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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의주길 제2길(고양관청길)

한양과 의주를 잇는 옛길인 의주대로는 관서대로 · 경의대로 · 연행로로도 불리웠다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은 모두 이 길을 이용했기 때문에 「의주대로」는 조선의 대로에서 가장 중요시한 길이었다

산업화로 옛 원형이 많이 훼손된 다른 옛길과는 달리 의주대로는 거의 원형이 보존되어 지금의 50번 · 78번 등 도로로 남아있다

하지만 교통량이 많고 인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곳이 대부분으로 도로 탐방로도 적합하지 못하여

도보여행객을 위한 탐방로를 개척하여 역사문화탐방로 「의주길」을 개통하게 되었다

의주길은 통일을 지향하는 길이며 유라시아 대륙을 향해 세계로 나아가는 꿈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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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길 고양관청길은 고양의 옛 관아자리인 고읍마을과 고양과 파주를 잇는 관청고개(관청령)을 지나는 길이다

지역사람들은 파주 땅으로 넘어가기 위해 혜음령을 지나는 의주대로 외에 이길 역시 자주 이용했다

두 지역의 경계가 되는 관청고개는 전망이 탁월해서 멀리 관악산까지 바라볼 수 있다

이외에도 벽제관지 근처에서는 고양 지역 유교문화의 중심인 고양향교와

중남미의 이색적인 문화를 맛보고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중남미문화원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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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길은 한 코스씩만 걷자고 했건만 오늘은 두 길을 걸었다

보통 한 코스를 걸을 땐 코스 주변 이곳저곳을 들리며 늘려걷기를 하지만 두 길을 걸으면 지름길로 가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의주길 제2길 고양관청길 안내판

벽제관지 앞에 있다

 

 

 

 

고양교회

한국 최초의 남감리교회로 12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국 최초의 남감리교 교인이자 한국 최초 미국 유학생으로 에모리(Emory)대학과 벤더빌트(Vanderbilt)에서 공부한 윤치호 선생에 의해 세워졌으며

한국인의 촉구와 주선으로 시작된 남감리교의 선교는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파된

북감리교(아펜젤러) · 북장로교(언더우드)와 달리 자주적으로 진행되었다

윤치호 선생과 그의 요청으로 내한한 리드 선교사는 개성을 중심으로 선교를 하다가

1897년 5월 2일, 벽제관이 있던 곳으로 당시로서는 번성했던 마을이었던 고양읍에서 리드와 콜리건이

장년 24인 · 유년 3명에게 세례식을 집례하고 속장을 선출하면서 완벽한 조직을 갖춘 감리교회를 세운다

이후 남감리교는 미국교회의 분열이 조선땅에서도 이어져 있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남감리회 소속의 양주삼 목사와 윤치호 선생 등이 노력하여 〈조선감리교회〉를 탄생시켜 미국보다 먼저 분열된 감리교의 통합을 이루었다

 

 

 

 

고양 벽제관지(사적 제144호)

조선 성종 7년(1476) 11월에 세운 벽제관은 우리나라에 오는 중국 사신의 공용 숙박시설이 있었던 곳이다

중국 사신들은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예를 갖추어 한양으로 들어갔다

또한 중국으로 가는 우리나라 사신들도 여기서 머물며 휴식을 취하곤 했다

한편 벽제관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 장군의 군대와 왜군과의 벽제관전투가 있었던 자리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일부 헐렀고,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려 현재는 그 터만 남아있다

 

 

 

 

고양향교로 가는 주택길이다

 

 

 

 

중남미문화원

중남미의 이색적인 문화를 맛보고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고양군수 조종춘 송덕비

고양향교 외삼문 앞에 있다

 

 

 

 

고양향교(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9호) 명륜당

1398년(태조 7)에 성균관이 건립되었고 고양향교는 1428년(세종 10)에 원당리 서삼릉터에 있는 관아 재건축시 고양향교도 건립되었으며

1537년(중종 32)에 중종계비 장경황후의 능인 희릉을 이장하면서 대자동 고읍마을로 이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 후 재건축하였으며, 1625년(인조 3)에 고양동 현 위치에 이전하였다

1909년 향교 안에 있는 명륜당에서 당시 고양군민들에 의하여 명륜학교(2년제)를 개교하였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970년부터 1988년까지 개축 및 보수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사청(典祀廳)

제기를 보관하는 곳으로 고양향교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이다

 

 

 

 

대성전(大成殿)

공부자의 위패를 모신 성묘(聖廟)다

 

 

 

 

고양향교 담을 끼고 오른다

 

 

 

 

고양향교 포토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는 안내판이 옆에 있다

 

 

 

 

고양향교 · 최영장군 방향안내판

 

 

 

 

고양동 윤창아파트

이동식을 한 정자 옆에서 봤다

 

 

 

 

고향향교 뒷산 정자에서 이동식을 했다

 

 

 

 

최영장군 묘 · 체험의 숲 방향안내판

체험의 숲 방향으로 간다

 

 

 

 

체험의 숲 안내판

 

 

 

 

체험의 숲 · 푸름의 숲 방향안내판

 

 

 

 

푸름의 숲을 지나 사거리에서 오른쪽 내리막길로 간다

 

 

 

중부대학교

내리막길을 다 내려오면 LG전자 고양물류센터 앞이다

이곳에서 왼쪽 중부대학교 입구 방향으로 내려간다

 

 

 

 

대자소천 안내판

중부대학교 입구를 지난 곳이다

 

 

 

 

비룡정사 · 정무도원 빗돌

이곳에서 오른쪽 고읍마을 방향이다

안내판 화살표가 모두가 오른쪽을 가르킨다

 

 

 

 

(주) 태창유리

동헌로에서 동헌로235번길로 잠시 걸으면 있다

 

