을 가졌다

 

 

 

 

사부학당

조선시대 관립 교육기관으로 중등 정도의 교육기관이며 사학(四學)이라고도 한다

성균관에 진학하기 위한 일종의 준비과정으로 지방의 향교는 중앙의 동부 · 서부 · 남부 · 중부에 설치된 것인데

향교와 달리 공자를 모신 문선왕묘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15살 정도가 되면 사부학당에 입학하여 소학 및 사서삼경 · 문장 짓는 법 등을 배운다. 지방에서는 서원(혹은 향교)에서 배운다

성균관에 비하여 규모가 작고 교육 정도가 낮은 점, 공자를 모신 문선왕묘를 두지 않은 점을 제외하고는

교육방침 · 교육내용 및 방법 등에서 성균관과 비슷하였다

 

 

 

 

사서삼경

유교의 경전은 보통 사서삼경을 말한다

사서란 논어 · 맹자 · 대학 · 중용을 말하며 삼경은 시경 · 서경 · 역경이다

논어는 공자의 어록이 담긴 경전으로서 공자가 죽은 후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 것이다

맹자는 맹자에 의해 쓰여진 유교의 경서이다. 대학의 내용은 삼강령과 팔조목으로 되어 있다

삼강령은 교육의 목적이며, 이 목적을 이루는 방법이 팔조목이다

중용은 내면적인 수련을 통해 참된 인격을 형성하도록 이끄는 내용이다

시경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으로서 고대 각 지방에서 전해지던 가사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서경은 역대 제왕들이 천명의 보존을 위해 지켜야 할 규범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것은 유교의 정치철학으로 확립되어 위정자의 권력남용을 제어하는 역활을 하였다

역경은 우주의 원리를 상징이나 수리로 표현하고 다루고 있다

그리고 사서오경이라고도 말하는데 오경은 삼경에 예기와 춘추를 포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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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

8세 전후의 어린아이들이 유학 교육의 필수 과정으로서 배우던 수신서이다

송나라 주희의 지시로 제자인 유자징이 편찬하였는데 총 6편으로 내편 4권은 입교 · 명륜 · 경신 · 개고이며, 외편 2권은 가언 · 선행으로 구성되었다

소학은 고려 말 처음 소개되었으며, 조선 초기에는 한양 및 지방의 향교는 생원 · 진사 시험에서 필수과목으로 법제화되었다

성리학이 정착되는 16세기에는 사림파학자들을 중심으로 소학이 더욱 강조되었으며

특히 조광조 등에 의한 사회개혁의 실천수단으로써 소학의 보급에 주력하였다

이후 소학의 보급을 위한 집주류와 언해류의 책들이 다수 수집  · 간행되었는데

16세기의 학자인 김안국은 소학을 한글로 번역한 〈소학언해〉 를 발간하여 민간에 보급하였다

 

 

 

 

인천의 교육기관(향교)

고려와 조선시대의 성리학적 실천 정신에 따라 백성을 교화할 목적으로 지방에 설립한 관립 교육기관을 향교라 하는데

인천지역에는 인천 · 부평 · 강화 교동에 설치 · 운영되었다

한편, 국가에서 건립한 향교와는 달리 학문연구와 성현들에 대한 제사를 위하여 민간에서 건립한 교육기관을 서원이라 하는데

인천에는 숙종 34년(1708)에 건립되어 사액을 받은 「학산서원」이 유일하다

 

 

 

 

인천지역의 인천향교 · 부평향교 · 교동향교 · 강화향교

 

 

 

 

인천향교(인천유형문화재 제11호)

 

 

 

 

부평향교(인천유형문화재 제12호)

 

 

 

 

교동향교(인천유형문화재 제28호)

 

 

 

 

강화향교(인천유형문화재 제34호)

 

 

 

 

혼례

남녀가 부부가 되는데 따르는 모든 의식절차를 일컫는 말로서 예로부터 인간의 대사라 하였고 엄중한 예식을 행하여 왔다

 

 

 

 

혼례 의식

 

 

 

 

회갑

사람이 태여나서 61세(만 60세)가 되는 해를 회갑이라 하고 오래 살기를 기원하여 특별히 큰 잔치를 연다

 

 

 

 

회갑상

한복으로 갈아 입고 회갑상에 앉아 사진을 만들 수 있다

 

 

 

 

치국평천하의 공간

궁궐의 생활공간으로 기본배치는 삼문삼조의 원리에 따라 광화문 - 근정문 - 향오문의 상징적 구성으로

관리업무가 이루어지는 외조공간 · 공적업무의 치조공간과 사적장소인 연조공간으로의 구분으로 왕실문화를 체험한다

 

 

 

 

어좌 포토존

곤용포를 입고 어좌에 앉아 사진을 만들 수 있다

 

 

 

 

내명부 품계

조선시대 궁중에서 품계를 받은 여인을 통틀어 이르는 말인데 위로는 왕과 왕비를 보필하고 아래로는 잡역 궁인들을 다스리는 여인을 말한다

내명부의 역할은 크게 내관과 궁관으로 나뉘고 품계에 따라 고유한 업무가 부여된다

 

 

 

 

왕의 경연

경연의 좌석 배치는 왕이 북쪽에 남향하여 앉고 1품은 동편에 서향 · 2품은 서편에 동향 · 3품 이하는 남쪽에 북향하여 부복했다

강의교재는 사서 오경 및 역사책인 〈자치통감〉과 〈자치통감강목〉이 기본서였다

그밖에 성리대전 · 근사록 · 소학 · 삼경 · 대학연의 · 정관정요 · 국조보감 · 고려사 등이 쓰였다

처음에는 경전 중심이었다가 차츰 성리서와 사서가 추가되는 경향을 보였다

 

 

 

 

왕의 일과

왕의 하루 일정은 기본적으로 일과 공부였다

아침 조회 · 국정 현안 보고 받기 · 회의 주재 · 신료 접견 등이 공식적인 업무였으며 하루에 세 차례씩 유학 공부를 하였다

 

 

 

 

왕의 일과표

 

 

 

 

경복궁 사정전

세종을 비롯한 조선 전기의 왕들이 일상 업무를 보던 경복궁의 편전으로, 이곳에서 경연이 주로 열렸다

왕은 공적인 집무 외에 무수한 비공식행사나 국가제례 등에도 참석해야 한다

또 대소신료들과 전국의 양반 · 일반 농민이나 노비들이 올리는 상소문과 탄원서도 챙겨야 한다

수많은 업무에 시달리는 왕에게도 해방의 기회는 있다

3정승을 비롯해 정1품 이상의 관료가 사망하면 3일간 조정의 업무를 정지했다

정경 이상의 관료가 죽었을 경우에는 2일간 · 판윤을 지낸 사람이 사망하면 1일간 조정업무를 쉬었다

이외에도 세시풍속상의 명절에도 휴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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