 

 

 

연산군시대 금표비(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8호)

연산군 때 세워진 이 비는 연산군의 유흥지인 고양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기 위하여 세운 금표비로 무단으로 들어올 경우 처벌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금표비는 고양시 대자동에 있는 금천군 이변의 묘역 안에서 발견되어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비의 크기는 높이 1.38m · 폭 0.54m · 두께 22.5cm이다

이 비석은 금석문으로 희귀할 뿐만 아니라 문헌의 사실을 고증해주는 귀중한 예이다

 

 

 

 

금표비의 진실

1994년 11월 덕양구 대자동에서 발견되었다

비석에는 「금표내범입자논기훼제서율처참(禁標內犯入者論棄毁制書律䖏斬)」14자가 새겨져 있는데 사람들은 「금표비」라 부른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폭군 연산군의 사냥터에 사는 주민들을 내쫒고 못들어오게 금지했던 표시문안을 새긴 비석이다

금표비는 대자동 고읍마을 입구에 있다

 

 

 

 

전주이공희천지묘(全州李公羲天頌德碑) 빗돌

의주길로 혜덕사로 가는 길에 있다

 

 

 

 

혜덕사(慧德祠)

조선국 태종대왕의 7남인 온령군으로부터 3세에 이르기까지 8분의 양위의 신주를 모시고 제향을 받드는 사당이다

이 사우를 중심으로 전야후산 일대가 3대 7위 묘소가 4세 수자위(守字位)까지 잠들어 계시는 전주이씨 온령군파의 성지이다

온령군은 태종 7년 정해년에 탄생하였으며, 익산군 부인 순천박씨를 배위로 맞이하였으나 후사가 없어 아우이신 근령군의 둘째 아들 우산군을 계자로 하여

자부는 문성군 부인 문화 류씨를 맞아 여섯 손자와 두 손녀를 두시니 장손자는 용성군(배 정부인 평산신씨) · 둘째 손자 화원군(배 정부인 초계정씨)

다섯째 손자 금천군(배 정부인 고령신씨), 여섯째 손자 청양군(배 정부인 청송심씨)이다

부군께서는 이렇듯 가문의 융성을 보셨으나, 단종 원년 갑술년 5월 12일 향수 46세로 서세하셨다

서세후 50년이 되던 해(갑자년) 둘째 손자인 무풍군이 연산군에 의한 갑자사화에 피화를 당하셨고

2년 후 병인년 6월 24일에는 우산군을 비롯하여 다섯 손자들이 절도에 유배되었다가 동시에 사사 당하는 비운을 겪으셨다

그후 중종조에 복권되어 그 원통함을 다소나마 씻고 숙종조 을유년에 명(命) 정리되었다

 

 

 

 

혜덕사(慧德祠)

 

 

 

 

무예문화원 · 극락보전

전통무예도장이다

 

 

 

 

고읍마을

관청고개로 가는 길이다

 

 

 

 

튼튼꽃벵이농장

 

 

 

 

100년이 넘은 집이다

 

 

 

 

옆에서 봤다

 

 

 

 

할머니(86세) 시고조할아버지께서 지으신 집이다

 

 

 

 

느티나무 보호수(경기-고양-19)

품격 시나무 · 높이 10m · 둘레 4.4m · 지정일자 1982. 10. 15

30~40년 전에는 이 나무에 그네를 매어 뛰던 곳이라하며 마을사람들에 의하면 이 나무의 일부를 땔감으로 쓰기 위하여 베었는데

그 후 귀달린 뱀들이 쏟아져 나와 마을에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밑에서 제사를 지내자 모두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

 

 

 

 

고읍마을회관

이곳 고양시 대자동 고읍마을(행정구역은 덕양구 관산동)은 오랜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이다

마을은 북한산과 개명산에서 이어진 산줄기가 우뚝 솟은 국사봉(일명 옥녀봉) 아래에 남향하여 자리하고 있어 명당자리로 유명하다

국사봉은 이 산봉우리에서 고양군수 등이 올라 나라의 안녕과 왕의 만수를 기원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법정명 명칭은 대자동이며 자연촌락 마을 이름은 고읍(古邑)이라 한다

고읍은 조선시대에 고양군 전체를 다스리던 고양군청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도 그 흔적을 곳곳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곳 국사봉 아래 대자동 산1-10번지에 있던 대자동 고읍 고양군청은 서기 1544년부터 1625년까지 81년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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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정자에서 이동식을 했다

 

 

 

 

의주길 이야기 /  관청고개(관청재) 이야기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의 고읍마을과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이곳을 관청고개라 부르는 것은 고개 아래 고읍마을이 과거에 고양관아를 비롯한 주요한 관청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지역에는 고읍(古邑) · 읍내 · 관청재 · 향교골 등 옛 관청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주로 혜음령이 옛길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관청고개 역시 고양과 파주를 오가는 주요한 도로였다

한편 관청고개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의 이름은 「국사봉」인데 이는 나라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의주길 방향안내판

관청고개로 가는 마지막 집이다

 

 

 

 

관청고개로 오르는 곳이다

 

 

 

 

이곳을 지난 사거리에서 직진이다

 

 

 

 

용미3리 1.4km 입석방향목

관청고개 마루금으로 오르면 있다

 

 

 

 

관청고개에서 파주 광탄면 용미리로 내려가기 전에 돌아봤다

 

 

 

 

파주 광탄면 용미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관청고개 날머리에서 돌아 봤다

 

 

 

 

의주길 이야기 · 경기옛길 안내판 / 혜음령고개와 수령고개 이야기 · 용미4리 진대밖이 이야기

 

 

 

 

용미3리 버스정류장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8km, 소요시간 7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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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길 1 · 2길을 같이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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